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월드컵' 브라질-'꽃청춘' 페루 고속철, 누가 놓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월드컵' 브라질-'꽃청춘' 페루 고속철, 누가 놓나? [동아시아를 묻다] 재균형의 축 ③ : 브릭스
페레스트로이카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새로운 지구 질서를 규명하는 몇몇 개념들이 있었다. G20, G2, G0…. 유력한 것은 G20이었다. 위중한 시국을 타개하는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로 부상했다.

유엔(UN), IMF, 세계은행 등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기축이었던 주요 국제기구들을 21세기의 환경과 조건에 맞게 혁신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중에서도 핵심 쟁점은 국가별 권한 조정이었다. 서구(West)에 견줘 비서구(Rest)의 비중을 늘리고, 북반구(North)에 비해 남반구(South)의 지분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었다.

그러나 진전이 거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 개편은 물 건너갔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금지도 무산되었다. IMF 개혁 또한 좌초되었다. 미국, 유럽, 일본의 과대 대표를 대신하여 신흥국들에게 합당한 투표권을 양도하는 조정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하지 않아 장기 표류 상태다. 무엇보다 G20 자체의 지속력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례적인 회동 일정도 없을 뿐더러, 업무를 주관할 사무국과 사무총장 또한 없다. 제도화에 실패함으로써 유명무실한 기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새 천년 초두에 G20이 출범했다는 사실만은 특기할만하다. 구성원의 면면에서 서구가 지배했던 지난 200년의 종식을 상징하는 탓이다. 거슬러 오르면, 1955년 반둥회의에 가 닿는다. G20에 합류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모두 반둥회의 참가국이었다. 미국이 기획하고 소련이 합을 맞추었던 동/서 냉전을 남/북 구도로 전환시키고자 했던 획기적 사건이었다.

세계는 동/서가 아니라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다! 탈냉전의 조숙한 맹아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60년을 지나 마침내 남-북 간 회의 기구가 마련된 것이다. 19세기의 West-Rest, 20세기의 North-South가 모두 구질서가 되었다. 끝내 '기울어진 운동장'이 균형점을 되찾아간다. '재균형'이고,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G20이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면, '재균형'의 실질적 주체로는 브릭스(BRICS)가 돋보인다. 애당초 브릭스의 향방에 회의적이었다. 명명부터 스스로 제출한 것이 아니다. 골드만삭스의 조어였다. 2001년이었고, 브릭(BRIC)이라 했다. 남아공까지 포함하여 브릭스로 거듭난 것은 2010년이었다.

골드만삭스는 21세기 첫 10년간 세계 GDP 성장의 3분의 1을 브릭스가 차지했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6분의 1에서 4분의 1로 성장했다며 브릭스 개념의 유효함을 역설한다. 나아가 2018년이면 브릭스의 총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고도 전망한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투자 컨설턴트의 시각에서 제기된 '신흥 경제권'을 지칭했을 따름이지,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말의 힘, 호명의 수행적 효과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의미가 되어 돌아왔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 분명한 실체가 된 것이다. 브릭스 정상 회담이 정례화 했을 뿐 아니라, 브릭스 개발은행까지 창설되었다. 불과 5년, 전광석화다. 단숨에 제도화에 성공했다는 점은 전혀 밑바탕이 없던 구상이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온당하겠다. 그 기원을 추적하노라면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역, 미하일 고르바초프이다. 그의 '신사고' 외교 정책이야말로 브릭스의 원조에 가까운 것이다.

1985년 집권 이후, 그는 세계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며 소련의 역점을 동구에서 동방으로 선회할 것을 촉구했다. 소련판 '전환 시대의 논리'였다. 19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이 대표적이다. 의중은 소련-인도-중국의 삼각 축을 형성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 세계에 맞서는 것이었다. 당시 세 국가의 인구를 합치면 20억, 거대한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즉 페레스트로이카의 목적은 소련의 혁신을 통한 세계의 재건이었지, 서방으로의 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하여 '유럽 공동의 집'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아시아에서도 세 국가가 주축이 되는 아시아 집단 안보 체제를 궁리했다. 일종의 '아시아 공동의 집'이다. 그 '유럽의 집'과 '아시아의 집'을 접합하면 작금의 '유라시아 공동체'에 방불해진다. 여기에 브라질 대통령도 만나 소련-중국-인도의 삼각 축과 협조할 의사를 타진했으니, 고르바초프야말로 브릭스의 시조 격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아가 일본도 끌어들이고자 오키나와 방문까지 추진했었다. 소련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신사고'는 작파되었으되,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당시 KGB에서 근무하고 있던 푸틴이 그 뜻을 한층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입안자라면, 푸틴은 계승자이다. 페레스트로이카(=재건)는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 재건

월드컵 결승전, 푸틴은 리오를 찾아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다음 대회 주최국이 러시아이다. 월드컵 일정이 묘하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브릭스 국가들이 순차적으로 개최한다. 공은 둥글고, 경기장은 평평하다. 지구도 둥글고, 세계도 평평해지고 있다.

