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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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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3> 서민을 위한 한옥 지구, 익선동 166번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지구

한옥은 지붕과 지붕이 연결될 때 보여주는 멋이 있기에, 한 채의 한옥이 다른 한옥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경우보다는 한옥이 집단적으로 밀집해 위치할 때 진정한 운치가 나타난다. 아마 이런 연유로 한옥 집단 지구로서 북촌이 사랑받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서울 최고(最古)의 한옥 지구, 다시 말해 서울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지구는 과연 어디일까? 북촌일까? 답은 엉뚱하게도 종로3가 바로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동네 이름을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들어본 곳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지역. 하지만,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인사동으로부터 동쪽으로 길만 건너면 되는 곳. 그럼에도 도로상에서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지역. 북촌 가회동 31번지를 개발했던 20세기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 정세권(鄭世權)이 북촌에 앞서 개발한 역사적인 지역. 지금 철거된 과거 3대 요정의 하나, 오진암 바로 앞. 바로 익선동 166번지다.

▲ 한강 이북에 위치한 한옥 밀집 지구. 2011년 서울시 건축물 대장을 바탕으로 GIS 기법을 이용하여 한옥 밀집 지구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하였다. 익선동(빨간색 표시)이 가장 오래된 한옥 지구로 나타난다. ⓒ김경민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리면, 서울 시내 한복판임에도 조금은 허름하고 낮은 층수의 건물들 모습에 마치 지방 중소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익선동 166번지의 한옥들은 그 건물들 바로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100여 채의 작은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형성된 익선동 166번지는 인접한 북촌의 한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아담한 크기의 한옥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익선동이라는 지명이 다소 낯설다면, 1950~1980년대 세상을 풍미했던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오진암 근처라고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인사동과 종묘 사이라 하면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다.

ⓒ김경민
▲ 익선동 166번지 바로 앞 종로3가역 주변. ⓒ김경민

한옥의 크기는 10평형부터 50평형대까지 다양하다. 50평형대의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10여 채가 밀집한 골목도 있으나, 대개의 한옥은 30평형대 이하로 매우 작다.

현재 익선동 166번지의 이미지는 그다지 정돈되거나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시 오피스 건물들이 밀집한 종로 한복판 그리고 북촌 안국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100여 채나 되는 한옥들이 대규모로 집적되어 있고 커뮤니티가 숨 쉬고 있다. 가려졌지만 매우 흥미롭고 가치가 있는 지역임에 틀림없다.

ⓒ김경민

한옥으로 유명한 북촌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 남산을 내려다보는 골목인 가회동 31번지와 익선동 166번지는 매우 다르면서도 같은 요소가 있다. 북촌이 당대 지주들을 위한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이었다면 익선동은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한옥 집단 지구라는 점은 차이점이다. 그리고 두 지역 모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라 할 수 있는 정세권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 문화, 유동 인구 삼박자를 갖춘 익선동

활성화된 지역(또는 상권)에는 크게 3가지 성장 요인이 있다. 북촌, 인사동의 사례에서처럼 독특한 역사적 자원들을 바탕으로 성장하기도 하며, 홍대처럼 문화적인 요소가 성장을 이끌기도 한다. 만약 역사적 또는 문화적 자원이 없다면 엄청난 유동 인구가 몰리면서 강력한 상권으로 성장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강남역과 삼성역이 될 것이다. 이런 지역의 지형은 일반적으로 평지인 경우가 많다.

익선동은 북촌과 유사한 한옥 밀집 지역이나 다만 북촌에 비해 건물이 다소 덜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건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 역시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북촌과 대비된 서민들의 주거 공간이란 점은 또 다른 매력이 될 수 있다. 세련되지 않은 건물들을 그대로 이용한 성공 사례는 상하이 티엔즈팡에서 이미 확인하였다.

사실 지금에야 북촌이 깔끔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북촌이 정비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촌 한옥의 수준은 현재의 익선동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만 하더라도 익선동 한옥 주택의 가격이 북촌에 비해 높았다(익선동 소재 OO부동산 대표 인터뷰, 2012년 11월 12일).

▲ 2000년 당시 북촌의 모습. ⓒ서울시
▲ 2000년 당시 북촌 한옥의 외벽. 현재 익선동 한옥 외벽과 비슷한 타일이 보인다. ⓒ이석정 교수

북촌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 즉 2002년 이후의 일이다. 1995년 현대갤러리가 북촌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삼청동 주변에 미술관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나, 2002년 이전까지는 상점 증가가 눈에 띄지 않아 활성화된 지역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실질적인 변화의 시작은 2002년 이후 삼청동길 주변에 많은 상점들이 생기면서다. 그리고 익선동의 좁은 골목과 분위기가 흡사한 화개길을 따라 작지만 독특한 상점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점들은 매우 다양한 업종을 포함하고 있다. 레스토랑, 카페, 부띠끄 옷가게, 공방, 갤러리, 박물관, 디자인 스튜디오, 아트샵, 수공예 상품점, 갤러리와 카페가 혼합된 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상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고학력자였고, 그들이 북촌을 선택한 이유는 한옥을 비롯한 전통적 문화유산과 현대 문화와 예술이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이경옥, 이금숙, 2006, 문화 경제의 발현과 확산의 공간적 특징: 북촌의 창의적 소매업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지리학회, 9(1): 23-38). 독특한 상점 경영자들의 관점에서는 현대적인 건물과 같은 물리적인 성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낡아 보이지만 전통적인 환경과 문화와 예술과 같은 비물리적인 자원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상점의 입지에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는 것이다.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만약 삼청동의 활성화를 이끈 상점 경영자들의 입지 고려 요소가 정확하다면, 익선동은 가능성의 지역이다. 익선동은 전통 한옥 단지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주변에는 독특한 문화 예술 자원들이 존재한다. 우리 옷과 음악(국악) 관련 자원들이 많은데, 오진암 요정의 영향으로 과거 한복집들이 성업했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서울시가 돈화문로에서 국악예술제를 개최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국악기 관련 상점이 늘어나고 있고, 전통 예술인과 국악인들의 연구실들이 익선동 주변에 밀집해 있다. 돈화문로의 다른 이름이 국악로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전통 예술과 전통 문화의 메카로 성장하는 중이다. 그 외에도 전통 음식점과 공방, 창의적 소매점 등이 서서히 입점하고 있고, 주변에 낙원상가라는 음악 산업 클러스터와 더불어 수대에 걸쳐 내려온 떡집 등 수십 년간 축적되어온 문화의 흔적과 기억이 존재한다.

