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 프레시안 뷰>에서는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 유럽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어떻게 짧은 기간에 놀라운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창당 10년 만에 그리스 정권을 장악한 시리자의 경우도 그렇지만, 출범 1년 만에 최고 지지율 정당으로 급신장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정치적 성공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그동안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정당이 권력을 번갈아 나눠 가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해온 기존 유럽 정치의 지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시리자(Syriza)'는 '급진좌파연합'의 그리스어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말이고, '포데모스(Podemos)'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역사적 경험이나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에 의해 강요된 가혹한 긴축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실업률은 3배로(25.5%) 뛰어오른 반면, 성장률은 마이너스(-) 26퍼센트(%)로 주저앉았습니다. GDP 대비 외채의 비율은 113%에서 174%로 급증했습니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GDP 규모가 줄어든 때문이죠. 240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 중 84%는 외채 상환에 쓰였습니다. 외채가 서민들의 삶을 지원하는 데는 거의 쓰이지 않은 것입니다. 1조 유로의 외채를 안고 있는 스페인도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부과된 긴축재정이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린 것입니다. 이는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반란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됐습니다.
두 나라 모두 역사적으로 좌파의 치열한 투쟁 경험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 프랑코 총통의 파시스트 정부에 맞선 공화파와의 내전이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반나치 투쟁에 나선 레지스탕스 세력의 집권 가능성 높았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경우,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의 적극적 지원을 받은 프랑코 정부가 승리를 거두고 이후 40년 가까이 독재 정치를 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좌파세력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본 미국과 영국의 개입으로 결국 좌파가 패배하고 말았죠. 미소 냉전을 공식화한 1947년의 '트루먼 독트린'은 바로 그리스 내전에서 좌파의 승리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외세의 개입으로 좌파가 패배하긴 했지만, 그 투쟁의 경험은 양국 국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리자 지도자로 지난 1월 26일 그리스 총리에 오른 알렉시스 치프라스(40)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36)는 10대의 젊은 나이부터 정치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것도 기존 정당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새로운 정치 실험에 나섰습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공산주의청년단(공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치프라스는 1월 29일 자 <주간 프레시안 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교생 때인 1991년 보수 정부의 교육개혁에 맞서 학교 점거 농성을 벌이는 등 나이에 비해 정치 경험이 풍부합니다. 그는 32세 때인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하는 등 일찍부터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 왔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역사 교수인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글레시아스는 스페인공산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할 만큼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공립대학인 명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을 졸업하고, 이 학교에서 정치학 교수가 됐습니다. 24세 때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들의 정치교육을 위한 '라 투에르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다가올 때를 대비하여 대중들이 레닌주의적 시각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10대 후반, 20대 초부터 나름대로 정치적인 훈련과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적공(積功)'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스 시리자의 경우 2004년 총선에 첫 도전해 6석(3.26%)을 얻는 등 10년에 걸친 제도권 정치활동의 경험이 있습니다. 반면,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 만인 지난해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첫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8%의 득표율을 얻어 5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걸까요?
포데모스의 출발점은 2011년 5월 15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분노하라(인디그나도스, Indignados)' 시위입니다. 이 시위는 '15-M 운동'으로도 불립니다. 5월(May) 15일 시작된 운동이란 뜻입니다. 당시는 뉴욕 월가 점거 시위(Occupy) 등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탐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15-M운동의 정치적 결과는 11월 총선에서 집권당이 중도 좌파 사회주의노동자당(PSOE)에서 중도 우파 인민당(PP)으로 바뀐 것뿐이었습니다. 인민당 집권 후 IMF와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정책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운동에 바탕을 둔 정치 운동의 한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스페인 사회학자 호르헤 라고는 "시위 민중들의 힘을 점차 결집해 나감으로써 유의미한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당시 시위를 통해 임차인보호연대, 의료보험삭감반대 네트워크 등 사회조직이 결성됐지만, 동력은 약화됐고 11월의 총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죠. 라고에 따르면 "당시 유권자의 80%가 15-M 운동의 대의에 공감했지만 실제 투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회당과 인민당 등 양대 중도 정당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결국 15-M 운동의 대의를 담아낼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추상적 강령만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연합전선(UF)'이라는 좌파 정당이 오래전부터 15-M과 비슷한 정책들을 표방했으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15-M의 정책들을 일반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포데모스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인간을 위한 경제'라는 자신들의 강령을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낸 거죠. 포데모스 지도자들은 기존 좌파가 추상적 분석, 현학적 인용, 애매한 언어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글레시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후보의 이념이나 가치, 문화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해서 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말과 행동에 끌리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과 같고 매력이 있으며, 유머 감각이 있는 후보를 선택한다는 얘깁니다.
포데모스의 첫 번째 과제는 좌파의 전통적 담론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스페인의 주권, 사회 정의 등을 열쇳말로 해서 광범위한 서민들에게 운동의 목표를 이해시킨 것입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타파라는 말 대신 경제민주주의라는 말을 씁니다. 좌와 우를 가르지 않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적들로 가릅니다. 금융계·대기업·상층 엘리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고, 서민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겁니다. 스페인은 좌와 우로 나뉜 것이 아니라 상위 1%와 나머지 99%로 갈라졌다고 말합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포데모스의 이러한 담론 전략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이글레시아스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포데모스의 전략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5-M 운동이 시작됐을 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들을 읽은 매우 정치적 성향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시위에서 '보통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학생들은 이 시위에서 크게 낙담했다. 노동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노동자요.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라며 노동자로서의 각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학생들을 마치 외계인 바라보듯이 낯선 시선으로 대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좌파의 낡은 담론을 설파하면서 사회의 소수파로 남아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저들이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행태에 얽매어 있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다는 것을 저들은 안다."
일반 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목표와 정책을 설득해낸 것이 포데모스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지금 스페인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승리는, 곧 일반 시민의 삶의 파탄을 가져올 것이라는 얘기죠.
또한 이들은 대졸 출신 청년들과 노동자,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1000개 협의회를 전국 곳곳에 구성해 자신들의 정책을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주요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해 우파 인사들과 당당히 논전을 펼칩니다. 결코 소수파 콤플렉스에 갇혀 있지 않은 것이죠. 또한 카탈루냐, 바스크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스페인에서 소수 민족의 자치권을 옹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들이 어우러져 창당 불과 1년 만에 지지율 1위의 정당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포데모스의 급속한 정치적 성공에 스페인 집권 세력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페인 대기업 연합회의 대표인 후안 로셀은 지난해 12월 스페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사회당과 인민당의 대연정을 실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것만이 포데모스의 집권을 막을 길이라는 얘기죠. <엘 문도>의 한 언론인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에 빗대면서 "가난한 자들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러내리게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민당의 한 정치인은 "누군가 그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오는 연말에 있을 스페인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는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현재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는 과두세력(올리가르히)과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의 이른바 유럽 관료들의 반대와 방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포데모스의 정치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기로 곤경에 처한 현재 유럽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좌파세력만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을 비롯해 극우 정당들도 약진하고 있습니다. 시리자를 비롯한 신좌파정당이 자본과 노동의 대결이라는 근본적 구도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반면, 국민전선 등 극우 정당들은 현재 곤경의 원인을 무슬림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 탓으로 돌리면서 과거의 파시즘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유럽의 정치적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좌파의 승리냐 극우파의 승리냐, 이는 유럽의 장래는 물론 세계 자본주의의 앞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포데모스의 약진과 스페인의 현황에 관해서는 다음 두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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