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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변화 : 중국과 아랍이 '다시'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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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변화 : 중국과 아랍이 '다시' 손잡다 [동아시아를 묻다] 균형(Rebalancing)의 축(Pivot) ① 실크로드
중원과 서역(西域) : 오프라인 실크로드

이우(義烏)라는 도시가 있다. 저장성에 자리한다. 그러나 중원에 널려있는 수많은 도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계적이다. 하더라도 상하이나 베이징처럼 매끈하고 세련된 지구시(Global City)는 아니다. 세계 최대의 도매 시장으로 북적거린다는 점에서 지구촌(Global Village)에 가깝다. 이곳에 집결된 각종 일용품들이 각 나라, 각 도시의 매장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카이로와 부다페스트, 타이베이와 방콕, 텍사스와 리우 등 전 세계 소매상들이 정기적으로 순례하는 전 지구적 유통 시장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치우침이 없지 않다. 유독 아랍풍이 농후하다. 레바논의 타볼리(Tabouli)부터 이집트의 코샤리(Koshari)까지 아랍의 일용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다. 이우를 중국의 도시에서 세계적 도시로 탈바꿈한 주역들이 아랍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계기는 9·11이었다.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면서 아랍 상인들의 미국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졌다. 실제로 21세기 첫 10년간, 미국을 방문하는 아랍 여행객은 25만에서 15만으로 줄었다.

미국 시민들은 본토가 더 안전해졌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랍 세계의 탈미국화를 촉진하는 조치가 되었다. 비자 발급이 제한된 아랍 상인들이 고향에 눌러 앉아 죽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시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조들이 오갔던 오래된 길을 (재)발견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길, 실크로드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오래된 동서 교역 망을 후손들이 재가동시킨 것이다.

천시(天時)가 통했다. 시점이 절묘했다. 9·11 사건이 있던 2001년, 바로 그 해의 12월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이다. 그리하여 새 천 년 첫 해는 뉴욕에 자리한 세계무역빌딩은 무너져 내리고,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해로 기록/기억될 만하다. 100년 후의 역사가들이 즐겨 대비해서 서술할 만한 21세기의 상징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천운도 따랐다. 9·11의 여파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기름 값의 폭등으로 아랍 상인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진 것이다. 21세기 첫 10년간 아랍 국가들의 평균 성장률은 6%대에 달했다. 자연스레 씀씀이가 커졌다. 중국 정부는 기민하게 호응했다. 비자 발급 조건을 대폭 완화해 주었다. 가령 이집트의 경우 미국은 18일을 기다려야 하지만, 중국은 하루 밤이면 해결된다. 아랍 국가 대부분이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더 이상 대서양 너머를 도모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지중해와 중원을 (다시) 잇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이우에 모스크가 처음 생긴 것은 2004년이었다. 아랍 상인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우에서 제공한 것이다. 더 많은 아랍 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시장의 특단의 방책이었다. 모스크로 그치지도 않았다. 이슬람 성직자도 모셔왔다. 가족 단위 거주자들이 늘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도 생겨났다. 급식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중국인들이 늘 즐겨 먹는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풀뿌리 자치 단체의 이례적인 호의는 왕년의 '중화성'을 회복해가고 있는 징표로도 읽힌다. 모스크 건설 반대 시위를 일으키기는커녕, 도리어 관용과 포용의 미덕을 과시해다는 것이다. 과연, 모든 실크로드는 대당 제국으로 통했었다. 장안은 비단 중화제국의 수도에 그치지 않았다. 곳곳에 외국인 마을이 자리한 '지구촌'의 원형이었다. 최치원이 장안에 기거할 수 있었던 것도 개인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유 시장과 세계주의 문화가 만개한 대당 제국의 왕성한 소화력 탓이었다.

중원과 서역의 재회가 일방향만도 아니다. 쌍방향이다. 아랍 상인들의 중원 진출만큼이나 화상(華商)들의 아랍 정착도 흥미롭다. 그래서 '차이나타운'(China Town)을 대체하는 '차이나 시티'(China City)들이 생겨나고 있다. 두바이에 자리한 드래곤 마트(Dragon Mart)가 대표적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노라면, 차도르를 걸친 아낙네들이 광동성, 복건성 출신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풍경을 목도할 수 있다. 마치 역사책 속의 삽화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이며, 그 이상의 미래이기도 하다. 21세기에 대한 강력한 암시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랍 세계의 미래를 전망하고 싶다면, 전황으로 점철된 <뉴욕타임스> 국제 면보다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편이 더 유익할 수 있겠다. 농담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직시이고, 직관이다.

