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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들인 일본, 사재 턴 한국…사전의 길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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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들인 일본, 사재 턴 한국…사전의 길도 달랐다

[프레시안 books : 좌담] <사전, 시대를 엮다> 출간 기념 '누가 사전의 죽음을 말하는가'

200여 년 전 프랑스의 드니 디드로는 21년에 걸쳐 <백과전서>를 편찬했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초판 원본이 4300질인데, 10여 년 동안 유럽에 해적판 4만 질이 돌아 18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항목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여 지식의 우열을 드러내지 않았고 루소, 몽테스키외 등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편찬 과정에 참여했다.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기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상징하는 책이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당대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여 일정한 체계에 따라 분류하고, 책의 형태로 편집·보급하여 사회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지식을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권의 책에 담겠다는 야심. 어찌 보면 꿈같은 이야기, 우리의 상상 속에서나 도달할 수 있는 불가능의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배를 엮다>에는 이 비현실적인 꿈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거는 '사전 귀신'들이 등장한다. 오른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사랑이란, 연애란 무엇인가. 단어 하나하나와 진심으로 마주하며 사전을 완성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전 편찬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녹아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전 귀신'들만큼이나 사전에 애정을 품은 세 사람이 모였다. 사전과 책을 중심으로 일본의 지식문화사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임경택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조선의 백과사전인 유서(類書)를 연구하는 한문학자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포털 사이트의 사전 서비스를 구축하는 정철 다음카카오 지식서비스기획팀 팀장. <사전, 시대를 엮다>(사계절, 2014년 7월 펴냄)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10월 25일 서울 마포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열린 좌담 자리에서였다. 이들은 이 책에 소개된 일본의 사전들과 그 편찬자들의 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동아시아의 과거 사전들을 돌아보고, 포털 사이트가 종이 사전의 콘텐츠를 모두 흡수해버린 현재와 그 연장선상에 놓인 미래를 진단·전망했다.

유서가 보여주는 지식의 생태학

ⓒ사계절
서양에 백과사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유서(類書)가 있다. "사전을 생활지, 민속지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임경택 교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유서, 나아가 책이 동아시아 각국이 문화를 구축하고 교류하는 데 어떻게 쓰였는지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유서를 "일본 문화사를 설명하는 좌표축"으로 삼아 일본의 지식문화사를 재구성한 오스미 가즈오의 <사전, 시대를 엮다>를 발견하고 번역하게 되었다.

"유서는 지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양식과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나라, 각 시대 지식의 생태학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서에 들어가는 지식은 말로 전해진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책으로 정리되었던 것을 모아 다시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유서의 근간이 된 책들은 어떤 것들일까, 이 책들을 종합해서 유서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렇게 만들어진 유서는 누가 읽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해서 유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결론은 지식을 소수가 독점하던 시대에 지식의 해방을 요구하는 독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결과가 유서라는 것입니다. 지식의 평준화를 이끌어간 것이 바로 사전이 가진 힘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책이라는 형태가 중요했지요. 그래서 출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중요하게 생각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유서가 지식의 평준화를 이끌었다는 임 교수의 말은 유서가 종이에 인쇄되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즉 소수가 독점하던 지식이 종이에 찍혀 다수에게 퍼졌다는 것. 이렇게 퍼져 나간 유서는 과연 누가 읽었을까? 임 교수는 과거 동아시아에 독서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같은 책을 읽던 사람들. 문화의 생산 과정보다 소비 과정이 타문화를 이해하는 데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임 교수는 조선의 유서 편찬 전통과 그것을 읽었던 사람들에 대해 강민구 교수에게 물었다.

국가가 나서 유서를 편찬한 일본, 개인들이 고군분투한 조선

조선 시대의 유서들을 구입하느라 가산을 탕진했다고 할 만큼 유서에 푹 빠져 사는 강 교수는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이 편찬한 14권짜리 백과사전 <송남잡지>를 '목숨을 걸고' 번역했다.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힘겹게 번역 작업을 이어가던 그는 번역하기도 이렇게 힘든 책을 그 옛날에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유서를 만들 당시의 환경, 즉 유서를 만든 사람들의 서가를 복원하는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과연 그들은 서가에서 어떤 책을 뽑아서 썼을까?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서가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었을까? 그들의 서가를 그대로 복원한다면 지식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고 공유되었는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 경험과 지식 체계를 추적해온 강 교수는 일본과 달리 조선에서는 유서가 지식의 전파나 평준화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지식인이라면 유서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겁니다. 성리학 일변도인 국가에서 유서가 만들어지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유학은 굉장히 깔끔한 학문이기 때문에 너저분한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그런 걸 사문난적이라고 하죠. 다른 한편으로 일본에는 과거 제도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엄격한 과거제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조선 시대에 가장 발달한 도서는 수험서입니다. 사서삼경 같은 수험서는 거의 오류가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이 사전을 봤을까요? 거의 안 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전을 보면서 공부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사전을 안 보고도 어떻게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독본이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명시, 명문장, 주요한 역사서, 사기, 한서, 통감 등등. 이런 독본들이 사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훌륭했던 것이지요."

