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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남편이 그렇게 죽었을까?"

[전태일 통신] 삼성 백혈병 사망자 부인 정애정 씨 인터뷰

처음으로 그녀를 본 것은 추위가 아직 매서웠던 올해 3월이었다. 3월 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재해 노동자 추모집회'에서 정애정(34) 씨는 사망한 자신의 남편 약력이 담긴 선전물을 들고 대열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정씨의 남편 황민웅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7년간 근무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숨졌다. 집회 내내 다른 피해자 가족들의 발언을 듣던 애정 씨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했다. "삼성으로부터 산재인정은커녕 남편이 죽고 나서 7년이 지나는 동안 사과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과 서러움 때문이리라 .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책 속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다룬 만화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이 바로 정애정 씨였다. 이 만화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내기 위해 지난하게 싸웠던 5년간의 투쟁 기록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하며 막 사회에 발 딛었던 19살 애정 씨의 두근거림과 민웅 씨를 만나 애틋하게 사랑했던 애정 씨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도 함께 담겨 있었다.

6월 16일 영등포 삼성일반노조 사무실에서 정애정 씨를 만났다. "뉴스도 안 보던 부끄러운 사람"이었다던 애정 씨는 "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권을 옹호하는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내 남편이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라는 의심에서 삼성 일반노조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애정 씨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에서 자본이 노동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배웠다"며 이제는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놀라워했다.

삼성 본관 앞에서 투쟁할 때마다 시민들의 격려에 "아 내가 허튼짓 하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애정 씨는 "삼성직원들과 부대끼며 투쟁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오히려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은 정애정 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정애정 씨. ⓒ이동철

삼성, 순종적이고 착한 여고생들만 뽑아가

이동철 :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정애정 : 어린이집 보육교사 활동을 하고 있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이 1학년이다.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라서 삼성 일반노조 상근활동은 잠시 쉬고 있다.

이동철 : 최근에 <먼지 없는 방>이라는 책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책이 출간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정애정 : 사실 쑥스러웠다. 자신이 주인공인 책이 출판된다는 것이 일반사람으로서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통해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에서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광고도 쉽지 않다고 해서 걱정도 많이 했다. 다행이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댁 식구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책을 선물했다. 시댁 사람들이 무뚝뚝한 편이다. 그런데 시누이가 "언니, 만화책 보고 운 것은 처음이네"하고 연락을 해왔더라.

이동철 : 먼지 없는 방을 보면 애정 씨가 사회초년시절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애정 씨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정애정 : 착했다.(웃음) 순종적이고 착하고 별로 일탈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면서 말썽 피우는 성격은 아니었다. 군산여상 3학년 때 삼성으로 현장실습을 가서 1995년부터 삼성에서 10년을 일했다. 삼성그룹 공채는 성적 좋은 사람들을 뽑아가지만, 현장근무는 다르다. 대부분 순종적인 친구들을 뽑아간다. 나 역시 튀지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일도 굉장히 잘했다. 회사에서 나름대로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아서 검사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업무공정 전반에 대해 이해가 빨랐다.

이동철 : 황민웅 씨와 연애는 어떻게 시작했나?

정애정 : 민웅 씨는 설비 엔지니어로 나보다 2년 늦게 입사했다. 사내 합창대회에서 같이 연습을 하다가 만났다. 입사는 나보다 늦었지만 나이가 많아서 내가 '선배'라고 불렀다.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 민웅 씨도 나를 괜찮게 봤는지 밥을 사주고 영화를 보러가자고 만남을 제안하더라. 처음에는 '날 좋아하나'하고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선배가 밥을 사준다니까 좋아라하고 따라 다녔다. 그러던 중에 서로 경제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민웅 씨가 자기는 돈이 잘 안 모인다고 통장을 내게 관리해 달라고 하더라. 민웅 씨가 건넨 통장에 잔고는 하나도 없더라. (웃음) 그렇게 만나서 2001년에 결혼했다.

