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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의 톡톡 튀는 도전 '소비 파업', 그 흥미로운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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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의 톡톡 튀는 도전 '소비 파업', 그 흥미로운 1년

[프레시안 books] 그레타 타우베르트 <소비 사회 탈출기>

독일의 언론인 그레타 타우베르트가 지은 <소비 사회 탈출기>(아비요, 2014년 12월 펴냄)를 읽었다. 저자의 다채로운 그리고 대책 없는 실험이 재미있다. 저자는 어느 날 '지구에 자원이 다 떨어질 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지? 경제가 더 어려워질 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지?' 하는 불안감을 가졌다. 그녀는 집에 앉아 비관주의자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심각해, 심각해, 큰일이야, 큰일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1년간의 소비 파업에 돌입한다. 즉 돈 없이 살아남을 방법을 몸소 실천해보기로 한 것이다. 도시에 사는 현대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되는 법을 배우기로 맘먹는다.

시작은 가짜 로빈슨 크루소 같다. 통조림과 과자가 든 비상 상자 속의 음식만 먹으면서 2주를 버티기도 했고 원시 식사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고 물만 마시면서 버티기도 했고 커피 찌꺼기를 모아 버섯을 재배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거기서 나온 음식을 먹기도 했고 돈 없이 스페인에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점 무정부주의자들, 현대판 히피들, 자유주의자들을 만나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기도 한다. 폐기물 집하장과 무료 나눔 시장을 샅샅이 뒤지기도 한다. 도시 채소밭에서 수확물을 거두고 옷 교환 행사에서 옷을 탐색하기도 하고 다양한 시스템 이탈자들을 만난다. 물론 의심도 했다. '내가 지금 보는 것들이 개개인들의 자급자족적인 라이프 스타일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폐쇄적인 세계관을 가진 자들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불안감에서 시작된 여행이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만나는 여행이 된다. 그 결과 그녀는 도시에 있는 자신의 집을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으로 바꿨고 자신만의 채소밭을 일구고 물은 우물에서 길어오고 숲에 나가 견과류와 야생풀을 채취하고 수많은 피난처를 발견한다. 공유하고 나누는 사람들, 스스로 집을 짓고 뭔가를 재배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일상에서 여러 도전들을 하는 데 있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중요한 변화가 있다. 자신을 구하려는 애초의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이다. 남들과 더불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버린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시작했는데 '우리'라는 감정을 맛본 것이다.

그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믿음을 상실한 자들 즉 실업자, 대학생, 활동가, 고교 졸업생, 이주자들이 많다는 것을 주목한다. '나'를 앞세웠던 20세기의 인간상을 대체할 진화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난 몇 십 년 동안에는 개개인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그러면서도 늘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무엇이 최고인지를 묻는 것이 아주 괜찮은 삶의 방식'이었는데 이런 삶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했으므로. 시작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살아남으려는 '불안감'이었지만 여정을 거치면서 '재미'가 불안감을 대체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봤으므로.

만약 '정말로 소비 사회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을까? 돈 없이 살 방법이 없을까?'가 주된 고민인 사람이라면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다양한 사이트들도 소개되어 있고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피곤하지만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방법들도 몇 가지나 있다.

불안감에 '나'를 구하려 시작한 소비 파업에서 만난 재미와 '우리'

ⓒ아비요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소비 사회라는 말을 떼고 탈출에 주목을 해본다면? 관심이 '탈출' 자체인 사람이 읽는다면 저자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만 탓할 줄 알았지 나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 것을 탓할 줄 몰랐던 나는, 그리고 버티다가 남보다 조금 더 늦게, 조금 더 고통스러워하며, 조금 더 분열을 겪지만 결국은 세상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살고 있는 나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 슬픔과 답답함을 느끼는 나는, '탈출기'라는 말 자체가 좋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까지 나갈 수 있을까?' 각자 지금 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든, 취업 문제든, 은퇴 문제든, 고독의 문제든, 대출 문제든, 비대해진 자아 문제든 그 무엇에서인가 탈출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고민에 이 질문을 대비시키면서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해보면 좋을 듯하다. 두려움으로 시작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작이라고 하면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는 시작만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스템 이탈자는 곧 낙오자,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신이 시스템 이탈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저자는 자신의 여정 끝에 자신을 다중 인격체라고 소개한다. 우선 파트타임 원시인이다. 즉 도시의 공원과 숲에서 야생 식물, 열매, 견과류, 버섯이 숨어 있는 은신처를 발견하고 바구니를 들고 도시의 공유지를 돌며 식량을 수확한다. 그리고 공동체 농부다. 직접 수확한 작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온다. 그리고 아마추어 프로슈머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고 바느질하고 수리하는 것이 그녀의 이상이다. 동시에 비정규직 떠돌이이며 신히피족이다. 현대의 신히피족들은 공동 작업장에서 만나고 공익 지향적 회사를 세우고 주택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서로 결속된다.