오로지 과거 급제만을 바라보던 조선 시대에는 수험서 이외의 다른 책을 보거나 다른 지식을 정리할 마음을 먹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유서 편찬을 추진하거나 지원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막부나 메이지 신정부의 주도로 각종 외국어 사전과 근대적 백과사전의 편찬 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었던 일본과 달리 <지봉유설>, <성호사설>, <송남잡지> 등 조선의 유서는 모두 국가의 지원 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조선의 유서는 대개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조선 시대에는 어떠한 국가적 지원도 없이 개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요즘도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나라에서 세금 걷어서 뭐하나, 사전 안 만들고. 하지만 국가가 돈을 들여서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국가가 어휘를 정의하고 표준을 정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어긋날 경우 국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국가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내놓자 다른 국어사전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을 국가가 집대성해 보급한 일본, 개인이 정리한 조선. 두 나라의 사전은 편찬한 주체뿐 아니라 독자의 규모에도 차이가 있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일찍부터 출판 시장이 있었고,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국가가 출판 기관이었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징비록>이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조정의 잘못을 정리한 책으로, 류성룡이 집필을 마치고 백 년이 흐른 뒤 일본에서 만 권이 팔렸다.


지식에도 등급이 있다 : 유서의 세계관

동아시아의 유서는 서양의 백과사전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유서도 백과사전과 마찬가지로 검색하기에 편리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항목의 배열 순서부터 편찬자의 주관이 개입한다는 점은 백과사전과 판이하다. 강 교수에게 유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백과사전은 알파벳순으로 어휘가 배열됩니다. 여기에는 지식들 사이에 어떤 차등도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유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명나라의 <삼재도회>는 천지인 순으로 나가지만, 일본에서 펴낸 <왜명삼재도회>는 천인지 순으로 나갑니다. 유서는 신분제 사회라는 중세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꽃이나 나무도 1등급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갑니다. 모든 지식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맨 앞에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유서에는 당대 사회가 유지하려고 한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 가치관을 고착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정한 지식의 등급이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유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기였는데, 고려 숙종(1101년) 때는 송나라 황제로부터 <태평어람> 천 권을 하사받았다. 중국 대신과 내기 장기를 두어 책을 따 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중국에서 책을 구해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조선 시대에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는 가장 큰 목적은 책을 사오는 것이었지만, 중국은 지식의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며 조선이 대단한 충성심을 보일 때만 거룩하게 하사하곤 했다. 이런 힘겨운 과정을 거쳐 조선에서도 유서가 나오게 된다.

"1614년에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나왔고, 그로부터 106년 뒤 <성호사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35년 만에 『송남잡지』가 나왔습니다. 우리 학계에서는 100여 년 만에 하나씩 나온 이 유서들의 영향 관계를 논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학계에서 기대하는 바와 같은 관계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전, 시대를 엮다>에 나오는 일본 사회가 이어온 지식의 연속성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입니다. 이처럼 미약하게 이어져오던 조선의 유서 편찬 전통은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엄격한 신분 질서에 기반을 둔 유서의 세계관은 모두 양반인 근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우리도 가나다순의 근대적 사전을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사전을 만들지 않는 시대

20세기 초 지석영의 <자전석요>, 최남선의 <신자전>이 나왔다. 일제에 의해 좌절됐지만, 조선어학회가 준비하던 조선어사전도 있다. 해방 후 한글학회는 <큰사전>, <우리말큰사전>을 냈다.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뒤 두산동아, 민중서림 등의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출간했다. 백과사전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다양한 종류의 사전이 쏟아져 나오고, 응접실 한쪽에 양장본 세계대백과사전 한 질을 갖춰놓는 게 교양인의 상징일 만큼 수요도 많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을 막론하고, 종이 사전은 급격한 몰락을 맞이했다. 이 분위기는 정철 팀장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어학사전과 지식백과 서비스를 맡고 있다.

