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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문화를! 아시아 패션산업의 허브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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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대문에 문화를! 아시아 패션산업의 허브로 만들자" [전순옥·권은정의 D-프로젝트]<5>산업연구원 박훈 박사
박훈 박사를 서울 디자인지원센터 안에 있는 한국 봉제 아카데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홍릉에 있는 산업연구소에서 동대문 쪽으로 일부러 나와 주었다. 아주 깔끔한 양복 정장차림이었다. 패션의류 연구자답게 패션감각이 있어 보였다. 한국봉제 아카데미의 사무처장으로 일하는 윤순익 박사도 옆에 함께 자리했다. 두 사람은 평소 봉제산업에 관해 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윤 박사는 박훈 박사를 이렇게 소개하고 싶어했다. '패션 의류 산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산업 카테고리 안에서 봉제산업의 포지션이 어디에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는 사람'. 현장에서의 경험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학문적인 영역에서는 이 분야 연구자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산업연구원 박훈 박사. ⓒ프레시안(손문상)

박 박사는 그냥 웃으며 먼저 산업연구원 조직을 설명해주었다. 산업연구원(KIET)은 간단히 말해서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으로 미시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기관이다. 박 박사는 1991년부터 연구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산업연구센터에서 소재,생활친화산업연구팀의 팀장으로서 패션산업을 담당한지는 근 10년이 넘는다. 우리나라 국내 패션의류시장 규모가 2011년 현재 40조에 달한다. 내수시장 전체의 13.5%를 차지하여 승용차 전자제품보다 그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절대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분야인 것이다. 소재, 옷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과 패션의 유통, 그리고 소비자가 옷을 사 입는 유행의 움직임까지 전부 그의 연구분야다.

그는 빠른 말씨로 말을 막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 말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섬유소재에서부터 완제품까지 다 같이,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원료부터 중간 완제품 시장까지 모든 것, 옷 만드는 모든 것은 다 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쪽 분야는 아주 역동적이지요. 분야 간에 단절된 면이 없어서 일하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옷에 관한한 직접 만드는 일만 제외하고 전부를 꿰뚫고 있다고 보면 맞다고 그가 웃는다. 그런 그가 조만간 동대문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동대문 패션시장이 지금 이 시대에 걸맞은 기능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말로 들린다.

"시대에 따라 시장이 바뀌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의 소득과 문화수준이 올라간 것에 비해서 동대문 시장이 그에 맞게 발전했느냐 그게 핵심이거든요. 사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죽 이어오면서 동대문시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싸구려 라는 인식이지만 90년대 들어서 쇼핑몰들이 생기면서 현대화 되었다고 봅니다. 98년에 두타, 밀리오레가 생기면서 소매업까지 하면서 모든 것을 갖춘 토탈 패션시장이 되었는데 과연 그 내용은 현재 2만 불 시대에 맞게 채워져 있느냐, 그리고 품질도 2만 불 시대에 맞게 채워져 있는가? 그것도 물음표인 거죠. 그리고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또한 시장과 주변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주변의 봉제공장 등 동대문을 지탱해 줄 다른 인프라들이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등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주 전에 중국에 다녀왔다. 그는 중국에 자주 간다. 상해에서 6개월간 지내며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말로는 '그냥 보러' 간다고 하는데 거기에 깊은 뜻이 있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며 동대문 시장의 미래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이우시라는 곳인데요. 닝보에서 더 위쪽으로 소상공인이 많은 이우시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동대문 시장의 약 10배 정도 되는 시장입니다. 완구, 악세사리, 경공업 제품은 모두 다 그곳에서 가지고 옵니다. 그곳에는 의류시장도 별도로 아주 크게 있는데, 그 시장의 규모와 품질,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동대문의 미래가 보입니다. 비교해보면 동대문이 과연 이렇게 가서 되겠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는 세계 속의 한국을 알리는 한류의 바람이 한국의 패션에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한류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영역이 패션산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한류가 패션산업에 어떤 혜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잠재력은 갖고 있지만요."

그는 우리의 패션 시장이 아직 세계화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며 그 상황을 애니콜과 비교해서 설명해주었다.