푸틴의 브라질 방문도 월드컵에 한정되지 않았다.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인 엘비라 나비올리나를 대동했다. 그녀는 남미 국가들과 브릭스 국가들의 교역에서 달러 사용을 배제할 것을 주장하는 선봉장이다. 푸틴의 복심인 것이다.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카스트로와의 회동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36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 줌으로써 남미 국가들에 매력 공세를 펼쳤다.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지도자들과도 회동을 가졌다.

같은 기간 시진핑 역시 남미를 순회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다. 중국에게 남미는 남-남(South-South) 합작의 경제 특구이자, 종속 이론을 대체하는 호혜 무역의 실험구이다. 서유럽의 마셜 플랜과도 흡사하게 '초대받은 제국' 노릇을 하려는 태세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외교 정책이 다극화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미 지도자들의 목표와 합치하는 바 크다.

정점은 역시 포탈레자에서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의였다. 500억 달러 규모로 출발한 브릭스 개발은행은 장차 그 자본력을 3500억 달러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1000억 달러 규모의 준비통화기금도 마련키로 했다. 가맹국이 금융 위기에 처했을 때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IMF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으로, 공동 비축 자금의 일부를 각국의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는 세계은행의 역할도 도맡는다. 또 중앙은행들끼리 각국의 통화를 교환하는 제도(스왑프)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무역 대금을 결제하는 방침도 확정했다. 달러의 위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장차 여타 신흥 국가들의 가입까지 고려하자면, 1945년 이래 가장 중차대한 국제 금융 질서의 재건 구상이라고 하겠다.

물론 브릭스 은행이 당장 IMF와 세계은행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하다. 미국 주도의 금융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평가 또한 엄살이거나 과장이다. '재균형'으로 이행하는 디딤돌을 하나 더 확보했다고 하는 편이 한층 합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개입으로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 구상이 좌절되었던 1997~98년과 견주자면, 그간 세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가혹한 긴축 재정과 국유 자산의 민영화 요구가 사실상의 '신식민주의'였음을 '97년 체제'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던 바이다. 그럼에도 IMF 이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달리 수가 없었다. '쇼크 독트린'을 감당하고 감내했던 것이다. 마침내 대안이 생긴 것이다.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가 낡은 구호가 되었다.

브릭스 은행이라고 해서 자선 사업을 펼칠 리는 만무하다. 브릭스 자금에 의존해 구제를 받는 국가들은 브릭스와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관건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생산적이고 호혜적인 경제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브릭스 은행의 자매격인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지리 재편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은 세계은행의 아시아 판이었던 아시아개발은행의 대체재에 가깝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된 1966년에 출범한 아시아개발은행은 일본인이 줄곧 총재를 맡아 왔다. 태생부터 반공적, 반중적, 친미적 색채가 농후했다. 지금도 출자 비율에서 미국이 15.7%, 일본이 15.6%을 차지한다. 중국은 5.5%에 그친다. '불균형'이 여전하다. 중국 포위망의 혐의가 없지 않다.

반해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은 서역과 남방, 북방으로 활로를 찾는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정비를 원조하여 옛 길을 복구하고 갱신할 방침이다. 중앙아시아와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면으로는 육지 실크로도(초원길)를,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 등 인도양을 향해서는 해양 실크로드(바닷길)을 추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유럽과 러시아도 연동하여 유라시아를 하나의 경제 단위로 엮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그 주역은 단연 고속철도다. 중국은 고속철도 대국이다. 중원을 가로지르는 국내선 거리만 1만 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전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리다. 가장 길고, 가장 크며, 가장 빠른 고속철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 시속은 380킬로미터, 시험 운행은 486킬로미터까지 돌파했다. 그래서 핑퐁 외교와 팬더 외교를 이어 '고속철 외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난 7월, 중국-브라질-페루 3국은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남미의 대륙 횡단 고속철 건설을 합의했다. 10년 내 완공을 목표로, 장장 5600킬로미터를 잇는 대장정이다. 지정학 및 지경학적 의미가 심원하다. 남미는 지하자원, 농산품이 풍부하다. 중국 경제의 발전과 수요 확대로 남미와의 무역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10년 사이,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페루 등의 대중국 수출액은 10배가량 늘어났다. 브라질의 철, 페루의 구리, 아르헨티나의 대두 등이 중국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 중국-남미 교역의 거개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다. 파나마 운하를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국가가 중국일 정도이다.

