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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브랜드, 얼마짜리인가에 아이는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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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느 브랜드, 얼마짜리인가에 아이는 뒷전? [민들레 교육 칼럼] 육아 특집 ① 상품화된 육아, 도시에서 아이 키우기

소비의 유혹과 부모의 사랑이 만나 '육아'는 점점 시장의 영역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마저 상품화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난감하고도 용감한 부모들과 만나 수다를 떨며 함께 길을 찾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함께한 사람

△ 크렉 : 출산 전까지 <민들레> 읽기모임을 하던 19개월 아기 엄마
△ 하르딘 : 다섯 살 딸아이와 숲에서 뛰어노는 엄마
△ 김산 : 육아보다 일이 편해 6개월 만에 직장으로 돌아간 아빠
복태 : 음악과 함께 세 살, 3개월 된 남매를 키우는 엄마
티나 : 효자인 듯한 17개월 아들을 키우는 엄마
제비꽃 : 초등 대안학교 다니는 열한 살 딸아이 엄마
△ 짱 :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처자

#1.

크렉 : 제가 처음 임신하고 제일 먼저 샀던 게 '출산품 리스트'였어요. 아휴, 그놈의 출산품 리스트. 첫째이기도 하고 주변에 애 낳은 친구가 별로 없어서 리스트에 적힌 건 무조건 다 있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방비 상태여서 그랬다 싶어요. 100일 동안 인터넷 뒤지느라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티나 : 육아용품 사러 가면 가게에서도 리스트를 보여주면서 이런 건 준비했는지 계속 물어봐요. 나중에 보니 욕조도 큰 대야 한두 개만 있으면 되고, 이불도 큰 수건이나 천기저귀로 덮어주면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 샀더라고요. 나중에야 당한 기분이 들었어요.

크렉 : 근데 그 리스트는 끝이 없어요. 단계별로 개월 수에 따라 계속 있어요. 나중에 (아이) 백일 이후로는 아예 보지 않았어요. 당장 뭘 사야 할 것 같을 때 미루면서 버텨보면 나중에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 알게 되더라고요.

복태 : 무방비 상태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출산, 육아를 처음 하기 때문에 자꾸 인터넷으로 조사하게 되잖아요. 안 해봤으니까 남들 하듯이 안 하면 부족한 것 같고. 다행인지 아닌지 우리 부부는 인터넷이나 육아 서적 이런 걸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우리는 인간이기에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결국 자기중심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우리 삶에 아이를 데려온 거라고 개념을 잡으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것 같아요. 첫째, 둘째 때도 일부러 산후조리원에 안 갔어요. 소비에 휘둘릴까봐. 그리고 특히 우리가 서울에 있는 한, 소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싶어서, 돈을 내지 않고도 아이들과 뛰어놀 수 있는 방법을 도시에서 찾아보려고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비꽃 : 저는 강남에서 애를 낳았는데 주변에는 다 그런 사람들뿐인 거예요. 주변에서 파는 비싼 교구들, 그거 해봤더니 필요 없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말을 들을 텐데, 도시에서는 공동체적인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런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직장 덕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긴 했는데, 강남에서는 그 코스를 밟지 않는 한 이상한 사람 되겠구나 싶었어요.

김산 : 사람은 누구나 공포감이 바닥에 깔려 있는데, 우리 부부는 그런 것이 좀 덜 했던 것 같아요. 날씨 좋을 때 동네 한 바퀴 돌면 동화책 괜찮은 거 많거든요. 그거 주워서 아이들 갖다주고 그래요. 한번은 'why시리즈' 버려진 걸 주워다줬더니, 아이가 참 잘 읽었어요. 나중에 아이가 서점에 다녀오고 나서 그 시리즈가 수십 권이 더 있다는 걸 알고는 사달라고 졸라서 그거 주우려고 열심히 찾아다녔던 적도 있어요.

크렉 : 저는 '아기체육관'도 그놈의 '국민'이 붙어서 정말 모두에게 필요한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두세 달 하니까 그냥 그렇더라고요.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싶어요.

짱 : 특히 우리나라는 교육소비가 대단하죠. 직장에 안 다녀도 아이를 일찍 시설에 맡기는 엄마들 중에는 그냥 데리고 있는 것보다 어디 가서 뭐 하나라도 배우고 자극받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던데요. 거기다가 경기불황을 극복하려고 키즈 마케팅이 성행하기도 하고. 현실은 어떤가요?