"애니콜은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세계 전 지역으로 광고를 하지요. 그런데 우리 엘지패션, 제일모직은 수출을 한 장도 안합니다. 다 내수라는 말이죠. 수출하는 의류회사는 다들 규모가 작습니다. 우리는 패션에서 글로벌 기업이 없어요. 대부분 주문자 생산방식(OEM)이죠. 최근에 중국에 EXR 같은 것이 매장을 내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왜냐하면 유통망이나 광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우리 의류 중에 해외에 나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OEM으로 수출을 하지, 브랜드로 수출하진 않으니 효과가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한류바람 덕분에 동대문시장에 와서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인 줄 알고 사는데, 사고 보니까 중국제(MADE IN CHINA)라는 거죠. 그만큼 우리는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일단 우리 패션기업들이 글로벌화 되질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살 수가 없고, 동대문에 가보면 물건이 안 좋으니 구매하지 않는 거죠. 한류의 효과를 보려면 바로 우리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동대문을 찾는 도·소매상인들과 관광객들까지 해서 외국인들이 연 250만 명이다. 그들의 의류 구매액은 연 13조 원(2011년 현재)에 달하며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거기다가 해외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

"동대문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계속 이어질텐데, 이 사람들이 사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이제 중국 도소매상들이 동대문을 떠났습니다. 이우시장 가면 물건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가격대가 굉장히 쌉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물건이 이우시장 물건보다 그리 뛰어나게 좋다고 할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MADE IN KOREA' 상표도 안 붙어 있으니 한국산이라고 입증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요즘 중국의 도소매상들이 동대문에서 물건을 잘 사가지 않습니다. 사가지고 가도록 만들 수 있는 매력이 뭐가 있는가? 그것에 답을 해야지요."

그는 동대문에 현재 '없는 것'이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동대문에 가면 모든 게 다 있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정작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디자인이지요.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디자이너가 없다'라는 말과도 같은 얘기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가 없다는 말은 디자이너가 중심이 돼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디자인이 사업의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여기는 도매상과 소매상이 중심이 됩니다. 도매상은 카피(COPY, 베끼기)건 뭐건 팔리겠다 싶은 물건은 무조건 카피하라고 주면서 그게 디자인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니 디자인 수준이 올라가질 않습니다. 늘 제자리죠. 도매상 사장의 주문대로 만들어야하니 전문 디자이너들은 동대문에서 디자인 한다는 것을 모욕이자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성장을 하면 이곳을 떠나지요. 여기서는 디자인으로 승부 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동대문에서는 신상품 출시 후 2~3일 내지 최대 1주일 정도 소비자 반응을 보고 어느 것이 핫 아이템이 될지 바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 1주일에 1~2개 신제품 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민감한 유행을 곧바로 반영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점포마다 차별성이 없다. 베껴서 내놓기 바쁜 게 동대문 의류시장의 실정이다.

"동대문은 철저하게 도매상의 오더(order, 주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청시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가 시장인 것이지요. 도매상은 절대 고급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가격 경쟁력 때문이지요. 이 시스템이 가장 수준 낮은 시스템이에요. 이 과정에 디자인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디자인은 이 바닥에서 사치에 가깝습니다. 본인 능력이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디자인은 항상 도매상의 하청 사슬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 상태로 머물러 있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동대문 디자인의 현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고착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

ⓒ프레시안(손문상)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합니다. 디자인과 도매상이 함께 가야한다는 말이죠. 뉴욕의 장점은 디자이너가 아주 많다는 것이지요. 그쪽은 디자이너 중심으로 업계가 굴러갑니다. 그래서 규모가 지금 줄어들고 있지만 강합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디자이너 중심으로 간다면, 그 시장은 강한 시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디자인이 밑바닥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그러면 만년 싸구려 시장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기획력 있는 사람은 동대문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본인이 기획력 있어봤자 도매상들이 안 써주니까요."

동대문의 이런 후진적 시스템을 바꾸려면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지금 사각지대에 놓인 인디 브랜드들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동대문시장이 발전하려면 디자이너들을 키워줘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줘서 신진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거든요. 외국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시제품 제작센터 등등 그런 방식으로 자유롭게 계속 옷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바로 공공부문이 해줘야 하는 일입니다. 동대문에서 디자이너들에게 그런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디자인은 발전하는 거죠. "

신진 디자이너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제도가 어떤 것인지 그가 자세하게 설명한다.

"샘플로 옷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옷 하나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합니다. 옷 한 벌 만들어지기 위해선 수많은 패턴 샘플의 공정을 거쳐야합니다. 그런데 패턴 샘플 한번 하는데 돈이 30만 원 이상 들어요. 돈이 있어야 히트상품을 만듭니다. 여기 인디 디자이너들한테는 패턴 샘플을 마음껏 만들어 볼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을 리 없지요. 바로 이 단계에서 공공부문이 지원해준다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지금까지 정부에서 동대문 패션시장을 위해 해준 것이 거의 없다고 아픈 지적을 한다.

