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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물리학자, '엄마 몰래'…인생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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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물리학자, '엄마 몰래'…인생이 바뀌었다! [이명현의 '사이홀릭']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나는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딱히 기억나는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학교에서 읽으라고 시키는 위인전을 읽으면서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 불편했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을 지나고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기까지 내가 읽지 않는 책 분류의 맨 처음은 늘 위인전이었다. 아마 너무 작위적이고 억지 교훈을 강요하는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이들도 위인전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내가 자발적으로 위인전을 권하거나 책을 사주지 않는 선에서 소극적인 사보타지를 해왔다. 얼마 전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인전이 화제에 올랐다. 딸아이도 위인전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내용이 많아서라고 했다. '고리타분하다'는 단어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위인전의 내용이 그런 식이서 싫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위인전에 대한 내 편견은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는 것도 방해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래도 꽤 많은 책들을 읽어왔다. 그 중 내가 읽은 자서전이나 평전은 정말이지 특별하다고 할 정도의 숫자여서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감동적인 자서전과 평전도 있었지만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것들도 있었다. 한때 의무감과 호기심으로 몇몇 잘 알려진 자서전과 평전을 읽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서전과 평전은 내게는 암흑의 존재였다. 내 독서 편력의 편향성이 제일 큰 원인이겠지만 위인전이 갖고 있는 반동적이고 반역사적인 단면도 원죄 중 하나일 것이다.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는 도서평론가 한 분이 과학자들의 자서전을 읽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쓴 서평도 몇 편 읽어봤다.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자서전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어떤 사람을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은밀한 시공간이 바로 자서전이 아니었던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뿐 선뜻 자서전이나 평전에 몰입하지는 못했다. 내가 하고 다니는 작업으로 미루어봐서 마땅히 읽어야 했을 과학자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야기하는 어떤 과학자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공감하고 내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는지 반추해 보게 되었다. 조금씩 과학자들의 자서전과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언급하고 다니는 과학자들의 자서전과 평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자서전과 평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형편이 되었다. 가능하면 자서전부터 읽으려고 하고 있다. 먼저 당사자의 진술을 듣고 다른 사람의 평을 듣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모든 자서전은 미완성이다. 자서전을 쓰던 순간 그 사람은 살아있을 것이므로 그 인생 또한 아직 끝이 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원한 미완성품으로서의 자서전을 사랑한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현재진행형이면서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평가가 없는 주관적인 진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생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변곡점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자신과 자기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이 늘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객관적인 업적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판단은 그 모든 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주관적인 수 있다. 이런 내면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이 바로 자서전이다.

▲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스티븐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 ⓒ까치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스티븐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는 호킹의 짧은 자서전이다. 영문 제목은 "My Brief History"인데 번역본 제목에도 'brief'라는 단어의 뜻이 반영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킹의 자서전은 정말 짧은 자서전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한 서술 역시 간략하고 담백하게 되어있다. 그가 남긴 여러 과학적 업적에 대한 서술도 정말 간략하게 처리되어있다. 호킹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3인칭 시점으로 쓴 픽션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호킹의 인생 전반에 대한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좋은 점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큰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쉬운 점은 그가 인생의 여러 변곡점에서 겪었을 내외적인 파고 높은 격동의 뒷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가 기계의 힘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뇌 속 생각을 표현해 왔다는 한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래도 아쉽다. 제목에 'brief'가 있었으니 호킹이 죽기 전에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이 다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역사학자 한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역사를 되짚어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변곡점을 찾아보는 것이란다. 137억년 역사를 갖는 우리 우주의 가장 큰 변곡점은 무엇일까?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정하고 그곳을 기점으로 그 전의 역사와 그 후의 역사를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지난 5000년 인류 문명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변곡점만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또한 두세 개의 변곡점을 생각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변곡점들을 기점으로 역사를 다시 기술할 수 있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요즘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빅 히스토리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그 역사학자는 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의 일생을, 몇몇 변곡점을 기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변곡점은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여럿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변곡점과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변곡점은 같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변곡점의 선택에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 방식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인 것 같다. 자서전이 주관적인 어떤 한 개인의 서술이라면 자서전을 읽는 방법론으로 이 방식을 사용해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를 변곡점 찾기의 관점에서 읽어봤다.

이 책에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단 하나의 변곡점을 찾는다면? 둘 또는 세 개의 변곡점을 찾는다면? 물론 이 책을 쓴 호킹의 속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의 의식과 마음상태에 따라서 다른 변곡점을 찾아낼 것이다. 어쩌면 읽을 때마다 그것이 바뀔 수도 있다.

"태엽을 감아야 하는 열차만 해도 나는 감지덕지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은 전기 열차였다. 나는 하이게이트 근처 크라우치 엔드에 진열된 장난감 열차 세트를 몇 시간씩 구경하곤 했다. 꿈에도 전기 열차가 나왔다. 마침내, 부모님이 두 분 다 어디 가고 없을 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체국 은행에서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돈을 몽땅 인출했다. 세례식을 비롯한 특별한 때에 사람들이 내게 준 돈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전기 열차 세트를 샀다."

호킹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어느 순간의 에피소드다. 나는 이 지점을 호킹 인생의 '빅 히스토리'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그의 인생 역정에는 숱한 변곡점들이 있을 것이다. 더 드라마틱하고 중요한 상황들을 몇 차례나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순간을 구태여 선택한 이유는 이 작은 사건을 통해서 호킹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체험했다는 데 있다. 자율적으로 자기 의지에 의해서 욕망에 져버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부모의 동의 없이 투입했던 첫 번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겪으면서 한 인간으로 거듭났고 과학자로서 커갈 수 있는 자질을 발휘했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작지만 다가올 미래의 모든 것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미래 예측 같은 사건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비록 나의 미래에 구름이 드리우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삶을 즐기고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나를 제대로 변화시킨 것은 제인 와일드라는 소녀와의 약혼이었다. 나와 제인이 만난 것은 내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을 즈음이었다. 그녀와의 약혼으로 나는 삶의 목표를 얻었다."

▲ 스티븐 호킹 박사.
호킹의 인생을 두 개의 변곡점으로 나누라고 하면 나는 그 두 번째 변곡점에 호킹이 불치의 병 속에서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보였던 시기를 선택하겠다. 죽음의 순간을 느닷없이 대면하게 되는 경험은 사실 많은 경우 생각보다 좀 싱겁고 관념적일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언제 올 지 모르는 그 죽음을 마냥 기다려야만 한다는 두려움의 엄습에 있다. 호킹이 그 시절을 새로운 삶의 목표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인이라는 사랑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다행스러운 우연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그가 쏟아낸 숱한 과학적 업적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영광스러웠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변곡점을 하나 더 보태라면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을 선택하겠다. 이 책으로서는 끝이지만 호킹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방점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은 그 책을 쓰는 바로 그 시점을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만들면서 미완성인 삶을 보여준다. 나는 그런 미완성성 때문에 자서전이 마음에 든다. 더 많은 자서전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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