"사전의 재생산 기반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학 사전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없습니다. 누구도 새로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국립국어원이 일부 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통제하는 사전(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그 밖에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만드는 사전이 있지만 사실상 고려대만 남았다고 봐야 합니다. 백과사전 중에서는 두산동아와 브리태니커가 그나마 업데이트를 하고 있지만, 충분한 규모가 아니죠. 존재감도 예전만 못하고요. 지금은 위키백과(인터넷 웹 사전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것도 사전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점차 사전의 형식을 갖춰가면서 업데이트가 되고 있습니다."

사전이 이렇게 빈사 상태가 된 것은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전을 찾기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사전을 팔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사전을 만들고 업데이트할 것인가? 개인이나 기업에 그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국가가 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 게 맞는 일일까? 기업에서 사전 서비스를 만들며, 국가 기관이나 학계 등 사전과 관련한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는 정 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관련해 말해보겠습니다. 국가가 돈을 내야 하느냐, 기업이 돈을 내야 하느냐. 저는 누가 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은 이미 공공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어떤 방식으로 내느냐가 중요한 거죠. 국가가 돈을 내는 과정에서 국립국어원을 설치하고, 그곳을 통해 국어를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예는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이만큼 디테일하게 통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남북 대치 상태라는 정치 상황도 맞물려 있고, 한국 사람들이 '관(官)'에 약하다는 면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든 사람들도 자기들이 이 정도로 강력한 권력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관찬의 해악은 적지 않습니다. 관이 돈을 낸다면, 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사전을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사실 대기업에서 이상한 짓 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입니다. 국가나 기업에서 좋은 사전이 나오게 하려면 여러 사람이 떠들어야 합니다. 네이버나 다음의 고객센터에 왜 사전을 안 만드느냐고 해야 하고, 관련 기관이나 언론사에도 항의해야 합니다. 학계의 교수님들도 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버즈(buzz)가 핵심입니다. 국가 기관이나 기업은 버즈에 약합니다."

ⓒ사계절


사전은 웹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까

종이 사전은 더 이상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웹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전이 만들어지게 될까? 지식을 부문 체계에 의거해 종합적으로 재편하고 집대성한 것이 사전이라고 생각하는 임 교수가 이와 같은 사전의 고유한 기능이 웹에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정 팀장에게 사전의 미래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어를 국가가 통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통제에 의해 변하는 게 아니죠. 어떻게 해도 사람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국어학자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국어 어휘 중에서 기본 어휘 1000개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연구하자. 그것은 외부에서 하기 어려우니 국가가 해도 괜찮다. 하지만 현재의 어휘를 모두 모아서 만드는 규범 사전, 기술 사전은 국가가 손대서는 안 된다.' 제가 보기에도 기본 어휘는 깊게, 기본 어휘가 아닌 것은 그것의 사용 빈도와 분포를 추정하는 형태로 갈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사전 데이터를 보다 보니 특정한 시기에 '추념'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검색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추모 분위기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처럼 어떤 어휘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얼마만큼 많이 사용되느냐는 사회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어학 사전은 이렇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럼 백과사전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이슈가 생기면 누군가는 그걸 꼭 정리합니다. 아주 단순하고 쉽게. 그리고 그 일이 잊히면 정리가 멈춥니다. 한동안은 그렇게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드로의 시대에는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해서 구시대의 카르텔을 깬다는 혁명적인 성격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지식을 정리하는 행위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이 지식의 총체를 파악해서 어떤 의도를 드러내며 정리하기엔 지식의 규모가 너무나 커졌으니까요."

사전은 검색의 뼈대

정 팀장은 "사전은 검색의 뼈대"라고 말했다. "사전과 검색은 공통적으로 '참조'라는 행위를 위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웹 검색이 없었으므로 찾기 쉽든 어렵든 백과사전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참조'라는 행위를 할 때 검색이 주는 편의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정확성과는 별개로 관련성이 높아서 사람들은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사전이 빠진다고 해도 당장은 불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의 사전 서비스를 약하게 해도 대다수는 눈치를 못 챕니다.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 지식의 소비자들만이 그것을 인지하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사전이 검색의 뼈대라면, 검색의 시대가 사전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나은 검색 결과를 원한다면, 더 나은 사전이 필요하다. 사전은 종이라는 물성은 잃어버렸지만, 또 다른 형태로 더 나아진 기능을 갖춘 모습을 요청받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정 팀장이 지적했듯이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웅성거림. 우리에겐 더 좋은 사전이 필요하다, 포털은 사전 서비스를 개선하라, 국가는 사전의 편찬과 개정을 지원하라는 끊임없는 웅성거림. 지식의 집적과 편집, 유통이 누구의 책임도 아닌 시대, 누구에게도 명백한 이득으로 돌아가지 않는 시대에 여전히 우리가 지식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식의 생산, 집적, 유통 과정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주장과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좌담은 이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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