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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는 결코 정치에 무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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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는 결코 정치에 무능하지 않았다" [MB의 비용 2부] <4> "보수정부 10년, 야권의 대안은 무엇인가?"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앞선 대담에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인사정책, 언론정책에 대해 짚어봤다.


네 번째 대담은 '정치'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와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이 돌아봤다.

2008년 촛불사태로부터 2012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 5년은 민주주의에 관한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이 으깨지는 과정이었다. 대통령에게 정치는 비효율이었다. 이제 와 문제가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후과도, 자원외교의 실패도, 방산비리의 '적폐'도 사회적 저항을 외면하고 "공동체에 비용을 전가한 착취형 권력"(박동천)의 단면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정치의 기술'에서 대단한 유능함(?)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공통적이었다. "보수 정권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싸움의 기술 측면에서도 무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이철희)는 것. 어찌됐건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정신적 승리'에 족할 게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악마화'는 그 기저에 깔린 야당의 실패를 은폐한다. 민주와 반민주의 도식화된 구분법에 입각한 야당의 전략은 '반(反)MB'에서 '反이명박근혜'로 이어졌으나, 보수정권의 본질에 대한 비판, 나아가 대안적 의제 제시에 아둔했다.

야당은 그래서 실패했다. 하기에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정치의 비용'을 되새기는 일은 부득불 야당의 무능에 대한 현재적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5년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과연 야당은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손문상)

“MB 정부의 정치, 유능하거나 포악하거나”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의 몰락, 정치의 후퇴를 겪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과정을 비효율로 치부한 CEO 리더십이 그렇고 임기 초 촛불 사태를 겪으면서 우편향적인 노선으로 선회해 진영 갈등이 극심해진 부분도 있다. 먼저 정치의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를 전체적으로 평가해보자.

박동천 : 주체의 무능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걸 정치의 몰락, 정치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를 굉장히 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두 문법에서 정치는 전혀 다르게 정의된다. 후자로 본다면 정치를 기본적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으로 보는 것이다. 힘으로 멱살을 콱 쥐어 끌고 가고 저항한 사람들 짓밟는 정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잘했다. 자기 임기 동안 상당한 위기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돌파를 했고 사실상 그 뒤로는 물리력에 의한 저항은 미미한 수준으로 갔다. 감정이나 도덕적 비판은 무성해졌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릴 정도로, 대통령이 위기를 느낄 정도로는 저항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생존이란 목표엔 확실히 성공한 사례가 되겠다.

반면 정치를 우리 현재 모습의 부족한 점을 조금 낫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형편없는 정부였다. 이 기획에서 말하는 ‘MB의 비용’이란 측면에서는 공동체에 비용을 전가하는 착취형 권력을 행사했다.

이철희 : 정부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잣대는 보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정당의 관점에서 보면 정권이 재창출됐느냐 교체됐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실패한 정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지지율도 많이 까먹긴 했지만 정권의 위기라고 할 만큼 뚜렷한 위기가 있었던 거 같지는 않다. 본인이 취하고자 했던 노선을 분명하게 관철을 시켰다고 본다.

대선 캠페인 때는 박근혜와 대척점에서 싸우다 보니 중도로서 스탠스를 취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며 분명한 보수 정체성을 주장한 반면, 이명박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중도 스탠스를 취했고, 이겼다. 그러나 선거 연합으로 편성된 이 중도 스탠스는 집권하면서 어차피 교정이 될 거였다. 보수 세력의 주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를 봐도 똑같다. 2007년 MB처럼 상당히 좌클릭을 해서 주도권을 잡고 집권했지만 얼마 안 가서 곧바로 보수 반발에 의해서 우클릭 했다. MB때 그것이 더 극적으로 나타났던 이유는 촛불 항쟁으로 강제적으로 떠밀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보수파들이 MB를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좀 일찍 보수 정권으로 자기정체성이 확인된 것이다.

싸움의 관점, 게임의 관점으로 보면 MB 정부 때 보수진영에 상당히 많은 성과도 있었다. 예컨대 미디어법 통과시켜서 종편을 만들었다. 또 과거엔 시위자들에 대해 법 위반으로 대응했다면 이제는 배·보상 문제로 접근해 고사시키는 등 상당히 진화된 방식을 사용했다. 권력기관, 공안기관도 상당히 강화시켰다. 이쪽 진지는 약화시키면서 보수 진지는 강화시켰단 점에서 보면, 보수 정권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싸움의 기술 측면에서도 무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렇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약자 관점에서 보면 훨씬 삶이 피폐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대중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MB정부는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실패는 보수 정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고, 이를 충분히 견제하지 못한 야당의 문제도 같이 연동돼 있다.

