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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 고속철 참사, 세월호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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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 고속철 참사, 세월호와 다를 바 없었다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28>근대, 그리고 재앙
지난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사고가 났다. 뒤에서 달리던 열차가 앞의 열차를 추돌한 사고인데, 현대적 신호 시스템이 관리하는 도시철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고였다. 철도 안전은 철도 운행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한두 개가 문제를 일으켜도 방어할 수 있는 중층적 체제로 구축돼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안전망이 모두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상왕십리역 사고는 보여주었다.

철도가 탄생할 무렵부터 최대 과제는 앞뒤로 달리는 열차가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철도는 열차가 출발하면, 일정 시간을 기다린 뒤 열차를 출발시키는 원시적 추돌 방지책을 가졌다.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시차를 두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 가서 앞선 플레이어의 티샷을 기다려야 하는 골프라운딩을 경험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된다. 물론 앞 열차가 정상적으로 달리면 상관없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 격차를 크게 두고 뒤 열차를 출발시키더라도, 앞 열차가 고장이나 선로 이상으로 정차해 있게 되면 추돌을 피할 수 없었다.

1861년 8월 25일 일요일, 런던과 브라이튼을 잇는 철도 노선에 아침부터 승객이 몰렸다. 브라이튼에서 출발한 런던행 열차는 정기 열차 외에 임시열차 2개가 추가돼, 총 3개의 열차가 운행됐다. 규정에 따라 5분 간격으로 출발시켜야 했지만, 정기 열차 출발이 지연돼 3분 간격으로 열차를 출발시켰다. 런던-브라이튼 노선에는 2킬로미터(km) 길이의 클레이튼 터널이 있었다. 이곳에는 모스가 발명한 전신기를 이용한 신호체계가 설치됐다. 증기기관차가 터널에 들어서게 되면 연기가 가득하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긴 터널 구간에 우선하여 전신 신호를 도입한 것이다.

열차가 터널에 진입하면 입구 쪽의 신호초소 감시원은 붉은 기를 내걸어 다른 열차의 터널 진입을 막았다.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출구 쪽 신호원은 전신 신호를 통해 '터널 개통'의 메시지를 보내고 이 메시지를 받은 입구 쪽 신호원은 붉은 신호를 다시 노란색으로 바꿔 열차 진입을 허용하게 된다. 선로에는 열차가 터널을 진입하면 자동으로 붉은 깃발이 동작하도록, 열차 무게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 장치를 설치했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3분 간격으로 출발한 세 개의 기차 중 첫 기차가 클레이튼 터널에 진입했다. 그런데 자동으로 붉은 신호를 내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를 본 신호 초소 감시자는 황급히 붉은 기를 들고 터널 입구로 달려가 후속 열차에 진입 금지 신호를 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3분 간격으로 열차가 출발했고 늦은 출발 시각을 만회하기 위해 속도를 높였던 두 번째 열차가 터널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기관사는 터널 입구의 붉은 기를 흔드는 신호수를 보고 급제동을 걸었지만, 열차는 한참을 더 달려 어두운 터널 안쪽에 정차하게 됐다. 현대와 같이, 기관차에서 전 열차의 제동을 중앙 제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객차마다 수동 브레이크를 작동해야 하는 초보적 제동 시스템으로서는 제동 거리를 줄일 수 없었다.

터널 입구의 신호수는 이미 터널 속으로 사라진 열차를 보고 당황하며 "열차 진입"의 신호를 다시 한 번 출구 쪽 신호소로 보냈다. 그러자 출구 쪽 신호수는 당황했다. "열차 통과"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바로 "열차 진입"의 신호가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터널 출구로 첫 열차가 나와 신호 초소를 통과했다. 출구 쪽 신호수는 입구 쪽 신호수가 실수한 것으로 보고 입구 쪽 신호수에게 "열차 개통" 전신 신호를 보냈다. 입구 쪽 신호수는 출구 쪽 신호수로부터 신호가 오자 연이어 달렸던 열차 두 대 모두 터널을 통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붉은 기를 노란색 기로 바꿔 세 번째 열차에 터널 진입을 허가했다.