본디 아랍 세계가 지구적 상업망의 가교였던 바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개의 대륙이 교차하는 장소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상인, 즉 색목인들이 한반도를 찾은 것은 자그만 치 1500년 전이었다. 유럽인들보다 1000년이 앞섰다. 신드바드가 모험했던 이슬람 회랑(Islamic Corridor)은 북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아시아를 종과 횡으로 엮으며 무역과 상업으로 이루어진 유라시아 세계를 만들어 갔다.

목하 미국의 전투기가 아랍의 하늘을 뒤덮은 사이에도 민항기들은 두바이와 베이징, 상하이, 홍콩, 요하네스버그를 부지런히,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연간 1억 2000만을 소화하며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알 막툼(Al Maktoum) 공항은 두바이가 16~17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페르시아 만의 대표적인 중계 무역 도시 호르무즈(Hormuz)와 무스카트(Muscat)의 후신임을 웅변한다. 지난 100년간 상실한 중동(Middle East)으로서의 가교 역할을 회복해가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의 재가동은 대서양에도 파고를 미치고 있다. 런던이 뉴욕을 제치고 제1의 금융 도시로 (재)등장한 것이다. 뉴욕이 지구적 금융 거래의 17%를 소화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에, 런던은 34%까지 치솟았다. 이 역전 또한 아랍 세계의 부상 탓이 크다. 뉴욕에서 두바이까지는 14시간이다. 런던에서 두바이는 7시간이다. 아랍 국가들은 지구적 금융 시장의 큰 손이 되었고, 그 금융 시장의 축을 뉴욕에서 런던으로 재이동시키는 배후가 되었다. 그만큼 유럽 또한 '베니스 상인'들의 동방 무역이 중요했던 셰익스피어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각 대륙의 도로와 철도 건설을 지원하며 전 지구적 교통망을 재편하고 있는 중국건설은행의 첫 해외 지점이 두바이와 도하에 생긴 점 또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한 중국 회사의 이름이 하필이면 알리바바(Alibaba.com)라는 점 역시도 퍽이나 상징적이다. 때마침 <서유기(西遊記)>의 영화화 소식도 들려온다. 서역으로의 여행, 작금의 변화에 안성맞춤한 적기의 문화적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천일야화>부터 <서유기>까지, 동방과 서역의 고전문학들이 새 천년의 킬러 콘텐츠가 되고 있다.

▲ 중국 이우의 이슬람 모스크. ⓒthemuslimtimes.org

푸사와 한자(漢字) : 온라인 실크로드

이처럼 중원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는 물류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 각종 경전들과 문헌들이 전파되고 번역되는 문류(文流)의 유통망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알 자지라 방송의 대약진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보도에서 남다른 관점의 보도로 존재감을 입증한 알 자지라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그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그래서 모두가 CNN을 볼 때, CNN은 알 자지라를 본다는 농반진반도 떠돌 정도가 되었다. 아랍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생산 및 유통의 독점 구조를 허물어뜨린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도 않았다. 알 자지라는 아랍 세계와 중국을 직접 잇는 역할도 떠맡고 있다. 천안문 광장의 고층 빌딩에 자리한 알 자지라 방송국 베이징 사무소는 <아이 온 차이나(Eye on China)> 프로그램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매주 방영하는 세 시간짜리 방송으로, 그 질과 양에서 독보적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CNN이나 BBC, NHK의 수준을 능가한다.

덕분에 '중국의 실험'을 일컫는 아랍어인 "Al Tajriba Al Siniya" 같은 어휘들이 익숙해질 정도이다. 섭외력 또한 발군이다. BBC의 <하드토크(HARDtalk)>를 연상시키는 고품격 대담 프로그램인 <빌라 후도우드(Bila Hudoud)>에는 현직에 몸담고 있는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직접 출연해서 아랍어로 라이브 인터뷰를 선보이며 매력 공세를 펼친다. 냉전기 제3세계 연대를 표명하며 아랍과 중동으로 유학 갔던 인재들이 새 천 년 온라인 실크로드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이나 중국 언론에서도 아랍 세계의 경제적 변화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기사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카이로의 11층짜리 포스트모던한 건물에 자리한 <신화통신>의 아랍 지부는 중국인 특파원만 30명에 이른다. 북아프리카부터 중동에 이르기까지 범아랍 세계의 뉴스를 중국어와 아랍어 및 영어로 송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당국은 퍽이나 우호적인 반응이다. 서구 미디어보다 더 공정하고, 더 객관적이며, 더 포괄적인 보도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즉 영어권 매체를 통하지 않는 서역과 중원의 직접적인 소통 및 정보 교환 또한 미디어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재균형(rebalancing)' 현상의 일환으로 접수할 수 있겠다.

