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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두려움에서 해방돼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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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두려움에서 해방돼야 산다" [인터뷰]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안철수ㆍ문재인은 낡은 상품"
'100석도 힘든' 부자정당·구태정당에서 다시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한 1당으로. 디도스 공격과 대통령 측근비리,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민간이 불법사찰까지 줄줄이 터진 '악재'에도 새누리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재탈환했다.

"새누리당의 승리가 아닌 민주통합당의 패배", "화장발로 본질을 감춘 이명박근혜정당" 등 비판적인 평가도 여전하다. 그러나 짙은 화장으로 '본질'을 감췄다고 비판할지언정, 새누리당의 '변화'가 민주통합당의 '과거 심판론'보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3개월간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1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근혜 위원장의 전면 등판 이후 외부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돼 당 쇄신을 이끌었던 그는 정강정책의 '보수용어 삭제' 논쟁, 경제민주화 조항 삽입, 이재오 의원의 공천 문제 등 항상 날선 목소리를 내왔다. 당내 논란의 '중심'에 서왔지만, 지난달 말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비대위원직을 그만두고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김 전 위원은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여기서 낙관하거나 느긋해져서는 안 된다"고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고사 상태의 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며 '대세론'을 재확인한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서도 "이미 변했지만 더 변해야 산다"며 "다시 측근들 말에 휘둘려 한나라당으로 돌아간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없다"고 못 박았다.

총선 평가에서 시작해 여야의 전략 비교, 8개월 후로 예정된 대선까지 종횡무진으로 이어지던 인터뷰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화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박근혜의 조언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의 박 위원장과의 오래된 '인연'도 소개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임경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번 4.11 총선 결과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은 물론 과반 의석까지 차지했다.

김종인 : 지난해 12월27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할 때만 해도 암담한 상황이었는데 2월 중순쯤 되니 당이 안정 상태에 들어갔다. 종전의 정강정책을 완전히 현실에 부합할 정도로 바꿨고, 최소한 '한나라당이 변했다'는 모습은 보여준 결과였다. 그에 비하면 야당은 상대적으로 현실 인식을 못했다. 그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부흥기만을 생각하면서 집단적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프레시안 : 예상과 달리 '정권 심판' 바람도 불지 않았다.

김종인 :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를 하는 데 나름의 노력을 많이 했고, 지금까지 처신도 잘 해왔다. 일반 국민들도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박 위원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민간인 사찰이 터져 나왔을 때도 타격이 없었던 것 아니냐.

한편으론 박근혜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라는 명확한 입지가 있고, 그에 비해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 통합과정에서 세운 상징적인 인물이지, 힘을 가진 대표라고 보는 유권자는 없다. 기본적으로 정당 조직이 선거에서 전력을 다하려면 조직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못 미쳤던 것도 사실이다.

"친노 부흥기는 6.2지방선거로 끝나…오만이 패배 불렀다"

프레시안 : 사실 정권 심판론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부터 제기됐던 화두인데, 그 때는 심판 바람이 불었지만 이번 총선에선 수그러들었던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종인 : 친노세력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연달아 패하고 난 뒤 스스로를 '폐족'이라 칭하면서 진보진영 재집권엔 10년이 더 걸릴 거란 얘기를 하지 않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결 후 친노에 대한 소위 향수가 불어나고, 그렇게 해서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친노세력이 일약 다시 부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후 통합과정에서 친노세력이 당의 주도권을 쥐게 됐고, 결국 오만에 빠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친노세력의 부흥기는 지방선거로 끝나 버렸는데, 그걸 그들만 몰랐던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도 막연하게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안을 갖고 선거에 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정권 심판이란 애매모호한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국민들도 이들에게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선을 어떻게 치를지가 관건인데, 선거란 과거를 들춰낸다고 해서 영향을 크게 받지 못한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과거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것이다. 이걸 민주통합당이 전혀 제시를 못했다. 새누리당도 구체적인 안 없이 그저 '미래 세력'이라고 들고 나왔지만, 그래도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과 소위 꼭두각시 대표의 이야기 중 누구 말에 더 비중과 신뢰가 실렸겠나.

