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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들은 음악, 장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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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들은 음악, 장식에 불과합니다 [이명현의 '사이홀릭'] 버니 크라우스의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내 막내 동생은 실험영화 감독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필름을 사용해서 영화를 찍고 작업을 한다. 언젠가 동생에게 왜 필름으로 하는 영화 작업을 고수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동생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아직 필름을 통해서 탐구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듣고 보니 명언이었다. 사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많은 것이 평균이라는 이름 속에 파묻혀서 사라져가는 세상이다. 편차를 고집하기 힘든 세상이다. 더 탐구할 것이 남아있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문득 사랑한다는 것은 계속 탐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탐구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버니 크라우스 지음, 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 ⓒ에이도스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버니 크라우스 지음, 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는 소리를 사랑하는 한 생태음향 전문가가 쓴 소리 이야기다. 소리를 탐구하면서 사랑에 더 푹 빠진 소리 전문가의 사랑의 노래다. 내 막내 동생처럼 더 탐구할 것이 많이 남은 것을 계속 살펴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쓴 고백서이다.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며 1만 5000여 종의 소리를 녹음한 크라우스는 원래 음악가로 활동을 했었다.

"나는 변화의 길을 택했다. 마흔 살의 나이에 평생 일했던 음악계를 떠났고, 대학원 과정에 등록해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해양생물음향학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의 소리를 찾으려고 음악의 세계를 떠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진정한 음악을 발견했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아래 사이트를 방문했다. 진정한 소리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닌 크라우스가 수집한 소리의 일부를 공개해 놓은 웹사이트다.



이 서평 에세이를 읽기 전에 먼저 이 사이트를 방문해서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가능하다면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 보면 좋겠다.

나도 눈을 감고 그가 그곳에 올려놓은 소리를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어느 동물의 울음소리인지 어느 자연현상이 일으킨 소리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조화로운 하모니를 눈치 챌 수는 있었다.

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다 듣고 눈을 떴지만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았다.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소리의 압도감 때문에 책을 펼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계속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을 경험했다.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소리를 상상할 수 있었고, 글 내용과 연결되면서 책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소리 속에 우리가 살고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야생의 서식지의 소리풍경을 유심히 들어보면 세 가지 기본적인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1)비생물적 자연의 소리, (2)인간과 사육 동물을 제외한 생물의 소리, (3)여기에 침입하고 가끔 섞여들기도 하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 이것을 차례로 지구음, 생물음, 인간음이라고 한다. 21세기에 접어들었어도 생물음향학 분야는 여전히 개별적인 생물의 소리만 연구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총체적인 음향을 보다 자세히 듣고 연구함으로써 생물군계 전체의 건강을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모은 자료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집단의 목소리에는 다양한 층위의 중요성을 가진 소리들이 서로 얽혀 있다."

크라우스는 소리를 개별적으로 또 분석적으로 수집하는 작업에 의문을 제기한다. 때로는 조화롭게 때로는 파괴된 생태계를 나타내듯 부자연스럽게 들려오는 한 집단의 총체적인 소리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의 소리와 동물의 소리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전체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이 움직이는 소리를 녹음하는 것도 짜릿한 일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소리에는 실제로는 녹음할 수 없는 소리가 있다. 바로 바람 소리다. 바람 자체를 녹음할 수는 없다. 바람이 일으킨 효과를 포착할 뿐이다.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나 풀잎이 바스락거리고, 호숫가와 강가의 꺾인 가지나 속이 빈 갈대가 부르르 떨리고, 숲의 침엽수 잎들이 찰랑거리는 미묘한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크라우스의 소리 사랑은 소리의 실체가 없는 바람소리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그에게 왜 소리에 집착하는지 물어본다면 실험영화 감독인 내 막내 동생처럼 "아직 탐구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우리의 얼굴에서 알았다는 표정을 확인한 앵거스는 벨트에 찬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고 얕은 개울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갈대를 하나 골라 적절한 길이로 잘랐고, 이어 구멍을 내고 눈금을 새기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짧은 선율을 연주한 다음-몸이 얼어붙는 날씨였지만 우리는 용케 테이프에 녹음했다-우리를 향해 돌아서서 느리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우리가 어디서 음악을 얻었는지 알겠어요. 여러분도 바로 이런 식으로 여러분의 음악을 얻은 거요."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 수업이었다."

음악계를 떠난 크라우스는 자연의 재료로 자연의 소리를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음악의 진정한 바탕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다. 크라우스는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이렇게 써놓았다.

"결국은 이런 생물음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최초로 들었던 음악이다. 이 음악은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무너지기 쉬운 생물계의 한 부분이며, 수많은 목소리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이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생명을 찬양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크라우스의 결론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큰 진정성이 느껴졌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는 결국 소리의 근원에 도달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크라우스가 공개한 사이트로 갔다. 소리를 하나하나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 속의 내용을 생각했다. 진짜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는 만큼 들렸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는 오케스트라 해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치인 나도 소리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탐구하면 소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족 : 내 친구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이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의 93쪽과 94쪽의 첫째와 둘째 줄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 유지태가 '소리풍경'을 담는 음향기사로 나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 <봄날은 간다> 중.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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