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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실을 규명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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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실을 규명하는 방식 [민교협의 정치시평]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의 차이
세월호를 둘러싼 두 가지 진실의 대립 - 공식적인 사실과 사회적 진실 

지금 두 가지 진실이 대립하고 있다. 영화 <라쇼몽>도 아니다.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어떤'의문사'를 두고, 두 가지 진실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파헤칠 것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모두가 짐작할만한 일이다. 그렇다. 이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4월 16일 세월호 참극을 두고 두 가지의 진실이 대립중이다. - 공식적인 사실과 사회적인 진실, 국가와 정부가 내놓은 담화와 사회적인 질문들이 찾아낸 진실. 공식적인 사실은 현재까지 정부와 검찰이 밝혀낸 사실이고 기소된 내용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진실은 세월호 참극이 벌어진 침몰의 원인과 구조 실패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를 도저히 믿지 못하는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규명해내고자 하는 진상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실은 세 키워드로 구성된다. - 유병언, 해경, 선장과 선원들. 정부와 검찰은 세월호의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과 그 일가의 탐욕이 세월호 참극의 침몰 원인이라고 보고 대대적인 추격 검거전을 펼쳤고, 급기야 유병언이라는 주검이 발견됐다. 한편의 엽기 공포 컬트영화 같다. 

세월호의 소유주가 세월호 참사와 분명히 관련이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탐욕이 참사로 이어지기까지는 채워 넣어야할 퍼즐이 너무 널려 있다. - 유병언의 비호 세력, 세월호의 운항을 관리감독 하는 주체 등. 유병언 일가로 축소될 수 없는, 침몰을 부른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배후의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을 가해자로 지목한 이후, 침몰을 부른 원인제공자들에 대한 폭넓은 검토는 아예 실종돼버렸고, 유병언 일가에 대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전혀 침몰과 상관도 없는 일들이 황색언론들에 의해 쏟아지면서 세월호 침몰을 부른 원인에 대한 의문을 희석시켜버렸다. 그래서 침몰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정부는 처음에 거론조차 않던 해경을 지목했다. 해경은 구조 실패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다. 아니 현장에서 구조를 해야 할 주체다. 우리는 안다, 그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처신했는지. 그래서 분노했다. 하지만 해경이 왜 그렇게 구조에 소극적이었는가를 단지 무능하고 지각없는 혹은 훈련이 부족한 해경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배를 버리고 반바지 차림으로 도망친 선장과 슬그머니 내뺀 선원들이 있다. 이들은 박대통령이 애초부터 지목한 일차적 가해자들이다. 대통령은 세월호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그들을 살인자로 규정했고 심지어 살인죄로 기소해야한다고 죄목까지 선정해주었다.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고 일차적으로 도망친 그들은 분명히 노동윤리를 어겼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가 책임도 자격도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왜 해경이 그들의 도주를 돕고 나아가 해경의 아파트에 숨기고 외부와의 접촉을 막았는지, 그것도 여전히 해명되어야한다. 정부가 현재까지 밝혀낸 '공식적인' 사실은 이렇듯 허점이 많다.

이에 대해서 유족들은 그것은 표면적인 사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으로는 진상이 모두 규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구조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도, 최종적인 책임도 알지 못한다. 지금 처벌되고 기소된 자들이 처벌받아야할 모든 이들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이것으로 끝을 낼 수도 없다고 본다. 정부가 내놓는 공식적인 사실 앞에서 유족들은 그냥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여아가 시간을 보내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힘겨루기에만 열중하고, 나아가 세월호 침몰과 구조 실패에 얽힌 진상규명을 위한 시도로부터 멀어지는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식들을 먼저 보낸 애통함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수용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했다. 그들은 그것이 바로 죽은 가족들에 대해 무엇이라도 하는 길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구조되지 못한 채 죽어간 그들을 위해 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마지막 남은 일은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누가 죽였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바로, 깜깜한 바다 속으로 영문도 모른 채 구조만 기다리다 결국 수장된 이들,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와 바로 지척을 맴돌던 해경선이 자신들을 곧 구해주리라 믿으며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 이 국가와 정부를 믿었던 죄밖에는 없었던 너무도 순정했던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봤던 것이다. 유족들 중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죽은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왜 죽었나요라고 물을 때 해줄 수 있는 답이라도 있어야할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아니 유족들뿐 아니라 이 참극에 경악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이 죽음들을 구조하지는 못했지만, 이 죽음들에 얽힌 진실은 알아야만 하는 것 아닌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진실이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었다.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누가 그런 구조를 지연시켰는지, 그리고 왜 세월호는 침몰했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오히려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은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있다. 왜 국정원은 세월호의 증축과정에 일일이 지지를 했는지, 어떤 연유로 세월호는 국정원의 관리대상이 되었는지, 세월호와 국정원의 관계는 무엇인지도 새로운 쟁점이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이후 구조의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은 왜 그렇게 다급한 골든타임의 시간대에 7시간동안 사라졌는지, 왜 정부는 그 시간대 대통령의 행적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지도 새로운 쟁점이다. 은폐할 것이 없다면 진상규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나