"수도권 잡아야 대선도 이긴다"

프레시안 : 수도권 표심엔 '정권 심판론'이 일정 정도 작용한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종인 : 과거 선거에서도 수도권은 항상 그랬다. 그런 맥락에서 지방의 표심도 중요하지만, 수도권의 정치적 의미는 더욱 크다. 예컨대 김대중 정권 중간에 실시된 2000년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여소야대를 만들어 대선 승리까지 내다봤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하지 않았나. 당시 이회창 후보가 지방에서 17만 표로 (노 후보를) 리드했지만, 수도권에서 패배해 결국 50만 표 차이로 졌다.

그런 점을 여야 모두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과반의석을 얻었다고 또 안이한 사고방식을 가진다면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딱히 낙담할 일도 아니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 '수도권 당 대표론'은 그런 맥락에서 제기한 것인가?

김종인 : 상식적으로도 그렇지 않나. 박근혜 위원장은 사실상 영남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가장 취약한 곳에 초점을 맞춰서 당직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박근혜, 이겼다고 느긋해선 안 돼"

프레시안 :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다 보니, 총선 승리 세력이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종인 : 이렇게 된 이상 박근혜 위원장이 대선가도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당내에서도 이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낙관해선 안 된다. 특히 수도권 20~40대의 호감도를 높이는 것이 박근혜 위원장으로선 중요한 과제다.

프레시안 : 당내외 경쟁관계의 해체가 대세론의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나?

김종인 : 일단 당내 대권 경쟁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선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형식적으로 경쟁하는 모습만 보이지 않겠나. 더 중요한 것은 긴장이나 쇄신에 대해서 절대 느긋한 자세를 보여선 안 된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도로 한나라당 시절로 가는 거고, 대선도 어려워진다.

"문대성 표절,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나"

프레시안 : 문대성 당선자의 논문표절 의혹으로 시끄러운데, 당내 출당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김종인 : 당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본인이야 사퇴를 거부한다고 해도 당이 과감히 조치를 취해야지, 의석 한두 석에 집착해선 안 된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박사학위 표절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인데, 문대성의 경우 표절 정황 역시 충분히 입증 되지 않았나.

프레시안 : 대선 때까지 야권은 이른바 '이명박근혜' 논리를 펼칠 것이다.

김종인 : (총선 때) 한 번 경험해봤으니 이젠 그걸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겠나. 사실 박근혜 위원장이 이번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론에 끌려갈 이유가 단 1%도 없었다. 4년 전부터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자신이 쌓아온 독자적인 스탠스가 있지 않나. 나도 그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 다음 대통령 선거는 힘들 거란 얘기를 굉장히 오랫동안 해 왔다. 여당 후보기 때문에 공동 책임론 소리를 안 들을 수 없겠지만, 현 정권과 완전히 차별화를 해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해 새로운 설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인위적인 차별화는 필요 없다. 다만 책임론을 싹 무시하고 '5년 동안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 예컨대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을 시작한 지 25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지 올해 만 25년이 됐다. 그 동안 경제사회의 모순은 엄청나게 심화됐는데, 정치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지 못했다. 그 반응이 지난해 10.26 보궐선거의 제도권 정당의 실패로 나타난 게 아니냐.

물론 박 위원장도 이미 그런 면에서 터득을 했다고 본다. 자신의 아버지 때 내세운 압축성장의 모순, 이걸 정치 민주화 과정에서도 해결을 못했는데 이제 해결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새누리당이 선거 때처럼 경제민주화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김종인 : 솔직히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는 인물을 찾기 힘들다. 공천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했는데, 전무했다. 또 앞으로 박근혜 위원장 주변 사람들이 경제민주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겠지만, (박 위원장이) 그 얘길 들으면 안 된다.

