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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한 나라에서 다시금 일어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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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한 나라에서 다시금 일어서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띄우는 편지] <2> "'진실 규명' 없이 세월호를 보낼 수는 없다"
6년여의 공부 기간과 4년여의 수련 끝에 목사 안수를 받은 자식이 3년 뒤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 어머니는 생의 한 날개가 푹 꺾여버린 슬픔으로 지내시다 결국 5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 아들이 당신의 뜻에 얼마나 순종한 자식인데, 당신은 왜 우리 아들을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 버렸나? 세상의 악당들은 다 내버려두고 왜 착하디 착한 우리 아들을 데려갔나?’ 남은 생애 내내 가시지 않았던 어머니의 슬픔에는 신에 대한 독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분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고, 고독에 침잠했다. 그리고, 끝내 당신도 병을 얻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흔히 애간장이 끊어진다고 한다. 사냥당한 새끼 사슴의 곁에서 함께 죽은 어미사슴의 배를 갈랐더니 장이 끊어져 있었다는 불교설화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설화적 과장이 아닐 것이다. 실제가 그러할 것이다. 내가 지켜본 어머니의 마지막 5년이 그러했으니깐.

세월호의 유족들은 어떠할까. 삼백명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한 사람 한 사람 부모들의 일상에는 지금 어떤 분노와 고독이 자리잡고 있을까. 잊기 위해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잊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또한 어떻게 지독하게 싸워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 5년을 어머니의 곁에서 지냈던 내가 세상을 떠난 형에 관해서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듯,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아무런 부탁도 권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들이 경찰에 둘러싸인 채 삼보일배를 하는 사진을 보면 더할 수 없이 마음이 비감해진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을까. 아니, 왜 유족들이 지금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삼보일배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모든 죽음에는 그 나름의 사회 역사적인 의미가 있겠으나, 그것이 세월호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월호는 너무나 특별하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은 우리 사회가 만난 하나의 중대한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회’라는 동시대, ‘역사’라는 통시대가 빚어 놓은 질그릇 속에 담겨진 하나의 씨앗콩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는 이 질그릇에서 다른 생애의 농토로 옮겨 심겨질 것이다. 이번 생에서 우리가 담기게 된 이 질그릇은 식민지와 전쟁, 군사독재를 거쳤으며, 고도 경제성장으로 부풀어올랐으나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형편없는 조국 대한민국이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 보냈다. 백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지어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 조세희, ‘무산된 꿈, 희망의 복원, <당대비평> 창간사 중에서

그리고 우리 앞에는 세월호라는 참담한 계기가 엎드려 있다. 나는 지금 우리가 해방공간에서 반민특위가 구성되던 시점과 비슷한 무게를 갖는 어떤 중대한 분기점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반민특위가 넘어진 뒤에 우리는 일제 36년과 앞뒤로 가로놓인 100년의 시간을 바로잡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의와 진실은 언제나 숨죽여야 했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매도당했으며, 끝내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를 만난 것이다.

세월호를 이렇게 떠나보낸 뒤에 이 사회가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세월호 앞뒤로 호명될 수많은 비극, 참사, 살육, 유린의 시간들을, 지금 이 나라에 가득 찬 크고 작은 세월호들의 진실과 정의를 세월호를 지렛대로 들어 올려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정신적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 이 산더미 같은 의혹과 폭력의 아수라장에서 한 조각의 진실도 정의도 밝히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나라로서 지탱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침몰시킨 자들은 지금도 또 다른 세월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이 앞으로 어떤 세월호를 예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기타를 뜯는 나는 술을 한잔 걸치면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가수 이승환 씨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100일 촛불집회에서 바로 그 노래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메어왔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우리는 세월호를 보낼 수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가늠할 수 없으나, 지금 우리는 그 마음자리 비슷한 곳에라도 가 닿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있기 위해, 이 망한 나라에서 다시금 일어서기 위해. 그 최소한의 조건은 세월호 특별법,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단,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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