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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데 친절하기까지? 묘한 분홍의 '암흑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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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데 친절하기까지? 묘한 분홍의 '암흑에너지' [이명현의 '사이홀릭'] <우주의 끝을 찾아서>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은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관측적인 증거를 찾아냈던 천문학자들인 솔 펄머터, 브라이언 슈미트 그리고 애덤 리스에게 돌아갔다. 물론 더 많은 천문학자들에게 공로가 돌아가야 마땅하지만 수상자를 살아있는 과학자들 중 두세 명으로 제한하는 노벨상의 원칙에 따라서 세 명의 천문학자만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초신성을 관측해서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에 대한 화답이었다.

▲ 2011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브라이언 슈미트. ⓒwww.nobelprize.org
한참 전의 일이지만 나는 한창 초신성 관측에 열을 올리고 있던 브라이언 슈미트를 만난 적이 있다. 관측을 하러 갔다가 마침 내가 사용하던 전파망원경이 고장이 나서 수리하는 동안 근처의 다른 천문대를 구경삼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천문대에서 브라이언 슈미트가 초신성 관측을 하고 있었다. 슈미트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때는 솔직히 그가 수행하고 있는 관측이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를 밝혀낼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당시에는 슈미트 자신도 우주의 팽창 속도가 어떤 비율로 느려지는가를 확인하려고 초신성 관측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두 팀의 초신성 연구팀이 우주의 팽창속도 비율이 얼마나 느려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시작했던 초신성 관측 프로젝트의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두 팀 모두 우주가 오히려 가속팽창한다는 연구 결과에 도달한 것이었다. 여전히 그 정체가 아리송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암흑에너지의 실재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관측적인 증거 중 하나가 우주의 가속팽창이다. 암흑에너지 문제는 21세기 우주론의 가장 큰 화두이자 난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암흑에너지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첫 발걸음인 우주의 가속팽창 발견에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진 것 같다.

우주의 가속팽창과 암흑에너지는 상당 기간 동안 우주론의 중심에 머물면서 우리를 경이감에 빠뜨리기도 하고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두고두고 이들이 언급될 테니 이쯤에서 이것들의 정체에 대해서 한껏 탐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우주의 끝을 찾아서>(이강환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이 지적 탐험을 시작하기에 좋은 가이드북이 나왔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이강환 지음, 현암사 펴냄)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듬뿍 지닌 귀한 책이다.

본문에 사용한 글꼴이 너무 예쁘다. 눈에 쏙 들어와서 읽기에 편하다. 미적인 완성도가 높아서 책을 읽는 내내 눈이 호강을 했다. 어떤 글꼴인지 궁금해서 이 책의 편집자에게 문자를 날렸다.

"산돌이라고 알고 있는데… 본문에 잘 안 쓰는 서체인데 한번 써보자고 으쌰으쌰한건데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고민한 흔적이 독자인 내게도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새로운 글꼴을 책의 본문에 더 자주 사용했으면 좋겠다. 글자의 간격도 적당해서 가독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 표지에서 제목을 쓸 때 사용한 묘한 분홍색도 마음에 든다. 책의 본문 곳곳에도 양념처럼 이 묘한 분홍색이 쓰이고 있다. 책의 테두리에도 묘한 배치로 묘한 분홍색이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가속팽창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해설서다. 당연히 논리적인 전개 방식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파격적인 분홍으로 무장한 책의 디자인은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논리의 세계로부터 이 책을 끄집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 같아 보인다.

글꼴은 아름답고 책 디자인은 섹시한 핑크빛 과학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내용 자체에 있다. 문득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추리 드라마 <형사 콜롬보>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먼저 시청자들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알려준다. 범인도 보통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지 않는다. 형사 콜롬보도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다.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물질적인 증거가 없을 뿐이다. 콜롬보는 냉철한 추리를 통해서 범인이 자백을 하게 만들거나 빼도 박도 못 하는 물증을 찾아내곤 한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는 <형사 콜롬보>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화두가 가속팽창이라는 사실을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결론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미리 알아차려버리는 것이다. 그 공로로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이 세 명의 천문학자에게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책 서두에 해버린다. 이 발견이 암흑에너지의 존재와 관련해서 중요하다는 해석도 들려준다. 범인을 미리 밝히듯 내용과 결론을 미리 펼쳐보여 주면서 이 책이 시작된다.

▲ 형사 콜롬보. ⓒworkreimagined.aarp.org

<형사 콜롬보>나 이 책이나 결론보다 더 흥미진진한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찾아나서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지적인 모험일 것이다. 이강환은 이런 지적 여행의 훌륭한 가이드다.

"천문학은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대중의 관심을 비교적 많이 받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한 책도 상대적으로 많고 그 중에는 훌륭한 책들도 많이 있다. 여기에 별 의미 없는 책을 하나 보태 독자들의 선택에 혼란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보다는 과학자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발표된다. 그러나 일반인이 과학자들이 쓴 논문을 직접 접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과학자들이 논문에서 관측 자료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려주기 위해서 실제 논문에 실린 자료와 그래프들을 그대로 소개했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과학자들이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는 이강환의 바람처럼 과학적 결과가 형성되는 과정을 잘 기술한 책이다. 이미 알고 있는 범인의 범죄 사실을 형사가 어떻게 논리적으로 추적하는지 보는 것 같은 스릴 넘치는 책이다. 우주의 가속팽창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학자들의 온갖 열정과 노력의 흔적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글꼴의 아름다움과 디자인의 섹시함을 넘어선 내용과 전개 방식의 담백하면서도 친절한 품격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두고두고 읽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책이다. 단박에 읽어야한다. 단박에 읽힌다.

"이 책은 국립과천과학관 덕에 나올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어떤 것을 궁금해 하며 어떤 설명을 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기회를 그 누구보다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이 책도 바로 그 결과물이다. 국립과천과학관과 그곳에서 과학문화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은 우리나라 과학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책을 쓴 이강환은 최전선에서 과학이라는 화두를 갖고 대중과 만나는 사람이다. 그가 겪고 느꼈던 것들이 이 책을 쓰는 데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다루는 내용이 과학자들도 쩔쩔매고 있는 프런티어의 과학이고 여전히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강환의 솜씨가 돋보인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다. 어려운 내용을 그저 쉽게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아름답고 섹시한 하드웨어에 담백한 문체로 내용을 담았다. 그의 무기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친절함이다.

국내 저자들이 직접 쓴 대중과학책이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무척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저 책 한 권을 더하지 않겠다는 지은이의 결의가 그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완성된 작품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섹시함과 담백함 그리고 어려움과 친절함이 교묘한 분홍빛으로 잘 비벼진 전주비빔밥 같은 책이 바로 <우주의 끝을 찾아서>다.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색깔에 흥분했고, 흐뭇했다. 무엇보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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