"동대문에 패션 관련 인프라를 집어넣어서 패션시장이 활성화 되게 했어야 했는데, 대신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에 산업디자인 공간을 마련해주었지요. 그래서 패션시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디자인 쪽으로 가는 실제 필드정책(field, 현장 중심 정책)은 없었습니다. 패션시장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전순옥 의원이 지금 나서면서 정부에서도 이제야 '뭔가를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패션비즈센터(의류봉제 영세업체 육성 센터. 서울시 중구 신당동 소재) 만든 것이 첫째 도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봉제산업을 위한 정책의 부재가 봉제계 쪽에 힘이 없어서이기도 하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 것을 권한다.

"의류봉제 협동조합 만들어서 조합원이 400~500명 정도 되면 앞으로 힘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발언권을 가지려면 뭉쳐서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 전에 봉제 조합이 하나 있었는데, 결국 조합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해 무너졌습니다. 이들이 말을 하면 정부에서 귀를 기울이게끔 만들어야지요."

의류봉제 협동조합이 정부와의 사이에 신뢰관계를 형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일단 열심히 해야겠죠. 그리고 많은 사업을 해봐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필드 CEO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의견을 일치시켜서 한 목소리가 나오게 해주고 봉제산업을 어떻게 키우겠다하는 마스터플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지요. 그래서 봉제 출신들이 힘을 보태주면 더 좋은데, 우리나라는 이쪽 업계 출신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숨기려 듭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정부가 일정 부분 도움을 주면서 시작할 수 있게 하고, 점점 실효성을 인정받은 후 나중엔 발언권을 가지게 할 수도 있겠지요.

왜냐 하면 정부도 뭔가 사업을 하려면 이런 단체가 필요하거든요. 정부가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돈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데 봉제 분야에서는 아직 정부의 직접지원을 받는 데가 없어요. 지금은 의류산업협회를 통해서 봉제를 지원해줍니다. 여기 아카데미의 경우도 아직은 그렇지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단체가 신뢰가 쌓이고, 공신력이 생기면 바로 돈을 받게 되는 거죠. 좋은 기획이란 게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정부 지원으로 작은 사업을 실행했을 때 좋은 반응이 있으면, 그때부터가 시작인 것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리고 중요한 점! 동대문에 문화가 들어서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인도, 브랜드도 없고, 문화도 없다는 지적을 했다.

"'동대문 축제', 못 들어 보셨지요? 동대문에는 문화가 없습니다. 시장과 상가만 있지, 패션축제가 없습니다. 동대문에 가면 옷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도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와서 물건도 사러 오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샵도 있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바이어(buyer, 구매자)들을 불러들이게 되는 거죠. 이 옷을 도매상인, 소매상인이 보고 사서 판매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업그레이드되고…. 문화와 디자이너의 활동영역을 동시에 연결시켜 줘야 합니다. 패션문화 행사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동대문 문화'라는 것은 동대문의 패션 수준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수준급의 옷들을 도매상들이 사서 만들어서 팔고. 그러면 소비자들도 반응이 올 것이고 도매상들도 그것을 느끼고 또 만들어 팔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모든 이가 좋게 된다는 말이다. '디자이너 좋고 도매상 좋고, 봉제공장도 좋고, 소비자도 좋은 이런 시스템으로 동대문을 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결국 동대문은 도매시장이거든요, 현재 소매시장이 확장해 나가는 모양새이긴 한데, 그래도 여기는 도매시장이어야 합니다. 전국의 옷이 여기서부터 뿌려져야 합니다. 도매상과 디자인하고 협업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의 수준을 높여줘야지 여기가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부의 몫이라는 거죠. 그것 밖에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품질이 좀 균일하게 가야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옷 사면, 그래도 기본은 다 되더라.'고 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동대문의 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동대문만 올라가면 되요. 그래서 정책의 포인트를 동대문에 둬야합니다. 동대문의 수준을 높여서 아시아의 허브로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동대문을 지금 상태로 그냥 두는 한 우리의 패션산업은 미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패션시장은 글로벌 SPA브랜드(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자사 기획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해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의 국내시장 진출로 위축되어 있다. 생산액의 85%를 국내시장에 공급하는 내수산업인 패션의류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간다면, 그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박 박사는 우리의 패션시장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기는 아깝다고 지적한다.