“MB정부 천박함은 표피일 뿐, 본질은…”

프레시안 : 이 소장 말처럼 2007년 당시 대선후보 경선 때만해도 이명박 그룹은 진화된 보수로 비쳤다. 그들이 내건 중도보수 개혁이 너무 쉽게 실패한 이유를 촛불이라는 계기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촛불 때문이란 건 결과적 서술이다. 대통령으로선 보수라는 지지축과 중도라는 지지축 중에 어디를 강화시킬 것이냐를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 중도개혁 쪽을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보지만 촛불이 등장하며 이 옵션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반공보수가 긴밀하게 움직여 결국 우리와 손잡아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MB는 허둥지둥하다 결국 보수의 품으로 들어가 버렸고. 촛불 사태만 보면 진보 진영이 전체 국면을 풀어가는 데 촛불을 활용한 것 보다 보수가 활용이 훨씬 능동적이었고 긴밀했다. MB를 포획한 것이다.

과거 진보진영은 MB를 천박한 악마처럼 얘기했지만 그런 천민성과 천박함은 표피일 뿐이고 본질은 보수다. 본인이 내걸었던 비지니스 프렌들리, 시장 보수 노선을 시종일관 지켰다. 그리고 그건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노선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좌충우돌했다고만 보면 지금까지 그 노선이 이어지긴 어려웠다고 본다. MB의 얼굴, 박근혜의 얼굴 등 여러 얼굴을 보이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본질은 보수다.

박동천 : 개인과 소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보수의 특성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수가 아니란 말은 아니다. 문제는 MB가 내걸었던 것처럼 비지니스 프렌들리냐.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이명박이 지시해서 휘발유 값을 인위적으로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 건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전혀 아니다. 그건 관치금융 시절에 왕조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대처나 레이건과 다르다. 한국은 법치주의, 헌정주의적 원리가 상대적으로 확보가 덜 된 나라다. 그러니 권력자가 법 위에서 자기 마음대로 뭔가를 해치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보수는 서양식으로 얘기하면 20세기 보수라기보다 18세기 보수다.

어떤 사람을 중도냐 보수냐 하기 이전에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무슨 원칙이 있느냐이다. MB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원칙이 없었던 대통령이다. 그는 자기 개인적인 또는 자기 주변의 좁은 집단적 이익을 챙기는 4대강 사업을 하려고 대통령 한 것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건 보수냐 진보냐와 상관없는 문제다. 대개 정치인들은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이념은 포장이다. 진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해하는 게 이명박 정부를 이해하는 데 더 맞지 않을까.

한마디 덧붙이면, 2008년 촛불 때 광우병 사태는 애당초 잘못된 어젠다였다. 그때 열심히 했던, 그렇게 처절하게 몸을 바쳤던 분들께는 가혹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먹고 병 걸릴 확률은 로또 당첨되고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새누리당 누가 그랬다. 그 말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의 어젠다가 잘못 잡혀 있었던 것이다. 어젠다가 잘못 잡혀있었기 때문에 바로 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MB가 위기를 모면하는 데 결과적으로 큰 도움을 줬단 건 안타까운 일이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프레시안(최형락)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말해야”

프레시안 : 촛불집회에서 논점을 좀 확장하면 저항의 방식이 효과적이었느냐다. ‘반MB’란 명제가 운동적 성과는 거둘 수 있었을지라도 정치적 성과를 거두기엔 상당히 미흡했단 것은 2012년 대선에서 확인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박동천 : 저항의 방식을 얘기하기 전에, 왜 저항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봐야겠다. 단순히 MB라는 사람에게 저항한다면 그것은 명분이 없는 얘기다. 그건 야전에서 싸워서 MB가 이긴 거고 루저들이 불평하는 거밖에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중간에 있는 표들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싫지만 정동영이나 문재인을 못 믿는 사람들이다. 이명박-박근혜가 대통령이 돼도 자기 먹고사는 것이 그렇게 피폐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당분간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결판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철희 :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는 크게 진 것이다. 10년 집권 뒤에 패배한 것이기 때문에 열패감, 공허감이 상당히 크게 형성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MB, MB 개인이 아니라 MB로 상징되는 노선에 반대하는 것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본다. 물론 반대보다는 조금 더 내부 정비하는 데 시간을 써서 복지 같은 의제로 새롭게 재편될 필요도 있었다. 어떤 전략으로 활로를 찾을 것이냐는 고민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시 야당은 전자를 선택했다. 반MB를 하며 MB를 희화화하고 악마화했다. 정서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정치 전략으로 보기엔 굉장히 미숙했다고 본다. MB 비판이 조롱으로 끝나면 안 되고 MB가 지향하는 노선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 피해 보는 사람을 결집시키고 정치적으로 동원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가장 아쉬운 것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이슈가 힘을 발휘했을 때다. 복지 쪽으로 야당이 움직여서 박원순 시장의 재보궐 선거 압승까지 끌고 갔다. 그땐 야당이 잘하는 국면이었다. 당시의 국면을 좀 더 진화시켜서 갔더라면 2012년 총대선 패배가 그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MB정권 5년 동안 야당이 무능했다고 보는 건 불가피하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시기를 민주주의 후퇴의 시기로 평가한다. 언론 장악, 민간인 사찰,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 등이 반복됐다.

