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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 갑자기 세상 떠난 딸, 하지만 삼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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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 갑자기 세상 떠난 딸, 하지만 삼성은…" [현장]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 '목소리'
"안녕하세요. 조은주 엄마 김경희입니다."

이 두 마디 뒤,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이크를 든 손 아래로 머리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얼마를 있었을까. "딸 이야기를 하려니 내 가슴에 내가 못을 박는 거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경희 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주최로 4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5층 회의실에서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 목소리'에 참석했다. 삼성LCD-TV 조립라인에서 근무하다 혈액암으로 지난 2월 10일 사망한 고(故) 조은주 씨의 어머니다.

1992년에 태어난 조은주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10년 7월 삼성전자 탕정사업장에 입사했다. 그가 하던 일은 LCD-TV 조립라인에서 아세톤-알코올 등 화학약품을 이용해 패널을 닦는 일이었다. 3년을 일했다. 2013년 9월, 근무 도중 고열이 나고 입술이 파래지며 피부발진이 나는 등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 갔더니 혈액암이었다.

▲ 고 손경주 씨 아들 손성배 씨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주최로 4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5층 회의실에서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 목소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꽃다운 나이에 세상 떠난 우리 딸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골수이식을 기다리던 중 병세가 악화돼 지난달 10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나이 스물세살이었다.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낸 김경희 씨는 "무척 억울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김 씨에 따르면 조 씨는 생전 병원을 가지도 않던 건강한 체질이었다. 집안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없다. 삼성에 입사할 때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암 판정을 받았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식이 삼성에 입사했을 때는 이미 삼성 백혈병 문제가 사회 이슈화가 됐던 때였다. 어느 정도 작업환경이 개선됐으리라 예상됐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한참을 벗어났다.

삼성은 조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 씨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삼성에서 사람이 왔다. 그때 한 말이 우리 아이는 산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며 "공장에 사원이 몇천 명 있는데 우리 아이처럼 특정한 사람만 암에 걸렸다면 그 책임은 우리 아이에게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 아이 같은 환자가 생겼다면 왜 이런 환자가 생겼는지 알아보는 게 필요하지 않나"라고 반문한 뒤 "삼성은 그런 행동을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삼성반도체 협력업체 현장소장으로 일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2년 8월 사망한 고(故) 손경주 씨도 마찬가지다. 손 씨는 203년 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삼성반도체 협력업체 관리소장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지보수업무를 총괄했다.

손 씨 아들 손성배 씨에 따르면 손 씨는 관리소장이었으나 초기 라인 설치 시, 안전관련 긴급 상황 발생이 잦아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기시설 구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유해물질에 적지 않게 노출됐다고 한다. 급기야 2009년 5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사망했다.
손성배 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제기했으나 '관련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고3 때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한 김미선 씨도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김 씨는 고온납땜 침 화학약품을 이용한 이물질 제거 등 업무를 하루 8~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로 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팔다리에 마비증상이 왔다. 희귀난치성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이었다. 최근에는 시력도 안 좋아져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김 씨는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어떨 때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나쁜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고 현재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아픈 것에 대해 산재를 인정받아 마음 편히 치료라도 받았으면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 자신의 딸인 고 황유미 씨 영정에 헌화하는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보상 범위 넓히는 게 산업재해 예방하는 길"

2015년 2월 기준으로 반올림에 제보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현황을 보면 총 327건의 제보가 있었고 이중 산재인정을 받은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삼성은 백혈병 등 다섯 종류의 림프조혈기계암(혈액암), 뇌종양, 유방암만을 보상 대상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재직 기간 요건도 한정해 혈액암은 1년, 뇌종양·유방암은 5년 이상 일한 노동자만 보상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뿐만 아니라 질병과 근무 기간 요건을 채운 발병자라도 '특수건강진단 이력'이 있어야만 보상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삼성전자 직원이 아닌 협력업체 노동자는 보상 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노동자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책임은 기업에 있고 건강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보상을 최대한 넓히는 게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길"이라며 "생색내기식이 아니라 고통을 덜기에 모자라지 않는 보상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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