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 자체가 불안한 이때,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만 같은 '활동'이니 '운동'이니 하는 길을 택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행복한가? 아니 그보다 일단 힘들지 않은가? 왜 시작했으며 왜 계속하는가? 이들이 탐색하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활동의 질량은 세계의 관성에 맞서 달리는 열차의 속력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의 <2013 청년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각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 활동과 전망을 나누고, 기본소득과 교차점을 살펴본 기록이다. BIYN은 각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가치를 믿고 이들의 서사와 메시지가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활동으로만 설명되어왔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활동들을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의 인터뷰는 <프레시안> 연재를 위한 편집본입니다. 글 마지막의 링크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지금까지의 인터뷰 모아서 보기 |
지난 10월 16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공항공사 사장직에 취임했다. 여전히 용산 참사는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는 처벌되지 않았다.
한편 영상은 과거를 가장 직접적으로 지금-여기로 소환하는 기록 매체다. 그래서일까? 끝나지 않은 채 멀어져가는 용산 참사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꾸준하다. '2012 인디 다큐 페스티발'에서 열린 용산 특별전 섹션에서는 한 방송국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망루에서 돌아가신 이상림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레아 호프' 자리에 있던 방송국이다. 이곳에서는 "Be the Media, Action Radio"라는 슬로건 아래 매일 저녁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용산의 355일에 대한 기록'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 촛불방송국 '레아'> 속 여러 조각들 중 이 때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가 오늘의 인터뷰이 송이 감독의 <행동하는 라디오>(2010)이다.
이후 송이 감독은 현재 '신진다큐모임'의 일원으로서 '미디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진행된 이 인터뷰는 '미디어 활동가' 송이 감독이 생각하는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활동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행동적인 삶(Vita Activa)을 가능케 하는 조건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 신진다큐모임 송이.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
BIYN : 먼저 스스로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이 : 저는 송이구요. 영상을 만드는 사람인데요. 지금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을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저를 소개한다면, 글쎄요. 그냥 영상 만드는 사람이에요. (웃음)
BIYN : 참여하고 계신 '신진다큐모임'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송이 : 다큐를 만든 지 얼마 안 된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에요. 그래서 신진작가모임, 줄여서 신다모가 된 거고요.
예전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어디 영상 단체에 들어가거나 했어요. 이제는 카메라도 접하기 쉬워지고 영상 만드는 것도 쉬워지면서 개인 작업자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런 개인 작업자들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해요. 그 과정이 되게 힘들고 외롭죠. 그러다 보니 다큐를 한 편 만드는 사람은 많은데 두세 편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거예요.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우리가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다큐를 만드는 건데, 그 제작 과정도 즐거워야하지 않겠냐'고 해서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BIYN : 어느 정도의 운동에 참여하고 계시고, 만나서 어떤 활동을 하시는 거예요?
송이 : 첫 취지가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외롭지 않게 작업을 해보자는 거였기 때문에, 모임의 문턱을 최대한 낮췄어요. 그래서 다큐를 찍은 사람뿐 아니라, 그냥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다 회원이 될 수 있는 구조예요.
지금까지는 꾸준히 상영 활동 위주로 하고 있어요. 왜냐면 신진 작가든 아니든 한국에서 독립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곳이 굉장히 적고,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굉장히 적어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상영 활동을 넓게 했었어요.
잘 쓴 기획서가 무엇인지 공부하는 등 제작에 도움 되는 활동들도 하고 있고요. 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얘기하기 위한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어요. 정리하면 상영, 실태조사, 제작 관련 모임을 주로 하고 있는 거죠.
카메라라는 도구와 미디어 활동가라는 정체성
BIYN : 지금 특별히 집중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요?
송이 : 사실 제가 지금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웃음) 지금 제일 집중하고 있는 건 준비 중인 개인 작업을 빨리 끝내는 거예요. 처음에는 독립다큐를 찍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를 기획했는데, 지금은 좀 개인적인 고민을 담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독립다큐라는 게 뭘까'에 대한 얘기를 하는, 독립다큐에 대한 독립다큐를 생각하고 있어요.
BIYN : 처음에 현장에서 영상 기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송이 : 일단 영상은 되게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살짝 굴곡이 있는 10대를 겪으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떤 단체를 통해서 영상을 배웠어요. 거기서 제가 배울 수 있었던 것들 중에 할 수 있을만한 게 딱히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실은 영화를 배우려고 들어간 거였는데, 영화라기 보단 영상을 배우게 된 거죠.
