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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동거, 당신만은 예외? 그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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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동거, 당신만은 예외? 그건 착각 [프레시안 books] 이상헌·이보아·이정필·박배균 <위험한 동거>
후쿠시마 원전 재앙 이후, 핵이나 방사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무척 커졌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시설물보다 핵발전의 위험성이 가장 크다거나, 방사능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치명적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적어도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나 월성1호기는 폐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이나 SNS를 통해 후쿠시마의 충격적인 소식들이 꾸준히 공개되었던 점이나 이와 관련된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것도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망각되기도 하겠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후쿠시마 핵 사고는 대중에게 위협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 경관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딸린 <위험한 동거>(알트, 2014년 6월 펴냄)도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기획된 책이다. <위험한 동거>는 핵발전소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시선을 구술로 엮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그 역사를 살아온 민중이 자기 언어로 구술하여 엮였을 때가 가장 생생한 스토리가 된다. 가슴으로 공감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머리로도 쉽게 흡수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술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를 체험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네 명의 탈핵, 에너지 또는 공간 문제 전문가들이 2년 동안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엮은 <위험한 동거>도 생생하게 간접 체험을 선물하는 인문학적 역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민들의 구술이 밑바탕을 이루지만, 저자들의 풍부한 현장성과 전문성이 어우러지면서 책의 무게감을 단단하게 뒷받침한다. 표지를 비롯한 책의 편집은 정독하기에 불편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편집이 내용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저자들은 두 가지 커다란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2014년 2월 17일,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울진으로 이동하던 길은 폭설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이동하는 사이, 경주 양남면에 있는 마우나오션리조트가 붕괴하면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붕괴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저자들은 양남면에서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다.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함이 빚어낸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위험의 보편성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징표였다. 두 사건은 위험 사회를 경고할 목적으로 작업했던 저자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당위성을 위험 사회가 스스로 증명해낸 씁쓸한 광경이기도 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위험한 동거'

ⓒ알트
왜 핵발전소는 오늘날과 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입지를 정했을까? 왜 대용량의 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외딴곳에 짓게 되었을까? 왜 도시에는 핵발전소가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시작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과학기술적인 측면이나 사회과학적인 분석이 시도되었지만, 핵발전의 공간적 해석이 부족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그래서 이들은 핵발전소가 남긴 풍경으로서 '위험 경관'이라는 개념으로 이 책을 써나간다. 여기서 '경관'은 자연적으로 놓인 풍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상이한 사람들의 관점의 총합이다.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네 군데 핵발전소 지역 주민과 10년째 송전탑과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이 서로 상이한 사회, 경제, 문화적 차이의 과정 속에서 오는 특수한 경관이기도 하지만,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풍경의 이미지는 중첩되고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편적인 위험 경관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들의 이미지와는 무관하게 경제 발전과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위험 경관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다섯 군데 주민들은 하나같이 정부에서 하는 국책 사업이라는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고,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라는 홍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의 혜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향과 생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상실감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했다. 천혜의 절경도 사라지고, 공동체가 뿔뿔이 흩어졌다. 통일 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경주에 자리한 월성 핵발전소를 '천년 불빛'이라는 그럴싸한 홍보 문구로 포장해 핵발전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대체하고, 영광 핵발전소 정문과 연결된 도로는 4차선이지만 핵발전 단지 인근의 마을로 접어들면 2차선으로 바뀌는 기이한 풍경을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136∼142쪽). 이렇게 경제 발전과 국가주의는 핵의 위험성을 감춰왔고, 초창기 주민들은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핵발전 인근 주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밀양 주민들을 제외하고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주민들의 인식의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주민들은 핵발전 코앞에서 살아가면서 위험에서 비롯된 불안이 일상화되고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어느 순간부터 언젠가 터질지 모른다는 잠재의식이 DNA 속에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받은 충격보다 완화된 형태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한다. 위험 경관이 만들어낸 불안을 생활 속에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외면해왔던 것은 아닌가? 핵발전의 표면적인 위험만 강조할 뿐, 주민들이 내밀한 속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유폐시키지 않았는가?

울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서울 사람들은 전기 요금을 울진보다 5배쯤 내야 해요. 아무 고통 없이 쓰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이 한 대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대도시가 부담해야 할 위험 요소가 지역의 누군가에게 전가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위험은 전기를 타고 대도시와 연결된다는 사실. 핵발전과 송전탑 인근 주민들만 위험한 시설과 동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위험한 동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강조한다.

엄기호는 <단속사회>라는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구의 '곁'에서 이야기하고 글을 써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위험한 동거>는 엄기호가 말하는 '곁을 만드는 도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탈핵이 정답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핵발전과 송전탑으로부터 고통 받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이 책의 무게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연대는 곁의 사람들에게 '경청'함으로써 시작된다는 귀중한 가르침을 이 책으로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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