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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중국의 '성(省)'으로 전락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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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중국의 '성(省)'으로 전락했다는데… [동아시아를 묻다] 남해와 동해
내인 : 계급과 성별

대만(타이완)을 달구었던 반중(反中) 시위가 베트남으로 남하했다. 하지만 대만과 대륙은 베트남에서 둘이 아니었다. 종종 얼굴 보며 지냈던 대만 유학생도 부랴부랴 귀국했다. 남부 출신으로 대만 독립파에 가까웠던 그녀는, 뜻하지 않게 하노이에서 '하나의 중국'을 경험케 된 것이다.

역설이었다. 나 또한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아주주간(亞洲週刊)>을 읽다가 흠칫 놀랐던 적이 있다. 혹여나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해코지를 당할까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그만큼 반중 감정은 5월의 불볕더위만큼이나 한껏 달아올랐다. 다섯 척의 선박과 두 편의 비행기를 동원해 1만 명에 가까운 중국인을 귀국시켰으니, 1991년 양국의 관계 정상화 이래 최악의 반중 시위로 기록될 것이다.

도화선은 중국의 석유 시추 작업이었다. 베트남은 즉각 영토 주권 침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반해 중국은 자국의 영해 개발 사업이라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 나라가 밝히는 역사적 근거와 국제법적 논리를 찬찬히 따져보아도 딱히 해답을 구하기는 힘들다. 중국에서는 남해(南海), 베트남에서는 동해(Bien Dong), 필리핀은 서해(West Sea), 영어로는 남중국해(South China Sea)로 표기되는 이곳은 워낙 많은 섬들과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데다가, 항상 해수면 위로 솟아 있는 섬은 30여 개에 불과하다. 자연적 조건부터가 영토와 영해 설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이다. 각국이 저마다 편의적으로 국제법을 해석하고 역사적 자료를 동원하여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한층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영토 분쟁만으로 살피는 것은 모자란 구석이 크다. 우연찮게 5월 11일 하노이의 첫 반중 시위를 지켜볼 수 있었다. 눈짐작으로는 300여 명 되었지 싶다.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고, 채 한 시간도 못되어 자진해산했다. 종종 불거졌던 여타 시위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례적인 것은 국영 방송인 VTV를 비롯한 주요 방송국들이 이 시위를 크게 보도했다는 점이다. 신문들 또한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했다. 시위 관련 보도를 삼가는 관례상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묵인 내지 방조의 혐의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민심' 카드에 기대어 중국을 압박하고 국제 사회에 호소하려는 의도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영판 다르게 흘러갔다. 반중 시위가 격화된 것은 5월 13일이다. 화근은 남부의 공업 단지였다. 베트남 깃발을 든 수천 명의 오토바이족들이 공단에 진입했다. 그러고는 한자로 새겨진 간판이 있는 공장과 건물에 무차별적인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다. 그들은 간체와 번체를 구별하지 못했다. 대만계와 홍콩계, 특히 대만의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 피해에 그치지도 않았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줄을 이었다.

베트남 당국은 당혹했고, 다급했다. 총리가 직접 국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시위 참여를 만류했을 정도이다. 항의는 정당한 것이지만, 더 이상의 폭동과 무질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보탰다. 눈을 찌르는 내용도 있었다. 이번 시위 격화의 배후로 신월당을 지목한 것이다. 신월당(Dang Viet Tan)은 베트남 혁신혁명당의 약칭으로 베트남 공산당에 도전하는 정치 집단이다. 요컨대 반중국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월당은 이전부터 영토 분쟁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거세게 비판했었다. 베트남-미국 동맹 체결을 통한 중국 봉쇄가 지론이기도 하다. 대저 남베트남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월교(越僑)들이 핵심 세력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의 관련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사태는 금세 수습되었다. 베트남 정부의 적극 개입으로 18일로 예정되었던 전국 규모의 시위도 무산되었다. 현장에 모습을 보인 몇몇 시위대는 공안에 체포되기도 했다. 민중을 통제할 수 있는 경찰력을 충분히 입증한 셈이다. 역으로 폭동과 방화는 당국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중 시위가 빌미가 되어 노동계급의 집합적인 분노가 표출되리라 예기치 못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파장이 여전하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된 이래 처음으로 직면하는 구조적 위기의 경험이었다. 1997년에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다. 세계 경제와의 연루 정도가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연히 다르다.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절반이 베트남에서 생산될 만큼 전 지구적 분업 체제의 한 고리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그만큼 외자 의존형 발전 전략의 충격파 또한 여실했던 것이다.

자본 유출을 만회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의 개방을 선포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결국 2019년 아시안게임 개최권까지 반납했을 만큼 사정이 나쁘다.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왕년의 사회주의식 복지 제도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반중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된 장소가 공단 지역이었음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내연하고 있던 계급 모순이 일거에 폭발한 것이다.