한편 붉은 기를 보고 급히 정차해 있던 두 번째 열차의 기관사는 터널 안쪽에 앞선 열차가 있다고 생각하고 터널이 완전히 개통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터널 바깥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관사가 후진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을 진입해 달려오는 세 번째 열차의 불빛을, 맨 뒤 객차에 승차한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터널 안의 추돌사고로 21명이 죽고 17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철도 안전 시스템의 발전은 신호 체계의 발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앞 열차가 출발하고 난 뒤에 역장이 시계를 보고 5분이나 10분쯤 지난 뒤에 뒤 열차를 출발시켰던 것에 비하면, 현대적 신호시스템은 비약적 발전을 한 셈이다. 선로 전 구간을 일정한 구역으로 나누어 블록화시키고 이것을 하나의 전기적 회로로 구성하여 열차가 진행할 때마다 뒤쪽으로 안전한 영역을 확보시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보호막인데 앞선 열차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보호막은 더 두꺼워지도록 설계되어있다. 겹겹이 쌓여진 보호막 중의 하나라도 훼손되는 순간, 이를 훼손하게 만든 후속 열차는 자동으로 정지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ATS(Auto Train Stop)라고 부르는 열차자동정지시스템이다.

ATS시스템은 선로에 신호기가 조밀하게 설치돼 있는 구간을 통과할 때 선로 시스템이 허용한 속도를 초과하게 되면, 기관사에게 경보를 보낸다. 기관사가 3초 안에 브레이크를 동작시키지 않으면 비상 정지를 시켜 사고를 예방하게 된다. ATS시스템은 신호기를 기준으로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선로 전 구간에서 속도를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고는 기술적 한계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부주의와 오만, 그리고 탐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한다. 상왕십리역의 사고는 외주화된 신호설비업체와 운영기관의 유기적 정보 공유 미숙, 공사 후 신호기 점검 부재, 낡은 전동차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되어 발생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비용 절감'이다. 다시 말해 돈을 아끼기 위해 추진된 여러 가지 사업들이 하나로 뭉쳐, 사고를 완성한 셈이다.

기계 문명은, 스스로 힘으로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

산업혁명, 근대문명, 자본주의는 힌두교의 신 트리무르티처럼 하나의 주체를 다른 이름으로 보이게 한다. 기독교에서 트리니티라고 부르는 삼위일체와 닮아 있는 트리무르티는 창조의 신, 유지의 신, 파괴의 신으로 자신의 모습을 필요에 따라 세상에 드러낸다. 근대는 자연에서 벗어나 기계문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이때부터 '사고'는 인류의 동반자가 되었다. 열차 시간표가 정교화되고 철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체계의 순간적 붕괴에 따른 파괴는 이전 시대와는 비교될 수 없는 재앙을 만들었다.

생산의 신이자 파괴의 신으로 등극한 자본주의의 막냇자식, 신자유주의는 기술문명이 만들어 놓은 파괴의 규모를 극대화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윤에 모든 다른 가치를 복속시켰다. 부정과 비리의 커넥션을 더 확장시켰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분단, 형식적 민주주의, 세력의 불균형이 정치 지형을 기울게 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힘든 현실은,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극이다. 첨단 과학 기술로 무장한 현대 기술 문명에, 기업의 탐욕과 무책임한 관료 체제가 결합되면, 언제라도 '블록버스터급'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국가 경쟁력 강화, 노동의 유연화, 철도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 등, 온갖 수사가 동원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모두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근대 문명 이전, '사고'는 자연으로부터 왔다. Accident는 '우연'과 같은 말이었다. 지진, 해일, 홍수, 번개 등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이 주는 재앙이었고, 인간 사회 밖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반면 산업자본주의 시대에서 '사고'는 인간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있는 상태다. 어떤 면에서는 인과적 필연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비극적 에너지는 이 사회 안에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틈을 타, 혹은 우리가 알고도 못 본 척하는 틈을 타, 일정 기간 집약된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으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게 돼 있다.
사고가 자연으로부터 오던 시절에는, 화가 난 자연을 달래기 위해 공동체 중의 한 사람, 혹은 사람들이 소유한 동물을 희생의 제단에 바쳤다. 현대인들은 신화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 행위가 얼마나 미개하고 야만적인 일인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잉태한 사고의 야만성은, 미개하다고 간주하는 고대의 세계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잔인하다. 현대의 희생양은 제사장에 의해서 선택되지는 않는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재단에 바쳐지게 된다. 게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빈도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고, 그 규모 역시 제한이 없다. 근대 이후의 사고는 인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할만하다.

