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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감독부터 의사까지…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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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감독부터 의사까지…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4>] 800만 명 사용자, 그 피해는…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때론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때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알렸다. <프레시안>도 올해 봄 9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내는 등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걸림돌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기획했다. 이 기획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의 배경과 원인, 가해 기업들의 태도와 피해자들이 벌이는 소송,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와 교훈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환경성 질환에 걸리거나 환경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8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용한 생활용품이어서 그 피해는 남녀노소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피해 신고를 해온 사람과 그 가족들의 직업은 의사와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에서부터 종교인, 대학교수, 공무원, 군인, 교사, 연구원, 역술인, 언론인, 택시기사, 중소기업 사장 등 정말 다양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 대리점에서 일하던 사람도 있었다.

옥시 대리점에서 일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저희 아버지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더라고요. 기침을 자주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등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 와서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도 않고 해서 피해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도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의학적으로 살균제에 의한 질병이라고 판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얼마 전 열린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위원회 회의에서 한 판정위원이 한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자를 많이 진단해온 의사다.

피해신고를 해온 사람 가운데에는 남편이 피해자라고 밝힌 의사도 있었다. 의사 유 아무개 씨는 남편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신고해왔다. 하지만 생존 환자는 모두 국립의료원에서 다시 시티촬영을 포함한 검진을 해야 한다는 말에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3차 병원에서 과거 여러 차례 찍은 방사선촬영을 또 하기는 싫다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백소영 씨는 지난 2009년 12월 아들을 낳았다. 돌이 갓 지난 아들은 2011년 4월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나타냈다. 경주에서 대구의 큰 병원으로, 다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며 치료를 받았다. 한때 위급상황까지 갔던 아들은 운 좋게 살아남았다. 지금은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약간 작은 등 몸이 약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잠자며 가습기와 살균제를 썼던 그녀 자신도 아이와 비슷한 증상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지기 전 가습기 살균제 등 생활화학용품을 파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제품 대리점에서 일했다. 남편은 이 대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같은 계통의 옥시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도 취급하는 대리점에서 일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취급하던 제품을 사용했다. 이것이 하마터면 아이와 아내의 목숨을 빼앗아 갈 뻔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고 남편은 말한다.

ⓒ프레시안(남빛나라)

더는 공을 만질 수 없게 된 국가대표 배구선수

피해 신고를 해온 사람 가운데에는 배구 감독도 있었다. 여자 청소년국가대표 배구선수를 지냈고 국가대표 여자배구선수 후보도 지낸 사람이다.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키에 여자로서는 건장한 체격의 안 씨는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뒤 경남의 한 중소도시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후 그 지역 어머니 배구팀 감독과 시청 팀 배구감독 등으로 활발하게 배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10년 겨울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없었다. 처음에는 겨울이고 해서 체력이 달리나 여겼다. 4월 초 동네병원에서 폐렴 증상이라며 항생제를 처방해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더 강한 항생제를 써봤으나 무용지물이었다. 4월 20일 동아대병원에 입원했다. 시티촬영과 조직검사까지 했다. 특발성폐섬유화증 진단이 나왔다.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 두 번이나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3년 넘게 병마와 싸우느라 이제 그녀의 체력은 바닥이 났다. 지난 8월 만난 그녀는 단박에 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야기하면서도 자주 기침을 하고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장거리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피해 판정을 위한 국립의료원 검진 때도 서울에서 1박을 하면서 겨우 마쳤다.

청소년 대표로 캐나다, 중국,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승부를 겨루며 국위를 드높였던 그 당당한 모습은 이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초등학생과 중학생 딸과 아들을 둔, 병색이 완연한 중년 여성으로만 알 것이다. 누가, 무엇이 그녀의 건강한 삶과 가정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가.

육군대령, 경찰도 살균제 앞에 무너지다

지금은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 목사는 지난 2011년 울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 한 살배기 딸을 잃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힘으로 그 슬픔을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 중 경찰과 공무원들도 여럿 있었다. 창원의 이길동(가명) 씨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막내아들이 계속된, 잦은 기침, 열, 천식 등의 증세로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와 유치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하소연한다. 2010년 5월에는 발작적인 기침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경찰인 그 또한 중증은 아니지만 잦은 호흡기 이상 증세에 시달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직접 피해를 입었다고 피해 신고를 해온 군인은 없었지만 아내가 또는 아내와 아이가 살균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군인 가족들은 여럿 있다. 육군대령 가족만 두 곳이다. 공군 하사관으로 항공정비를 맡고 있는 이 아무개 씨도 아내를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잃었다고 신고했다.

기업이나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에서 일하는 박사 출신 연구원 가족들도 살균제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7년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잃고 4살 된 딸, 아내 모두 피해를 당한 나 아무개 씨는 대학원에서 화학(분광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딴 화학 전문가이다. 그런 그조차도 아이를 위험한 화학물질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 서울대에서 재료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부러워하던 국내 굴지의 한 전자회사에 바로 입사해 근무하던 중 그해 두 살배기 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만 했던 비운의 아버지도 있었다.

피해 신고를 해오지는 않았지만, 또 피해 증상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과 가정은 너무나 많다. 어느 국회의원은 자신의 가정에서도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필자도 과거(정확하지는 않지만 5~6년 이전으로 생각함)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 지금 집에는 3분의 1쯤 남은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통을 부엌 한 귀퉁이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가정을 파탄 내고, 생명을 앗아가고, 건강을 갉아먹고,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가습기 살균제. 그리고 그것이 남긴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삶 같지 않은 삶을 그들은 더는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마음속으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나 돌아갈래! 건강했던 과거의 삶으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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