"우리 패션시장의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또 아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패션, 동대문 시장하면 알아줘요. 아직은 동대문 시장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동대문을 싼 물건을 파는 시장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편인데, 사실 내부와 외부의 평가 갭이 너무 크지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번 식으면 정이 안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동대문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으면 앞으로도 발전의 가능성이 희미해지고요. 그리고 전 중국에 가서는 옷을 절대 안삽니다. 품질이 안 좋아서가 아니고, 내가 저걸 몇 프로 깎아야하는 지를 몰라서요. 따라서 가격은 반드시 정찰제로 가야합니다.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는 제도적,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갖춰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한국인의 손기술 능력은 세계적으로 자랑거리다. 그래서 우리나라 봉제기술에 대한 인식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기술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온 게 사실이다.

"지금 동대문 주변에서 봉제 일하는 분들의 실력이 원래는 아주 좋았습니다. 수준이 처음부터 낮았던 게 아니라 맨날 저급봉제만 하다보니까 상대적으로 낮아진 거죠. 고급 봉제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지금 봉제기술자들한테 좋은 원단을 주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아마 겁을 낼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옷에 따라 쓰는 바늘도 다릅니다. 어떤 원단에는 어떤 바늘을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면 만들기 어렵지요. 뭔가 새로운 것이 왔을 때 받아들여서 할 수가 없습니다. 재교육이 필요 합니다. 일반회사에서도 직원 연수하잖아요? 봉제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봉제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돈을 들여서 배우라고 하면 안 됩니다. 무상으로 해줘야 합니다. 무상으로 교육시켜 준다고 해도 사정사정해야 옵니다. 교육 받느라고 시간을 써버리면 밥값을 못 벌게 되거든요. 그럴 시간 있으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이들한테 교육이 어려워지는 거죠. 무상 교육에 교육참여 장려금까지 줘야 합니다. 그래서 또 정부의 역할이라는 게 필요한 것입니다."

봉제인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되게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봉제기술재단. 그러면 무상으로 교육이 가능해지지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법이거든요. 안정적인 봉제기술, 그리고 전체적인 수준이 일정하게 발전해야 패션 시장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 해도 패턴사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면요? 또 패턴사가 잘 만들었어도 샘플사가 일을 못해서 원하는 기능이라든가 이것을 못 살리고, 또 그 다음 단계로 봉제기술자가 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소용없게 되는 거죠. 디자인부터 봉제까지의 수준이 균일하게 발전해야만 옷이 제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봉제기술자들을 키워 놓으면 일거리를 받는 것은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외국으로 아웃소싱된 일감들이 전부 국내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봉제하는 사람도 안정적인 일거리를 받고 싶어 하듯이, 의류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네들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정적인 봉제공장을 찾아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대량생산을 위한 주문을 안정적으로 받아서 만들어줄 공장이 없다고들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중국, 베트남으로 가게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즈음에 인건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봉제 인건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조업 평균 인건비가 월 300만 원인데 비해 국내 봉제인들의 인건비는 월 150만 원도 못된다.

"너무 낮은 겁니다. 근데 이것이 높다고 말하는 이유는 생산성 대비해서 말하기 때문이에요. 싸구려 옷을 만들기 때문에, 싸구려 봉제기술자니까 저임금밖에 못주겠다는 거죠. 이들이 고급 봉제를 한다면 임금을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봉제기술자하면 다 저급봉제만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인식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봉제기술자들 스스로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해도 그게 받아들여질 상황이 아닌 것이지요. 사실 봉제 잘하는 사람들 국내에 많이 있습니다. 동대문 주변지역과 신촌이나 마포, 장한평, 성수동 쪽 가면 봉제 참 잘 합니다. 그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봉제하고 있어요. 봉제라고 다 인건비가 같은 것은 아니에요. 동대문, 이 근처 봉제공장에서는 대부분 객공 시스템으로 하고 있지요. 일 있으면 돈 주고, 일 없으면 돈 안주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의류회사와 계약을 맺고 고용직으로 일하는 봉제기술자들은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고 있지요."

▲ 권은정 인터뷰어(왼쪽)와 박훈 박사(오른쪽). ⓒ프레시안(손문상)

'메이드인 코리아'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가고자 마음먹는다면 못갈 길은 아닌 게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의 손안에 아직 자고 있는 그 잠재력을 깨워서 세계를 놀라게 할 좋은 솜씨가 나오게 해야 한다. 그 일을 산업 연구원인 박 박사 그가 앞장서서 해줘야 한다는 '주문을'하고 싶었다. 그게 창조적으로 경제를 일구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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