ⓒ김경민
▲ 익선동 인근의 한복집과 전통 공방. ⓒ김경민

익선동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교통 접근성이 약한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익선동은 주변에 지하철 1호선, 3호선, 5호선 역이 지나는 서울에서도 흔치 않은 지역이다.

익선동 166번지는 외양이 정돈되거나 깨끗하지 않기에 그 가치가 우리 눈에 안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지구, 북촌과 달리 서민들을 위한 한옥이라는 역사성, 우리 전통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곳, 강력한 교통 접근성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가능성의 지역이다.

익선동에 있는 한 전통찻집은 한류 스타 영화의 촬영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여파로 이 찻집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는 나름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인근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우리가 현대적인 것에 취해 있는 사이, 익선동 166번지는 외국인들의 시선을 서서히 사로잡고 있다.

"어느 날 일본인 기자가 와서 한참 앉아 있다가 갔어요.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영화 관계자가 찾아와서 영화 촬영 장소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한 달에 걸쳐서 영화를 찍었고, 그 후 영화 때문에 많은 일본인 여성들이 자주 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찾아오고 있고,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들도 오고 있어요." (익선동 소재 전통찻집 '뜰안' 대표 인터뷰, 2012년 10월 20일)

▲ 익선동에 있는 전통찻집 '뜰안' 내부. ⓒ김경민

그럼에도 재개발?

근대 서민을 위한 한옥 집단 지구라는 가치와 더불어 지역의 정체성이 보전된다면, 서울의 티엔즈팡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익선동 166번지의 가치는 10년 전 북촌마냥 묻혀 있고 가려져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지역이 현재 공식적으로 재개발 지역이라는 점이다(2004년 지정). 이 지긋지긋한 재개발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지구를 깡그리 철거하고 초고층 복합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 부결된 2010년 10월 익선동 도시환경정비계획 조감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의회 제203회 제2차 본회의 "익선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안에 관한 의견 청취 심사 보고서" 자료

다행히 주상 복합 단지로 재개발하는 것은 멈춘 듯하다. 하지만, 미래를 장담할 상황은 아니다. 역사적 장소로서 익선동 166번지의 현실은 매우 암울하였고, 지금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여기서 무시해서는 안 될 사항은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이다. 여기에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기에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더불어, 생활하기 너무도 불편하여 또는 경제적으로 어렵기에 어떻게든 개발을 해달라는 의견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은 삶이 지난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단순히 역사적 가치가 있기에 '모든 것을 보존하고 사십시오'라고 간단하게 말할 사항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과 재산권 행사 제약과 같은 문제점은 개선되어야 하는데, 이는 그들에게 합리적인 보상이 제공되어야 함을 뜻한다.

"저는 익선동 내 비교적 큰 한옥에 오래 살았습니다. 부모님 세대부터 (결혼해서 중학생 자식을 둔) 현재까지도 살고 있으니까요.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던 10여 년 전에는 저도 사실 재개발에 찬성했어요. 그리고 재개발이 곧 된다고 하기에 집수리도 제대로 안 했죠. 지붕 고치는 데 1000만 원이 들어가는데, 재개발이 곧 된다면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그게 벌써 20년이 됩니다. 서울시가 재개발한다고 지역 묶어놓은 뒤에 지역이 완전히 쇠퇴했어요. 20년 전에는 익선동 한옥의 상태가 북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농담으로 북촌 한옥은 할머니 떡볶이 살 돈 아끼면 살 수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재개발하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정부 당국 이야기를 믿은 대가가 익선동 한옥 주거 단지의 쇠퇴였다면, 그 책임을 주민들이 짊어져야 하나? 물론 이는 단순한 이슈가 아니다. 재개발 소식을 듣고 투기 또는 투자 차원에서 집을 구입한 사람들도 있기에 누구에게 보상하느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의 실패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집단 지구가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미래 비전을 요구한다.

"재개발로 한 20년이 흐르면서 뉴타운 개발의 잘못된 점도 뉴스로 알게 되고, 재개발 찬성이었다가 중립이나 반대로 돌아선 분들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한옥을 보존할 수 있는 지원이 존재하고 미래의 익선동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옥에서 살고 싶어요. 한옥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보여요."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위대한 스토리와 잠재력이 있는 땅은 기억에서 잊혔거나 지워졌고, 거대한 메가 스트럭처가 이를 대신하려는 무모함이 아직도 건재하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중국 상하이 티엔즈팡의 실험이 성공하고 있음을 바로 옆에서 목도하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다. 역사의 보전과 경제적 이익을 동반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가능한 구체적 대안은 연재 마지막 회에 제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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