무슨 말이냐면, 카메라 조작법 같은 기술은 똑같이 배우는데, 초점이 '영화를 어떻게 잘 만드는 지' 보다, '너의 생각들을 카메라로 표현해봐라'에 맞춰져있는 거예요. 즉, '미디어 교육'을 받은 거죠. 그렇게 처음 영상을 알게 됐고, 그 때 저를 가르쳐주셨던 분이 공동체 운동, 문화 운동을 하시는 분인데 연락이 닿으면서 영상을 계속 찍게 됐어요.
제가 처음에 갔던 현장은 용산이었는데요. 사실 별 생각 없이 갔었어요. 거기가 제가 다니던 학교랑 가까웠는데, 우리 학교 애들이 용산 참사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는 거예요. 뭔가 문제를 느끼고 있는데, 마침 거기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미디어센터를 만들어보자며 사람을 모으고 있었고 그걸 주도한 사람 중 하나가 아는 사람이었어요. 저에게도 연락이 왔고, 현장에 가기 시작했어요. 사실 가기 시작했다고 말하기 좀 그런 게, 제가 현장을 막 열심히 다니고 그런 게 아니라서… (웃음)
BIYN : 그 때 미디어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신 거예요?
송이 : 미디어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표현이에요. 자기를 표현하고, 상대방이 자기 표현하는 것을 듣는 것. 그래서 서로 오고 가면서 소통하게 되는 것.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미디어 교육을 할 때에도 단순히 카메라 작동법이나 영화의 촬영 기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사람하고 어떤 얘기를 할 거고, 이 사람이 어떤 얘길 하고자 하는지 듣는 도구로서 카메라를 쓸 수 있도록 교육하려고 해요. 나는 영화 찍는 사람 혹은 촬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상으로 뭔가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그렇게 미디어 교육을 하면서 갖게 된 것 같아요.
30년 후에도 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BIYN : 이번에 독립다큐감독 실태조사를 하시면서 무엇을 많이 느끼셨어요?
송이 :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영상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요. 지금은 그냥 내 소비를 줄이고, 젊으니까 몸으로 때우면서 할 수 있는데 나이가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되면 그때에도 이런 식의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되게 많아요.
실태조사 다큐 작업하면서 40대 감독들도 많이 만났었어요. 그 분들은 결혼해서 자녀도 있고,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계속 자기 작업을 하는 거죠. 보면서 '저런 식으로 살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만 계속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4~50대 감독들은 몇 명 없거든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독립다큐를 찍었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만 남은 거잖아요. 물론 다른 걸 하고 싶어서 나간 사람도 있지만, 이걸로는 더 이상 먹고 살 수가 없으니 그만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또 하나는, 예상했던 것만큼 정말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것. 찢어지게 가난하고 허덕이면서 사는데, 신기하게도 자신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객관적인 조건으로 보면 2~30대 감독들 연봉이 2000만 원이 안 돼요. 제 친구는 작년에 1000만 원을 못 벌었어요. 그 말은 한 달에 백만 원을 못 번다는 소리잖아요. 그런데 한 달에 100만 원씩 들어오면 1년에 1200만원인데, 1200만원을 벌면 최다누적으로 굉장히 풍족하게 느껴질 정도의 경제 수준인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가 낮지 않은 것을 보면서 여기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BIYN : 송이 씨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뭔가요? 그게 지금의 활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얘기해주세요.
송이 : 지금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밌는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계속 하는 거죠. 제가 나이가 어느 정도 먹어가면서, 취직을 하고 시집을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거든요. 심지어 방송국 시험을 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됐냐면, 제가 용산 끝나고 나서, 슬럼프에 확 빠져서 '카메라를 놓아야겠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겠다' 해서 풀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주 6일, 하루 10시간 정도 근무하는 식당 일을 했는데, 돌아버리겠더라구요. (웃음) 사실 그렇게 나쁜 노동환경은 아니었어요. 요리에 재미를 붙여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예요. 그렇게 한 3개월 풀로 일해보고 나니까, '나는 영상을 하는 게 재밌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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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YN : 용산 끝나고는 왜 슬럼프였어요?
송이 : 용산에 있었을 땐 제가 슬럼프인지도 몰랐어요. 용산 현장에 미디어센터가 있던 '레아' 라는 공간이 되게 특이한 공간이었어요. 거기 한 1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호프집 바로 앞 건물이 망루였어요. 드러내 얘기하진 않았지만 죽음의 분위기가 계속 있는 곳이었어요. 활동가들은 주로 레아 공간에 있었지만 철거민 분들의 경우엔 24시간을 망루에서 지내시면서 같이 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이 굉장히 강했던 거예요.