여기서 과거를 한번 돌이켜보자. 세월호의 참극에 대한 진상규명은 두 가지의 진실이 대립하면서 치열한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나는 세월호 참극이 이제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국면'적인 쟁점으로 전화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물론 여러 가지 조건을 확보할 때만 말이다). 세월호 참극에 연루된 자들, 하부부터 최종심급까지의 원인제공자들, 국가와 사회, 정부(정권)와 자본이 얽힌 연쇄의 진상이 규명된다면 우리는 어떤 진실에 마주치게 될까. 304명(294명의 주검과 10명의 실종자)의 '집단 의문사'는 어쩌면 87년 박종철 의문사사건과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육관 간접선거의 대통령제를 두고 개헌과 호헌이 부딪치는 그 국면에서 터진 박종철 의문치사사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결국 정치적인 풍향을 완전히 바꿔 놓고, 6월 민주항쟁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내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다. 아니, 이렇게 진상규명이 정치화되는가의 방식과 절차, 담론과 주체의 개입의 87년 의문사로 이 사건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80년대 비합법 혹은 반합법 국면에서 '운동권'은 어떤 사건이 발발하면 스스로 '진실'을 규명해야만 했다. '진상'을 드러내고 폭로해야 했다. 권력도 언론도 믿을 것이 못됐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이 바로 은폐의 주체였고, 동조자였기 때문이다. 혹은 언론의 경우 원치 않아도 기사가 삭제되고 누락되고 수정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그것이 의문사든 고문치사든 실족사든, 혹은 원진 레이온의 산업재해 사망이든, 일단 '진상조사단(혹은 위원회)'을 구성했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행 이후, 서서히 우리는 진상조사단을 자체적으로 구성하여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명문화된 '특별검사'를 요구(혹은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주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특검 도입하라!"를 수없이 끝없이 외쳤다 이유는? 특별검사제도, 바로 그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로 이런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면서, 허울뿐인 그 제도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사건의 진상규명은 항상 특별검사제 도입에서 시작하는 것!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특검을 중심으로 한 진상규명활동은, 일단 특검 도입여부를 위한 싸움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거나, 그렇게 힘들게 도입한 특검은 그냥 푸닥거리, 정부의 '진상'에 대한 해명을 공식화해주는 요식절차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는 특검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거의 없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진상규명의 노력과 투쟁은 특검 도입!과 특검의 활동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든 의도했던 결과이든!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특검제도 이전엔 '국회 청문회'가 그렇게 진상규명 방식을 과도기적으로 대체했었다. 노무현이라는 청문회 스타만을 남긴 채!).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의 차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럼 이전은 어땠는가. 변한 것을 알기 위해서 과거의 '진상규명' 방식과 오늘의 특검중심의 사고를 대비해보자. 과거에는(90년대 중반이전) 사회운동이 앞장서서 진상을 조사하고, 스스로 진실을 규명하고, 사실의 왜곡을 폭로하여 대중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진상 규명 과정은 곧 운동이 대중과 결합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진상조사위원회는 법률주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지를 모으는 과정,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을 구축하는 과정이었기에, 사회 각계가 망라된, 법을 넘어선 진상조사기구였다. 심지어 풀뿌리 대중과 민중주도의 진상조사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호사나 검사출신 특별검사 등 '법률가'라는 대리인 내세우기를 목표로 삼는다. 근데 양자의 차이는 단지 조사의 단위나 주체의 차이만이 아니다 - 즉 사회운동 제 단체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단과 법률가들이 주체가 되는 특별검사라는 차이 이상의 것이고, 그 이상의 정치적인 의미와 효과를 차별적으로 낳게 된다. 
우선 진상조사단은 '사회적인' 사실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문의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과 질문에 대해 답하는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그것은 출발부터 법률적 검토나 제도적 차원의 기소 가능성으로 자신의 '진실'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검사는 기소와 고발을 위해서 '조사'한다. 양자는 엄연히 다르다. 즉 전자는 법보다 사회적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은 법과 제도 국가 자체까지 조사한다. 하지만 후자 - 특검은 있는 실정법내의 위반사실을 중심으로 진상을 규명한다, 그것은 법과 제도나 최고 통치권자까지 문제 삼기 어렵다. 

