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파업은 잠정 중단됐지만,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천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어떤 노동이 필요하고,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파업에 나섰는지를 말이다. <편집자>
인천공항 파업 12일째. 노동자 400여 명과 함께 침낭을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어디선가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안 그래도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었는데 망치 소리까지 더해져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엄청난 길이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망치질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건물이 으리으리한 만큼 건물을 수리하는 스케일도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 저분도 비정규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항 건물의 유지·운영·보수를 책임지고 있는 설비 노동자들도 공항공사 정규직 직원이 아닌, 비정규직이다.
267개의 화장실을 단 두 명이 관리
"여기 콘센트에 전기가 안 들어와요."
"실내가 너무 추워요." "아휴 너무 덥네요."
"음수대 물 높이가 너무 낮은 거 아녜요?"
"화장실이 막혔어요."
공항에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달려가는 사람들이 바로 설비 노동자들이다. 공항의 총면적은 5616만8000㎡(1700만 평). 서울 여의도의 7배 크기에 달한다. 설비 노동자들은 이 넓은 공간의 냉난방, 화장실, 누수·막힘, 조명, 전기시설, 소방시설, 페인트칠, 바닥·창·문·천장 등을 관리한다. 사고가 터지면 수리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업무도 그들의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이용객의 불만 접수도 처리하며 세면대 온도까지 관리한다.
단순하게 얘기해보자. 여객터미널에는 화장실이 188개, 냉난방부터 환기까지 공항 내 공기를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는 공조기가 259대, 조명은 8만여 개, 소방시설은 1만3000여 개가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시설물이 있다. 설비 노동자 전체 360여 명으로 이 모든 시설물을 관리한다. 거기에 2013년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4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용객들의 민원 업무까지 처리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일이다.
"관리할 곳이 많으니까, 267개 화장실을 단 두 명이서 책임져야 해요. 처음 온 사람들은 화장실 위치 익히는 데만 3개월이 걸릴 정도예요. 예전에는 화장실 개수가 더 적었는데도 4명이서 관리했거든요? 그런데 화장실 개수는 늘어나는데 인원은 오히려 줄여버린 거예요. 여기저기서 동시에 막히고 새기라도 하면 발바닥에 쥐날 정도로 뛰어다녀야 해요."
"하루 종일 전체 설비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눈으로 쉴 새 없이 쫓아다니다 보면 눈이 항상 뻑뻑해요. 그리고 물탱크 수위가 맞지 않는다거나 가스 감지기 알람이 울리는 등 문제가 생기면 20분 이내에 조치해야 하는데, 어떤 곳은 가는 데만 25분이 걸려요. 불가능하죠."
▲ 설비 노동자들이 지붕 위에 점처럼 보인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설비지회 |
밤낮없이 일하는 인천공항 노동자들
공항은 넓고 할 일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단 1분도 멈추지 않고 운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밤에도 일한다. 토·일요일이나 공휴일, 명절 상관없이 3조 2교대로 '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휴일'의 순서로 일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 맞추어 오붓한 주말을 보내고 싶다면 휴일이 주말과 겹치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설비 노동자들은 승객이 없는 밤에 본격적인 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장비를 동원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거나 단전·단수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밤 근무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15시간이다. 그중에 4시간이 휴게시간이지만 일이 많거나 하던 일을 끊어서 하기 힘들면 밤을 새우는 일도 잦다. 그러면 밤을 새우고 아침 9시에 퇴근해서 밥 먹고 씻으면 12시, 1시쯤에 자서 4시쯤에 일어나 다시 출근해야 한다. 그게 힘들어 야간 근무 때에는 아예 퇴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미관상의 이유로 안전장치는 설치할 수가 없습니다."
