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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문신 '철거 용역'들의 눈물, '괴물'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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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용 문신 '철거 용역'들의 눈물, '괴물'은 되지 말기를… [기자의 눈] 명동 마리의 또 다른 아픔, '철거 알바'의 기억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기자는 합기도 도장을 다녔는데, 어느 날 경호업체에 다니는 도장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다. 급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는데, 도장 동기 몇 명과 함께 인천으로 오라는 거였다.

일당 10만 원의 유혹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하루 일당 10만 원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당시 막노동 일당이 5만 원이었다. 결국 도장 동기 몇 명과 선배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

선배가 오라고 한 곳은 인천 포구 근처. 도착하니 이미 당시 기자 또래 덩치 좋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했다. 건물 철거를 방해하는 사람을 막는 것. 알고 보니, 선배가 다닌다는 경호업체는 재개발 지역 철거가 주 업무였다. 기자는 그날 철거 용역이 됐다.

▲ 3일 밤 11시께 명동 3구역 재개발 지역 커피점 '마리'를 점거하고 있던 용역 직원들이 세입자와 학생에게 밀려났다. 용역 직원이 '마리'에 연대를 온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프레시안(허환주)

처음엔 큰 거부감이 없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재개발 건물에서 쫓겨난 상인들과 공사현장 진입을 막는 용역 직원 사이에서 충돌이 생겼다. 그때 고기 잡는 '작살총'을 든 상인 한 명이 기자에게 말했다.

"비키지 않으면 (작살을) 쏜다. 네가 들고 있는 방패를 못 뚫을 거 같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야. 너 죽이고 나도 곧 죽을 테니 걱정하지 마."

플라스틱 방패를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내가 여기를 왜 왔나.' 하지만 후회스런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대신 온갖 욕을 퍼부었다. 몸을 밀치기도 했다. 마음 속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기자보다 나이가 20~30살은 많은 분들이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상인들은 결국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눈물을 흘리는 50대 아주머니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왜 이들과 싸워야 했을까.' 철거 용역 아르바이트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뒤론 도장 선배가 불러도 가지 않았다.

'그들도 비슷한 이유로 철거 용역이 됐을 게다'

가슴 한켠에 무겁게 내려 앉아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지난 3일 밤 11시께였다. 명동 제3구역 농성장 '마리' 앞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예술인과 학생 등 60여 명은 급히 '마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곳에서 농성 중이던 세입자와 학생 등은 이날 새벽 5시께 용역 직원들에게 밀려났었다.

카페 '마리'는 명동의 '두리반'이라고도 불린다.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선정된 명동성당 맞은편 일대, 명동 3구역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지난 6월 14일부터 옛 중앙극장 옆 커피점 '마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해 왔다.

-명동 '마리'는?

☞"다 부쉈다. 새벽에 들어닥쳐 사람을 짐짝처럼 끌어냈다"
홍대에 이은 명동의 '눈물'…'커피점 '마리'를 아시나요?'
평범한 그들은 왜 싸움꾼이 돼야 했나?

'마리' 안에 있던 용역 직원 20여 명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학생 등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며 버텼다. 하지만 곧 '마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밀려난 용역 직원은 분을 참지 못해, 상의를 벗어 던지며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용역 직원은 "xx, '졸라' 열 받네. 'XX 겁대가리 없이… 우리나라에 빨갱이 졸라 많다"며 "뒤에서 만나면 죽을 줄 알라"고 말했다. 욕을 내뱉을 때마다 등에 새겨진 용 문신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10여 년 전 인천 재개발 지역에 있던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철거 용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도 스무 살 때 기자와 비슷할 게다.

스무 살 시절, 기자가 하루에 10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기껏 막노동판이나 이삿집 센터에서 일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루종일 삽질하고 손에 쥐어지는 돈은 소개비와 차비를 떼면 약 4만 원이었다. '일당 10만 원'이라는 철거 용역 아르바이트가 솔깃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덤덤해진 폭력,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날 학생 중 한 명이 용역 직원에게 '너희 엄마가 너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쳤느냐'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용역 직원 중 한 명이 울분을 참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나 많이 못 배우고 못나서 이 짓하고 살지만, 우리 어머니 욕은 하지 마라. XX. 우리 어머니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냐. 확~ 씨."

그러면서 20대 초반 용역 직원은 눈물을 훔쳤다. 최근 철거업체 용역으로 일하는 대학생이 꽤 많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일 년에 천 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일당이 8~15만 원쯤 된다는 철거 용역 아르바이트 기회가 솔깃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미국 <LA타임스>는 지난 6월 "대학생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용역 직원으로 일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가 한국에서 출간될 정도로 등록금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리고 싶다. 등록금 때문에 철거 용역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10여 년 전 기자와 함께 인천 재개발 현장으로 달려갔던 합기도 도장 동기 가운데 한 명의 근황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처음에는 망설여지지만 곧 익숙해진다. 상처 주는 일이 무덤덤해질 때, 인간은 괴물이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수입이 적어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권하고 싶다.

▲ 온 몸에 문신을 한 용역 직원이 세입자와 학생이 점거한 '마리' 입구에 서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3일 밤, 명동 '고지전'…"언제까지 폭력의 악순환인가"

3일 밤의 충돌은 경찰 1개 중대가 도착하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세입자 측은 '마리'를 재점거 했으나 용역 직원 150여 명이 4일 새벽 3시께 다시 '마리'를 점거했다. 현재 세입자와 학생 등은 '마리' 옆 가게를 점거하고 이들과 대치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와 용역 직원 등 4명 이상이 병원에 후송됐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충돌은 계속 발생할 거라는 점이다. 중구청이 중재하는 시행사와 세입자 간 협상이 결정된 이후 '마리'를 점거하기 위한 용역과 세입자 간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점거 장소를 없애려는 시행사 측과 이를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세입자 사이의 충돌이 그것. 마치 영화 '고지전'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몸싸움 속에서 다치는 것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용역 직원들, 그리고 세입자들이다.

용역 직원들 역시 언젠가는 욕설과 폭력에 익숙해진 자신이 낯설게 여겨지는 날이 올 게다. 그들 역시 집 주인보다는 세입자가 될 가능성이 클 텐데,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차분히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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