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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의 '원세훈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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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의 '원세훈 판결'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사법부노조 결성이 필요한 이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대선 기간 중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해온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많은 국민이 뜻밖의 판결에 어안이 벙벙했다. 오죽하면 현직 부장판사가 재판 결과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이것은 마치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궤변이라고 질타하는 글을 올렸겠는가? 

그런데 친 정권 보수 언론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내용에 공감하기 보다는 항의 글을 올린 김동진 판사의 격한 표현을 트집 잡아 그를 견책해야 한다는데 앞장서고 있는 인상이다.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시비를 거는 모양새다. 징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진행 중인 사건의 판결에 법관은 비판을 가하지 않는 것이 외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법관윤리라는 것이다.

법관은 양심과 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사법윤리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판결이 이런 당연한 법관윤리와 민주사회에서 기대되는 판결 기준을 심하게 벗어났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다. 판결이 재판을 맡은 법관 개개인의 잘잘못을 탓하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와 사회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일 때 더욱 그렇다. 

“원세훈 판결”은 국가와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권을 가진 통치권자를 뽑는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한 범죄혐의를 다룬 재판이다. 대통령선거는 국민이 5년에 한 번 국민의 주권을 대행할 대표를 선출하는 중대한 주권행위다. 따라서 대통령선거에 관권이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다.

“원세훈 판결”은 바로 그런 중대한 사건을 다룬 제1차 결론이었다. 그래서 판결에 항의한 김동진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찾아 출력한 다음 퇴근시간 이후에 사무실에서 정독(精讀)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에서 좌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좌파 판사가 아니라 양심적인 판사로서 말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판결문은 204쪽에 달하는 장문(長文)이었다. 2012년 당시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나 있는데도 판결문은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 판사는 이것이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아니면 무엇인가?고 개탄한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도대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이것은 궤변이다! 이렇게 갈파한다. 

친정권 보수 언론은 김 판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비판을 가해서 추후 재판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오를 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판결 직후 즉각 항소할 성질의 사건인데도 검찰은 항소를 마지막까지 미루었다. 여러 언론이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검찰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불법선거의 굴레를 빨리 벗고 싶은 박근혜 정권이기에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엉뚱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 무죄판결에 대한 김동진 판사의 격한 글이 발표되지 않았더라면 검찰에서는 항소 포기를 신중히 고려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김판사의 글이 검찰로 하여금 고민 끝에나마 여론을 의식하고 항소를 결정하게 만든 촉진제다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며 그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생각이다. 김동진 판사의 “폭탄 글”이 보수언론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또 한 번 법원의 심판을 받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김동진 판사의 글을 읽으면서 프랑스 검찰이나 법원의 사법독립운동을 상기해 보게 됐다. 프랑스는 제5공 직후까지도  검찰이 정권의 도구라는 일반 시민의 인식을 씻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 5월의 학생혁명 영향으로 검찰 안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문제에서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이 독립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좌파 성향의 사법관노조(SM)다. 

SM은 강자보다 약자의 권익, 부자보다 가난한 자들의 권익을 보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그러기 위해 정치권력과 언론의 압력을 떨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법관의 헌법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법관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SM은 시민과 약자의 권익이 걸린 재판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징하고 보수 검찰 법관도 논쟁을 불사했다. 80년대 초까지 전법관의 35%가 SM에 가입했다. 지금은 세력이 좀 약화돼 25%선으로 줄었지만 사법관 65%를 장악한 비정치 사법관노조연합(USM)과 함께 사법부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사회당의 올랑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우파의 “정의를 위한 사법관”노조가 새로 출범, 보수 사법관들의 찰학과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결국 3사법관노조가 서로 경쟁 견제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 독립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이념 충돌은 적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느 한 사법노조가 권력의 시녀가 돼 사법부 독립을 희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국 사법부도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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