박동천 : 87년 항쟁의 결과 87년 체제가 등장했다. 그런데 굉장히 미흡했다. 헌법이 바뀌긴 했지만,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헌법에 반영된 건 대통령 직선제 딱 하나다. 87년 체제가 그렇게 엄청나게 탄탄한 게 아니다. 권력은 원래 은폐하고자 하고 치부를 가릴 수만 있다면 가리면서 멋대로 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걸 전형적으로 한 것이다. 촛불을 밟고 난 뒤론 그야말로 기고만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이상이나 꿈으로 보려 한다. 반민주 세력을 욕하는 형태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규정하려고 한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이해를 해야 한다. 가까운 예로 최근 독일식 비례대표제 말하는 정치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요즘은 정동영이나 손학규 등 유력 정치인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얘기는 그 당에서 철저히 개인적 견해일 뿐 당론이 될 리가 없다. 당론이 된다고 해서 나머지 당원들이 그 목적에 동감하고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야당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그 사람들 스스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관념에서 보면 MB 정부 시기에 분명히 후퇴했다. 손학규 대표 시절부터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 거냐가 논란이었다. 독재라고 할 수도 없고 맞는 용어가 없어 고민했던 기억도 난다. 어쨌건 민주-반민주로 접근한 건 잘못됐었다고 본다. 어떤 민주주의냐를 말했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민주주의냐를 말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를 기업들과 사회적 강자에게 도움이 되는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에 맞서려면 그건 ‘민주주의 아니다’라고 하지 말고 ‘우리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라고 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우린 친노동이라거나 대안은 이거다라면서 전선을 쳤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왜 후퇴시키냐며 민주-반민주로 접근하니 결국 과거 일들을 꺼내서 싸우는 식이었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민주주의냐를 가지고 말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부자 민주주의 때문에 결국 서민들이 죽어간다거나,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것을 빼앗겨서 힘들어지고 있단 점을 보이는 식의 프레임을 짰어야 하는데 그걸 못 짠 게 상당히 아쉽다.

개인적으로 민주-반민주 가지고는 안 싸웠으면 좋겠다. 국정원 대선개입이란 엄청난 반민주 사건이 벌어져도 대중이 동의하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정치적 에너지로 표출하는 데는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프레임을) 바꿔야 했다고 생각한다.

박동천 : 1954년 사사오입 개헌과 비교해 보자. 헌법학자들이 이를 두고 ‘위헌적 개헌’이라고 하지만 개헌은 개헌이다. 물론 교과서적인 시각으론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다. 그리고 이승만이 당선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이 승인한 것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그렇게 확보한 것이다. 대선개입, 천안함 사건, 곽노현 재판 등 문제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중요한 건 대한민국 대다수가 넘어가고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얘기하지 말자. 기울어진 건 맞다. 언론 환경이나 학계 환경을 봤을 때 9대1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운동장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싸울 것이냐는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잘 한 것을 보자. 사고들을 연이어 터뜨리면서 한 사고를 다음 사고들로 묻었다. 그렇게 야당을 길들였다. 지금 박근혜 체제도 대체로 그런 형국으로 가고 있다. 대응만 할 일이 아니라 어젠다 세팅이 중요하다. 요즘 보니까 결국 노동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이제 와서야 한다. 어젠다를 선점해야 하고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지는 싸움 그만해야”