김산 : 제가 마케팅 관련 일을 했었는데, 그쪽이 좀 그런 식이거든요. 불황일수록 자기나 자식한테 더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죠. 상황이 어떻든 결론은 '그래서 돈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특히 교육문제는 20, 30년 후를 예상하면 안개처럼 불안하니까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다 시켜보는 거예요. 심지어 줄넘기 학원 같은 것도 있잖아요.

티나 : 물론 사회가 만든 것도 있지만, 저는 스스로 그 상황을 못 견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애를 데리고 혼자 있다보면, 아이는 알아서 노는데 자꾸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엊그제도 아이와 같이 있는 고요한 그 상황을 못 견뎌서 노래를 틀어줬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속에서 살아온 게 몸에 너무 익숙해진 채 애를 키우니까 개인적인 상황과 사회적 환경이 그대로 전달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김산 : 요즘 사회는 '여유로움'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여유로우면 할 일 없고 쓸데없어진 느낌이 들죠. 사실 여유나 여백이 참 중요한데 요즘은 광고에서도 그럴 듯하게 이미지를 꽉 채우고,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데서도 내용을 너무 촘촘하게 쑤셔넣어 느끼고 생각할 틈을 없애버리는 거 같아요. 아이들도 자기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애들도 힘들고 복잡하게 살잖아요. 뭔가에 파묻혀볼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한 시간씩 끊어서 학원 뺑뺑이 돌고 나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거예요. 저는 산수를 배울 때도 아이들이 왜 '1 더하기 1이 2인지' 몇 주 동안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이해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면 학습지나 학원같은 데다 아이를 던질 수가 없어요.

복태 : 아이들도 때로는 지루할 때가 있어야 해요. 저는 주머니는 가볍고 시간은 넉넉해야 창의적인 게 나온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어요. 뿡뿡이에 장난감이 나오는 걸 보고 애가 사달라고 하면, 우린 쓰레기통을 뒤져요. 폐품모아서 모빌 같은 걸 만들어주고 놀다보면 저희 스스로 놀라요. 너무 창의적인 거예요. 무조건 받아주는 것과 부족함 없이 기르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까 떼를 쓰지 않더라고요. '어른들은 몰라요' 그 노래처럼 애들한테 장난감만 사주면 다인가요? 부모가 시간을 안 주면서 대신 돈을 투자하는 거죠. 아이는 장난감이 아니라 놀 대상이 필요한 거 같아요.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2.

짱 : 급격히 산업화되고 새마을운동 하면서 근면, 성실을 미덕으로 삼아온 것도 영향이 있지 싶어요. 가만히 있으면 비생산적이고 게으른 것으로 취급해온 시대적 흐름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제비꽃 : 공부로 입신양명이 가능했던 역사적 경험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성공과 밀착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자식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게 부모의 욕망 대상이 되는 거고, 그런 것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게 '상품화된 교육' 같아요. 대안교육도 또 다른 형태의 치맛바람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죠. 좀더 파고들어 무엇이 우릴 이렇게 만드는지 찾아보고 싶어요.

짱 : 부모들의 비교 심리가 크지 않나요.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서 빠르면 빠른 것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약간 늦는 것 같으면 늦는 거에 대한 불안이 생기고.

티나 : 맞아요. 주변에서 아이를 보고 "너무 늦게 걷는 거 아니야? 너무 체중이 적은 거 아냐?"라고 비교하면서 양육자에 대한 비판 비슷한 얘기를 하면 스트레스 받아요. 계속 뭔가 해줘야 할 것 같고요. '앞으로 몇십 년 걸을 텐데 좀 늦으면 어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하지만, 내심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긴 하죠.

크렉 : 그놈의 '리스트'가 문제예요. 병원에 가면 키를 백분율로 나눠놔서, 우리 애가 상위 몇 퍼센트에 드는 걸 확인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괜히 으쓱해지고 그런 게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이걸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아이에 따라 성장과 발달이 다른데 학년을 나눠놓은 것도 그렇고, 계속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게 너무 마음 아파요.