산업혁명이 낳은 각종 기계장치들은 스스로 가진 힘에 의해 파괴되기도 한다. 수 십 마리 말의 힘을 능가하는 증기기관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한계 출력을 넘는 순간 자신을 파괴시키면서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대형 선박은, 강철판을 고정하던 볼트들이 압력을 못 이겨 튕겨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파괴적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기계적 동력의 힘으로 달리는 열차는 기술적 제어의 한계를 돌파하기 시작하면 거대한 파멸로 치닫는 괴물이 된다. 인류는 기계문명 이후 '사고'라는, 피할 수 없는 재앙과 불안한 동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철도여행의 역사>에 기록된 볼프강 쉬벨부쉬는 "18세기 마차 축의 절단은, 마차 도로에서 어차피 느리고 심하게 흔들거릴 수밖에 없는 여행을 중단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1842년 파리-베르사유 철도 노선에서 일어났던 증기 기관차의 축 절단은 유럽 전역을 흔들어 놓은 대참사였다"고 말했다.

"기술이 완벽해질수록, 사고는 격심해진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열차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태우고 운행을 한 철도는 1837년에 개통된 파리-생 제르망 노선이었다. 이 노선에는, 개통 일주일 만에 3만7000명의 승객이 몰렸다. 그다음 주에는 6만 명이 이용했다. 철도의 놀라운 효용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앞다투어 역으로 몰려들었다. 파리-생 제르망 노선이 개통된 지 2년 후, 파리와 베르사유 사이에 철도가 놓였다. 왕궁이 있던 베르사유는 파리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방문지였다. 철도가 놓이자 접근의 수월성으로 인해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1842년 5월 8일은 봄기운이 완연한 따사로운 날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몰려든 사람들은 벚꽃 구경과 아름다운 음악, 향기로운 와인에 취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해가 질 무렵, 흥겨운 휴일을 보낸 사람들을 태우고 베르사유를 출발한 열차는 파리를 향해 달렸다. 열차가 파리 시내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된 시간, 갑자기 맨 앞에 연결된 기관차가 기우뚱하면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뒤집혔다. 바로 뒤에 연결된 기관차가 전복된 기관차 위로 올라타면서 탈선했고 그 위로 뒤에 연결됐던 4량의 객차가 차곡차곡 얹혀졌다. 석탄을 태우던 증기기관차 위에 얹혀진 객차들은, 제단에 올려진 제물처럼 불타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객차는 순식간에 화염 덩어리로 변했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찢어지는 비명에도, 구조하러 달려간 사람들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객차의 출입문은 놀이공원의 열차처럼 밖에서 잠그는 구조였다. 그리고 열쇠를 가진 차장은 사고가 일어난 순간에 즉사했다. 55명이 죽었고 106명이 화상을 비롯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 철도역사상 최초의 대형 사고였다. 불타는 열차에 갇힌 채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사고는 프랑스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고의 원인은 맨 앞에서 달리던 증기기관차 바퀴의 차축이 부러졌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1842년의 충격적인 사고 이후 2년 뒤 발간된 철도 증기 기관 백과사전에는 '사고' 항목에 9쪽에 달하는 상당한 양의 기술이 추가된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사고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기술 장치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사고 역시 일종의 상쇄 원리에 따라 격심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강력하고 완벽한 산업적인 기술 장치들, 이를테면 증기 기관 그리고 기차는 가장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감시되지 않는다면 정말 끔찍한 재앙으로 돌변할 소지가 있다."(<철도여행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산업화의 결과로 점점 더 정교해지고 대형화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만든 눈부신 성과로 찬양된다. 그러나 그만큼 사고의 규모나 피해 정도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근대 초기 기계문명을 선도한 사람들은 산업화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기계문명이 갖고 있는 결함들을 외면했다. 현대는 더 심한 맹신이 자리 잡았다.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는 대표적인 말이 있다. "첨단 장치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첨단의 사전적 정의는 처마의 끝이다. 가장자리 끝 현실과 미지의 경계에 서 있다는 말이다.