프레시안 : MB정부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 가운데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졌다. MB정부가 대선개입을 하게 된 원초적인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철희 :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물려있다고 느껴진다. 국정원 대선 개입은 지난 정부의 문제인데도 현 정부가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될 정도로 완강하게 감쌌다. 그러다 보니 뭐가 있다는 논리적인 추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강고히 연결돼 있는 거 같다. 이상돈 교수는 그래서 샴쌍둥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제는 ‘이명박근혜’라는 이름으로 꼭 공격해야 할 문제인가. 나는 그렇게 좋은 프레임으로 보지는 않는다. 집권자를 인격적 대상으로 해서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은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게 먹히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10년 보수 정권의 본질이 뭘까. ‘이명박근혜’라고 하기보다 이들의 본질이 뭐냐, 보수 정부 10년 동안 누가 집중적으로 손해, 피해를 봤고 누가 덕을 봤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금의 야권이나 진보 세력이 내놓은 대안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본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선 문제제기를 안 할 수 없지 않나. 당연히 문제제기 해야 한다.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치적 쟁점으로 가 있을 때는 결국 실력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부당해도 관철을 못 시킨다. 그래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국정원 대선 개입도 지는 싸움이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법원 판결 나오는 걸 보면 대체로 졌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프레시안 : 대선개입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연관된 문제여서 제약이 있다고 쳐도, 요즘 ‘사자방’으로 거론된 문제들은 박 대통령이 전혀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문제가 아닐까? 특히 사대강 문제는 감사원 감사 때 짚고 넘어갈 기회도 있었다. 과거정부에 돌을 던지는 차원이 아니라 이전 정권이 남긴 부정적 비용을 좀 더 말끔히 해소하고 넘어가는 것이 박 대통령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박동천 : 그걸 치우고 가는 게 본인에게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다. 대중이 진상을 알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은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이 있는 거다. 지금 정부 사람들이 박정희 시절보다 훨씬 더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훨씬 더 지능적이다. 박정희가 살아있다면 박근혜를 보면서 ‘우리 딸 참 똑똑하다’ 그럴 것이다.

이철희 : 보수 정권이 보수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다 보니 소수의 수혜자와 다수의 피해자가 분명히 갈려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그 피해를 못 느끼도록 한다. 자꾸 덮고 치환해 버린다. 보수 정부 10년의 가장 약한 고리는 결국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 졌다는 것, 양극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수의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대안이 있을 때 된다.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런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때가 그런 때였다.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질 때. 반면, 정치, 도덕적 이슈에선 완강하게 버텼다. 자신들도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이 약한 고리를 자꾸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회경제적 이슈가 갖는 특성은 실력이 없으면 못 한다는 것이다. 이건 찬반구도가 아니라 우열구도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대선에서 쟁점을 제대로 못 만든 이유도 그래서다. 결국 정치는 정의 아닌가. 야권이 어떤 관점을 들고 나와서 쟁점을 만드느냐가 실력이다.

▲ 박동천 전북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동천 :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불량한 정부다. 생존 능력은 나름대로 발휘를 하고 있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불량 정부다. 이런 정부가 지탱될 수 있는 요인은 대단히 많지만 그중 하나를 집어 보자면 안보 장사다. 자기들 집단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가게 되는 길은 항상 강경파 득세다. 전선을 엉뚱한 곳에 첨예하게 만들어 상대를 마녀 사냥해 누르는 전략을 쓴다. 이를 위해 언론 장악을 했어야 했고 검찰을 부리는 것이다. 당장은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예를 들어 어버이연합이 커지면 새누리당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쌓일 대로 쌓인 방산비리가 척결될 거라 믿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인 몇 사람의 비리로 가지치기해서는 절대 밝혀지지 않는다. 차라리 강제징집제를 폐지하면, 방산 비리도 굉장히 많은 게 여과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철희 : 4대강이나 자원외교, 방산 비리를 보자. 4대강이란 건 환경 이슈만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환경 이슈이지만 또 민생 이슈이고 부패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 문제도 결부돼 있다. 지금 이것을 환경 문제로만 집중 부각시켜놨는데, 대중을 동원하는 데 얼마나 힘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사자방 국정조사’하자고 입법부가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미리 결론을 제시하지 말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MB를 국정조사장에 불러내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말잔 거다. 조금씩 팩트를 보이면 국민들이 알아서 요구한다. 저건 MB가 설명해야 한다고. 국정원 대선개입도 박근혜에 의한 작품이라고 섣불리 규정한 건 대단히 미숙한 전술이었다고 본다. 하나씩 잘못된 걸 드러내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국정원을 거쳐서 MB를 거쳐서 박근혜로 가는 것인데 그런 과정이 안 됐다. 이번에 거론되는 사자방 국조도 주 메뉴가 되면 안 된다. 정치는 어쨌든 현실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건데, 무조건 아니다 잘못됐다고 하는 건 정치 문법으로는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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