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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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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라" [현병철 인권위, 3년을 말하다·④] "국내 인권 후퇴의 1등 공신 현병철 위원장"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 내정으로 인권위가 또 다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현병철 위원장 연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연임 내정 소식을 접한 시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의 3년을 떠올리면 참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2010년 말, 당시 상임위원이었던 유남영, 문경란 위원, 조국 비상임위원이 위원직을 사퇴하고, 전문·자문·상담 위원 70여명이 집단 사퇴하면서 인권위는 초유의 파행사태를 겪은 바 있다.

인권위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이들이 대거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현병철 위원장의 독선과 비민주적인 운영,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문경란 위원은 사임의 변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판단의 근거는 인권이란 잣대가 아니고 오직 권력기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 지난 3년 동안 현병철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인권침해 정책에 대해 태클을 거는 정책권고를 유독 두려워했다. 당시 상임위원들의 사퇴의 결정적 역할을 한 상임위원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위원장이 단독으로 전원위원회에 안건을 상정 할 수 있도록 개정을 시도한 '국가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이 인권친화적 정책권고를 막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 현병철 위원장. ⓒ연합뉴스

정부 비위에 거슬리는 정책권고 두려워 운영규칙 개정 시도

운영규칙 개정안이 올라오기 직전인 2010년 9월 말, 인권위는 상임위원회 의결로 2건의 정책권고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현행 정보통신심의제도가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검열로 기능할 위험이 높아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부여되어 있는 정보 심의권 및 시정요구권을 민간자율심의기구에 이양하라는 권고였다.

다른 하나는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중인 자, 해고된 자를 포괄하는 것으로 노조법 상 근로자 정의규정을 개정하고, 행정관청이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법령 및 정책 개선 권고 결정이었다. 오랜만에 인권위가 국제적 인권기준에 부합하고 인권적 관점으로 국내의 반인권적인 정책에 대해 의미 있는 권고를 한 것이다.

정부에 불리한 정책권고를 회피하려던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원회는 진보적인 인권적 권고를 위해 노력해왔다. 위의 두 권고로 인해 현병철 위원장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하여 골치 아픈 상임위원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운영규칙을 개정하려는 시도까지 한 것이다.

권력의 편에 선 인권위

지난 3년 동안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인권위에 도움을 요청했던 인권현안들을 현병철 위원장은 얼마나 가차 없이 내팽개쳤던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김진숙 씨에게 사측이 전기 공급을 차단하여 심각한 생명권 침해를 받던 상황에 놓여 인권위에 긴급구제 요청을 한 건에 대해 위법 농성자라는 이유 등으로 부결시키는가 하면, 두리반 단전조치로 인한 긴급구제 기각, 코레일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에 대한 정책 권고 부결 등 긴급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인권위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이명박 정부 이후 국내에는 표현의 자유 억압정책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고 이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인권위만은 달랐다. 전원위원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안건이 올라오기만 하면 인권에 무지한 인권위원들은 망언을 일삼으며 정부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주었다. 야간 옥외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의견표명에 대한 안건을 논의하는 중 일부 위원들은 "집회자유에서 일정 제한이 필요하다. 심야제한은 합리적인 제안이다", "기본권도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라고 말해 방청객들을 경악시켰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는 인권위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위원들이 인권위를 장악하면서 선거기간 동안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던 공직선거법9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의견제출을 부결시키고,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한 의견제출도 부결시켰다. 멀게는 광우병의심 미국산쇠고기의 위험에 대해 다룬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하려는 사건에 대한 의견표명도 부결시키는 등 국내의 인권의제들을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자신의 치적을 위해 인권의제를 도구화한 현병철 위원장

올 해 인권위는 국제심포지엄 등 국제행사, 전화시스템 구축 등 인권개선과는 직접적 연관성 없는 예산은 증가시키고 장애, 여성 등 인권취약부분 예산은 삭감하였다. 얼마 전에도 정보인권을 주제로 한 아셈인권세미나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인권위는 국제회의 개최 실적을 한건 더 올리게 되었다. 정보인권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해외 전문가, 활동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국제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이 반가워야 하는데 참담하게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바로 현병철 위원장이 정보인권의제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2009년 정보인권특별보고서 발간 사업을 추진하였고, 2010년 7월 전원위원회에서는 정보인권특별보고서 초안에 대한 안건이 상정되었다. 그러나 정보인권에 대한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위원들이 인터넷실명제 폐지 등 표현의 자유 부분을 문제 삼고, CCTV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이 날 정보인권특별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하고 재상정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후 정보인권특별보고서의 행방은 1년 반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갑자기 전원위원회에 정보인권특별보고서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이날 전원위원회에서 이상하게도 현병철 위원장은 이 안건을 의결하여 정보인권보고서를 빨리 발간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몇 번의 전원위원회를 방청하였지만 현병철 위원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는 일은 드물었다.

그동안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해 외면하고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직권조사 역시 민감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인권침해를 방조하던 현병철 위원장이 아니던가. 정보인권특별보고서에 민감한 내용이 담기는 것을 우려하던 현병철 위원장이 이제는 조금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일까 기대도 잠깐 했다. 그러나 곧 현병철 위원장의 진짜 속내가 드러났다. 정보인권보고서를 빨리 채택하여 영문번역을 해서 6월에 열리는 아셈인권세미나 때 오는 국제 인사들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발언을 듣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정보인권보고서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기위해 도구화하려했던 것이다.

국내의 인권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자랑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병철 위원장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은 인권위를 지옥으로 내모는 일이다. 국내 인권의제가 붕괴되는 일을 3년이나 더 눈뜨고 지켜볼 수는 없다. 국내의 인권증진을 위한 첫걸음은 현병철 위원장이 지금 입고 있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당장 벗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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