첨단이란 말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미지의 위험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전위적인, 가장 앞선 기술인 첨단을 숭상하는 문화의 한편에는 인간의 오만함이 가득 담겨있다. 첨단이란 말은 다른 문제 제기들을 손쉽게 제압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버렸다. 첨단 안전장치, 첨단 방어기술, 첨단 제어 장치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면 사회는 더 안전해질까? 인류가 만든 것 중에 가장 첨단에 속하는 기술 중의 하나는 우주 기술일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온갖 노력 끝에 만들어낸 첨단 우주선들이 가끔 속절없이 파괴되는 모습을 본다. 첨단 기술도 작은 나사못의 기능 이상에 따른 사고조차 막을 수 없는, 불확실의 세상이 바로 현실 세계이다.

시속 250km 고속철 바닥에서 철근이 튀어나왔다

파리-베르사유 철도 사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열차사고는 이어졌다. 사람들은 문명 한가운데 일상성으로 다가온 사고를 주기적으로 만나야 했다. 철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파리-베르사유 철도사고 원인이, 기관차 바퀴 축의 균열에 따른 붕괴로 드러나자 모든 열차의 바퀴 축에 대한 정비점검이 이루어졌고, 금속의 피로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철도의 바퀴나 바퀴 축과 관련된 부분의 이상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끔찍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세계 최악의 고속철도 사고도 바로 이 기차 바퀴 때문에 일어났다. 1998년 6월 3일, 뮌헨발 함부르크행 고속 ICE 884 열차는 오전 5시 47분 뮌헨역을 출발했다. 1991년 6월 뮌헨-함부르크 노선을 시작으로 처음 운행된 ICE는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열차였다. 쾌적함과 안전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4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ICE 884 열차는 최고 250킬로미터의 속도로 거침없이 달렸다. 뮌헨에서 함부르크까지는 850킬로미터. 아우크스부르크-뉘른베르크-뷔르츠부르크-풀다-카셀-괴팅겐-하노버를 지나 종착역인 함부르크까지 약 5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되는 여정이었다. 두 번째 정차역이었던 뉘른베르크 역에서 이 열차의 맨 앞 칸인 1호 차에 외르그 디트만(Jŏrg Dittman)이 아내와 6살 난 아들과 함께 올라탔다. 함부르크 해변에서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순조롭게 달리던 열차가 하노버 역을 떠나 시속 200킬로미터의 속도로 에데세 마을에 접근하던 중이었다. 10시 56분, 승객이었던 디트만 씨는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맞은편에 앉은 아내와 아이의 좌석 팔걸이 사이로 거대한 쇠막대가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약 쇠막대가 10센티미터만 잘못 튀어나왔어도, 아내와 아이의 몸을 중세의 창이 그랬듯 뚫어버렸을 것이었다. 열차는 갑자기 좌우로 진동하다가 이내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디트만은 놀라서 아내와 아이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한 뒤 객실 밖으로 피신시켰다.

디트만은 승무원을 찾아 다른 열차 칸으로 이동했다. 디트만은 1호 차에서 3호 차까지 뛰어간 거리가 상당히 멀게 느껴졌고, 끔찍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디트만은 세 번째 칸에 이르러 순회 중인 승무원을 발견하고는 빨리 비상정차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승무원은 디트만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일단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함께 1호 차로 가자고 했다. 승무원은 회사 규정상 비상 제동기를 사용하기 전, 사고를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트만이 1호 차에 도착해 승무원에게 황당한 현장을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디트만과 승무원은 함께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짧은 충격의 순간이 지났다. 피투성이가 된 승무원이 디트만에게 괜찮느냐고 물었다. 디트만은 공포 속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디트만이 객실 의자 사이를 뚫고 들어온 쇳조각을 본 뒤 3분 후, 유럽 최고를 자랑하는 고속열차는 유럽 최악의 사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98년 뮌헨발 함부르크행 ICE 고속열차 사고현장 ⓒariva.de

