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이상 결심해 본 일일 것이다. 보통 새해를 맞아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데, 이번엔 올해 가을부터 선보였다. 갑작스러운 '담뱃값 인상' 때문에 금연을 결심하거나 강요당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금연, 모두가 결심해보는 단어
우리나라에서 금연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절박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인 남성 흡연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젊은 연령대에서도 높고, 담배를 처음 피우는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담배 가격은 OECD 국가 중 제일 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난 9월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금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흡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담뱃값 인상을 발표한 것이다. 당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논평을 통해 담뱃값 인상 취지에 공감하되, 진정 국민 건강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증가된 세수 모두 국민 건강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세수 증대가 본래 목적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핵심 내용은 중앙정부가 거두는 개별소비세 추가여서 사실상 세금 확보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 11월 28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2000원 인상이 확정되었다. 여전히 찬반 여론이 있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금연을 결심했다는 지인들을 응원했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 조치에 화가 나 금연을 결심했든지, 경제적 이유로 흡연을 중단했든지 간에 흡연은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4. 담뱃값은 2000원 인상하되, 정부가 국세인 담배 개별소비세액의 20%를 지방에 교부하는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하고, 관련 법안은 일괄하여 2014년 12월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2014.11.28. 여야합의문 4번째 항목)
흡연자의 절반을 죽이는 담배
흡연이 건강에 주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선 이미 여러 과학적 근거가 발표돼 있다. 일찍이 1960년대 <담배와 건강에 관한 연구보고서>(Surgeon General's Report Smoking and Health, 1964년)가 담배의 위해성을 알렸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담배가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식도암, 신장암, 췌장암, 방광암 등 각종 암과 사망의 주요 원인이며, 심혈관질환, 만성호흡기질환 등 만성질환, 심지어 임신과 출산에서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Cancer) 보고서에 의하면 담배에는 확실한 발암물질(제 1군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벤젠(휘발유 성분), 비닐클로라이드(PVC원료), 비소(사약 성분), 니켈 화합물(중금속), 크롬(중금속), 카드뮴(중금속), 폴로늄-210(방사성 물질) 등 60여 종 이상의 발암 물질이 들어있고, 4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독성정보제공 시스템 발췌).
구체적으로 담배는 흡연자의 절반을 죽인다. 전 세계에서 매년 600만 명이 흡연으로 사망하는데, 이 중 60만 명이 간접 흡연자이고, 간접 흡연 사망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5만8000명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다(조홍준, "담뱃값 인상,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의당 국회토론회 2014. 11. 11).
사망이 아니더라도 흡연으로 초래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흡연관련 질병으로 인한 직접 의료비용(외래, 입원진료비)뿐만 아니라 간접비용(작업손실비용)이 막대하다. 게다가 건강 영역은 아니더라도 흡연으로 인한 화재비용 등도 있다. 담배는 그야말로 피우는 짧은 위안(?)을 빼면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동의했으나…
'담배 끊는 사람하고는 상종도 말라'는 말이 있다. 흡연은 중독성이 있고 생활 습관에 고착화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금연이 어렵다는 이야기이고 금연을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의미도 담긴 말이다.
그래서 사회적 차원에서 담배를 끊도록 혹은 꺼리도록 유도하는 금연 정책이 필요하다. 실제 금연 정책의 효과도 검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했다.
협약의 핵심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되는데, 담뱃세 인상, 실내 작업장 및 공공장소 금연 지정, 건강 정보와 (담배로 인한 피해) 경고 문구, 담배광고/판촉/스폰서 금지 이다. 금연정책의 수단으로 가격정책, 비가격정책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당연히 협약에 동의한 나라들은 여러 의무이행 사항을 법제화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동네 가게를 장악한 담배회사 광고들
우선 담뱃값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제일 싸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겠지만, 협약의 취지에 정면 반하고 있다. 사실 성인 하루 기호품 가격이 아이들이 금세 먹어치우는 과자 가격과 비슷한 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비가격정책도 협약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담뱃갑 경고 그림이다. 이것은 FCTC 비준 3년 내 이행 의무가 있는 조항이어서 2008년까지 이행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선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홍보 판촉 목적의 담배 광고 및 소매점 내 담배 광고 금지(포괄적 광고 후원금지)도 중요하다. FCTC 제13조는 각 당사국에게 협약 비준 5년 이내에 담배광고, 판촉 및 후원의 포괄적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여성에게 담배와 접촉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에선 편의점과 동네가게 등 가판대와 계산대에 담배회사 광고가 버젓이 붙어있다.
흡연자에 대한 지원도 중요 정책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수동적이다(금연 치료 지원).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에게 금연 상담 및 치료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PC방과 버스정류장 등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고, 일부 금연 클리닉이 운영되는 정도이다(내년부터 모든 음식점이 금연구역이 됨).
흡연자의 55.3%가 금연을 시도했다는 응답에서 알 수 있듯이 금연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국민건강영양조사, 2012). 금연 클리닉이 구체적 목표를 산정하고 운영되어야 하고 금연 결심자를 지속적으로 다시 흡연하지 못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편성된 예산 내에서 집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해사진 삽입 등 비가격정책을 하루속히 이행하라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일부 흡연자라도 금연을 결심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신규 청소년에게는 상당한 억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담배 가격 인상만으론 금연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없다. 담배 가격만 올리면 담배의 중독성으로 기존 흡연자는 타르 및 니코틴 합량이 더 높은 담배로 옮겨간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래서 비가격정책이 중요하다. 한때 고공행진이던 성인 흡연율이 폐암으로 사망한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의 금연 촉구 캠페인으로 떨어진 경우가 있었다. 비가격정책의 효과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지난 정기 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이 의결되었다. 그런데 비가격정책 내용은 쏙 빠졌다. 예산부수법안이라 세제 항목만 먼저 통과시켰다는 게 국회의 해명이지만, 왠지 걱정이 앞선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면서 정책 목표가 국민 건강이지 세수 증대는 아니라는 궤변을 내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세수만 증대되고 금연 정책을 위한 비가격 요인은 뒤로 밀려났다.
국민은 분명하게 지켜볼 것이다. 진정 국민건강이 목적이라면 비가격정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담뱃갑의 유해 사진 삽입, 편의점 담배 광고 규제 등 협약 의무 이행을 하루속히 진행시켜라.
* 내만복 칼럼은 게재 후에 내가만드는복지국가가 운영하는 <만복TV>, <만복라디오>에서 필자와 함께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 공무원연금 주제 관련 '특별강연'을 보세요. (☞ 바로 가기 : 오건호의 '공무원연금 들여다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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