"안철수에 기대는 민주당, '미저러블'한 상황"

프레시안 : 야권의 경우 이번 총선 패배로 대선 후보들에게 위기가 왔다. 먼저 문재인 이사장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김종인 : 문재인 이사장의 경우 본인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도 제대로 한 적이 없지만, 총선 결과로 볼 때 일단 친노세력의 기대가 좌절된 것 아니냐. 또 친노세력이 문 이사장에게 거는 기대 역시 상당히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땐 대선도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사람도 인품으로 봐선 합리적인 사람이라, 그런 판단을 야권에서 누구보다 스스로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문 이사장이 주춤하니 다시 안철수 원장의 얘기가 거론된다. 어떻게 보나?

김종인 : 그게 야당이 처한 현재의 가장 미저러블(miserable·비참한)한 상황이다. 안철수 본인이 확실한 얘기도 한 적이 없지 않나. 이번 총선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안철수가 튀어 나올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거 기간 강연을 통해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정치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얘기다. 실제 선거에도 별다른 영향을 준 게 없었다. <르몽드>가 앵그리버드 갖고 아무런 영향 못 줬다고 표현하던데, 그 얘기가 맞다.

프레시안 : 최근 <중앙일보> 등 언론보도를 보면 본인도 대선에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김종인 : 본인은 또 부인하지 않았나? 물론 속내에선 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입해서 자꾸 그렇게 재다 보니 확실한 결심이 못 서는 것 아니냐. 그래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그런 대통령을 만들게 되면 국민이 굉장히 불행해진다.

또 민주당에 안 들어가고 바깥에서 독자 정치세력화 한다는 데, 바깥에서 뭘 어쩌자는 건가? 나는 솔직히 민주통합당에서 (대선주자) 인물을 고정해서 생각해서 그렇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주자를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지난번 서울시장 후보 나왔을 때, 처음엔 민주당이 밤낮 한명숙 얘기를 하다가 결국 박영선으로 귀결되지 않았나. 사람이라면 그렇게 찾아 보는 거지, 자기 주머니 속에도 없는 밖의 사람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 몇 선 했다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이 굉장히 잘못된 거다. 여론상의 (지지가 높다고) 누구나 대통령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안철수-문재인, 이미 낡은 상품"

프레시안 : 야권에 가능성이 있는 새 인물은 누가 있나?

김종인 : 글쎄…새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지 않나. 박영선이 시장후보가 될 거라고 누가 처음에 상상했나. 누가 날더러 그런 얘기를 하더라. '두 박(朴)이 한 번 싸우면 근사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문재인, 안철수같은 이들보다 이른바 '뉴 페이스'가 훨씬 나을 수 있다. 그래야 국민이 새로운 기대를 걸 수 있지 않나. 자기 확신이 있고 이를 소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그게 더 어려운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안철수, 문재인 두 인물의 경합 시너지 효과를 내다본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종인 : 그건 이미 모두 낡은 상품이다. 게다가 인물도 인물이지만,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이를 어떻게, 어떤 사람들과 푸느냐가 대통령 후보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예컨대 민주당의 경우 총선 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기껏해야 재벌세가 고작이었다. 세금만 가지곤 경제민주화를 못한다. 노동시장과 금융질서, 재벌의 지배구조 등 풀어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보기엔 (민주당은) 그것에 대한 설계가 전혀 없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야권연대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김종인 : 대통령 후보를 내려면 단일화는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내놓느냐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지는 것이지, 단순하게 구도만 연대로 짠다고 해서 국민이 표를 주진 않는다. 결국 누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고 미래에 대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냐의 문제다.

"박근혜, '사람' 준비가 안 됐다"

프레시안 : 국가 지도자로서 박근혜 위원장이 갖는 강점은 뭐라고 보나?

