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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냐, 과몰입이냐?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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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냐, 과몰입이냐?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안종주의 '건강 사회'] 중독관리예방법의 실효성을 따지자
중독은 그 어떤 것이든 나쁘다. 모든 중독은 비정상이다. 모든 중독은 질병이다. 중금속 중독이든, 약물 중독이든, 게임 중독이든, 인터넷 중독이든, 섹스 중독이든, 도박 중독이든, 담배 중독이든, 알코올 중독이든, 심지어는 일 중독이든. 그리고 거의 모든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광(狂)이라는 말보다는 애(愛)를 좋아한다. 술이나 게임에 미친 것이 아니라 즐기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자신에게 심각한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반발한다. 중독을 유발하는 게임이나 술․담배 따위를 만들어 팔거나 이런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는 사람(기업 또는 기관)은 자신들이 사람들을 중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당연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담배회사, 게임회사, 술회사들은 결코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를 창출하고, 경제에 도움을 주고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여가를 즐기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중독 산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만약 국가나 사회가 이를 규제하고 제재를 가할 경우 반드시 저항한다.

지인인 산업보건 전공 어느 대학 교수와의 일화이다. "길거리 흡연은 불특정 다수에게 간접흡연을 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암 등에 걸리게 하여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기 때문에 강력 금지해야 한다."는 나의 말에 흡연자인 그는 "그런 논리라면 자동차도 발암물질을 내뿜으므로 거리를 달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흡연자는 언제 어디서고 담배를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흡연 공간이 줄어들자 이처럼 엉뚱한 논리를 내세워 자기변명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게임 중독자들의 방어심리를 잘 보여주는 주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며칠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뒤져보았다. 이런 말이 눈에 띄었다.

"게임이 어떻게 중독이겠어. 게임이 중독이면 우리는 쌀 중독이야? 쌀 못 끊으면 쌀 중독? 안 그래? 그러니까 공부시키고 일 시키고 싶은데 게임만 하니까 게임 못하게 하려고 게임중독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지." "중독은 무조건 나쁜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게임에 중독되어도 자신이 행복하다면 나쁜 게 아니지 않을까?"

ⓒthisisgame.com

게임산업, 창조경제인가 중독인가

지금 게임 업체 지지자와 중독 전문가들은 국회에 제출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일명 게임중독법)'을 놓고 1년 가까이 치열한 찬반 공방을 벌이고 있다. 찬성 쪽은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반대쪽은 게임 중독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과도한 사용 또는 과도한 몰입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들은 청소년과 시민의 건강보다는 게임 산업이 지닌 경제, 산업, 문화의 중요성 측면을 부각한다. 심지어는 박근혜 대통령의 브랜드인 창조경제란 말까지 끌어들여 게임 산업은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대표적인 창조경제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술이나 마약, 담배 등과 같은 물질의 중독만을 얘기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특정 행동'에도 중독될 수 있으며 이런 중독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고 본다. 행위 중독의 오랜 예는 도박이다. 하지만 TV,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 기술 등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기술 행위 중독이 새로운 중독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 '게임 중독' '인터넷 쇼핑 중독' 등이 행위 중독의 대표적인 예다.

'게임중독법' 반대자들은 게임을 하는 것은 개인이고 개인에게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많은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도박이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마약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술 마시고, 마약하고 담배 피우는 것도 개인에게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법률로 규제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중독자들을 국가가 관리하고 예방․치료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지난 17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공청회에서 잘 드러났다. 이 공청회에서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는 "게임은 창의적 문화 콘텐츠이지 중독 물질이나 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행 중독법 발의안은 인터넷 게임뿐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까지도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모바일, TV, 위성채널 등 문화 콘텐츠 모두가 중독물질로 포함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했다. 방송 일일 드라마에 대해서도 법이 중독 물질(행위)로 규정할 위험성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며 억측이 아닐까.

행위중독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마저 파괴

게임, 인터넷, 도박, 쇼핑, 성 행위의 과도한 반복은 물질 중독과 마찬가지로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가야만 만족하는 내성이 있고 끊으면 불안, 초조 등 다양한 금단 현상이 생긴다. 이는 이미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들 행위에 한 번 중독되면 언제든지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강박적으로 사용하거나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게임 등에 중독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갖거나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직업을 유지하거나 사회활동에도 큰 장애를 보인다. 약물이나 알코올이 아닌 특정 행위에 대한 반복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행위 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라고 부른다.

아직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게임 중독이 되면 충동성 또는 공격성이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또 게임에 중독돼 몰두하게 되면 이해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 부위의 부피가 줄어든다. 다시 말해 머리가 나빠진다. 곧, 뇌를 포함해 성장이 정상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청소년 시기에 게임이나 '야동' 등에 빠져 뇌의 특정 구조에 과부하가 걸려서 결국 균형 잡힌 뇌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게임 산업을 단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게임 스토리에 창의성이 필요한 문화 콘텐츠이며 창조경제의 한 부분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고이다. 게임은 개인과 가정,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넘어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산업이기도 하다. 게임중독법은 그동안 게임 산업의 활성화와 중요성을 강조해온 우리 사회에 균형을 잡아 개인과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면,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공동체라면 이 법안 발의와 제정을 둘러싸고 이루어져야 할 논쟁은 '중독이냐? 과몰입이냐?'와 '중독 산업이냐? 창조 문화 산업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다. 게임 중독을 비롯한 중독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중독관리예방법 제정이 여기에 도움을 주는 방편이 될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부를 수 있다.

게임중독을 과몰입 등의 말로 에두르지 않고 중독으로 정확하게 부르는 사회, 알코올 중독자를 술꾼이나 애주가로 에두르지 않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게임업자나 게임 산업 관련 콘텐츠 전문가가 게임 산업만 생각하지 않고 게임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독자들과 가족들을 배려하는 사고를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라도 건져내려는 사회야말로 건강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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