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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학살미사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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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학살미사를 멈춰라 [산문시] 정리해고자 스물 두분의 죽음을 위로하며
가장 아름다운 과녁으로만 날아가는 총알이 있다, 하얀 드레스 면사포 대신
신부의 머리 위에 검은 용수를 씌우고

전ㆍ태ㆍ일―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의 노동이 부활할 줄 알았습니다

어둠이 깨진 강물로 출렁이며 목숨의 궁지까지 차가운 입김을 불어넣을 때,

박종철ㆍ이한열ㆍ강경대―당신들의 죽음으로 민주주의가 부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긴 사슬에 묶인 몸으로 몸부림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쓰러지기보다 부서지는 것
부서지기보다 타오르는 것

오창부 엄인섭 김영훈 김고운 김동선 임무창 최군재 김현욱 황대원 서성철 조영하 강종완 고대근 김철강 강명호 민병호 이윤형

붉은 새들이 아스팔트 찬 바닥에 앉아 죽음의 깃털을 다듬을 때,

오로지 저들이 펼쳐 읽는 계명들;

너희는 연약하니 주저앉는 소처럼 무너질 것이고 너희는 가난하니 구럼비 파도처럼 부서질 것이고 너희는 아름다우니 용산의 불꽃처럼 타오를 것이고, 그리하여 너희는 노동자니

가족과 이웃과 진실의 무덤을 향하여,

어떤 총알은 가장 아름다운 미래에 가 박힌다―무엇보다도 너희는 사랑하였므로,
어두운 구멍마다 탐욕의 눈빛을 번뜩이며 지옥을 경영하는 설치류의 창고를 위하여

폭죽처럼 총성이 울리고;
신부의 몸을 찢고 빛나는 황금을 꺼낸다 검은 넥타이 검사들의 박수와 함께
축제처럼 총성이 울리고;
붉은 피로 건배를,

저 도살의 수족으로 꿈틀대는 언론과 함께

멈춰버린 순간에 시곗바늘은 가장 먼 어둠을 가리킨다 어느 해 하천에서
한꺼번에 뒤집힌 물고기의 방향으로,

그러고도 아직 불러야 할 이름들―이윤정 정형기 박종대 강희남 윤용현 이성수 한대성 양회성 이상림 이병렬―그러고도 다 부르지 못할 이름들……

쓰러지기 때문에 부서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타오르는
캄캄한 총구 벼린 끝에서 차갑게 풀어지는 잿빛 연기처럼;

정녕, 그리스도여! 우리는 당신의 죽음으로 민중이 부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죽음의 결혼식장―붉은 새의 깃털을 뽑아 먼 하늘로 날리며
우리는 신부의 용수 위에 키스를 하고, 마지막 비명에 절망의 반지를 끼우고

우리는 죽음의 이름으로 부활하는 내일을 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이름으로

가장 아름다운 분노를 향해 날아가는 절망이 있다, 발자국 위에 발을 세우기 위해 달려가는 다리처럼
시대가 꺾인 십자가 캄캄한 총구에 앉아 잘린 제 목을 들여다볼 때,

여기 우리들의 행진곡이 있으니;

바닥에 누운 나의 신부여 이름이 평등히 여김을 받으시고 생명에 임하옵시며 뜻이 꿈에서 벗어나 현실을 이룰지어다 한 술의 더운 밥으로 진실을 나누고 모든 탐욕과 싸울 것이며 오로지 죄 지은 자를 향하여, 용서될 수 있는 만큼만 용서되어져야 나머지가 사랑으로 남을 것을 믿사옵니다

어떤 분노는 가장 아름다운 미래에 가 박힌다―어둠 아닌 곳에 닿기 위해 어둠을 달리는 바퀴처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너져 다시 일어서는 눈부심으로 마지막 과녁의 찢긴 몸으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하기를……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신의 얼굴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는 것을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는 것을

<시에 대한 짧은 변명>

나는 이런 시를 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늘 고민하게 만드는 이 시대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 참혹한 양심의 공동묘지 앞에서 글 쓰는 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이 바로 글 쓰기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애초에 반목하거나 에두를 수 없는 것들, 어쩔 수 없이 껴안고 통과할 수밖에 없는 것들. 이를테면, 시와 사랑과 삶 같은 것들. 그러니 좀 부끄러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넘어서기 위하여. 절망이 절망으로 깊어져 절망을 뚫을 때까지, 분노가 분노로 일어나 분노를 죽일 때까지.

* 이 시는 <내일을 여는 작가> 2012년 여름호 특집 "언어도단의 시대"에 제출한 시를 낭독을 위해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알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22분의 죽음을 위로하는
KBS교향악단의 실내악 연주회+詩

■ 연대시낭송 : 김소연 / 유희경 / 신용목

일시 : 2012년 5월 26일(토) 7시 30분

장소 : 서울 대한문 분향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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