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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 시대의 미륵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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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 시대의 미륵이셨습니다 [전태일 통신]<77> 이소선 어머니 영정에 바칩니다
이 시는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추모의 밤-희망은 꺼지지 않는다>에서 낭독된 추모시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캄캄하고 거친 어둠의 길을 걸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부르튼 손 짓물러진 눈자위 얼음 박힌 발을 끌며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 달려 오셨습니다

공단 어두운 길에서 가슴을 치며 울고 있는 우리들 곁에
가마니에 덮여 트럭에 실려온 우리들 주검 곁으로
슬픔 가득한 얼굴로 숨이 차도록 달려 오셨습니다

밤새 가슴을 부여안고 기침을 해대는 어린 여공들 곁으로
쫒겨난 공장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우리들 곁으로
떠나는 영구차를 따라
눈물도 닦지 못하고 신발도 벗겨진 채 허둥지둥 달려 오셨습니다

언땅에 주저앉아 비에 젖어 울고 있는 우리들 곁에
프레스에 잘려나간 손목 부여잡고 울부짖는 사람 곁으로
머리채 잡혀 끌려간 호송차를 가로막고 안된다! 안돼! 이놈들아!
내 자식들 내놔라 내 자식들 죽이지 마라
어머니 우시며 통곡하시며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오셨습니다
무자비한 독재의 군홧발에 밟히며 짓밟히며
그렇게 오셨습니다
최루탄에 쓰러지며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바리케이트에 머리를 짓찧으시며
머리채 잡혀 감옥에 끌려가시며
만신창이가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숨죽여 떨고 있는 우리 곁에
몸을 사리는 우리 곁에
절망에 지쳐있는 우리들 곁에
종교보다 더 강한 눈빛으로
종교보다 더 깊은 눈물로 우리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어머니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억울한 눈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재갈이 물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세상
철벽같은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던졌습니다
아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고 했던 세상 향해
어머니 평생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화인처럼 가슴에 새기고

"컴컴한 암흑 속에 어린 여공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어머니
보다 못 견뎌서 어떻게 해보려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어머니, 내가 이루지 못한 일
어머니가 이루어 주세요, 약속하세요, 어머니"

아들은 왜 어머니에게
그 가난에 허기지고 모진 세월 살아오신 약한 어머니에게
왜 그 험한 길을 가라 했나요
왜 어머니 더러 그 모진 약속을 하라 했나요
그 잘난 세상에 말 할 곳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캄캄한 철벽같은 세상에 어머니라도 나서달라고 한
아들은 또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요
그렇게도 억울하고 그렇게도 가여워서 그랬나요 하지만 어머니
모든 걸 아셨나요 이건 어머니와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운명인 걸 어머니 다 아셨나요

그래서 어머니 그 약속을 평생 성경처럼 끌어안으셨나요
잘난 인간들 그다지도 많은 그 먹통같은 세상을 향해
온몸을 던져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안아주어야 한다 내가 아파해야 한다
내가 사랑해야 한다
그랬습니다 어머니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이 되어야 한다고
길이 되어 우리에게 그렇게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새로운 세상은 좀체 오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 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하루의 시작은 기도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결코 이길 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삶을 완성할 수 없고
새 세상은 우리의 가슴에서부터 오는 줄 어머니 아셨기에
어머니 하루의 마지막은 기도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그 사랑으로 차려진 밥상을
그 따듯한 말씀으로 차려진 밥상을
인정과 눈물의 밥상을 넘치게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넘치는 사랑을 하루에도 열두 번 잊어먹습니다
부끄럽게도 어머니 차려주신 둥근 밥상머리에 앉아
자식들은 또 대가리가 터지게 싸웁니다
어떤 자식은 저 혼자 다 처먹으려다 밥상을 엎었습니다
덩치 큰 놈은 작은 놈의 밥술을 뺏습니다
먼저 차지한 자식은 나중 온 자식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게 안타까워 그렇게 가슴 치시던 어머니 언제부턴가
어머니 저만치서 웃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우리의 선지자였고 스승이셨습니다

그랬습니다
마흔 살까지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흔 해는 이소선의 아들이 전태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을 두 번 낳으셨습니다
한 번은 배앓이로 또 한 번은 가슴앓이로 낳으셨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슴앓이 그 지독한 가슴앓이 끝에
피가 끓어 가슴에 붉은 피가 바다처럼 펄펄 끓어 넘친
그곳에 자신의 목숨을 부어
기어코 그 자식을 다시 낳으셨습니다

다시 낳은 자식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수많은 자식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40년 전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시대의 미륵입니다
병들고 억눌린 중생들을 위해 다시 나신 미륵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부활입니다
이것이 부활사건의 증거가 아니라면
이천 년 전 예루살렘의 사건은 협잡꾼들의 사기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가시지만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남은
만신창이가 된 몸만 벗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새로 입을 것입니다
거대한 바윗돌이 바람에 쓸려 모래밭이 될 때까지
인간의 대지에
민중의 몸에
다시 또 다시 살아계실 미륵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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