세계 최악의 고속철 참사, 두 달 전 경고 무시

유럽에서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고속철도를 운행하게 된 독일은, 프랑스의 TGV를 능가하는 차량과 서비스로 유럽 철도의 왕자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새로 등장한 ICE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운행이 시작되자마자 ICE의 진동이 너무 심해 승차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식당 칸에 대한 불만은 독일 철도 당국을 당혹게 했다. 정상 운행 중에도 커피잔이나 음식을 담은 접시가 테이블에서 떨어질 정도였다. 독일 철도 기술진들이 긴급 점검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바퀴의 이상 마모 현상을 찾아냈다. 고속철도 설계팀부터 차량 제작팀까지 회의를 한 끝에 차량의 바퀴를 모두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선로나 열차 전체를 손보는 것에 비해 바퀴를 교체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ICE의 열차 바퀴는 모노 블록 형태의 바퀴였다. 바퀴 하나가 한 덩어리의 강철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독일 철도 기술진들은 진동의 가장 큰 원인을 한 덩어리로 제작된 바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퀴만 교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새로 적용된 바퀴는 듀얼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두 개의 둥근 바퀴를 내륜과 외륜으로 구분해 결합하는 형태이다. 또 이 내륜과 외륜 사이에 탄성이 있는 고무를 장착, 승차감을 대폭 높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개통 2개월 만에 고속철도의 바퀴를 듀얼 블록 제품으로 교체하기 시작했고 소음과 진동에 대한 불만은 바로 사라졌다. 듀얼 블록은 승차감을 획기적으로 높인 첨단 방식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ICE는 승승장구했다. 개통 2년 만에 하루 이용객이 6만5000명을 기록했다. 경쟁 상대인 비행기를 압도했다.

1998년 6월 3일 디트만 가족이 탄 함부르크행 ICE 884 열차의 1호 차 객실을 뚫고 들어온 긴 금속조각은 디트만이 앉아 있던 의자 밑의 객차 바닥에 달려있던 열차 바퀴 조각이었다. 금속피로로 균열이 있었던 듀얼블록 바퀴 바깥쪽 원의 한 부분이 쪼개지면서 일자로 펴졌고 그대로 객실 바닥을 뚫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10시 56분, 종착역인 함부르크를 약 130여 킬로미터 남겨둔 채, 에세데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객실 바닥을 뚫은 금속 막대의 반대편 끝은 어떻게 됐을까. 선로의 침목을 긁고, 불꽃을 일으키며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열차는 아직 선로 위에 있었고 운이 나쁘지만 않다면 비상정차를 통해 대형 사고를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에세데 역에는 본선과 지선으로 선로가 갈라지는 '분기기'가 있었다. 객실 바닥을 관통한 커다란 쇠막대를 꽂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며 선로를 긁어대던 고속열차가 분기기를 통과했다. 분기기에는 선로 옆에 가이드 선로가 설치되는데, 객차 바닥에 꽂힌 금속바퀴 조각이 이 가이드 선로를 밑에서부터 들어내 버렸다. 거대한 가이드 선로 조각은 고속열차의 객실바닥과 천장을 뚫어버렸다.

ICE 844 열차의 1호 차와 2호 차는 직선으로 나 있는 본선으로 빠졌고, 갑자기 선로가 전환된 3호차는 측선으로 진입하게 됐다. 결국 2호차와 끊어져 버린 3호 차는 굉음을 내며 선로를 탈선했다. 불행하게도 그 앞에는 에세데 마을 철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기둥이 서 있었다. 3호차는 다리 기둥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콘크리트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4호 차부터 12호 차는 차례대로 겹쳐지며 무너진 다리의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충돌했다. 식당칸은 아예 형체를 잃었다. 12량이 연결된 410미터 길이의 열차가 1량으로 압축되었다.

