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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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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④] 법은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다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3>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한 발만 삐끗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달리 방도는 없다. 그저 다리에 힘을 주고 그 자리에서 버틸 뿐이다. 절벽에서 벗어나기도 쉽진 않다. 버티는 게 전부다. 버티다 힘이 다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절벽'이라는 한국 사회를 사는 노동자의 삶이 그렇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줘도 묵묵히 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말 그대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나갈 길이 막막하다. 정리해고 이후 쌍용자동차에서 22명의 노동자가 죽은 이유다.

노동자가 함부로 해고되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져 있지만 노동 현장에선 '그림의 떡'일 뿐이다.

법은 멀고 현실만 가깝다. 어디 기댈 곳 없는 하청 노동자는 더욱 그렇다. 일하다 다쳐도 해고될까 걱정해야 한다. 퇴직금이나 휴직수당은 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노조를 만드는 건 꿈도 못 꾼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자신이 불법파견 노동자인지도 모르고 일했으나…

STX조선해양 사내하청에서 6년 넘게 일한 오민수(32) 씨는 지난 2010년 1월 30일 해고됐다. 아니 자신이 다니던 하청 회사가 사라졌다. 그 뒤, 복직을 요구하며 회사와 싸우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오 씨가 일하던 회사는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물류를 관리하는 업체였다. 오 씨는 밸브를 담당했다. 하청 업체 사무실은 조선소 밖에 있었지만 오 씨는 일하는 게 원청 업체와 지속해서 소통해야 하는 업무인지라 원청 사무실에서 일했다.

원청 관리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일했다. 연차, 조퇴 등을 허락 맡는 것도 원청 관리자에게 받아야 했다. 그렇게 5년을 일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다. 아니,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를 알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임금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들 비슷하게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이래저래 알아보니 자신은 불법파견 노동자였다. 2009년 4월에 차별시정구제신청을 했다. 부당하게 차별받는다고 생각했다.

함께 일하던 하청 업체 노동자와 노조도 만들었다. 뭉쳐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레 2010년 1월 30일자로 오 씨가 다니던 하청 회사를 없앴다. 그리고 새로 기존 업무를 하던 회사를 만들어 오 씨와 함께 노조를 만든 노동자만 제외하고 고용을 승계했다. 말이 좋아 분사지, 결국 노조원을 솎아내기 위해 위장폐업을 한 셈이다.

언론에서도 보도되지 않는 그의 이야기

▲ ⓒ프레시안
언론에서도 오 씨의 이야기는 보도하지 않는다. 방송사에서 오 씨의 사연을 몇 차례 인터뷰해갔지만 대부분 잘려나갔다. 지역 신문에서는 5회 분량 기고를 오 씨에게 받기로 했으나 2회까지만 실리고 중단됐다. 광고가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오 씨는 현재 법정 투쟁 중이다. 아직 재판은 1심도 진행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최종확정이 날 때까지 9년이 걸렸다. 오 씨 역시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함께 노조를 만든 동료들은 현재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그들이 매달 돈을 모아 오 씨의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오 씨는 결혼해 자녀 한 명을 두고 있었다. 현실은 가깝고 법은 먼 '현실'이다.

오민수 씨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달라는 데, 회사는 법대로 하라며 나 몰라하고 있다"며 "거기다 정규직 노조나 언론에서도 우리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있다. 분명 문제가 있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퇴직금 달라고 요구해도 모르쇠 일관

15년 가까이 조선소에서 파워공(선박 철판을 가는 작업)으로 조선소 하청 업체에서 일해 온 이방성(53) 씨는 지난 2월 초, 사표를 냈다. 3년 넘게 일해 온 하청 업체였다. 1월 한 달 동안 고작 4일 일했다. 작업감독이 새로 데리고 온 다른 파워공 노동자에게 일감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으로 일하지 못할 경우, 평균 임금의 70%를 회사에서 지급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몇 번 항의했지만 회사에서는 아예 무시했다. 결국 사표를 쓰고 지난 3년 동안 일한 퇴직금과 밀린 휴무미지급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씨는 "분명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도 회사는 지키지 않는다"며 "하지만 소송을 걸려니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강병재(50)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6년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동성계전'에서 일했다. 전기배선을 설치하는 하청 업체였다. 일하다 보니 부당한 일이 한둘이 아녔다. 참다못해 몇 가지 문제를 회사에 이야기했지만 개인의 목소리로는 작업환경이 바뀌지 않았다. 몇몇 노동자와 노조를 만들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88일 철탑에 올라 복직 요구했으나…

그러자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정확히 말해 오민수 씨처럼 그가 속한 회사를 폐업시켰다. 2009년의 일이다. 그 뒤 회사, 즉 원청과 복직싸움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라는 하청 노조도 만들었다. 그는 이 위원회 의장이다.

2011년 3월에는 대우조선해양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도 벌였다. 88일간 버텼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강 씨는 아직도 복직싸움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복직할지는 미지수다.

강 씨는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33평 아파트가 있었지만 지금은 7000만 원 전세에 산다.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지금까지 싸워왔다. 강 씨는 "혹시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전세 아파트는 하나 있는 딸에게 맡겨 놨다"며 "더는 돌아갈 곳도, 벗어날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기분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노동자들

근로기준법을 보면 회사의 사유로 휴직을 줄 경우,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한다. 퇴직금도 마찬가지다. 근로계약 체결 시 퇴직금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할 경우, 당연히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자가 노조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로 노동법에는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청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 경우, 원청 업체는 하청 업체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와해한다.

노동부에서 관리·감독을 통해 이런 부분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있다. 접수한 진정서를 통해 조사를 한다해도 사용자에겐 솜방망이 처벌을 할 뿐이다. 그나마 노동자가 진정서라도 내면 다행이다. 하청 노동자의 경우,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려면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집행위원은 "근로감독은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조사하고 그에 따른 시정조치만을 내린다"며 "게다가 처벌 수위도 높지 않아 사용자는 법을 어기는 걸 우습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오 위원은 "전태일이 1970년대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을 했다"며 "하지만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 하며 철탑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위원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있는 강제조항을 만들고 처벌을 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가 있다면 조직력으로라도 회사에 근로기준법 이행을 압박할 수 있다. 해고되거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노조에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하청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있다 하더라도 조직력이 미약한 수준이다. 노조를 만들기만 하면 해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가 있는 곳에서 이들을 흡수하면 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노동자간 알력 다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09년 조사한 조선소 정규직 설문조사를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를 귀 사업장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나'는 질문에 응답자 50.7%가 찬성, 49.3%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반대 이유에는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문제와 노조 조직의 내부경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보다 약 2배 정도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할 경우, 노조의 중요한 결정권과 활동방침이 사내하청 노동자 위주로 변경될 것을 우려했다.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노조 내 권력 침해를 우려하는 거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은 평조합원보다 노조 간부들에게 더 심각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 관계자는 "정규직 노조에서 도움을 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며 "하청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하려 할 때, 방해만 하지 않아도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법은 있지만, 법을 작용시키는 시스템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하청 노동자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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