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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예비역 김 씨는 왜 백혈병으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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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해병대 예비역 김 씨는 왜 백혈병으로 죽었을까? [단독] 방사능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조선소 하청 노동자
지난해 9월 29일, 조선소에서 비파괴검사 업무를 하던 36살 노동자가 사망했다. 방사능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다. <프레시안>은 그가 죽기 전 쓴 경위서를 단독 입수했다. 여기에는 그가 일하면서 겪은 황당한 일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관리 당국이 한 일이라곤 역학조사 뿐이었다. 업주는 6개월 영업정지 처벌만 받았다. 지난 7월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또다른 비파괴검사 노동자가 고인과 똑같은 이유로 죽을 가능성이 있다. 원자력 발전소나 병원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관리가 엄격한 편이지만, 조선소처럼 민간 기업, 더구나 하청업체의 경우, 관리 당국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방사능의 위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일만 하고 있다. 고인은 죽기 직전 "왜 그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고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할 뿐"이라며 "치료라도 잘 받아 다시 건강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남긴 경위서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편집자>

김병욱(가명) 씨는 해병대에서 전역한 직후인 2001년 4월, 한 구인광고를 접한다. KNDT&I(한국비파괴검사) 울산출장소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지원서를 냈고, 무난히 입사 통보를 받았다. 회사에서 그가 맡은 일은 비파괴검사. 방사선(X-ray) 등을 이용해 선박 용접 부위에 금이 간 곳이 없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현대중공업, 진명기업, 세진중공업 등으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았다.

작업은 주간 조와 야간 조로 운영됐다. 주간에는 초음파 검사, 자력을 이용한 검사 등이 진행됐다. 야간에는 방사선 투과검사를 집중적으로 했다. 주간은 다른 일 때문에 선박에 있는 사람이 피폭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주로 야간에 일했다. 물론 주간 조와 야간 조는 서로 번갈아가며 일하도록 규정돼 있다. 작업자가 방사선에 오래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가 속한 조는 주간 일을 1주일 하면, 야간 일은 연속 3주에서 길면 연속 12주까지도 했다. ·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 씨는 입사 이래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기계작동법만 배웠을 뿐이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방사선 투과검사 작업 시에는 피폭 정도를 알 수 있는 휴대안전장비(필름배지, 포켓 도시 메타, 알람모니터, 서베이 메타)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은 방사선에 노출됐는지 알려주는 알람 모니터 정도만 휴대하고 작업했다.

▲ 용접을 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 이 작업이 끝나면 용접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비파괴 검사를 실행한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

피폭 수치 알려주는 필름배지, 사업주가 일괄 보관

나머지 보호 장비는 몇 번 구경하지도 못했다. 작업 시 항상 휴대하고 있어야 할 필름배지도 마찬가지다. 필름배지는 작업자가 방사능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피폭량을 알려준다. 하지만 김 씨는 회사에 사고가 났을 때만 잠시 받았다. 회사는 필름배지를 직원들에게 일괄 회수해 관리하고 있었다.

작업자가 피폭 받으면 안 되는 선량 한도는 1년에 50mSv이다. 지속적으로 피폭되면 위험하기에 원자력법에는 선량한도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선량한도를 초과하지 않고서는 작업을 수행할 수 없어 아예 필름배지를 사업주가 일괄 보관하는 게 보편적인 일이다.

안전수칙도 안 지켜지긴 마찬가지였다. 방사선 투과검사는 반드시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팀별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대부분 1인 1장비로 작업을 나갔다.

하루 최대 작업량도 지켜지지 않았다. 최대 50장 이상 찍는 걸 금지하고 있지만 김 씨는 평균 200장을 찍어야 했다. 많이 찍을 때는 300~400장도 촬영했다. 김 씨가 사용하는 휴대용 방사선 장비는 A4 크기 촬영만 가능했다. 대형 선박의 용접부위를 검사하려면 이런 장비로는 하루 50장을 찍어선 세월없이 찍어야 작업이 마무리됐다.

게다가 선박내부에서 작업을 할 때는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진 뒤, 방사선 투과검사 작업을 해야 했지만 그 거리만큼 떨어졌다 다시 오는 걸 반복할 경우, 작업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피폭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방사선에 노출된 상태로 작업했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몸속은 피폭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방사선을 취급하는 작업자는 매년 의무적으로 혈액 검사를 하게 돼 있다. 김 씨가 입사한 2001년에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2006년부터 혈액 검사를 하면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하로 나왔다. 하지만 회사는 별다른 안전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김 씨는 계속 야간 조에서 방사선 투과 검사를 했다.

그러다 2010년 발가락 염증이 낫지 않아 병원에서 혈액정밀검사를 받았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인한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이후 1년 가까이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2011년 9월29일 숨졌다.