둘째, 운동 주체의 진상조사는 특별검사 도입을 위한 싸움을 건너뛰고, 제도적인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이미 진실을 추구하고, 그리고 진실을 알아야만 되는 세력의 '진실규명' 작업이다. 하지만 특별검사는 사회 안에 들끓는 모든 의문들에 대해서 해명할 의사가 없다 - 왜냐하면 법률적 검토로 제한되기에. 그래서 특별검사는 유언비어를 차단하지 못한다. 아니, 유언비어는 특검의 한계를 비웃고 그 이상의 진실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세 번째로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는 누군가의 허락을 얻기 위해 졸라대고, 죽어라고 외치고, 그러면서 진 다 빠지고, 또 외치고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사건이 발발하면 제일먼저! 진상조사에 들어간다. 왜냐! 제도적 권위가 주도하는 진실규명활동에 대해서, 그 의지에 대해서 불신할뿐더러, 그렇게 진상을 규명하는 방식에서는 조사주체가 조사대상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검사제는 앞의 성격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성 자체가 요원하다. 그리고 조사대상중 최상급은 빠지고 만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유족들이 구성하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를 두고 정부와 여당의 반대 논점은 이 점에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첫째 논점인 민간인에게 수사권 등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은, 이미 민간 변호사들이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예들이 있기 때문에 궁색한 말이다. 그리고 남는 것이 '자력구제금지'조항이다. 즉 피해자가 그 피해를 구조하는데 있어서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유족이 들어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근데 이 자력구제금지는 가해자들에게 먼저 해야 할 말이다. 대통령을 포함하는 정부 모든 기관들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제공자이고 구조 실패로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이 구성하는데 칼자루를 쥔 특별검사라는 것, 그들이 구성하는데 다수를 임명할 진상조사위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검사에 대한 임명권을 대통령이 가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력구제금지 원칙에 배치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설령 양보한다고 해도 예상되는 가해자보다는 현재 존재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로 진상조사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다.  

마지막 논점.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의 주체가 될 때, 그것은 바로 '책임자 처벌'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는 공권력까지도 조사하면서, 그 진상규명과정이 바로 책임자를 획정하고, 나아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제해가는 과정이다. 즉 책임을 물어야할 자를 가장 아래부터 가장 위까지, 꼬리부터 머리까지 다! 조사의 문을 열어두고 조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퇴진' 주장에 반대하면서 진상규명에 초점을 두자고 하는데, 그것은 이분법적이다, 즉 진상규명과 퇴진주장이 마치 별개인 양 치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상규명을 외친다고 해서, 다 똑같은 의미가 아닌 것이다. 아니 진상규명의 끝이 다 똑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호 정국에서 우리는 진상규명!이라는 구호조차도 다들 딴 뜻으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다시 말한다. 진상규명 '끝까지' 해보자. 그리고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자. 대통령도 물러나서 그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기다리라 하자.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사회적 처벌도 감수하라고 하자. 이게 바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하나로 만드는 가장 올바른 길이다.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처벌! 그 방향은 이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힘으로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자 