농촌에서 공단으로 이주한 하층 남성 노동자들의 성(性)적 불만도 만만치 않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결혼해야 할 또래 여성의 상당수가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 이른바 '월남 신부'들이다. 그들은 한국과 대만뿐만이 아니라 대륙의 저장성, 푸젠성, 광시성, 후난성 등 남중국까지 널리 퍼져있다. 결혼 지참금에 더 높은 소득 보장이 성별화된 인구 이동을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령기의 남녀 비율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이 또한 도이모이 이래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되면서 불거진 새로운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심각한 수준이다.

폭동 사태를 주도한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영토 분쟁은 그리 절실한 사안이 아닐지 모른다. 기본권 보장과 복지 정책, 결혼 등이 소중하다. 단란하고 안락한 삶의 보장이 관건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위대한 주석' 호치민이 만들고자 했던 '신베트남'의 이상을 되묻고 있는지 모른다. 21세기가 되어서도 베트남 공산당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존재하는 의미를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트남 정부가 서둘러 신월당까지 운운하며 사태를 봉합하고 진압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southchinasea.org

외풍 : 축의 이동

그럼에도 베트남의 내정만을 강조할 수는 없겠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보편적 모순이라고 갈음할 것도 아니다. 국제 정치, 특히 주요 2개국(G2) 간 역학 관계의 그림자가 무척 짙다. 우선 중국의 석유 시추 시점부터 미묘하다. 혹은 절묘하다. 버락 오바마가 (동)아시아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단행되었다. 오비이락이 아닌 것 같다. 계산된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오바마의 이번 아시아 방문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으로 이어진 동선부터가 냉전기의 순례를 연상시킨다. 동중국해에서는 일본의 편을 확실히 들어주었다. 집단적 자위권도 사실상 허용했다. 남중국해로는 미군이 직접 들어오기로 했다. 1990년대 초 철수했던 필리핀 기지를 재차 사용키로 합의한 것이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서도 필리핀과 베트남을 거들었다. 이른바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 재균형 정책의 관철이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개입하는 명분은 '항해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에 있다. 항해의 자유가 있기에 타국의 배타적 경계 수역에서도 군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전격적인 석유 시추가 노린 지점도 여기에 있지 싶다. 남중국해 갈등의 요체는 항해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토와 주권, EEZ(배타적 경제 수역) (재)설정 등이 핵심이다. 즉 역내 국가들 간의 내부 문제인 것이다. 미국은 남중국해의 주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 당사자가 아닌 외부자가 거듭 개입하는 것인가? 일종의 '먼로 선언' 격의 암묵적 시위라고 하겠다.

프레임 다시 짜기와 더불어 미국의 '언행 불일치'를 보여주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엿보인다. 일본과 필리핀에서 밝힌 '립 서비스'와 미국의 실제 행동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중국-베트남 영토 분쟁에서도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별반 없었다. 담화 발표와 전화 통화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을 선택한 것 또한 전략적인 판단이었지 싶다. 일본이나 필리핀과 달리 직접적인 동맹국이 아닌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베트남으로 우회하면서, 그러나 공개적이고 명시적으로 미국이 '종이호랑이'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비단 오바마를 겨냥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추세라면 차기 대통령으로는 힐러리 클린턴이 유력하다.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이라는 발상은 본래 힐러리에게 저작권이 있다. 직접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도 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는 시진핑의 집권 기간이 힐러리의 집권 기간과 겹칠 수 있는 것이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취임 첫 방문지로 유럽을 대신하여 아시아를 선택했었다. 임기 동안 도합 8번에 걸쳐 아시아를 순방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라오스와 미얀마도 있었다. 라오스는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57년 만이었고, 미얀마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양국 모두 중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나라들이다. 더 늦기 전에 재균형 정책에 재균형을 맞추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여지가 충분하다. 일종의 십년지계(十年之計)이다.

냉전기 미국의 동맹 전략이었던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s)'는 수정되고 있다. 막대한 재정 적자로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2022년까지 군 예산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동맹국들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여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더 분산적인 모델로 전환 중이다.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더욱 더 의지하는 형국으로 재편되고 있다. 재균형 정책의 실상이고 실체이다. 비용과 부담을 전가하는 만큼 이제는 그 리스크 또한 아시아 동맹국들이 직접 짊어지게 된다.

