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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중산층과 박근혜의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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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바마의 중산층과 박근혜의 중산층 [주간 프레시안 뷰]'상위 1%' 겨냥한 오바마 증세, 박근혜는?
안녕하세요? 경제가 어떻게 흐르는지, 맥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시간으로 1월 20일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연설의 핵심어는 '중산층 경제학'(Mddle-class economics)입니다.

다소 길지만 직접 연설문을 보실 분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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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극복을 넘어 새로운 중산층의 시대를…

오바마 연설은 전쟁과 장기침체로 얼룩진 21세기의 15년을 간략히 돌아본 뒤, 두 번째 문단에서 "그러나 오늘 밤 우리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깁니다"로 시작합니다.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 실업률 하락, 아이들의 졸업 비율 상승과 건강보험 확대, 해외 주둔군의 축소 등 자화자찬으로 이어지죠.

선진국 중 유일하게 3퍼센트(%)대의 성장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는 나라의 대통령답게 자신이 넘칩니다. 하지만, 여느 대통령의 신년 연설이 그렇듯 이 자평은 분명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난 15년간 중위 가계소득(median family income)은 정체를 넘어 감소하는 중이며, 실업률이 5%대로 떨어진 것도 많은 부분 아예 구직을 포기해서 비경제활동 인구로 편입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3%대로 올라간 성장도 그동안 풀린 돈 덕에 또 다시 부푼 자산거품에 힘입은 것이라서 과연 지속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래도 오바마의 이번 연설에서 주목할 점은 '중산층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장기적 흐름에 쐐기를 박아 새로운 단계를 열려는 야심 찬 시도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과연 훌륭한 연설가입니다. 7년 전에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결혼한 레베카(식당종업원)와 벤(건설노동자)이라는 신혼부부가 매우 어려운 시기를 거쳐 "단단하고 잘 짜인 가정(strong, tight-knitt family)"을 어떻게 꾸릴 수 있게 되었는지, 레베카의 편지를 통해 소개합니다. 그리곤 이들의 아이들(잭과 헨리)에게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하나 짚어가죠.

즉 자신의 임기 동안 레베카와 벤처럼 열심히 일한 사람이 보상받는 '중산층 경제학'이 확인되었으므로, 이제 노력과 기회의 확대(hard work and growing opportunity) 간의 연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모든 불리함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자신처럼 중하위층이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산층 경제학'이 우리 시대에 요구하는 것은 우선, 변화하는 세계에서 일하는 가정(working family)이 더 안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즉, 보육·대학·보건·주택·은퇴 문제의 해결입니다. 이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일하는 가정의 세금을 낮추고 이들의 호주머니에 수천 달러를 채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한 아이 당 3000달러의 감세, 7일간의 유급병가, 그리고 유급출산휴가, 남녀 간 평등임금, 최저임금 인상("연간 1만5000달러 소득으로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반대하라"), 노동조합의 강화, 모기지 이자율 인하를 구체적인 정책들입니다.

둘째, 노동자들의 숙련 향상입니다. 이를 위해서 커뮤니티 칼리지의 제로 등록금, 즉 2년간의 무상 대학교육을 약속했죠. 셋째는 21세기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인프라'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의 건설입니다. 현대적 항구, 튼튼한 다리 빠른 기차, 최고속 인터넷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연설을 읽어 보면, 아마도 공화당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또는 공화당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 '중산층 경제학'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 정책들의 혜택이 노동자계급에게 집중되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정책들은 바로 '소득주도성장'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자본이득세 등 부자증세가 답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경제학'이 스티글리츠와 라이시, 그리고 피케티의 이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1%에게 집중된 자산과 소득을 이야기할 때는 피케티가, 그리고 자본이득세를 주장할 때는 스티글리츠가, 노동계급의 실태를 전할 때는 라이시가 오바마의 등 뒤에 어른거리죠.

연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백악관과 행정부가 흘린 세제개혁은 스티글리츠가 지난해 5월에 발표한 '성장과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개혁'(Reforming Taxation to Promote Growth and Equity)을 참조한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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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주목을 받고 있는 자본이득세는 스티글리츠가 1950년대부터 계속 주장해온 세금이기도 합니다. 현재 23.8%인 자본이득세율을 레이건 시대의 28%까지 인상하겠다는 건데,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로 인상하는 셈입니다. 또한 부자들의 대표적인 세금구멍(loophole)으로 상속세를 지적하고, 아버지 시대의 장부 가격을 기초로 상속세를 매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아버지가 10만 달러를 투자한 주식이 20년 뒤 100만 달러가 된 상태에서 상속을 하면 현재가격 기준으로는 자녀에게 아무런 자본 이득이 없는 셈이어서 상속세가 '0'이 되지만, 장부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190만 달러에 대해 상속세가 매겨진다). 또한 우리나라의 거시건전성 부담금과 같은 성격의 은행세를 500억 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100여 개 월가은행에 부과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죠.