김종인 : 박 위원장은 일단 본인이 확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걸 지키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적어도 박 위원장이 복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저 사람 좌파'라고는 얘기 못할 것 아니냐. 박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끌고 간다고 해서 좌파라고 욕먹진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박 위원장은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다.

비교적 언론의 신세를 지지도 않았고, 재계로부터도 자유롭다. 현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누구의 지원을 받을 것인지가 완성된다면 (대통령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 반면 소통이나 민주적 토론에 약하다는 평도 있다.

김종인 : 물론 자기가 생각한 것을 바꾸는데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문제는 박근혜 위원장의 생각을 바꾸려면 집요하게 설득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주변에 다들 어려워하는 사람만 있는데 그걸 집요하게 요구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그래도 완전히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 바뀔 거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를 끌고 갈 수 없다. 대통령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당선 외에도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지 이미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초기에 준비를 완료해 취임하자마자 1년 안에 기초를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2014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거기서 제대로 못해 망가지면 당장 레임덕이다. 일단 당선만 되면 관료들과 해내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게,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당선 직후 청와대 구성, 내각의 선정, 대통령 취임사만 보면 다 나온다. 올해 대선에 나선다면 이미 지난해 연말까진 확고하게 준비해놓고 사람까지 골라놨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 둘이 나올테니 누군가는 뽑아야 하는데, '베스트'도 없고 '세컨드 베스트'도 없고, '써드 베스트'를 뽑을 수는 없지 않나? 과거 대통령의 실패만 봐도 다 준비가 안 되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실패했나. 서민대통령이 나온다니 수도권이 열심히 지지해서 당선시켜 놨는데, 결국 서민과 동떨어진 정책만 하다보니 서민이 그를 버린 것 아니냐. 이명박 대통령은? 양극화도 심하고 살기 어려워지니 경제만 살려달라고 뽑은 것 아니냐. 그래서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체감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러니까 국민이 외면하는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은 더 어렵다. 유로존, 미국을 봐도 국제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양극화, 소득 불균형 때문에 느끼는 짜증이 엄청나다. 그래서 누가되든 새로 대통령이 선출되면 일단 기대는 해볼텐데, 충족 안 되면 금방 돌아선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박근혜, 측근 얘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박 위원장은 철저히 준비가 됐나?

김종인 :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공천 과정에서 보니 사람 준비가 썩 잘된 것 같진 않다. 비대위 경험하면서 느낀 게, 박 위원장의 약점은 자신을 둘러싼 측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완전히 여기서 해방돼 사고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단 박 위원장이 결단하면, 당의 생리상 밑에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겠나.

사실 박근혜 위원장이 굉장히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보수논쟁도 그래서 일부러 한 번 일으켜 봤다.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그 때 보니 박 위원장이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 이재오 공천 문제가 나왔을 때도, 처음부터 나는 박세일의 국민생각은 아무 의미도 없으니 (친이계를) 잃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의 측근이란 사람들은 '이재오가 30명 끌고 국민생각으로 가면 큰일 난다'면서 뜯어 말렸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와 공동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들이 무슨 명분으로 가겠나. 그런 두려움을 떨쳐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게 문제가 될 것이다. 박 위원장 측근들은 분명 '경제성장 위해선 대기업 기분 나쁘게 해선 안 된다'는 식의 권유를 많이 할 거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절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프레시안 :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새누리당의 쇄신을 이른바 '화장발'이라고 비판한다. 겉 모습만 변화했다는 것이다.

김종인 : 박 위원장이 변하지 않으면 대선가도가 용이하지 않다. 형식적으로 변화해 총선만 끝나고 원래 상태로 회귀한다면, 그래서 원래의 한나라당으로 돌아간다면 대선 승리도 없다.

▲ ⓒ프레시안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

프레시안 : 향후 박 위원장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계속 할 건가?

김종인 : 내가 무슨 조언이냐. 이제 새누리당과 별개의 사람이다. 앞으로 박 위원장이 대선가도를 가면서 스스로 느껴야 하는 문제기 때문에, 그 때 가봐야 알지 않겠나.

