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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혼을 허하라!" 국민 투표로 물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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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혼을 허하라!" 국민 투표로 물어 보니… [장석준 칼럼] 시민 청원에 의한 정책 국민 투표를 도입하자
1974년 5월 12일, 이탈리아 사람들은 투표장으로 향했다. 선거는 아니었다. 공직자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아니었다. 정책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묻는 투표였다. 쟁점은 3년 전에 도입된 이혼법이었다.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가 지배하던 이탈리아에서는 그 전까지 이혼이 불법이었다. 그러나 새 법률 덕분에 이혼이 자유로워졌다. 일부 가톨릭 세력은 이러한 변화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간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헌법 조항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정책 국민 투표였다.

이탈리아 헌법은 일정 수(5개 광역자치단체에 걸쳐 50만 명 이상)의 시민으로부터 서명을 받기만 하면 누구나 정책 국민 투표를 청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사실 헌법 제정 이후 27년 동안이나 사문화돼 있던 권리였다. 한데 가톨릭 보수파가 이것을 먼지 속에서 끄집어낸 것이다. 이들은 50만이 넘는 서명을 모아 이혼법 폐지에 대해 찬반을 묻는 국민 투표를 밀어붙였다.

이탈리아 사회는 단번에 이혼법 폐지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으로 나뉘었다. 일본 자유민주당처럼 냉전기에 이탈리아의 만년 집권당이던 기독교민주당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을 계승한 극우 세력이 '폐지 찬성'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에 맞서 사회당, 공산당 등 좌파는 '폐지 반대'를 주장했다.

실은 원내 거대 정당인 이들 정당보다는 신생 소수 정당인 급진당, 1960년대에 등장한 신좌파 세력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운동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폐지 반대' 운동에 나섰다. 정책 국민 투표가 가톨릭 보수파에게 연단을 제공한 것처럼, 이는 원외의 사회운동들에게도 활기찬 무대를 열어 주었다.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폐지 찬성' 진영이 승리하리라는 것이었다. 수도 한복판에 교황청이 있는 나라에서 오랜 가톨릭 문화를 뒤집는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우선 예상 외로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참가율이 87.7%나 되었다. 그 중에서 59.3%가 '폐지 반대'에 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이혼법은 계속 유지됐다. 이탈리아 사회의 세속화와 현대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파 기독교민주당의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 모든 게 정책 국민 투표 덕분에 더욱 분명해졌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시민 청원으로 정책 국민 투표가 여러 차례 실시됐다. 1981년에는 가톨릭 보수파가 나서서 '낙태 불법화'를 국민 투표에 부쳤지만 79.4% 투표율에 68.0%의 '반대'(6년 전의 '이혼법 폐지 반대'보다 더 많은)로 부결됐다.

1987년에는 '핵발전소 폐지'가 70% 이상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음이 국민 투표로 확인됐다. 이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1년 뒤 이탈리아 정부는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에 착수했다. 2011년에도 핵발전소를 '계속 금지'한다는 방침이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지지(54.9% 투표율에 94.05%의 찬성)로 통과됐다. 한국 사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핵발전소 문제를 이탈리아에서는 시민 참여로 깔끔히 정리한 것이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스위스에서 고소득자 소득 상한제나 기본 소득제를 국민 투표에 부치면서 정책 국민 투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스위스도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시민 청원으로 정책 국민 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 100일 안에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모으면 어떤 의제에 대해서든 국민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민주당 청년 조직의 발의로 전 국민이 소득 상한제에 대해 토론하고 찬반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비록 이 제안 자체는 채택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민 청원 방식은 아니더라도, 다른 많은 나라들이 국민 투표로 주요 정책을 결정하곤 한다. 가령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슬란드는 그리스처럼 빚 갚는 데 나라 살림을 거덜 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채권국들의 요구를 수용할지 말지를 국민 투표로 결정하려다가 강대국들의 압력으로 포기해버린 그리스와는 달리,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외채 협상 결과를 국민 투표에 부쳤다. 그것도 두 차례나 말이다. 결과는 두 번 다 부결이었다. 이렇게 채권국들의 요구에서 빠져나온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지금껏 경제 붕괴를 면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정책 국민 투표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 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때 반대 진영 일각에서는 국민 투표로 결정하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고위 관료들만의 판단으로 한미 FTA를 밀어 붙였다. '민주' 정부조차 그러했다.

게다가 한미 FTA 반대 진영이 모두 다 국민 투표에 동의한 것도 아니었다. 정책 국민 투표 자체를 마뜩치 않아 하는 시각도 상당수 존재했다. 특히 정책 국민 투표가 정당 정치의 발전과 상반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책 국민 투표를 실시하는 이탈리아나 스위스가 한국보다 정당 정치가 덜 발전했다는 말인가?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정책 국민 투표와 정당 정치는 서로 시너지 관계일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책 국민 투표는 단지 특정 정책에 대해 표를 던지는 행위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수많은 대중이 자의반 타의반 토론과 논쟁에 뛰어들게 된다. 거대한 '국민적' 토론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 한다.

따라서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투표는 각 정당이 제시하는 이념과 정책이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활기 있고 진지하게 토론될 기회가 된다. 과거 이탈리아 좌파와 사회운동 세력은 이런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고, 요즘의 스위스 사회민주당도 그렇다. 즉, 정책 국민 투표는 정당 정치가 직접 참여 민주주의와 접속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21세기 상황에서 정당 정치가 새롭게 발전할 토대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근대 정당의 원형은 프랑스 대혁명 무렵의 민중협회들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들 민중협회는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자신의 임무로 표방했다. "첫째 만들고 있는 법에 대한 토의, 둘째 이미 만들어진 법에 대한 상호 계몽, 셋째 모든 공공 관리들에 대한 감시". 무엇보다도 민중의 "토의"와 "상호 계몽"을 핵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현대 정당들은 다시 이 본연의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정책 국민 투표는 그 귀환의 소중한 통로 중 하나다.

그래서 주장한다. 이탈리아나 스위스 방식의 정책 국민 투표를 도입하자. 시민 누구나 동료 시민들의 뜻을 모아 국민 투표를 제기할 수 있게 하자. 이것은 권력 구조 논의, 즉 대통령제/내각제 논란과는 별개의 과제다.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대중적 성숙이라는 측면에서는, 어쩌면 이런 논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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