이런 증세조치를 통해서 앞으로 10년간 3200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해서 앞에서 얘기한 보육과 대학교육, 은퇴 후 삶에 혜택을 늘리겠다는 겁니다. 오바마는 이런 재정정책이 만능이 아니라면서("모두 잘 살게 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 아니다"), "고용주가 다음 분기의 실적만 보는 것을 넘어서 노동력에 투자하는 것이 회사의 장기 이익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오바마는 정부가 주도해서 사회 전체가 '소득주도성장'으로 향해야 하지만, 노동자 등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 이들이 희망을 품을 때 비로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번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물론, 이미 월가의 보고서가 주장하듯이("고객들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세제개혁과 지출계획이 순조롭게 공화당의 의회를 통과할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이런 중장기 비전은 앞으로 2년간, 그리고 2016년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등장하겠죠.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곳곳에서 구체적인 가족의 예를 들면서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건 초당적 임무라고 강조한 이유입니다. 이제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들은 '중산층 경제학'을 둘러싼 찬반 논의를 시작할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래 논의의 지형을 바꾼 겁니다. '재정긴축'을 둘러싼 논쟁의 지형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죠.

* 이번 연두교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중국이 자신이 규칙을 국제사회에 퍼뜨리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대한 동의와 신속협상권을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곧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 단 TPP에 대해 라이시가 최근에 한 비판은 우리에게도 매우 유익한 관점이라서 링크를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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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중산층 세금

이번 오바마의 연두교서를 찬찬히 읽은 분은 자신도 모르게 아마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자화자찬은 마찬가지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연설과 여러모로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앞으로 30년간 먹을거리를 만들겠다며 "나를 믿고 따르라"는 주장만 되풀이했죠.

가슴이 터지더라도, 굳이 비교하고 싶은 분은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연설 전문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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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도 중산층을 위한 정책('중산층 주거혁신 방안')을 내놓았죠. 하지만 1월 15일 자 <주간 프레시안 뷰>에서도 얘기했듯 박근혜 정부의 중산층은 정의상으론 가계의 65%를 포괄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 내용, 즉 '기업형 민간주택'은 서울의 상위 20%, 그리고 대형 건설사를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그리고 각 부처의 정책에도 노동자의 소득과 직접 연관된 정책은 찾기 힘들죠.


'증세없는 복지'는 담뱃세 논란에 이어, 이번 주에는 싱글세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3년의 세법개정은 소득공제를 정액 세액공제로 바꿔서 역진성을 줄이고, 대신 과세 대상을 넓힌다는 점에선 올바른 방향입니다. 하지만, 첫째는 소득세만 대상으로 했다는 점(반면 오바마의 세제개혁은 자본이득세, 상속세를 늘려서 노동자가정의 세금을 줄여주고 복지를 늘려준다는 겁니다), 둘째, 엉터리 시뮬레이션으로 특정 중산층의 세금이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죠.

즉, 2013년 세법개정은 소득 3000만 원까지는 150만 원, 3000만 원~1억 원까지는 100만 원의 근로소득공제를 줄였죠. 따라서 새로 세금 대상이 된 액수에 15%의 세율을 적용하면 15만 원에서 20만 원정도 세금이 늘어나겠죠. 하지만 동시에 정액의 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소득 구간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문제는 자녀나 출산과 관련된 공제제도를 통합하면서, 4000만 원 소득을 올리는 가계 중 새로 자녀를 출산한 가구와 다자녀가구, 3000만 원 안팎 소득의 싱글 가구의 세금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과거에 당한 것을 보복이라도 하듯 '세금 폭탄'을 들고 나왔고, 새누리당과 정부는 부랴부랴 땜질 처방에 나섰죠.

세세한 논점을 차치하고 오바마의 세제개혁과 비교하면, 한쪽은 커다란 비전에 입각해서 세제개혁의 큰 줄기를 제시했지만, 태평양 반대편에선 말 그대로 포퓰리즘에 입각해서 '증세없는 복지'를 실천하느라 사실상 중산층의 증세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한쪽은 부자가 새로운 사회의 비용을 대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반면, 다른 한편은 부자나 대기업이 손해인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강조합니다. 이래서야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우리 모두의 복지를 위해서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주간 프레시안 뷰'(이하 '뷰)가 새단장을 합니다.

'뷰'는 그동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과 프레시앙(유료 회원)에게 우선 제공됐으나, 오는 2월 5일부터는 독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관점이 있는 칼럼'으로 전환합니다.

분야 별 필진은 '정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경제' 정태인 칼폴라니 연구소 창립 준비위원(前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 박인규 프레시안 발행인(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 '생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세월호'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2월 5일부터 바뀌는 '뷰', 많이 기대해 주세요. ('주간 프레시안 뷰' 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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