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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침해 화룡점정, 장성택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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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인권침해 화룡점정, 장성택 처형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장성택에겐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도 없었다
북한의 제2인자였던 장성택이 처조카 김정은에 의해 숙청됐다. 그의 최측근 공개처형으로 시작된 장성택의 숙청 과정이 실황중계처럼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정상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처형 과정과 속도 앞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넘어 망연자실해졌다. 장성택 숙청은 일단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인권 차원에서 보면, 이 사건은 인권침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그동안 국제사회와 국내 인권단체들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정보를 얻거나 이해를 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장성택 처형은 북한에서 시민적·정치적 권리(civil and political rights) 침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그림을 보듯, 우리에게 전달했다. 체포 장면이 공개된 이후, 4일 만에 단심(單審) 군사재판과 처형까지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공개한 자료화면들과 장성택의 죄목을 열거한 판결문을 보면서 과연 북한에 사법제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웠다.

▲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는 모습. 노동신문은 이날 재판 및 즉결처분을 전하면서 위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판결문에 담긴 죄목들도 4일 만에 속전속결로 끝낼 정도의 중죄인지 의문이 든다. 장성택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단죄는 했지만, 판결문에는 반당·반혁명·종파행위가 '6하원칙'에 의해서 설명되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 눈 밖에 난 제2인자를 처벌하겠다는 김정은의 격앙된 감정만이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판결문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박수를 건성건성 친 죄,' 또 '삐딱하게 앉은 죄'는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장성택 제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죄를 다 끌어다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장성택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을 방어할 권리와 기회마저 없는 상황이 참으로 억울했을 것이다. 하물며 이 같은 체제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북한주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북한 사법제도의 현실

북한은 1950년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동 법령들을 개정해 왔다. 북한은 2009년 4월 헌법과 형법을 대폭 개정하면서 주로 체제유지와 관련되는 규정들을 정비하고 인권 관련 조항도 신설했다. 2009년 개정된 헌법 제8조 2항에는 "…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권 존중 및 보호'를 명시한 셈이다. 이전까지 북한은 변호사법, 형사소송법, 인민보안단속법(구 사회안전단속법) 등 하위의 개별 법령에서만 '인권'을 규정하고 있었을 뿐, 상위법에는 인권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장성택 사건을 통해서 북한은 개인의 인권 존중은 물론이고 사법절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장성택은 12월 8일 로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체포되어 끌려나간 뒤 4일 후인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북한 형법 제60조의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즉시 처형되었다. 법과 사회규범이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주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장성택의 체포에서 처형에 이르는 언론보도를 지켜보면서, 과연 북한에는 범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법제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북한 재판소는 3급 2심제로 운영된다. 북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북한의 형사 사법절차는 '수사→예심→기소→제1심재판→제2심재판→집행'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택 사건에 대한 재판은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단심으로 진행되었고, 곧이어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장성택 사건이 북한 형사소송법상의 절차를 따라 처리된 것이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한명섭 변호사(대한변협)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헌법에 명시된 북한주민들의 권리는 물론이고 재판 등 사법절차도 언제라도 무시되는 곳이 북한사회라는 것이 재확인되었다.

북한은 장성택 사건 처리 과정을 통해 자신의 체제가 반법치국가임을 온 세상에 공개했다. 한 개인의 생명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박탈함으로써 인권이 부재(不在)한 체제임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각인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 대해서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장성택 사건을 통해서 북한에서 시민적·정치적 권리가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북한은 1981년 9월 14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에 가입했다. 자유권 규약 제6조에는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명권을 가진다. 이 권리는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그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제14조에는, "모든 사람은 재판에 있어서 평등하다... 법률에 의거하여 권한있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누구의 강요나 압박에 의해 가입한 것도 아닌데 북한은 자신이 가입한 국제규약도 준수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국제사회가 집중하는 북한인권의 민낯

국제사회는 김정은 체제 아래 북한 인권 개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접근을 해오고 있다. 유엔 차원은 물론이고 지역 차원, 개별국가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해 오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의 국제인권 논의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외부 행위자 중 유럽연합에 대해서는 북한이 그나마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는 인도적 지원과 인권 대화를 연계한 유럽연합의 인권문제 제기 방식이 북한체제에 덜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접근방식은 비난과 압박을 주요 수단으로 삼는 미국의 접근이나 납치 일본인 송환 문제에만 관심을 보이는 일본의 접근과 비교가 된다.

2013년 6월 25일 유럽연합은 모든 대외정책에 인권을 연계하는 조치들을 채택했다. 캐서린 애슈턴(Catherine Ashton)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자신의 재임기간 중, 36개 분야에서 96가지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조치의 일환으로 유럽연합은 유럽연합인권특별대표(EU Special Representative on Human Rights)를 임명하고, 유럽과 대외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들에 민주화 기금을 제공할 수 있는 유럽민주주의기금(European Endowment for Democracy) 설립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 대부분의 회원국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이와 같은 조치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이라는 관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장성택 사건으로 북한인권의 민낯을 생생하게 봤던 유엔과 유럽연합 국가들의 북한 인권 문제 관심과 개선 노력은 가일층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지 북한 내부의 문제요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손을 놓고 있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남북한 간에는 인권 문제 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은 언젠가는 북한주민에게 희망으로 나타날 것이다. '맑고 하얀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바위를 뚫는' 것을 우리는 언젠가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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