스포크-스포크 동맹도 강화되고 있다. 한일 군사 협정 얘기가 거듭 불거지고 있는 까닭이다. 일본-필리핀 사이에도 군사 협약 체결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정한 임계점에 이르면 재균형 정책 자체가 미국과 동맹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너무 많은 부담을 너무 빨리 전가하면 동맹 이탈의 우려가 있다. 역으로 미국이 너무 적은 역할을 하면서 허장성세에 그쳐도 동맹은 이완될 것이다. 어느 쪽도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철저하게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에 기초해 있다면, '가치 동맹'은 도리어 중국의 차지가 된 것 같다. 1954년 평화 공존 5원칙을 입안한 이래 내정 불간섭을 핵심으로 삼는 중국의 불개입주의는 아시아판 먼로주의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이 대외적으로 베트남을 비판하고 있는 지점도 이 대목이다. 아세안이 그 헌장으로써 표방하는 중립주의를 베트남과 필리핀이 선봉대가 되어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내 편을 들라고 하지 않을 테니, 남의 편도 들지 말라. 동남아 국가들의 중립주의를 독려하고 비동맹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반둥회의(1955년) 이래 중국의 오래된 외교 전략이다. 그리고 냉전기와는 달리 지금은 실탄도 넉넉하다. 필리핀을 제외한 모든 아세안 국가에서 중국은 이미 최대 교역국이다. 그래서 아세안 또한 중국을 향한 통일 전선, 단일 대오를 갖추기 힘들다.

영토 분쟁이 불거진 직후에 미얀마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 회의에서도 중국을 적시하여 비판하는 성명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모든 당사자들(all sides)'의 자제를 요청했을 뿐이다. 오히려 중국의 국방장관이 베트남의 국방장관에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타박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경제력이 외교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한 관료는 경제적으로 '베트남은 이미 중국의 한 성(省)과 같다'고 실토한 바 있다. 다분히 과장이지만, 엄살만도 아닐 것이다. 실로 축은 크게 이동하고 있다.

재균형(rebalance) : 비정상의 정상화

미국 쪽에서는 중국과 남중국해의 관계를 100년 전 미국과 카리브 해에 빗대는 논의가 적지 않다. 미국은 19세기 말 서부 진출을 완결 지으면서 남진으로 물꼬를 텄었다.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영국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1917년이었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베네수엘라 등에 있던 영국의 해군 기지에도 미군이 들어섰다. '미국의 지중해'가 된 것이다. 중국이 지금 아세안을 향하여 추구하고 있는 전략이 딱 그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중국 최남단 해남도에 핵잠수함 배치를 포함한 대규모 군사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것 외에, 동남아 국가들에도 인민해방군이 진출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제 눈의 안경인 셈이다.

100년 전 카리브 해보다는 1000년의 아시아의 바다를 돌아보는 편이 생산적이다. 아시아의 바다는 영국이 패권을 쥐었던 19세기나, 미국이 헤게모니를 행사했던 20세기와는 퍽이나 달랐다. 콜럼버스 이전에 정화의 원정이 있었고, 바스코 다 가마에 앞서 신바드의 모험이 있었다. 신바드도 정화도 공히 남중국해를 지났다. 그래서 남중국해를 끼고 자리한 동남아는 이슬람, 힌두/불교, 유교 문명의 교차점이자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가교였다. 지금도 남중국해는 중국 13억, 아세안 6억, 인도 12억, 이슬람 13억, 자그만 치 인류의 3분의 2를 바닷길로 잇는 세계 교역 네트워크의 허브이다. 그래서 전 세계 무역선의 절반이 이곳을 통과하며, 해양 교통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홍콩과 싱가포르, 광동 등 세계에서 가장 크고 바쁜 무역항들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명실상부 전 지구적 물류망의 주축이다.

하노이에 온 이후로 아세안 통계 자료를 종종 살펴본다. 숫자들의 변화 추세를 따라가다 보면 미래가 언뜻 언뜻 스쳐 지나곤 하기 때문이다. 작년 말레이시아의 금융 통계가 인상적이었다. 신용 카드 사용 액수를 따지니 비자(Visa)와 마스터(Master)를 합한 것보다 유니온 페이(Union Pay)의 액수가 컸다는 것이다. 달러 경제권에서 대중화 경제권으로 반전하고 있는 징후이다.

말레이시아는 말라카의 후신이다. 계절풍을 따라 때 이르게 번영했던 '글로벌 도시' 말라카는 중국의 도자기, 이슬람의 화폐, 남인도의 조각상이 동시에 발견되는 남다른 장소였다. 해양 아시아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말라카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오늘날 쿠알라룸푸르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 2019년이면 중국과 아세안을 잇는 고속철도 완공된다. 쿤밍에서 출발, 인도차이나를 관통해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가닿는 21세기 판 실크로드이다. 그에 맞추어 아세안 단일 비자 시대도 열릴 것이며, 아세안 통합 시장은 2015년에 출범할 예정이다. 중원과 동남아가 '1일 생활 경제권'이 되는 것이다. 14~18세기 동남아시아가 구가했던 '상업의 시대(the Age of Commerce)'가 더욱 강화되고 촘촘해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목하 오래된 세계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 '축의 이동'이야말로 작금 전개되고 있는 전 지구적이자 세계사적인 "재균형"의 요체이다.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 100년과 1000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국과 베트남의 영토 분쟁 또한 '재균형'을 향하여 과거로 되돌아가는 이 모험길의 시련이자 시행착오의 하나일 것이다. 무릇 바닷길에서 풍랑을 맞이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시(一時)와 국지(局地)에 빠져서 대세(大勢)와 대국(大局)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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