다만 내가 박 위원장에게 계속 강조했던 것은 19대 국회 개원하자마자 제도적으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모두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 약속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는다. 총선 다음날 기자회견을 보니까 그런 각오는 단단히 돼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슷하다. 지휘자가 공연 전 단원들을 데리고 5분 이내에 조율을 다 끝내야 멋있게 연주가 되고 관중이 박수를 친다. 조율을 안 해서 삐걱거린다면 관중들이 다 떠나버린다.

대한민국은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 빠진 나라 같다.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나오면 본인도 불행하고 나라도 불행하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사르코지와 시라크의 관계를 생각하라."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한 후, 김종인 전 위원이 박 위원장에게 던졌다는 충고다.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같은 보수정치인 자크 시라크와의 오랜 갈등과 견제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처럼, 박 위원장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해야만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사르코지가 시라크의 심복 역할을 했다면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나? 당시 박근혜 의원에게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됐던 길을 벤치마킹하라고 충고했다. 절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이 가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선 안 된다고 말이다. 이후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패했던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종시 표결 때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결국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이길 수 있던 것 아닌가?"

박 위원장과 그의 정치적 조언자로 잘 알려진 김 전 위원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김 전 위원에게 독일 방문을 앞둔 박근혜 의원이 찾아 왔다.

"당시 내가 한독의원친선협회 회장이었다. 내가 독일서 오래 살고 독일 정계를 잘 안다고 하니까 박근혜 의원이 독일 방문을 앞두고 나를 찾아왔다. 처음으로 오랜시간 대화를 한 자리였는데, 그 자리서 내가 독일의 메르켈 이야기를 꺼냈다. 메르켈도 박 의원과 같은 여성 정치인이고 자연과학도인 물리학 박사였는데, 정계입문 15년 만에 수상이 됐으니 박 의원도 그 길을 잘 가보라고 조언했다.

이후 대선 경선에서 박 의원이 패한 뒤 연설하는 것 보니까,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성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면서 '앞으로 대통령 준비를 잘 하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경선 패배 후 위로를 겸해 점심 자리에 초대했다. 다시 메르켈 얘기를 꺼냈다. 앞으로 정치 경험을 잘 쌓으면 메르켈과 같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단,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과의 차별화된 '독자적인 스탠스'가 필수라고 말이다."

그 만남이 인연이 돼 김 전 위원은 박 위원장의 '정치적 멘토'로 지난 6년간 주요 국면에서 박 위원장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왔다고 한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 위원장에게 선거에 나서지 말라고 권고했었다. 나경원 후보를 돕지 않으면 보수진영의 비판을 들어야 하겠지만, 이번만 꾹 참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안 뛸줄 알았는데 박원순 후보 단일화 이후 선거에 나서더라. 이후 물어보니까 '제도권 정당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나섰다고 하더라.

선거 당일 박 위원장을 또 한 번 만났다. 그 때 나는 이 선거는 필패니 다음날 기자들이 질문하면 '선거를 뛰다 보니 현 정부 4년 동안 등 돌린 국민들의 민심을 확인했다. 정부와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는 식으로 데미지 컨트롤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못하더라. 선거서 패했는데 어떻게 불을 지르냐는 거다. 알고 보면 박 위원장이 굉장히 샤이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당 비대위를 맡아 움직이는 게 어떠냐고 했을 땐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디도스 사건 터지고 지도부가 무너지면서 비대위를 맡게 됐다. 되돌아보면 오세훈의 주민투표가 한국정치의 많은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은 "이제 박근혜 위원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지금까지는 잘 대선가도를 밟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후에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느냐다. 그 주변의 참모들은 분명 성장을 강조하며 경제민주화에도 제동을 걸 텐데, 그런 참모들로부터 해방되어야 대선까지 갈 수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뜻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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