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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여주는 투명한 '포르노사회',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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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여주는 투명한 '포르노사회', 자유로운가? 철학자 한병철의 신간 <투명사회> 기자 간담회
시작은 대통령의 사임이었다. 2012년 2월 특혜 스캔들에 휘말려 결국 사임하게 된 독일의 크리스티안 볼프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모든 것을 밝히고 투명해지겠다, 잃었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그의 발언으로부터 '투명사회'에 대한 단초를 잡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의 한 주간지에 '투명한 사회'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투명해짐으로써 신임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신사회에 살기 때문에 투명함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즉 투명이 신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불신으로 인해 투명함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는 의미였다.

3월 11일 광화문 인근의 일식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병철은 저서 <투명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 좋아진 현대에 이르러, 오히려 신뢰의 의미가 점점 사라진다고 했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요 하에, 모든 것이 전면적으로 합일되고 평준화되며 획일화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권자와 정치인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한병철은 현대의 유권자가 소비자와 다름 없다고 보았다. 정치나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크지 않은 유권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 때문에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소비자처럼 정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는 독일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 '납품'을 소개했다. 정치인의 선거 공약을 실현하는 것을 '납품'이라고 하는데,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납품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한병철은 투명함의 소비 논리가 창궐하는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

▲ <투명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그의 문제의식은, 소비자-유권자가 요구하는 투명함이란 "내가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기 위해 그에 대한 투명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를 추문으로 몰아가는 스캔들"에 한정된 투명함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유권자는 관객이나 구경꾼의 입장에 서게 된다. "관객의 민주주의, 구경꾼의 민주주의에서 투명함에 대한 요구가 증대한다." 투명함은 곧 '보여준다'는 뜻이다. 유권자는 정치인을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스캔들을 일으키는 개인으로 노출시킨 다음 그 전 과정을 투명하게 보겠노라 요구한다. 한병철은 이 요구가 사실상 정치성을 띠지 않는다는 데에 주목했다.

두 번째로 한병철이 주목했던 정치적 사건은 NSA였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개인정보수집 활동을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사건을 지켜보면서, 한병철은 <슈피겔> 지에 "우리 사회가 디지털 파놉티콘, 통제사회가 되었다"고 썼다. 진짜 효율적인 통제사회는, 개인이 자기노출을 통해 내 정보를 스스로 타인에게 알리는 사회다. 그는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이나 SNS가 일종의 또 다른 고문 기계이자 고해성사 의자처럼 되었다고 본다.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고백하는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통제를 가능케 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자유주의 체제 하 권력은 매우 스마트해졌다. "나한테 강요하는 권력이 아니라 유혹하는 권력이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유혹하는 권력, 내가 물건을 사고 내가 알아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도록 지배되는 상태. 즉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상태에서 지배받는다. 이 보이지 않는 권력은 매우 효율적이다. 권력이 없는 게 아니다. 권력이 보이지 않아야 지배하는 것이 용이해지기 때문에, 권력이 유혹으로 바뀐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며 자기착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효율성이 극대화된 지배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달라"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토론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 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유의 공간이 좁아지고, 정치는 호흡이 짧아진다. 투명성에는 시간의 차원이 있다. 투명성은 현재 지향적이다.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행위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장기적인 비전이 불가능해진다. 즉각 모두에게 보여 달라는 요구 때문에, 고요한 사유를 할 수 없고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 시스템이 현재에 고정되어버린다. 그렇게 시스템은 안정된다.

그 다음 한병철은 투명함의 요구 때문에 '매끈해진'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언급했다. "평준화되고 획일화되면서, 구멍이 없어지고 매끈해진다." 그는 독일의 해적당을 예로 들며 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가 '투명'이라고, 이외의 다른 말을 금지하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명이 독재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그는 한국의 블랙박스 제품 중 '다본다'라는 제품명을 언급하며, 만약 우리가 다 볼 수 있는 사회에 산다면 그게 천국일지 혹은 지옥일지를 반문했다. "안 보이니까 사랑하고 욕망하고 꿈을 꿀 수 있는 것 아닌가. 다 보이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다 볼 수 있다'는 구글 글라스는 세계를 정보화하는 장치인데, 과연 모든 사물이 정보가 될 수 있냐고도 질문했다. 결과적으로 정보로 변환될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면서, 정보의 독재화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런 사회는 '포르노사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병철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의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가 정부와 불륜을 즐기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마차가 하루 종일, 마부가 지칠 때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기록할 뿐이다. <마담 보바리>는 지나친 외설성 때문에 혹독한 비판을 받았는데, 많이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에로틱한 긴장을 더 높인 것이다.

▲ <피로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자유를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정보를 많이 노출시킴으로써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현대 사회야말로 투명한 포르노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투명사회>는 독일에서 2012년 발간되었을 당시, 그동안 긍정적으로만 여겨졌던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을 지적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피로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로 한국사회에서도 대단한 호응과 후속 논쟁을 불러왔던 한병철의 <투명사회>는 독일과는 또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또 다른 토론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병철은 <투명사회> 한국 출간에 맞춰 내한했다. 3월 11일 광화문 인근의 일식 식당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의 일문일답 전문을 소개한다.