삼성에 노조 있었다면 내 남편이 그렇게 죽었을까?

이동철 : "삼성 백혈병 사망자 가족"에서 '삼성일반노조 활동가'가 되었다. 어떤 계기였나?

정애정 : 피해자로서 남편의 산재인정을 위해 싸우다보니 자연스레 생각의 폭이 넓어지더라. 애기아빠가 죽은 것은 '현상'이자 '결과'다. 그 '원인'을 파헤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정이다. 내 남편이 죽고 나서도 왜 남편의 죽음이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현장의 안전관리나 작업의 위험성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챙기고 알리는 노조가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노동자의 안전을 완전히 기업주에게 무방비로 맡겨놓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이동철 : 노조활동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정애정 : 민웅 씨가 죽고 처음 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동료들의 시선이 참 가슴 아팠다. 삼성에서 나는 10년, 민웅 씨는 7년을 근무하다 보니 동료들이 많았다. 그런데 회사가 그들과 나를 이간질을 시키더라. "애정언니가 이상한 사람들하고 어울린다"는 식의 루머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저러는 거다"라며 피라미드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취급을 했다. 저랑 친하게 지냈던 동료 후배들이 연락이 끊겼다. 정당한 내 활동에 이상한 시선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2007년이 지나고 언론에도 삼성 반도체 질병관련 사망사건들이 보도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때서야 "애정아! 애는 잘 크니?" 하면서 연락이 오더라. 이제는 다시금 편한 관계가 되었다.

이동철 : 삼성 반도체 근무경력 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의 산재인정이 이후 어떻게 해결될 것으로 보나?

정애정 : 많은 사람들에게 반도체 산업은 국가경쟁력이 있고 '청정산업'이라는 인식만 존재했다. 화학약품에 과도하게 노출 되는 등 그 이면의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의 문제를 몰랐던 것이다. 거기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결합하면서 노동자의 주체적인 안전과 보건에 대한 기본적 권리가 어떻게 파괴되는 지도 명확하게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투쟁 선전전을 진행 할 때 시민들에게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이야기 하면 대부분이 알고 있더라.

많은 피해자들의 제보와 죽음이 가져온 성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의 산재인정 판정도 큰 성과다.(고용노동부는 4월 10일 삼성전자 온양공장 근무자 김지숙(36)씨에 대한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산재로 인정했다.) 지난 해 법원 행정소송(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자 기흥공장 근무하다 사망한 황유미, 이숙영 씨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에서도 사실 승소 할 것이라고 꿈도 꾸지 않았다. 민웅 씨는 패소했기 때문에 남들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 민웅 씨 산재 인정만이 목표였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2건의 산재인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해외선진국에서도 반도체 산재인정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지 않나? 우리가 만들어 간 것이다.

▲ 정애정 씨. ⓒ이동철

분노에 넘치는 내 스스로 우리사회 바꾸는데 큰 역할 해야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애정 씨는 자신이 3학년에 재학 중인 사이버 노동대학의 수업을 소개하며 "자본주의 역사를 배우며 자본이 어떻게 노동을 억압하고 국가가 자본의 편을 들었는지를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지칠 때마다 활동을 이어오는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애정 씨는 "삼성 백혈병의 피해자로서 기본적인 분노가 넘치는 자신 같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분노 없이 지식으로만 활동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우리사회를 바꾸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정 씨는 13년간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다가 지난 6월 1일 사망한 전 삼성전자 LCD 노동자 윤아무개 씨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자신의 다음 투쟁 과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아무개가 내 고등학교 후배다.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삼성 반도체 현장의 작업 환경과 백혈병 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활동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내 새끼가 삼성전자에서 일한다는 것만 알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런 직업병과 자기현장에 대한 사전 고지도 받지 못하고 노조도 없는 현장에 투입된다. 사용주가 자기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기 아주 좋은 상황이 되는 거다. 그걸 막아야 한다."

그렇게 애정 씨는 삼성 백혈병 산재인정 투쟁의 주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삶의 제 2막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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