지금 진상규명 문제는 세월호 침몰 및 구조 실패에 대해서 특별검사를 도입할 것인가 혹은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사회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세우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축소 환원돼버린 형국이다.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는 허울뿐인 진상조사위원회를 세우고 정부와 대통령이 주도하는 상설 특별검사로 진상규명의 주체를 세우자고 한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족들이 원하지도 않은 의사자 지정 등으로 논란만 만들더니, 수사권만 가진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와 특별검사 도입에서 자신들의 추천권 부여를 두고 샅바싸움만 하다가 급기야 8월7일 여야 간의'8.7 야합'을 감행했다. 이들의 야합은 대중의 격분에 직면한 새정치민주연합이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꼬이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합의를 완전히 백지화하고 철회한 것이 아니라, 이 합의 내용을 기준으로 재협상(실제로는 추가협상)하자고 한다. 결국 특별법의 핵심내용은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특별검사로 무게중심은 이동해버렸다. 나아가 사회적인 의지를 모은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정이라기보다 앞으로는 여야 제도정치권의 협상과 흥정에 진상규명 작업이 매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특별법에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과 특별검사를 병행 포함함으로써 애초부터 불씨가 될 소지가 있었다. 즉 진상조사위원회와 특검 중 어디를 중심으로 두는가의 문제. 알고 보면 수사권 기소권이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사실 특별검사는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법적 기소를 위한 보충적 역할을 하면 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원화했고, 여야는 그러면서 특별법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유족 특별법을 수용하라는 요구는 재협상하라는 요구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최소한 수사권" 부여와 "특별검사 추천권"문제로, 다시 더욱 축소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봐야한다. 정말 우리는 진상규명을 원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 수사권 기소권 있는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 사회적 의지를 모은 그리고 사회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을 필요하다고 보는가. 과연 특별검사가 세월호 참극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는 혹 이쯤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어느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과거 역대 모든 특별검사의 수사과정과 책임자 처벌의 과정은 어땠는가.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여러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만든'재난안전가족협의회'회원들이 국회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유족들을 방문하여 한 말이 있다. 부디 이번에는 진상규명을 하라고, 책임자를 찾아내 제대로 처벌하라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게 하지 말라고. 맞다. 진상규명 없이 책임자 처벌 없고, 책임자에 대해 불관용의 원칙으로 제대로 처벌을 이루지 않고서 재발방지는 없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독립적인 사회적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기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국가, 최종 통치권자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그들에게도 수사와 기소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가 선결조건이다. 

그런데 그 특별법 제정이 표류하고 있다. 여야 간의 흥정의 대상, 교섭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다져야한다. 그리고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가 정말 세월호의 진실을 원하는지. 그리고 다시 사회적인 힘을 결집해야한다. 특별법 입법 자체를 사회적인 동원을 통하여, 사회적인 힘을 통하여 만들 때, 그것이 제대로 만든 특별법이 될 것이고,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를 우뚝 세우는 길이다. 

우선 8월14일부터 16일까지 유족이 32일간 단식농성중인 광화문 세월호 416광장을 낮밤으로 사수하자. 그리고 8월15일 오후 3시 10만 명이 모이는 범국민대회로 모이자. 꼭 모이자. 그리고 광화문 밖에서도 가능하면 많은 움직임들을 만들어내자, 격동하자, 밖에서 더 큰 파장을 만들어내자. 이것으로 광화문을 에워싸자. 한 가지 중요한 행동으로'8.15 노동자-시민행진'이 있다. 노동자들이 세월호의 참극을 자신의 문제로 안고, 그 죽음을 산업재해와 파업으로 인해 죽은 혹은 자결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들과 동일한 문제로 바라보며 노동자행동을 구성하고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행동을 모아왔다. 이들이 8월15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전교조 304인의 교사노동자들이 선두에 서서 행진을 시작하여, 12시 신촌(유플러스)에서 집결하여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며 행진을 이어서, 오후 3시에 광화문 광장 국민대회장에 입장할 것이다. 이 움직임에도 많은 호응이 있기를 바란다. 노동자라면 시민이라면 함께 하는 행진을 통해서 세월호 광장에서 유족들을 만나자!

시간은 이미 너무 많이 흘러버리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이후에 보낸 그 통한의 시간처럼 말이다. 그들을 다시 한 번,ㅡ 이번엔 사회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사회적 진실마저 수장시킬 수 없는 것이다. 8.15 광복절에 광장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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