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롤러 반대편에서 납작한 마른 오징어가 튀어 나왔다. 근심걱정 없어 보이는 한 '라이더' 청년이 헤드폰을 쓴 채 철가방 오토바이로 곡예운전을 한다. 행인들이 깜짝 놀라 눈살을 찌푸린다. 청년은 옆 골목길에서 달려오는 미니버스를 보지 못한다. 다음 장면, 바퀴에 놀린 튜브에서 토마토케첩이 찌익 하고 뿜어져 나온다.
경쾌한 음악이 깔리고, 수박, 오징어, 케첩이 등장할 때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2114라는 숫자판과 함께 진지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해 2114명의 실제 상황, 아직도 웃을 수 있습니까?"
YTN 뉴스 중간, 짤막한 광고 때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읍에서 쇳물을 뒤집어쓰고 DNA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린 두 명의 노동자, 광화문 한복판 건설현장에서 혹은 청주 화학 공장에서 스러져간 노동자 열두 명, 그리고 일일이 사연을 담을 수 없는 더 많은 이들. 이들은 그저 안이하고 정신머리가 없었던 것일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한국의 노동자들은 모두 어디 나사가 하나 빠진 인간들이란 말인가? 이건 흡사,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밤늦게 돌아다녀서, 어린이들이 모르는 사람을 넙죽 따라가는 바람에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 기억할 것이다. 작년 여름 이마트에서 냉동기를 보수 중이던 노동자 네 명이 질식해서 숨졌던 사건을. 이 사건으로 이마트 법인과 탄현지점장은 각각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40명이 숨졌던 코리아2000 물류창고 화재사건에서도 사업주는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바로가기 ☞ : )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산재가 일어나도록 방치한 기업주를 거세하거나 손목을 자르라는 게 아니다. 평생 감옥에 가두어두자는 것도 아니다. 기업주들이 노동자의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고, 100~200만 원 벌금만 내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짓을 계속하는 이 악순환을 노동부가 끊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한가롭게 노동자 탓을 하는 캠페인 동영상이나 만들고 있다. 한심하다. 슬프다. 그리고 두렵다. 사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안타까운 죽음들을 두고, 이렇게까지 냉혹할 필요는 없었다. 희대의 악당이라는 영화 속의 '조커'도 불타는 돈더미를 보면서 냉소했을지언정,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지는 않았다.
노동부에게, 산업안전공단에게 묻고 싶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화도 아니고, 짜증도 아니다. 그저 질문이다. "당신들은 노동자 죽는 게 정말 웃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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