이것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운 변신의 경험일 수 있다. 우리는 명함에 자신의 직업만을 적고 대학 졸업 후 모노톤의 이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력이나 실패담은 가슴 아픈 기억이나 지난날의 고생담 정도로 치부된다. 일찍 안정되고 일찍 결정되고 그대로 쭉 살면서 시스템이 주는 부담으로 고통 받는 날도 있지만 무감각해지거나 열정 없이 소멸된다. 지구 자원이 바닥나기 전에 마음의 자원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 도시 안에 사는 다중 인격체로 실험해보는 것도 자신을 살펴보고 확장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다. 나도 만약 다중 인격체 명함을 만든다면 지금은 쓸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듣는 사람이자 산책자. 가지각색 슬픔 중독자' 정도? 그런데 그녀는 어쨌든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으로 변하는 경험을 했고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벗어났고 새로운 유대감을 맛봤다.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바로 이 부분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려고 했고, 봤기 때문에 영향을 받고 용기를 얻고 우리를 옥죄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수동형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친구를 얻었다.

그녀는 '나' 중심의 20세기 인간형을 대체할 진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표현을 했는데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설마 우리가 사는 동안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특히 인간형이 변할까? 모두 같은 것을 추구하고 같은 것을 찬양하는데? 진화가 아니라 역행의 시기 아닐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구석이다. 다만 작은 실험들이 구석구석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로 사는 데 너무 지쳐버렸고 고립되고 외로워진 것도 맞다. 20세기 진화의 한복판이 아닐 수는 있지만 변방 어딘가에서는 스스로 고독해질 위험을 감수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런 실험으로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그렇지만 정말 많은 것이 우리 손에 달려 있기도 하다.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질문은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이다. '각자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에 대한 각자의 답을 진지하게 찾아보는 과정에 입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탈출해야 다른 삶이 보인다

서평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저 수면 아래서는 엄청난 관련이 있는 이야기 한 가지 더 추가해보고 싶다. 지난 연말에 얼어붙은 강을 트레킹했다. 강은 깊지 않아서 빠져도 죽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얼음 위를 걷는다는 것은 긴장감을 줬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해야만 했다. 두려움도 있었다. 만약 물에 빠져서 얼음 밑에 갇혀 버리면? 세 시간 반을 걸어야 강 끝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렇게 조심조심 걷다가 옆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바로 몇 발자국 옆에 누구나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있었다. 가지 않는 길과 가는 길은 멀지 않았고 멀기는커녕 그토록 가까웠다. 다만 몇 발자국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길에 내려섰을 때 너무나 많은 것이 보였다. 고라니의 발자국, 너구리의 발자국, 토끼의 발자국. 작은 새의 발자국. 그들은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강 위를 걸어서 마실을 나가고 산책을 나가고 뛰고 점프하고 걸었다. 이 이야기가 이 책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일단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시스템을 보기 시작한다면? 걷기로 예정된 길을 걷지 않아본다면? 그때부터 다른 삶의 시작 아닐까? 다른 삶이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경제를 살리도록 소비를 해서 여행하고 소비를 해서 기분을 풀고 소비를 해서 행복해지고 소비를 해서 자존감을 찾고 소비를 해서 자기 삶을 구축하는 데서 벗어난다면 이미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 수많은 골칫거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탈출은 어쨌든 다른 사람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

눈에 띄는 소녀가 한 명 있다. 가난한 마을의 소녀가 굶어죽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버섯을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버섯 키우는 법을 알았을 때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음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고 말한다. 한 가지 변화가 다른 변화를 불러오고 애매했던 꿈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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