사고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생지옥으로 변한 선로 위에서 생존자를 찾아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승객 101명과 선로보수 직원 두 명 등 103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심각한 중상을 입은 88명 중 상당수는 현재까지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사고조사 결과 독일철도의 정비팀이 육안검사를 통해 열차 바퀴를 정비해왔음이 밝혀졌다. 정교한 장치로 바퀴의 마모도나 균열을 찾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탐지 장비의 잦은 오작동은, 정비팀이 육안 검사를 선호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또 오랫동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랜턴 불을 비춘 채 눈으로 하는 검사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는 동안 듀얼 블록으로 이루어진 바퀴 테두리는, 금속피로에 의해 수년 동안 균열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속운행 시 잦은 충격과 진동으로 사고 차량의 바퀴는 살짝 휘어져 있었다. 이 휘어져 있었던 부분이 결국 끊어지면서 원형을 유지하던 바퀴의 테두리가 펴지고, 결국 객실 바닥을 뚫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사고 두 달 전인 4월, 기관사와 승무원이 사고 차량 바퀴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던 게 드러났다. 늘 그렇듯, 그 문제 제기는 묵살되었다.

또 사고 발생 1년 전인 1997년, 같은 방식인 듀얼 블록형 바퀴를 사용하는 하노버 트램회사에서 금속피로 현상이 발견됐었다. 하노버 트램회사는 바퀴를 교체했다. 이와 함께 듀얼 블록형 바퀴의 금속피로,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 다른 철도 운영기관에 전파했다. 시속 25킬로미터의 트램 바퀴에도 발생하는 문제가, 시속 250킬로미터의 고속열차에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독일 철도공사는 자신들의 고속열차는 문제없다며 경고를 무시했다. 7년 동안 운행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독일 철도공사의 입장이었다. 7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금속피로는, 작은 충격에도 열차 바퀴를 분해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전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폭탄의 심지가 다 타들어 가는 순간이 올 때까지도 문제가 없음을 장담하는 걸 임무로 삼는 자들 같았다. 세계 최악의 고속철도 참사를 일으킨 뒤에야 독일 철도공사의 열차 바퀴 점검이 강화되었고, ICE 고속열차의 바퀴는 모두 모노 블록의 일체형 강철바퀴로 교체되었다.

'철도 언딘'이여, 철도 적자를 인양하소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코레일이 운영하는 새마을호 열차 바퀴에 불이 붙는 일이 올해에만 세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열차 바퀴에 불이 나는 원인은 바퀴 축에 장착되어 있는 베어링이 마모되거나 녹아내려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이다.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않는 열차가 고속으로 달리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면 ICE 844 열차처럼 끔찍한 참사를 불러온다. 제때 정비가 안 된 채 운행되는 차량이 100대를 훌쩍 넘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비인력이 대폭 줄었지만, 코레일의 인력감축 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정비주기도 연장되었다.

언제부턴가 공기업의 지상과제가 경영효율이 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년대비 성과를 어떻게 올릴지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013년 철도노조 파업 시기에 국토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조한 것 역시, 철도 적자 해소 문제였다. 철도 적자 주범들로 지목받은 것들은 신규 차량 도입 비용, 그리고 높은 인건비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신차 구입을 잠시 미루고, 좀 위험하더라도 이용객들이 낡은 열차를 타도록 하는 게 철도 경영 합리화를 위해 필요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임금을 받는 장기 근속자를 줄이고 계약직 고용이나 외주화를 확대해야 한다.
오랜 근속기간에 따른 숙련도의 중요성은 경영효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선로 유지 보수의 외주화와 차량정비 분야의 자회사 추진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통합적 운영과 조화가 필요한 철도 산업에서 관제권의 분리와 화물 자회사 분리 추진도 계획되고 있다. 철도의 모든 기능과 역할을 갈가리 찢어 놓겠다는 것이 국토부 철도 정책의 핵심이다.

국토부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국철도가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근본적으로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체제라는 것이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국토부는 수서발KTX든 지방 적자 선이든 신설 노선이든, 그것을 공기업 코레일로부터 어떻게든 떼어 내려 하고 있다. 그러면 '언딘'과 같은 국내외 철도 기업들이, 철도를 적자와 비효율의 바다에서 인양하리라 믿고 있는 것 같다.

국토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한국 철도 정책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된다면, 그 종착역에서는 검은 리본이 승차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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