헌데 올해 개통 100주년을 맞는 파나마 운하가 여전히 미국의 입김 아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쳐 말해 남미의 대륙 횡단 고속철 건설은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지 않는 물류망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용과 시간은 절반으로 줄고, 물동량은 더욱 늘어난다. 그만큼 미국의 자장에서 벗어난 남미와 중국의 경제통합은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미래도 밝지 않다. 유라시아 고속철 때문이다. 지난 7월 25일, 수도 앙카라와 최대 도시 이스탄불을 잇는 터키의 고속철이 개장했다. 중국과의 합작품이었다. 이 고속철 역시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경유지였던 아나톨리아 고원을 통과한다. 중원과 서역을 잇는 중앙아시아 고속철을 유럽까지 연결하는 관문에 터키가 있는 것이다.

유라시아 고속철의 종점이 될 런던에서도 중국이 고속철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한 영국을 대신하여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비단 영국만이 아니다. 노선 노화가 일반적인 유럽 철도 시장 전체가 중국 고속철의 상업적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프랑스나 일본 등에 견주어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것이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유럽과 동아시아의 바닷길이 완성된다. 작금 남중국해 영토 분쟁의 기저에도 세계 최대의 무역량을 소화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의 특수성이 잠복하고 있다. 미 해군은 물론이고 자위대까지 출몰한다. 형세가 갈수록 험악하다.

범아시아 고속철 회랑은 말라카 해협 의존도를 낮추는 회심의 구상이다. 윈난 성의 쿤밍에서 출발하여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이르는 노선이 이미 건설 중이다. 윈난 성 서부에서 출발하여 미얀마를 잇고, 미얀마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태국으로 이어지는 노선도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의 '1일 생활권'이 머지않았다.

그리하여 유라시아를 종과 횡으로 누비는 고속철 연결망이 완성되면 베이징에서 런던까지 5일 만에 도착하는 '신천지'가 열리게 된다. 수에즈 운하와 말라카 해협을 거치는 해양 노선이 한 달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불가이다. 바다에서 (다시) 육지로, 신대륙의 발견에서 신천지의 재편으로. 대항해 시대 이래 세계 지리의 일대 혁신이다.

지리 재편의 백미는 중국-러시아-캐나다-미국을 잇는 북방 고속철 건설 계획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경유하고 베링 해에 도달한 후. 터널을 통해 태평양을 통과해서 알래스카를 지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닿는 구상이 검토 중에 있다. 총 1만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대한 교통망이 아닐 수 없다.

평균 시속 350킬로미터로 주행한다면 북극 지대의 풍광을 관람하면서 중국에서 미국까지 이틀이 못되어 도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이어붙이는 '시공간 압축'이다. 관건은 베링 해를 통과하는 약 200킬로미터의 해저 터널인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중국은 이미 그 해저 터널 기술을 응용하여 푸젠 성과 대만(타이완)을 잇는 해저 고속철을 건설한다는 복안까지 마련해 두었다. 중화 제국식 통일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편 전쟁이 일어났던 1840년은 영국에서 산업 철도망이 구축된 해이기도 하다. 리버풀과 맨체스터가 런던과 연결됨으로써 대영제국의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서구와 비서구 간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의 노동자들이 신대륙으로 끌려가고 팔려가서 미국과 캐나다의 대륙 횡단 철도 건설에 동원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태평양의 세기'의 초석을 그들이 다진 것이다. 이제 그 쿨리의 후손들이 고속철이라는 최첨단 산업을 장착하여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북극에서 2040년을 예비하는 전 지구적 그물망을 다시 짜고 있다. 지도를 다시 그리고, 지구를 다시 돌리면서, 역사를 커다랗게 반전시키고 있다.

국가 개조

실크로드, 유라시아, 브릭스. 목하 대분기 이래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정하고 축을 바로 세우는 대반전의 기운이 곳곳에서 움튼다. '재균형'은 새 천년의 대세이고 대국(大局)이다. 지난 100년, '탈균형'의 적폐를 해소하고 재균형의 조류에 합류하는 국가 개조가 긴요한 세월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나라의 향로를 일대 전환하는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