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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흘리던 아이, 병원서 검사 중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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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코피 흘리던 아이, 병원서 검사 중 죽었어요" [추적] 9살 예강이 사망, 병원이 거부하면 중재 각하?
코피를 흘리던 예강이는 응급실에서 요추천자(뇌척수액 검사)를 받다가 사망했다. 소아혈액종양과 교수가 협진 의뢰 답변서에 '검사를 미루고 수혈한 뒤 상태를 지켜보라'고 했지만, 이 문서는 이미 예강이가 숨진 뒤 응급실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냈지만, 병원이 조정을 거부해 각하됐다. 편집자

지난 1월 20일 초등학교 3학년생 예강이(9)는 웬일인지 아침에 코피를 흘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강이 엄마인 최윤주(38) 씨는 코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의원에서는 "아이가 크면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두 차례 의원에 갔던 예강이는 점심도 저녁도 잘 먹었다.

하지만 "자고 나면 괜찮다"던 예강이는 23일 아침이 돼도 몸을 늘어뜨리고 자꾸 자려고만 했다. 밤새 뜬눈으로 새운 최 씨는 예강이를 데리고 2차 병원을 거쳐 ㅅ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날 예강이는 세상을 떠났다.

맞벌이하는 부모를 위해 손수 초등학교 5학년인 오빠의 밥을 챙기고, 퇴근한 엄마에게 밥을 차려주는 착한 딸이었다. 병원을 찾기 전날까지만 해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건강한 아이였다. 지난 세 달을 눈물로 보낸 부모는 아이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적혈구 수혈 5분 만에 요추천자 시술 들어갔다 사망

▲ 예강이가 평소에 엄마 최윤주 씨에게 남긴 쪽지. ⓒ최윤주
1월 23일 오전 9시 50분께 ㅅ 대학병원에 도착한 예강이는 빈혈 증세를 보였다. 의사는 오후에 왔다면 위험할 뻔했다고 했다. 오후 12시 35분께 혈소판을 수혈한 뒤 1시 55분께 적혈구를 수혈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적혈구를 수혈한 지 불과 5분 만에 요추천자 시술에 들어갔다.

요추천자란 뇌척수액을 뽑거나 약을 투여하기 위해 환자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무릎까지 구부리게 한 뒤 척추에 주삿바늘을 찌르는 시술이다. 환자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르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최 씨는 "요추천자가 뭔지도 몰랐고, 병원에서 예강이 뇌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전문의가 검사한다기에 서명했다"며 "그렇게 위험한 시술인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오후 2시께 3~5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예강이의 팔다리를 붙잡고 머리와 어깨를 눌렀다. 예강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요추천자 시술은 자꾸만 실패했다. 레지던트 1년 차 의사가 3번 실패한 뒤, 다른 레지던트 1년 차 의사가 2번 실패해 총 5차례 실패했다.
요추천자를 시도한 지 30분이 지나자 예강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병원의 제재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 씨는 "환아 상태가 지금 안 좋아지고 있어요. 멈추라고요?"라는 전화 통화 소리를 들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교수들을 비롯한 의사들이 달려왔다. 2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이 이어졌지만, 예강이는 4시 55분 끝내 숨을 거뒀다. 병원을 찾은 지 7시간 만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중재 신청, 병원이 거부

장례를 치른 이튿날 유가족들은 시술한 의사들과 면담을 요청했다. 법무팀과 원무과 등에서 7명 정도 왔다. "그 방법(요추천자)이 최선이었으며 그게 아니었어도 떠날 아이였다"는 말이 돌아왔다. 유족들은 병원 측이 예강이에게 채취한 '피 섞인 뇌척수액 샘플' 등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에선 "개인에게는 알려줄 수 없으니 소비자원 등 제3기관을 통하라"고 했다.

유족들은 병원의 말을 듣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냈다. 정작 병원 측에서는 "의료진 과실이 없다"며 중재를 거부했다. 지난 4월 1일 병원 측의 거부로 중재 각하를 통보받은 유족들은 낙심했다. 예강이의 이모인 최현주 씨는 "새파랗게 살아있던 애가 죽은 게 실감이 안 난다"며 "그런데 가족들은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예강이. ⓒ최윤주

"응급의학과가 소아혈액종양과에 보냈어야"

사망 당시 예강이의 상태는 어땠을까. 의무기록지를 보면, 응급실을 찾은 1월 23일 오전 10시 38분 예강이의 혈소판 수치는 마이크로리터(㎕)당 9000이었다. 정상적인 수치는 15만~40만이다. 적혈구 용적(12.2%)과 헤모글로빈 수치(데시리터당 4.1그램)도 정상치(각각 40~50%, 14~18g/dL)의 4분의 1밖에 안 됐다.