물류와 문류의 상호 진화는 인류(人流)도 촉발시키고 있다. 14억, 중국의 인산인해에서 2000만 무슬림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방불한 국가 수준의 인구이지만, 중원의 규모가 워낙 압도적인 탓에 '소수 민족'으로 간주되고 만다. 간혹 신장 위구르족의 폭동만이 '중국 때리기'의 일환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끌 뿐이다. 그래서 중국의 2000만 무슬림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1000만 회족(回族)의 변화에는 채 눈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아랍의 실크로드가 재가동되면서 중원과 서역을 잇는 접착제 역할을 했던 회족 사회가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14세기 모로코에서 출발해 중국까지 도달했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길을 되밟아 오르며 북아프리카까지 원정을 갔던 사람이 정화였다. 정화 또한 무슬림이었으니, 그 후손들과 후예들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영영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니, 적지 않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원에 터를 잡고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변신하여 생계를 꾸려갔던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김새는 한족과 닮아갔고, 입말도 중국어가 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슬람을 믿었고, 코란을 읽었다. 그들이 바로 회족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중국과 아랍 간 왕성했던 교류의 산물이고 흔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회족들이 다시 아랍어를 장착하여 실크로드 재개장의 주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옛 선조들이 했던 바로 그 역할, 중원과 서역 사이의 통역관이 되어서 말이다.

개혁 개방 초기 두 개에 불과했던 아랍어 교육 기관은 현재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1만 명을 넘어섰다. 회족 거주 지역의 모스크 담벼락에는 아랍어 교습소 광고들로 빼곡하다. 조상들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청년 회족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 된 것이다. 작게는 중국의 개혁 개방에, 크게는 지구적 시장 경제에 적응하는 방편이 되어주었다. 딱히 정부가 주도한 정책적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풀뿌리 생활세계의 변동에 가깝다. 회족들에게 이슬람은 가장 유력한 생계 수단이자 고용 창출의 기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중원과 서역의 그물망은 더더욱 촘촘하게 엮여가고 있다.

즉, 회족들이 개혁 개방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이슬람을 고수하고 코란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아랍어가 국적에 상관없이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통하는 것도 코란으로 기록된 '보편 언어'로서의 표준 아랍어, 푸사(Fusha)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 자지라 방송이 단기간에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푸사로 방송하는 것과 직결된다. 입말이 아니라 글말로 방송함으로써 13억 무슬림 전체를 시청자로 삼아 글로벌한 수준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푸사라는 고전어야말로 새천년 (재)부상하는 '이슬람 회랑'의 중추신경이다.

푸사와 한자는 21세기 중엽이면 알파벳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는 문자가 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전 지구적 안보 상황을 연구하는 군사 외교 전문가라면 반드시 푸사를 익혀야 할 것이며, 세계적인 금융 기관에 근무할수록 더더욱 한자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온라인 실크로드가 진척되면 될수록 입말이 아니라 글말, 구어가 아니라 문어가 승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음이 흥미롭다.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확산되었던 언문일치의 세계, 즉 국어와 국문으로 쪼개지는 국가 간 체제가 고루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랍 세계와 중화 세계가 일찍이 구현했던 이미지 문자에 기반을 둔 일어다음(一語多音)의 네트워크형 세계가 디지털 신대륙으로부터 (다시) 펼쳐지고 있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지리상의 발견'이다.

평평한 세계 : 비정상의 정상화

옛 세계의 (재)발견만큼이나 세계는 (다시) 평평해지고 있다. 평평한 세계는 그러나 서구화도, 미국화도 아니다. 제도의 수렴이라기보다는 문명적 다양화이며, 단극화는커녕 다극화가 역력하다. 그래서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말이 더없이 적절하다. 19세기의 대분기 이래 심화되었던 전 지구적 불균형이 마침내 재균형 상태를 향해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말을 보탤 수도 있겠다. 고로 중국의 (재)부상을 겨냥한 미국의 재균형 정책은 심각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패권국의 전형적인 프레임 설정이자, 개념의 오용이고 오염이라 하겠다. 언제나 말을 고쳐 잡고 이름을 바로 잡는 작업(正名)은 중요하다. 인식과 인지는 그 자체로 실천적이며 수행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재)부상이 패권의 이행도 아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전에 빗댄 독법도 그릇된 것이다. 실상은 중국만의 단독 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을 필두도 한 비서구 문명권의 동시적인 재부상이다.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Burj Dubai)와 상하이의 동방명주(東方明珠)는 함께 빛을 발하고 있다. 서역과 중원은 공진화하고 있다. 세계체제의 중심-주변관계, 그 식민성과 종속성을 복제하지 않는다. 이 또한 평평한 세계로의 이행, '재균형'에 값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크로드의 부활을 탈균형에서 재균형으로 반전하는 '정상화' 과정의 여러 경로 가운데 한 축(pivot)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아울러 재균형을 지향하는 또 다른 유력한 축으로 유라시아도 있다.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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