복태 : 카이스트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변호사 되려다가 그만두고 가난하게 연극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연봉 1억 원이 넘는 친구들이 일 때문에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그러는 걸 보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정말 행복할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할머니들도 "하나만 낳아서 해주고 싶은 거 다 해줘라" 이러시잖아요. 그런 걸 보면 아이는 부모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크렉 : 부모가 불행하니까 "넌 나처럼 살지 마라"라고 하는 거죠. 자기가 행복하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자기가 힘들었던 것이 곧 아이에게 강박에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뭔가 더 하도록 빨리빨리 채찍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잉여의 시간들을 못 견디는 것 아닌가 싶어요.

김산 : 얼마 전에 본 외국영화에서 아이가 사고로 죽었는데, 부모가 슬퍼하면서 "얼마나 소중한 아이였는데" 하는 거예요. 그건 그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를 말하는 거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이한테 끝없이 비교가 되는 형용사를 써요. 비슷한 상황에서 "이 아이가 얼마나 똑똑했는데, 이 아이가 얼마나 착했는데"라며 비교해서 말하죠. 아이를 어떤 대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양육 태도도 다른 것 같아요.

복태 : 부모 자식 사이에는 '거리두기'가 핵심인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아이를 식물 보듯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애가 잣나무면 잣나무 대하듯이 하면 되는데 부모 욕심에 소나무로 키우려고 그러는 거죠. 아이가 무슨 나무인지 잘 관찰해서 부모는 좋은 땅과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도와주는 거 아닐까요. 그러려면 헛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부모가 정말 지혜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짱 : '관찰자'라는 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설정하는 새로운 시점인 것 같아요. 서양의 부모들은 '아이는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고, 우리 역할은 잘키워서 사회에 돌려보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내 새끼, 내 분신 이렇게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그런 관점부터가 분리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3.

제비꽃 : 옛날 전통사회에서는 대가족이고, 자식이 많으니까 집착도 덜했는데 식민지로 인한 단절과 압축된 근대화가 돌연변이 같은 부모들을 생겨나게 한 건 아닐까요. 게다가 아이 한두 명만 낳으면서 더 그렇게 됐다 싶어요. 저만 하더라도 애가 어렸을 때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있어서 꽁꽁 싸매고 키우게 되더라고요. 의식적으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문학 공부를 몇 년간 하다 보니까 아이를 한 인간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한테 한 마디를 하더라도 부모로서 하는 말이냐, 한 인간으로서 하는 말이냐에 따라 뉘앙스나 어휘가 달라지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그런 거리감을 두려고 해요.

하르딘 : 저희 숲모임에서도 보면 아이가 맘껏 뛰어노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유치원엔 보내야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 정도는 배워야지" 같은 얘기를 자꾸 듣다보면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 적응해서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가만 보면 부모들이 아이 진로를 대신 꿈꾸는 것 같아요. 부모가 생각하는 삶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산 : 사실 상품이란 게 편할 때도 있어요. 아주 구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세밀화된 편리함을 주니까요.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잘 선택하면 그 서비스는 정말 유용할 수 있거든요. 문제는 어느 선을 넘어서 물건이나 서비스 자체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브랜드나 가격, 얼마짜리인가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애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거죠. 그 물건에 애를 맞춰가야 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거든요.

하르딘 : 엄마들이 육아를 더 힘들어하는 이유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예측가능하고 성과가 바로 눈에 보이는데 육아는 막연하기도 하고 '평생'이라는 말이 붙잖아요. 마치 그때를 놓치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이런 게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아요. 경제적 여유가 있고 해주고 싶은 게 많다면, 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이 정도 결과는 나와 줘야지 하는 기대는 버려야죠. 책을 사주더라도 안 읽어도 좋아, 그런 마음이어야 서로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산 : 상품을 파는 쪽에선 불안과 공포심을 이용해 극단으로 몰아가서 이윤을 취하려고 하는데, 일단 뭔가 말 많고 설명이 길면 의심해봐야 해요. 진실은 복잡하지 않아요. 이왕이면 혼자 말고 가족과 같이, 지인하고 같이하다보니까 더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너무 무거워하면 무너지니까 가볍게 하는 게 중요해요. 기필코, 반드시, 꼭, 결코 이런 말에 휘둘리지 말고 일단 즐겁게 해야 할 거 같아요.

* 위의 글은 <민들레> 92호 "육아, 시장의 유혹을 넘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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