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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엔 굽신, 최고은은 방치…'은수저' 서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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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벤저스>엔 굽신, 최고은은 방치…'은수저' 서울의 민낯 [프레시안 books] 류동민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는 잠이 많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잠이 많은 것은 항상 콤플렉스였다. 그런 나에게 얼마 전 지인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잘 자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어떻게 내릴 역은 귀신같이 알고 깨느냐."

무심결에 "지하철에서 조는 게 습관인데, 선잠을 자서 내릴 때면 저절로 일어난다"라고 답했는데, 그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런가?" 비서울 지역 출신인 그는 '이동 시간에 잠을 자고, 내릴 때 깨는 습관'을 '서울 사람스러운 것'으로 규정했다. 그게 충격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기억의 총체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면, 내 기억은 서울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서울 변두리 출신의 30대 노동자'쯤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

서울에 산다는 것은 비서울 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는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가까이 있음에도 제대로 이용해 본 적도 없으면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은 '좀 쿨한 것'이었다. 지금도 후진 월세방에서 아등바등 살지언정, 여기 아닌 다른 어딘가에 사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올라갈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이 도시의 작동 원리

ⓒ코난북스
류동민 충남대 교수가 쓴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코난북스, 2014년 12월 펴냄)는 서울에 사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음직한 '구질구질함'을 잘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부제부터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이다. 서울 사는 사람으로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표제 아래 소개 글도 확 꽂힌다. "올라갈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이 도시의 작동 원리"란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압축 성장한 상징적인 도시인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공간과 사람은 분리할 수 없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의 작동 원리가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이를테면 잠이 많은 게 '콤플렉스'가 되는 것부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력적인 노동력이 될 수 없다는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자기 경영의 논리'에 빠진 것이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서울은 좀 삭막하게 굴러간다. 저자 표현대로라면, 서울은 '배제와 물신'의 공간이다.

이 원리에 따라 서울의 어떤 공간은 살아남거나 진화하고, 또 어떤 공간은 '후지게' 남아 있다.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와 자신을 '구별 지으려' 하고, 못 가진 자는 '따라잡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곳.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인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지만, 알고 보면 그 이데올로기는 환상일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 한다.

우울 : '은수저가 없어? 넌 안 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좀 우울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나에게 '넌 아무리 기를 써도 은수저 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간단명료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택시 기사의 분류법에 따르면 서울은 세 가지 권역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홍대 같이 대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 둘째는 아저씨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 일대 유흥가, 셋째는 시외로 나가는 지하철 환승역 근처다.

단순화하면 첫째 권역에는 20대가, 둘째 권역에는 50대가, 셋째 권역에는 30대가 산다. 가난한 젊은 세대들은 첫째 권역이나, 셋째 권역에서 산다. 어느 곳에 살기를 선택하(사실상 강요받)더라도 좀 우울하다.

"광역버스에 매달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몇 시간씩을 통근에 사용하거나, 직장에서 가까운 원룸에 살거나. 이 강요당한 양자택일 속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노동력 재생산에 드는 비용은 점점 증가하며, 나아가 노동력의 세대별 재생산(결혼이나 출산) 자체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148쪽)

게다가 소득 불평등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을 굳이 수치로 확인시켜주기까지 한다. '너는 서울에서 아파트는 절대 못 산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연봉 오천만 원을 받는 회사원이라면 그 일곱 배인 삼억 오천만 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평균이 되는 셈이다. (…) 소득이나 재산의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실제로 평균값에 도달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연봉 오천만 원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삼억 오천만 원을 몽땅 털어서 서울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 크기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가를 감안해본다면, 아무리 벌고 모아도 따라갈 수 없는 격차가 이미 벌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말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은 십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삼십 평대의 분양가는 이천만 원 정도였다. (그러니 1970년대 말에는 평균 연봉의 15∼16배 정도를 모아야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2014년 서울의 삼십 평짜리 아파트 가격은 평균적으로 육억 원 정도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을 삼천만 원으로 잡으면 약 이십 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마저 서울 평균이고, 강남 집값은 더 비싸다.) 이것만으로도 지난 한 세대 동안 학력자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평등이 얼마나 심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186쪽)


