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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진보-보수 상임위원들 설전…위원장 독재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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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진보-보수 상임위원들 설전…위원장 독재 시도? '상임위 권한축소' 운영규칙 개정 일단 유보
위원장 권한을 강화하고 상임위원회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된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위원들간 설전 끝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음달 8일로 넘어갔다.

25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5차 전원위원회에서는 개정안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상임위원들이 퇴장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상임위원 3명 중 2명(유남영, 문경란)은 '운영규칙 개정안'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며 퇴장했다.

퇴장 직전 유남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축구 선수가 경기 도중 경기규칙을 바꾸자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며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격하게 말하면 모욕적이다"고 말했다. 문경란 상임위원도 "인권위 9년 동안 상임위 결정을 가지고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며 "결국 개정안은 상임위를 무력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뒤 퇴장했다.

인권 관련 제 목소리 내왔던 상임위 권한 축소 우려

이날 논의된 운영규칙 개정안은 △상임위원 2인 이상 또는 위원장에 의한 상임위원회 의안의 전원위원회 회부 △긴급 인권현안에 대한 의견포명 및 권고는 전원위원회 사항으로 변경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보수 성향의 김태훈, 최윤희, 한태식 비상임위원 3인이 제출했다.

논란이 됐던 건 이번 개정안이 그간 인권과 관련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왔던 인권위 상임위의 권한을 축소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임위는 그간 양천경찰서에 피의자 고문 시정 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여론통제에 대해 민간기구로 업무이관 권고, 고용노동부에 노동자의 노조 설립 자유 보장 권고 등을 내렸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상임위에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사안들을 위원장 직권으로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다. 이 경우,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의견표명을 꺼려온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이 대부분의 안건을 전원위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인권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 방통위, 고용노동부 등에 대한 권고 결정은 현병철 위원장이 반대를 했으나 상임위원 3명이 찬성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의 전원위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두고 입장을 표명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전원위로 안건을 넘긴다는 건 사실상 안건을 폐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인권단체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실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직권 조사, PD수첩 재판부에 대한 의견 제출 등 민감한 정치적 사안 안건 대부분을 부결시켰다.

▲ 현병철 위원장. ⓒ연합뉴스

보수 위원들 "중요한 안건들은 전원위에서 결정해야 한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태훈 비상임위원(변호사)은 "그간 상임위에서 결정한 안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들이었다"며 "이러한 결정은 전원위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제 10조에는 상임위에서 상정된 안건 중 사안이 중대할 경우 전원위에 회부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하지만 그간 상임위에서는 이러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전원위는 인권위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며 "상임위 결정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절차를 지키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곳으로 바꾸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윤희 비상임위원(건국대 교수)도 "현재 상임위는 구제신청이 들어온 거 빼고는 모두 한다"며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간 차이가 있는 게 아님에도 현재 인권위는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은 이어 "이번 개정안이 상임위의 정당한 권한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권위가 발전을 하려면 규정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기에 개정안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양원 비상임위원은 "상임위가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비상임위원은 아무런 업무가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무용론까지 나온다.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개정안에 찬성했다.

"개정안은 속임수"

반면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비상임 위원들은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주영 비상임위원(변호사)은 "상임위에서 결정한 내용이 반인권적인 결정이라면 상임위 안건을 전원위로 회부시키는 걸 고민해보겠지만 그간 상임위 결정 내용에는 그런 게 없었다"며 "개정안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주장했다.

장 위원은 '상임위원 2인 이상 또는 위원장에 의해 상임위 의안을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도 "속임수"라고 일갈했다. 장 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상임위는 4명으로 구성된다"며 "이 구조에서 주장이 2대 2로 갈릴 경우, 당연히 안은 전원위로 간다. 그럼에도 2인 이상의 상임위원이 안을 전원위로 회부할 수 있다고 개정안에 명시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장 위원은 "결국 위원장에게 상임위 안건을 전원위에 올릴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한 속임수"라며 "위원장 맘에 들면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매번 기각이 되는 전원위에 올려 사실상 안을 없애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장 위원은 "현 인권위에서 전원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간 여러 번 안건을 논의했지만 번번이 의견을 표명하지 못하고 기각됐다"고 비판했다. 장 위원은 "이런 구조에서 위원장에게 안을 전원위로 올릴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건 사실상 막강한 권한을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부결만 반복하는 전원위에 상임위 기능을 옮기겠다? 왜?"

조국 비상임위원(서울대 교수)은 "과거 전원위에서는 중요한 파급이 있는 진정뿐만 아니라 국가의 인권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안을 선별해 논의했었다"며 "인권 관련 정책 사안들을 선도적으로 많이 다뤘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하지만 현재 전원위는 이러한 역할을 포기하면서 안건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상임위에서 일을 가져갔다며 상임위를 무력화하려는 건 옳은 게 아니다"라며 "과거에도 상임위는 지금처럼 많은 일을 했었다"고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10월 10일 임기가 만료된 최경숙 전 상임위원을 대신해 선임된 장향숙 상임위원도 "밖에서 전원위 소식을 들은 거라곤 '안건을 부결했다'는 이야기밖에 없었다"며 "그럼에도 상임위의 기능을 전원위로 옮기겠다고 하는 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이러한 의견을 두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듯하다"며 "좀 더 안을 다듬고 상임위에서 논의를 한 뒤 다음에 재상정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표결을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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