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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보다 못한 한국, 베이비박스가 선진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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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보다 못한 한국, 베이비박스가 선진 시스템? [기고] 베이비박스 찬반논란, 대안은 없나? (하)
선진국들에도 다 베이비박스가 있다, 그래서 우리도?

베이비박스의 존치와 전국적인 확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선진국들에도 다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도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선진국이 하니 우리도 하자? 조금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아기피난처제도는 세이프 해이븐법(Safe Haven Law)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병의원에 설치되어 있는 아기피난처 시스템이다. 아이를 익명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곳이다. 중요한 점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법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로 아기피난처가 설치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세이브 해이븐법은 입양기관인 도날드슨 아답션 인스티튜트(The Donaldson Adoption Institute)가 법안을 마련하고, 프로 라이프 운동이 뒷바라지해서 마련된 법이었다.  결국 입양 친화적인 운동의 품에서 출현한 시스템이자 아동살해 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정치한 학문적 연구가 결핍된 채로 설립된 제도라는 이유로 미국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제도이다. 

베이비박스의 설치가 아동살해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응조치인지의 여부를 논외로 하고도, 선진국들 중 아동복지 분야에서 가장 후진적인 미국의 경우에도 먼저 법을 만들고 나서 아기피난처를 설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근거도 없이 한 사사로운 개인이 어느 날 느닷없이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동의 생명과 인권에 관한 책무는 국가에 있다. 다른 말로 하자만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민권적 사안이다. 실제로 관악구 신림동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이종락 목사가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만큼 그 담벼락 상자에 아이들이 들어 온 것은 아니었다. 그가 믿는 대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동을 살해의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면, 이 사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의 기회 혹은 대안 모색의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정부와의 협의 혹은 시민사회와의 협의를 통한 법제화 혹은 대안모색에 실질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의 경우 100여 개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한 곳의 베이비박스에 1년 동안 200명이 넘는 아동이 유기되는 엽기적인 상황과는 매우 양상이 다르다. 병원에 설치된 상담실의 틀 안에서 이 제도가 운영되도록 법제화 됐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의 정보를 병원이 파악해서 청소년국에 보고하고, 아이가 16세가 되면 그 친모를 만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아동이 출생의 진실성을 알권리와 친모를 접견할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만약 친모가 아동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이를 친모의 자의적 결정에 맡겨 두지 않고 법원의 판사가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살펴서 허용하도록 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아동의 친생부모에 대한 접견권리를 최대한 보장한 조치이다. 지금 관악구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는 사실상 아동의 익명유기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선진국이 하고 있는 것과는 사실상 다르다.

네델란드의 경우에도 베이비박스 설치 논란이 있었지만,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는 대신 베이비하우스 제도를 설립했다. 아이를 박스에 유기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합의해서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하우스는 국가가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양육을 부탁하고 떠나게 하는 형식이다. 

베이비박스도 없을 뿐 아니라, 아동이 친생모부와 함께 살아야 하고, 분리되는 일을 최대한 예방해야 하며, 설사 분리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 내부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정교하게 그 정책과 사업을 수행하는 나라가 선진국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르완다가 바로 그런 나라다. 내전으로 폐허가 되고 경제력이 매우 낮은 수준인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국가들의 입양아동 모집사업가들이 아동을 르완다의 국경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백인 가정으로의 입양 중개가 빈번히 시도되는 나라다. 그러나 르완다 정부의 공무원들은 자국 아동이 친생부모의 품과 아동의 출생의 사회문화적 환경 내부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친생가족과 아동인권의 원칙에 따라 일해 왔고, 결국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여라 나라들 중에서 국외입양이 가장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르완다야말로 선진국이다.

아동권리 분야에서 우리나라도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세이브 더 칠더른(Save the Children)의 창시자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이 1923년 아동권리에 대한 제네바 선언을 초안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그 당시 청년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공약 3장을 발표하고 아동권리 운동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벌인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동권리운동을 치열하게 펼친 것은 그가 ‘인내천’을 그 큰 가르침으로 하는 동학사상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90년 전의 우리나라는 아동권리분야에서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었고 그런 점에서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보고 따라오게 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동권리에 관한 이와 같은 소중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25의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특히 아동양육의 측면에서 선진국이 하자고 하는 것을 따라하다가 크게 낭패를 본 나라이다. 재난 상황에서의 긴급구호의 한 방편일 뿐이었던 해외입양을 항구적 시스템으로 강고하게 구축해버리고만 것이다. 중진국에 진입해서 한창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던 1986년 한 해 동안 해외입양 보낸 아동의 총수가 8837명에 달했다. 이는 6·25 후 10년 동안 해외입양 보낸 아동 총합 4451명의 두 배에 해당한다. 나라 경제가 전쟁 폐허에 있을 때보다 엄청나게 경제가 좋았던 시절에 사실상 20배가 넘는 아동을 해외로 보냈다는 것은 결국 긴급구호의 한 방편이었던 해외입양이 우리사회의 항구적인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말이다. 긴급구호의 방편으로 등장한 베이비박스가 항구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경우 마찬가지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진국에 있으니 우리도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소위 선진국들이 비록 베이비박스를 불가피하게 허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익명출산제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는 그 기반이 전적으로 다르다. 이들 국가는 아동이 출생하는 즉시 국가의 공부에 기록하는 자동출생등록제를 기반으로 해서 아동의 인권이 근원적으로 보장된다. 또 양육의 위기에 내어 몰린 여성들을 위한 총체적인 지원체계가 먼저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부모의 자의에 의한 출생신고제를 유지하고 있고 아동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의 그물망이 느슨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베이비박스와 같은 예외를 미담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허용하고 전국적으로 설치한다면, 결국 아동인권은 물론 모성권을 근본적으로 허무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땅 아동양육정책 부재의 틈새에서 활보하는 아나키스트들

베이비박스를 폐기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이 땅의 모성들이 겪고 있는 비상한 양육위기 그 자체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의 제안은 ‘임신·출산·수유 여성 긴급 위기지원 센터’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서 조속히 설립하는 것이다. 10대 미혼모이든, 결혼 중에 있는 두 남녀 사이에 일어난 혼외임신이든, 말하기가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강간에 의한 임신이든, 이 땅에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혹은 불법체류자의 임신이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이 임신과 출산과 수유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고 긴급한 지원이 필요할 경우,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위한 안전한 자리를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이를 근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 제도 안에서 여성의 건강과 정신적 안정은 물론 신원 정보에 대한 근본적인 보호체계를 갖추자는 얘기다. 베이비박스와 같이 근본적으로 아동과 모성을 결별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동과 모성이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게 이 시기의 위기를 이겨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재생산체계의 가장 연약한 고리를 온전하게 보듬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병들고 고장이 난, 그래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재생산체계를 치유하고 정상화의 길목으로 되돌려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우리나라가 이미 거의 30년 전에 가입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의 임신·출산·수유 여성에 대한 국가의 보호 책무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와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선의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마음대로 베이비박스를 열 수 있는 나라, 사실상 무정부 상황이 아닌가?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면 며칠 안에 시립 혹은 사립 아동보육원으로 옮겨진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비참은 언론에 등장하여 드라마를 만들고, 후원금이 쇄도한다. 이종락 목사는 이제 강북에 위치한 일산으로 이주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가 늘 꿈꾸어 왔던 무장애의 집과 교회를 건축하고 강북 어느 한 곳에서도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겠다고 하고 있다. 

여성과 아동의 복리권과 시민권에 대해서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이 무정부적 공간에서 선의로 가득해 스스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성찰이 불가능한 아나키스트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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