서울은 배제의 원리에 따라 변한다

서울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웅장해지고 거대해지고 더 세련된 모습이 되고 있다. 서울 곳곳의 공간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는다. 돈을 낸 사람은 돈을 낸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자본주의적 작동 원리는 공간도 재편한다. 예를 들어 대형 교회는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위안 서비스를 제공하되, '대량 생산 - 대량 소비' 체제에 맞춰 공간이 대형화되고, 대학 공간은 '하드웨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한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비슷비슷한 대학들이 제품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는 캠퍼스의 하드웨어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석조 건물, 약간은 키치한 느낌마저 주는 커다란 대리석 기둥들이 늘어선 코린트 양식 등은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즐겨 되풀이되는 요소였다. (…)

기업체가 지어주는 공간은 점점 늘어나는데도 막상 대학원생이나 시간강사를 위한 연구 공간은 별로 늘지 않기도 한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기숙사는 비용이 비싸 정작 학생들은 소외된다. (…) 기억의 공간은 그렇게 사라지며 새로 생겨나는 공간들은 점점 더 배제의 원리를 강화한다." (115∼122쪽)

대형화된 교회 건물, '삐까뻔쩍한' 대학 건물, 높디높은 강남 아파트는 누군가에게는 이질감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향 같은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옛것은 좋아하고, 새것은 배척하느냐? 그건 아니다. 그는 어떤 구성원들이 그 공간에 대해 갖는 느낌(재현 공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분노 : <어벤저스 2> 촬영과 작가 최고은의 죽음

어쨌든 '배제'의 원리로 서울이 작동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한 이 책은 우울하다. 그 우울함은 어느덧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1대 99의 책이기도 하다. 용산 참사의 슬픔이 솟구쳐 분노로 바뀐다. "남은 밥이랑 김치 좀"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굶어간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시리다가도, <어벤저스 2> 영화 촬영으로 한강 다리가 통제되는 상황을 묘하게 대치시켜 느닷없이 <어벤저스 2>엔 관심도 없던 나까지 '빡치게' 된다.

"한예종 출신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서른을 갓 넘긴 청춘은 그렇게 떠나고 자극적인 문구들만 남았다. 어느 변두리 단칸방에서는 '문화'가 죽어 가는데, 인구 천만 명의 대도시 한복판에서는 '문화'가 특권을 누린다. 차이는 결국 자본의 힘이다. 길을 틀어막을 수 있는 힘, 국가만이 가졌던 그것을 이제는 자본이 가져간 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에 대한 자발적 굴종일 것이다." (242쪽)

▲ <어벤저스 2>. ⓒ마블스튜디오


반전 : 결론은? '그냥 거기서 살어, 뭔가 실천하면서'

'빡침'의 단계까지 왔다면, 당신은 이 책을 거의 다 읽은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이 궁금해진다. 서울 말고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나? 작지만 삭막하지는 않은 중소 도시나, 어느 한적한 시골로 가야 할까? 그런데 그런 얘기가 없다. 저자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배신은 이거다. '그냥 생긴 대로 살어.' (물론 이 책에 그런 문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내가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서울에 관한 책이지만 서울에 관한 책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 저자는 희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단서를 남긴다. 공간이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공간이 작동하는 새로운 원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그 답은 공공성 확보라 한다.

"끊임없는 추격의 과정이 겪게 될 미래의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추격자가 스스로 그 가능성 없음에 절망하여 추격을 포기하는 것이다. 추격자가 추격을 포기할 때 비로소 이 과정은 마무리되며, 탈주자와 추격자가 따로 걸어가는 투 트랙의 사회가 완성될 것이다. (…)

다른 하나는 추격의 과정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 그러나 두 번째 시나리오로 전개될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대중적 요구와 문제 제기가 수면 위로 올라올 잠재적 가능성은 항상 개인적 차원에서 추격을 위한 노력에 의해 좌절되곤 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역사적으로 길러왔던 평등주의적 요소에 대한 열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될 때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278∼279쪽)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 이 책 사이사이에 저자의 경험이 소설처럼, 양념처럼, 때로는 아련하게 들어가는 게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1960년대에 태어난 저자의 경험담은, 나는 경험해보지도 못한 것에 대한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80년대 학번 세대가 범할 수 있는 쉬운 오류(젊은이들에게 윽박지르기 등)를 이 책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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