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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가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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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가 더 불안하다" [안종주의 건강사회] 위험 폭주 기관차에서 보내는 편지
되돌아보기조차 싫은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올 한해를 반추해야만 합니다. 소는 질긴 풀잎을 완전히 소화해내기 위해 씹고 또 씹고, 쉴 새 없이 되새김질을 하죠. 그리고 이를 혹위에서 벌집위로, 다시 겹주름위-주름위로 옮겨 가며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자양분을 얻습니다. 우리도 올해 겪었던 끔찍하고도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위험 사건의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보고 들으며 교훈을 얻어야겠죠.

세월호 참사 그 자체가 무엇보다 우리를 분노케 하고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분노는 이런 엄청난 재난을 겪고도 말로만 공감을 외치고 보여주기 위한 눈물과 감언이설만 내뱉는 일부 정치인과 정치 세력들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에 동조해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 투쟁을 하는 마당에 폭식 이벤트를 거리낌 없이 벌인 몰염치들이 이 땅의 진정한 주인공 행세를 하는 현실에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이런 세태가 결국 세월호라는 비극을 불러왔고 그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7개월이 지난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직후보다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최근 어느 조사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성찰하고 교훈을 얻기는커녕 자신과 자신의 조직, 세력 끌어안기에만 급급한 결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시민들이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와 기업 등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2014년을 마무리하면서 여전히 위험이라는 폭탄을 가득 실은 대한민국이라는 기관차가 정류장에서 멈추지 않고 2015년에도 계속 폭주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분명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이후 시민들이 가장 불안을 느꼈던 때가 아마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첫해인 1993년이 아닐는지요. 그 무렵, 구포 열차 탈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서해 위도 페리호 침몰 등 육해공에서 연쇄적으로 참극이 빚어졌죠. 결국 1997년에는 대한민국 경제가 붕괴돼 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맞이하지 않았던가요. 요즘 왜 그 때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걸까요.

세월호 직후보다 시민들이 지금 더 불안을 느끼는 이유

그 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습니다. 인력으로 인명을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의 연쇄 참사 사건·사고와 달리,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정부의 무능 때문에 배 안에 있던 3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승객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20여 년 전보다 시민들이 더 자괴감을 느끼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엄청난 재난이 터지면 당연히 우리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지혜를 모아 사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수술하고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위험들을 하나씩 없애야겠죠. 하지만 정부는 이를 게을리 했습니다. 외려 이 사건을 놓고 이념적 대립을 부추기는 언행이 마구 터져 나오고 이를 방치해 사회 통합은커녕 사회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말았습니다.

▲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는 화학물질이나 가스가 누출되거나 폭발하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인명 피해도 잇따랐죠. 여기서 대기업 공장도 많이 포함됐습니다. 군대 내에서는 구타와 폭행, 총기난사 등으로 많은 젊은 청년들이 개죽음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 부모들 마음은 한결같이 자식들을 군대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 사건 수습 과정에서 온갖 은폐와 거짓이 횡행했습니다. 여군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습니다.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군을 죽이는 군대가 바로 대한민국 군대였죠.

위험 사건·사고가 터져 나오지 않은 분야 찾아보기 어려워

올해의 시작은 젊은 예비 대학생들(실은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새내기)의 참사 소식이 불길한 예감을 들게끔 했습니다. 2월 코오롱의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부산의 한 대학 입학생 10명이 사망하고 125명이 부상해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는 부실과 안전 불감증이 낳은 인재여서 어찌 보면 세월호 사건의 전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위험 폭탄을 실은 기관차의 폭주는 계속됐습니다. 지난 5월에는 고양 종합버스터미널 화재 사고로 8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죠. 바로 이어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나 노인 등 2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습니다. 7월에는 세월호 현장을 오가던 헬기가 도심에 추락해 소방대원 5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7월에는 태백선 무궁화열차 충돌사고로 11명이 죽고 92명이 중경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엽기적 살인 사건이나 어린 학생들의 끔찍한 살인 만행들도 유난히 많이 발생했죠. 김해 여고생 7명은 집단적으로 또래 학생에게 성폭행, 성매매, 폭행, 납치, 암매장이라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사건을 저질렀고, 광주에서는 할머니, 엄마, 여중생 등 일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12월에는 수원에서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해 민심을 흉흉케 했습니다. 또 '묻지 마' 살인도 종종 벌어져 언제 누가 어떻게 희생자가 될지 몰라 시민들은 밤길뿐만 아니라 낮길을 걸을 때에도 불안합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겪는 불안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10월에는 성남 판교 야외 공연장에서 걸그룹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구 덮개 위에 올라가 있던 직장인들이 무게를 못 견딘 환풍구의 붕괴로 무려 16명이나 죽고 11명이 중상을 입는 참극이 빚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나 조직들이 여전히 세월호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대표적 방증으로 거론됐죠.

12월에는 원전 내부 문서가 대량 해킹·공개돼 국민 불안이 증폭되는 비상 상황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하청 근로자들 3명이 원전 시설 안에서 작업하러 들어갔다가 질식돼 모두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올해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순한 양이 아니라 건강사회를 향해 시끄러운 소리 내는 양들이 되길

ⓒ프레시안
굵직굵직한 것들만 나열했는데 이러하니 기타 등등의 인명사고와 위험 사건들의 실상을 꼼꼼하게 파헤쳐보면 시민들이 세월호 때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최근 더욱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 괜한 엄살이나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국회에서는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또 세월호 때문에 생긴 국민안전처는 국민을 대상으로 안전에 관한 아이디어 공모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아이디어가 없어 위험이라는 폭탄을 실은 기관차가 멈추지 않고 폭주를 했습니까.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돈 앞에서는 권력도 무릎을 꿇거나 결탁한다는, 생명보다 돈이 먼저라는 천민자본주의 문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인격과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끔찍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거나 대폭 줄어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험 해결은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갈 때, 정치를 이끌어갈 때, 기업을 이끌어갈 때 위험 폭주 기관차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 믿습니다. 2015년에는 안전사회를 위해, 건강사회를 위해 '순한 양'이 되어 '양들의 침묵'을 보이지 마시고 함께 떼를 지어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어야겠습니다. 2015년 양띠 해에는 모두들 언제 어디서나 몸과 마음이 두루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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