레아는 굉장히 활기차고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었지만, 그곳 역시도 죽음이 깔린 분위기가 같이 있었던 거죠. 그게 되게 버거웠는데, 특히 저는 그런 현장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게 버거운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버거웠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지만, 그런 공통의 버거움에 대해서 당시엔 서로 얘길 하지 않았어요. 할 일도 너무 많았고 '철거민 분들은 저렇게 힘든데' 이런 느낌도 있었고요. 대화로 풀지 못하고 쌓여가던 버거움이 레아 공간을 정리하면서 터졌고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식으로 패배감이 되게 심했어요.
그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에서의 패배감과 별개로 개인적인 패배감도 따로 있었어요. 나는 그냥 기록만 하려고 간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굳이 거기 미디어센터란 이름의 공간을 만들었던 건, 앞에서 말한 미디어 교육의 의도도 담겨있었던 거죠. 고발하고 기록하는 미디어를 넘어서서 좀 다른 역할을 하길 바랐던 건데, 그런 역할을 못했다고 봐요. 고작해야 기록 정도.
우리는 레아에서 이건 새로운 형태의 싸움이고 공동체라는 식으로 얘길 했지만, 사실상 그 공동체는 활동가들끼리의 공동체였지 철거민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던 공동체였던 거죠. 정말 내가 패배감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끝나고 나서 상처에 대해 서로 잘 치유가 안 됐었던 것도 같아요.
BIYN : 이때까지 작업하시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힘들었던 점은 뭔가요?
송이 : 내가 잘 모른다는 것. 그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잘 모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활동에 영향을 주게 되니까요. '내가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들인 거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되게 답답하잖아요. 상황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뭘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따라가게 되니까.
제가 말을 많이 하기보단 듣고 관찰하는 타입이다 보니, '쟤는 다 알고 있는데 얘기를 안 한다'는 식으로 저에 대한 포장이 저절로 생겼었어요. 어쩌다보니 제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다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었거든요. 사실 저는 하나도 모르는데, 계속 아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BIYN : 그 아는 척을 그만두고 자신의 모름을 드러내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송이 : 계속 나를 숨기는 과정에서 시끄러운 사건들이 많이 생겼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되겠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되게 웃긴 게, 제가 '활동판'에 발을 담근 게 상당히 일렀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여기서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가 마치 동등한 무엇이라도 된 양 행동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제 위치가 조금 달라졌어요. 옛날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막내에서 벗어나게 된 거예요. 나는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그냥 날 밀어올린 거죠.
작품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지원, 최소한의 생활 보장
BIYN : 독립다큐나 영상제작자들의 삶과 관련해서 기본소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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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립다큐멘터리를 지원한다고 여기저기서 기금도 모으고 제작지원도 하는데, 그렇게 돈을 받으면 작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돈을 쓸 수가 없어요. 사실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건 만드는 '사람'에 대한 비용인 건데 지원기금은 사람의 재생산에 대한 지원은 아닌 거죠. 장비 쓰고, 공간 쓰고 정도에 대한 지원 뿐.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서 '사람'에 대한 지원이 있으면 사실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뭔가를 시도할 수 있으려면,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나는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없을지도 몰라' 라는 공포심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잖아요. 이런 점에 있어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기본소득 아닐까 싶어요.
투쟁현장에서 독립다큐나 기록 작업 하는 분들을 지원하기 위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라는 모임이 있어요.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 하시던 분 두 분이 돈이 없어서 자살하신 일을 계기로 만들어진 거예요. 되게 먹고살기 힘든데, 현장에서 장비가 부서지고, 비싼 장비를 다시 마련할 돈은 없고. 특히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하시는 분들의 결과물은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장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 아무것도 못 버는 상태에서 밑바닥까지 가게 되신 거죠. 그분들도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 됐다면 그렇게까지 하시진 않으셨겠죠.
BIYN : 미디어 활동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나 상이 있나요?
송이 : 그게 별로 잘 안 그려져요. 그게 지금 그려질 수 있나 싶어요. 저는 지금 그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가게 되는 방향이 너무 좁아질 것 같아요.
BIYN : 동료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송이 : 화… 화이팅? (웃음)
용산, 강정, 평택, 밀양 등 공권력에 의해 탄압 받는 모든 현장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켜보는 눈'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공공연히 자행되는 사복 경찰의 불법 채증에 맞서는, 주류 언론이 결코 방송해주지 않는 진실 조각들을 발신하는 행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나저나 1인 미디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시대에 일상의 현장에서 우리는 손에 쥔 작은 기계들로 매일 무엇을 방송하고 있을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 앞선 필요 옆에 이런 질문들이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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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는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 및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인 청'소'년(0세~30대)이 먼저 그리고 같이 기본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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