일하던 스무 명의 노동자 중 4명이 혈액 관련 병 얻어

문제는 이런 일이 김 씨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김 씨와 같이 야간에 일한 노동자 상당수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김 씨가 일한 KNDT&I에서 야간 조에 일하는 노동자 20명 중 김 씨를 포함해 4명이 혈액 관련 병을 얻었다. 20%가 산업재해를 당한 셈이다.

2007년 입사한 조 모 씨의 경우 2009년 백혈병으로 산재 승인이 돼 현재까지 요양 중이다. 또한, 2011년 김 씨의 산재신청 건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노동자 한 명이 골수이형형성증후군을 진단받고 현재 원자력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또 다른 노동자 한 명은 혈액 수치 이상으로 현재 특별관리 대상이다.

비파괴검사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 안전보건교육 대상이다. 또한 16시간 이상 방사선 측정기기 기능에 관한 점검, 방호거리, 비상시 응급처치 및 보호구 사용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원자력시행규칙 제16조(피폭방사선량 평가 및 관리)를 보면 방사선종사자 피폭방사선량을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위해 개인선량계(필름배지 등)를 착용하도록 하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정하는 기간마다 교체, 판독하게 돼 있다.

하지만 비파괴검사 노동자들은 정기교육은 물론 특별교육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필름배지는 아예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다.

교과부가 2010년에 김 씨가 일한 업체를 역학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상황은 명확히 나타났다. 당시 교과부는 방사선 피폭선량을 확인하기 위해 업체에 김 씨 필름배지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제출하지 않았다. 필름배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업체 관계자는 "개인피폭선량을 초과하게 되면 일정 기간 동안 계속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며 "필름배지 같은 경우, 회사에서 일괄보관, 관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다니던 업체는 교과부 역학조사 결과, 위법사실이 드러나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사업주가 구속되기는커녕 과태료조차 부과되지 않았다. 지난해 7월부터 정상 영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 대상으로 한 차례 안전교육을 한 게 전부다.

▲ 아침 체조를 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 ⓒ프레시안(허환주)

관리, 감독하지 않는 정부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김 씨가 다니던 업체에만 국한된 걸까. 전국에 비파괴검사 업체는 50여 개, 종사자는 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곳에서 일하는 종사자 중 대부분은 김 씨와 비슷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관리당국은 이에 대한 관리나 감독은 전혀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4년 방사선 피폭량이 20mSv 이상인 56명 중 48명이 비파괴업체 종사자였다.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기준치를 넘겨 방사선에 피폭된 노동자 10명 중 9명이 비파괴 검사원이기도 했다. 비파괴검사 노동자가 이직이 잦고, 교과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걸 감안하면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현재 조사한 바로는 경남지역 비파선검사 업체의 경우, 5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한 명이 갑상샘암에 걸렸다는 게 확인됐다"며 "조사를 하면 이런 사례는 더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방사능에 노출될 경우, 갑상선암에도 걸린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리 당국은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교과부는 김 씨가 속했던 업체의 역학조사 이후 이렇다 할 후속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작년 10월 교과부에서 분리된 이후, 아직 업무 파악 중"이라며 "비파선검사 관련해 문제점이 있는 것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울산 등 경남 권역 노동자건강권 대책위는 울산과 부산지역 고용노동부에 비파괴검사 업체실태 파악과 업무상질병 발병현황 요구, 안전점검 요구, 역학조사 실시 등을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거부했다.

부산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본부에서 사업계획이 없어, 단독으로라도 (역학 조사 등을) 할 계획이다"면서도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위험한 업무일수록 정규직이 맡아야…"무분별한 외주화, 이제 제동 걸 때"

현대중공업의 경우 2000년 초반까지 비파괴검사업무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수행했지만 현재는 하청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는 걸로 파악된다. 이런 사정은 조선업 전반에 퍼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규직이 비파괴검사를 할 경우, 조선업체는 안전수칙을 적극적으로 지키도록 노력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안전수칙 준수를 회사에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청업체, 즉 비정규직일 경우,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원청의 관리 소홀과 영세사업장의 안전, 보건조치 미흡, 고용노동부의 관리 부실, 교과부의 관리 소홀 등으로 비파괴검사 노동자들은 사실상 아무런 보호가 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현 국장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비파괴검사 노동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 마련 및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도 중요하지만 업무 자체를 아예 외주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일선 현장을 관계 당국이 꼼꼼히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아예 비파괴검사를 수은, 카드뮴 관련 업무처럼 직영 회사가 도급할 수 없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사능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게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방사능에 피폭돼 희생된 이들의 사연이 그들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 실정이다. 또 다른 김 씨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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