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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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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현장] 청소년 3명, 대학거부선언… "우리의 꿈은 대학이 아니다"
201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13일, 세 명의 청소년이 '수능 거부', '입시 거부'를 선언했다.

2교시 수학 시험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 30분, 수능 시험장이 아닌 서울 청계광장에서 모인 김예림·함이로·황채연 씨는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대학거부를 선언한다"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2011년 50여 명의 대학거부선언을 통해 출범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주최한 것으로, 대학거부선언은 올해로 세 번째다.

▲2014 대학거부선언 참가자 황채연 씨가 발언하는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대학 거부를 선언한 세 명의 청소년은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이 행복한 삶을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저는 제 삶에서 대학을 빼놓은 적이 없었지만, 입시 과정은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반추했다. 그러면서 "경쟁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불안감 열등감에 힘들어한다. 이런 현실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대학입시라는 깨지지 않는 벽의 균열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대학입시를 거부한 이유를 밝혔다.

특성화고등학교에 3학년에 재학 중인 함 씨는 "학교 다니며 늘 했던 고민은 '왜 내가 원하는 걸 배우려고 경쟁을 해야 하나', '왜 진학은 성적순인가'였다. 저는 더는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며 "대한민국의 무의미하며 비인간적인 입시경쟁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했다. 황 씨 또한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경쟁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고, 본인에게 정말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조차 빼앗겨버렸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해 대학거부선언을 한 박건진 씨가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박 씨는 "작년과 지금의 제 삶이 달라진 건 없다. 100만 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비로 한 달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며 "여전히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와 같이 일하는 분이 대학 졸업 후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한다고 한숨을 푹 쉬는 것을 봤다"며 "대학을 가든 거부하든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마음 아픈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찬란한 잘 사는 미래가 보장될 것 같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며 "올해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분들의 마음을 지지한다"고 격려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기획한 고려대학교 재학생 권순민 씨도 지지 발언에 나섰다. 권 씨는 "지금 대학을 졸업해서 얻는 건 학벌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라도 얻었다는 안도감과 3000만 원의 빚.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지'하는 고민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도 대학거부자들을 외면하고 타자화 할 게 아니라, 이들이 지적하는 대학입시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머리 맞대야 한다"고 했다.

매년 그랬듯, 올해 역시 수능을 하루 앞둔 12일, 고3 수험생이 투신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투명가방끈모임 활동 등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는 공현 씨는 "수능철이 되면 수능이 인생의 전부 아니니 그것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 말라는 충고를 하지만, 학생들을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바꾸려는 노력을 우리가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거부선언은 모두 함께 바꾸자는 말 건네기라고 생각하고, 지금 수능 시험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의 목소리 가닿기를 바란다"고 했다.

투명가방끈모임은 이날 대학거부선언이 끝난 뒤 8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 반대, △획일적인 정답만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 인권 보장,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는 현실에 대한 반대, △충분한 교육 예산 확보, △대학 입학 강요 반대, △학벌차별 반대, △교육 양극화 반대 등이다.

▲대학거부선언 참가자들이 가방끈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다음은 대학거부선언문 전문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다시 이 자리에, 대학거부자들이 섰습니다. 오늘은 수능시험일, 온 나라가 수능시험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경쟁에서의 승리라고 말하는 사회입니다. 수능 점수와 입시 결과가 곧 그 사람의 가치라는 듯이 말하는 교육입니다. 우리는 오늘 수능시험, 그리고 수능시험이 상징하는 대학입시와 경쟁교육에 맞서서, 거부를 선언합니다.

대학거부를 외치며 모여 투명가방끈이 만들어진 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투명가방끈 이전에도 대학거부자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교육과 사회는 우리의 얼굴을 보지 않았고,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입시경쟁에 고통스러워하는 청소년들의 비명도 외면했습니다. 바꿔야 한다는 숱한 외침들도 무시했습니다. 여전히 학교들은 입시와 취업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오늘의 행복을 미래를 위해 포기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학서열뿐만 아니라 자사고와 국제중 등, 학생을 줄 세우고 차별하는 체제는 더 노골적으로, 더 광범위하게 뿌리를 뻗고 있습니다. 교육은 우리의 권리가 아닌 강압처럼 되어 가고, 그럴수록 교육은 그 '교육적' 의미를 잃고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외면 받고 무시당한 목소리를 다시 드러내고, 계속해서 세상에 말을 걸기 위해서입니다. 대학 중심의 교육을, '가방끈', 즉 출신 학교와 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를 거부하고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대학거부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슨 거창한 꿈이 있느냐?', '대학을 거부하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느냐?'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학거부가 행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남다른 꿈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을 가려 하는지, 과연 우리는 대학 덕분에 행복한지.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대학에 가는 것을 꿈으로 삼으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거면 너의 꿈이나 행복을 증명해보라며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단지 대학을 가지 않고 자기만의 행복을 찾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을, 대학입시와 학벌주의에 담긴 이 사회의 차별과 경쟁의 논리를 거부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게 될 차별 속으로 뛰어들어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불안하고 불행하기 때문에 그 삶을 함께 바꾸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너의 탓이라고 하는 세상을 향해, 누군가는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구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학교와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은 교육이 아니며, 입시와 취업만을 위한 교육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학교를 평준화 하고 교육을 평등한 권리로 만들며, 학력과 성적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없앨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을 이윤을 위한 도구로만 보는 사회를 바꿀 것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복지제도와 자유로운 공동체를 마련할 것을 제안합니다.

비록 대학을 거부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함께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대학거부를 선언하는 것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는 것이 모두의 삶을 바꾸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거부의 목소리가 더 커질 때, 불복종하고 바꿔야 한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변화는 대세가 될 것입니다. '투명가방끈'들은 변화를 위한 길을 준비할 것입니다. 오늘의 대학거부선언에, 대학거부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리고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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