한 대형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혈소판 수치가 9000이면 뇌출혈도 올 수 있다"며 "그런 아이에게 요추천자 시술을 시급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예강이가 혈액 검사를 한 뒤인 오전 11시 12분에 응급의학과가 소아청소년과에 보낸 협진 의뢰서에 대한 답변서에도 적혀 있다. 이 답변서는 소아청소년과를 거쳐 소아혈액종양과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응급의학과에 답변서를 보낸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환자는 심각한 빈혈 증세를 보이고 있어 혈액 악성 종양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원인을 알려면 골수 검사 등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현재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골수 검사를)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또 "현재 환자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일단 적혈구와 혈소판 수혈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환자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불행히도 이 답변서는 예강이가 숨을 거둔 지 1시간 40여 분 뒤인 오후 6시 36분에야 도착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2시께 이미 시술을 시도하고 심정지가 온 뒤였다.

타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혈액종양과 환자를 본 경험이 거의 없었을 응급의학과는 말 그대로 응급한 상황만 해결하고, 요추천자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환자를 소아혈액종양과에 보내고, 이후 조치는 그 과의 전문가가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또 하더라도 골수천자(골수 검사)를 해야 했는데 환아에게 왜 요추천자(뇌척수액 검사)를 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사망기록지에 적힌 예강이의 공식적인 사인은 저혈량성 쇼크와 상세불명의 출혈이다. 중간 사인은 빈혈과 상세불명의 혈소판 감소증이다. 유족들은 예강이를 부검하지 않았다. 다만 요추천자를 5번 실패한 것을 근거로 예강이에게 쇼크사가 왔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 유족들이 확보한 요추천자 검사 당시 CCTV 화면 갈무리. ⓒ최윤주
▲ 요추천자 시술 후에는 최소 4시간에서 하루 정도 꼼짝하지 못하고 똑바로 누워 있어야 해서 무척 힘들다. ⓒ서울대학교병원

이에 대해 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혈액 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그런 검사를 받다가 간혹 잘못되는 경우가 있어서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아니면 수혈을 한 뒤에 이상 반응이 왔을 수도 있지만, 부검을 하지 않아서 정확한 사인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병원 측 "의료 과실 없어…소송 걸어야 정보 공개"

의료분쟁중재원 조정 신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ㅅ 대학병원 홍보실 관계자는 "우리가 잘못했다면 환자 보호자의 (중재) 요구를 검토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전혀 의료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검사하기 전에 수혈하고 상태를 지켜보자는 소아혈액종양과 교수의 판단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건 그쪽(소아혈액종양과) 의사의 판단일 뿐"이라며 "응급 진료를 했던 의사의 판단이 다른 과와 다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협진을 요청해서 의견을 받은 것이지 꼭 그렇게(소아혈액종양과 판단대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유족들이 요추천자를 지시한 책임자 정보 공개와 뇌척수액 샘플 등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환자 개인에게 줄 수가 없다"며 "정보는 의무기록지에 적혀 있고, (다른 정보는) 수사하거나 소송을 걸어야 (유족에게)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이 거부하면 끝? 반쪽짜리 의료분쟁조정제도

의료 사고 문제를 신속하게 조정한다는 취지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갈 길이 멀다. 병원이 거부하면 중재가 각하되는 '독소조항' 탓이다.

2012년 4월 '의료 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이하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환자단체는 의료 사고를 겪은 환자가 장기간·고비용의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고 환영했다. (☞ 관련 기사 : "<하얀 거탑> 속 의료사고 피해자, 기댈 곳 생겼다", 주사 한번 맞고 죽은 9살 종현이…"의료사고가 남 일?")
그러나 이 법안 제27조는 병원 측이 조정을 거부하면 중재 절차가 각하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정 신청 가운데 60.1%는 병원의 거부로 각하됐다. 예강이 사례도 이 같은 이유로 거절됐다.

해당 조항에 대해 황승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조정위원은 "중재원에 상담하는 환자 중 상당수는 병원이 거부하면 조정이 각하된다는 설명을 듣고 소송 등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 측이 의료인, 법조인 등 전문가로 구성된 감정부로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정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한국소비자원이나 언론중재위원회는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중재가 성립되지만, 유독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에만 피신청인에게 중재 거부권을 부여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병원 측의 동의 없이 의료 분쟁 조정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법'을 발의했으나, 법안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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