-<투명사회>의 한국어판 서문에 따르면, 당신은 칼 슈미트의 말을 인용하며 "오직 극장지배로서의 정치만이 비밀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때 정치적 행위는 단순한 연출로 전락한다....비밀의 종언은 정치의 종언일 것이다. 슈미트는 더 많은 '비밀에의 용기'를 정치에 요구한다"라고 했다. 아마 이 부분이 가까운 과거에 독재를 경험했던 한국사회에서는 남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담합과 밀실정치로서 자신들 정파의 이득만을 추구했던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때문에 투명함을 요구하는 현재의 경향은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빌리 브란트 같은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이 존재할 당시에는 투명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신임이 없는 사회에서만 유독 투명성이 요구된다. 불신이 투명에 대한 요구의 전제 조건이라고 나는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한국은 정치 영역을 떠나 전방위적으로 불신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그건 신자유주의 체제가 모든 사람을 경쟁 구도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연대를 통해 함께 생산하지 않고, 경쟁 구도 속에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경영하며 타인을 불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투명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의사에게도. 독일에선 예전에 의사가 흰 옷을 입은 신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에게 어떻게 투명함을 요구할 수 있었겠나.

두 번째, 권력 구조가 달라졌다. 내가 노예고 상대방이 주인인 경우에는 노예가 주인에게 투명함을 요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권력의 비대칭적 구조가 허물어지고 시민 유권자의 권력이 높아졌다. 위계질서가 없어진 상황에서 투명함에 대한 욕구가 점점 상승하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투명함을 요구한다는 말도 맞지만, 내가 얘기하는 바를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보아주었으면 한다.

-디지털 매체가 자유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건 디지털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건가.

=소셜 미디어는 모든 사람이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는 자유를 뜻했다. 하지만 그 자유는 통제로 넘어가는 변증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착취로 귀결되면서 자유는 강박이 된다. <투명사회>의 마지막 문장은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이다.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은 그 안에 갇힌 사람이 말을 못하게 막는 체제였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서로 대화를 하도록 허용한다. 그래야만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니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통제를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에 존재하는 빅 브라더는, 아래쪽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볼 수 있지만 뭘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생각을 너무 잘 안다. 자유의 변증법이다.

▲ 철학자 한병철. ⓒ프레시안(김용언)
-<피로사회>에서 대중이 착취의 주체이자 대상이라고 했는데, <투명사회>에서도 역시 대중이 통제의 주체이자 피해자일 수 있다는 뜻인가.

=내가 통제자이면서 통제를 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주인과 노예 역할을 동시에 한다. 아도르노가 그런 말을 했는데, 이성을 강조하는 대화가 결국 야만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변증법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정부에서 앞장서서 정보를 대중들에게 공개한다. 공공데이터나 회의록도 전문 공개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정보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안 보여주는 게 맞다. 'snowing'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정보를 너무 많이 눈처럼 뿌리는 것이다.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해석이 안 되고, 결과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자기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 투명함을 이용한다. 그것 역시 변증법적이다.

-'아랍의 봄'이 스마트폰 덕분이라고도 많이들 얘기하는데.

=과장된 면이 많다고 본다. 나도 대학생 시절 데모를 열심히 했지만, 그땐 스마트폰이 필요 없었다. 게다가 한국이나 미국, 독일 등은 긍정의 사회다. 독재자가 통제하는 아랍 사회의 부정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쪽은 보이는 통제가 이뤄지고, 한국이나 미국, 독일은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정말 정치나 혁명에 필요한 수단이었냐고 한다면…아마 그게 없었더라도 아랍의 봄은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투명사회>는 세상에 대한 해석을 하는 책인데, 대안이라 할 만한 건 '노예로 살지 말고 변증법적으로 봐라' 뿐인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보는 상태 자체가 자유에 대한 조건임을 말하고 싶다. 해결책을 너무 금방 제시하면 거짓말인 것 같다. 나로서는 일단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한번 말을 하지 말아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침묵과 조용함의 공간에서라야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 역시 해방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본과 경제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인 규제 방식이다. 예전의 규제사회에선 말을 하는 게 저항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게 저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상태에 따라 저항의 유형이 달라진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순 없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암시를 줄 순 있겠지.

-<투명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권력이 정치적 권력인지 경제적 권력인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 궁금하다.

=현재 유럽에는 정치적 권력이라 할 만한 게 없다. 경제적 권력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땐 전체적인 시스템을 놓고 봐야 한다.

-<투명사회>에 대해 독일에서도 찬반논쟁이 거셌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반응들이었는지 소개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 준비하는 저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나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신문 기자처럼 글을 많이 쓴다. 그러다보니 반응도 굉장히 다양하게 많이 접한다. 이메일도 자주 오고, 다른 신문에서도 내가 쓴 글에 대한 비평을 싣는다. 나를 두고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 '걱정상자(Kummerkasten)의 철학자'라던가, '항상 기분이 안 좋은 철학자'라고도 부른다.(웃음) 그런 반응들까지 다 읽은 다음 또 반론을 쓰는 과정을 좋아한다. 공항에 가면 가판대에 엄청나게 많은 신문들이 쌓여있는데, 그 신문들만 봐도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다음 학기에 '아름다움'에 대해 강의한다. 그 주제로 책도 쓰려고 하는데, 칸트의 미학 등을 다루는 게 아니라 현재적인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을 다룬다. 1장의 제목이 '매끄러운 것'이다. 아이폰은 왜 매끄러운가, 제프 쿤의 미술은 왜 매끄러운가. 요즘 독일에선 매끈한 피부를 위해 털을 제거하는 게 유행이다. 매끄러운 건 왜 그토록 유혹적인가.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미에 대한 감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등을 다루고 토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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