공항 5616만8000㎡(1700만 평)의 면적에는 여객터미널, 화물터미널, 계류장시설, 항행안전시설, 교통시설 등이 있다. 높이가 100.4m(22층 높이)에 달하는 관제탑, 출발여객 처리용량이 1시간당 6400명에 달하며 높이는 37.5m인 여객터미널, 동시에 항공기 24대를 세울 수 있는 화물터미널 등 이 모든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 2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구조물을 세우고, 용접하고 천장을 만드는 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항 인근 공원 한쪽에 공항을 짓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 인천공항을 건설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추모비. ⓒ인천공항지역지부 설비지회 |
추모하는 영령들 김정훈(18세) 오천학(47세) 김점도(46세) 황만석(27세) 박윤구(61세) 최금묵(39세) 강한희(41세) 이춘남(47세) 한승수(25세) 하인수(34세) 한상경(40세) 김종욱(37세) 이동빈(43세) 송영웅(18세) 장흥대(38세) 전기용(33세) 우길환(23세) 곽노정(48세) 이용세(49세) 김완길(31세) 김정섭(55세) 김동진(38세) 유제경(25세) 이복일(49세) 빛나는 대역사 뒤에는 고귀한 희생이 없지 않으니 여기에 기록한 이십사 위의 영령들이시다 일천칠백만 평의 바다와 섬산이 세계제일의 해상공항이 되기까지 계절의 한서와 일의 난이를 가리지 않고 지하나 고공이나 절토지에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건설의 대열에 앞장선 분들이시다. 혹은 약관의 젊은 아들딸로서 혹은 산처럼 든든한 가장으로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안아 기르던 다정한 손길을 이 공항에 영원히 바쳤으니 그 애끊는 희생을 무엇에 비하리오. 이에 처연한 가슴으로 옷깃을 여미고 꽃다운 이름을 새겨 종향하나니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길이 빛나리라. 영령들이시여 부디 하늘의 영복을 누리소서. 2001년 11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강동석 |
만들 때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좁은 천장 위를 기어 다니고 37.5m의 지붕 위에 올라서 일하기도 한다. 전기 설비를 다루며 감전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그렇게 일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2002년이었나. 사고 난 적이 있었죠. 큰 사고였어요.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엉덩이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손목이 꺾였어요. 그 사람, 지금도 장애가 생겨서 이 일을 못하게 됐어요…."
▲ 설비 노동자가 천장에 조명을 교체하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설비지회 |
사람이 죽고 다쳐야만 '사고'가 아니다. 인명 피해는 없더라도, 설비 노동자들은 항상 사고의 위험을 등에 업고 일한다. 하지만 사고의 위험을 예방하는 데 공항공사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로세로 1m밖에 안 되는 발판에다가 작업용 난간도 없는 장비에 안전고리라도 설치해 달라고 하면 뭐라는 줄 아세요? 미관상 설치할 수가 없대요. 우리 안전보다 미관이 더 중요한 거죠. 3층 출국장 창가에 있는 등을 설치할 때는 유리창으로 기어서 이동해야 해요. 여기도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공항공사가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자칫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사고가 나면 하청업체들은 공항공사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점수가 깎인다. 잘못하면 하청업체가 바뀌거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월급이 깎인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현장에 '불상사'가 생길 때마다 공항공사는 점수를 깎겠다고 협박한다.
그 점수는 서비스수준협약서(SLA)의 점수를 말하는 것으로 하청업체가 공항공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공사가 평가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분기별 평가를 통해 SLA에서 97점 이하를 받으면 공사가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이 깎이고, 하청업체 노동자의 월급이 깎인다. 공항공사에는 응급차량이 대기해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사고가 나도 이를 이용하지 못한다. 기록에 남으면 공항공사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은 본래 위험한데, 그로 인해 생기는 사고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는 공항의 모든 곳에는 분명 사람의 '노동'이 필요한데, 공항공사는 그 노동을 하는 '사람'은 지워버리고 있다. 그랬던 인천공항은 올해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로부터 '노동 존중 경영상'을 받았다. 공사 직원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 자녀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항 꿈나무 어린이집'을 개원하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항공사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긴 후 6년 동안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은 이런 식의 전시용 사업이 아니라 인천공항을 함께 운영해 나가는 사람을 인정하는 데 있다. 공항의 미관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을 생각하는 데 있다. 이제는 '진짜 사장이 나와라'라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이 사장님께 가 닿았으면 좋겠다. 함께 공항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관련 기사 ☞ 인천공항 파업 11일째…"이 악몽을 끝내달라" ☞ "추석 해외 여행, 누구한테 공항 서비스 받으셨나요?" ☞ 12월 31일 밤, 60대 비정규직 해고 날벼락 ☞ [포토] 세계 1등의 진짜 얼굴, '이불 노숙' 인천공항 인천공항 비정규직 연속 기고 ① "10년 해도 신입…우린 사람이 아니라 시설물이었다" ②"공항에 높은 분 오면 우린 바퀴벌레처럼 숨어야 해요"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