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가명) 씨는 광고를 보고 2013년 9월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본점을 찾았다. 상담실장의 권유로 '최고의 전문가'라는 ㄱ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안면 윤곽 수술을 받기로 했다. ㄱ 전문의는 "잘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박 씨를 안심시켰다. 수술 일정은 5일 만에 잡혔다.
수술 당일 성형외과 본점이 아닌 '안면 윤곽 센터점'으로 안내된 박 씨는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마취를 받고 기억을 잃었다. 마취에서 깨서 눈을 떴을 때는 수술실에 아무도 없었다. 왠지 불안했다.
수술 이튿날부터 이상했다. 안면에 통증이 있었고,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측은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통증은 계속됐지만,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의사와 상담실장을 다시 만나기가 어려웠다.
2014년 4월, 환자가 마취된 사이 수술하기로 한 의사를 다른 의사로 바꿔치는 일명 '유령 수술'이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박 씨는 불안해졌다. '나도 유령 수술 피해자가 아닐까?' 수술 받았던 성형외과 의원에서 수술 예후에 대해 진단받으려 했지만, 예약을 거부당했다.
그해 8월, 박 씨는 대한성형외과의사회로부터 연락을 받아 자신이 '유령 의사 피해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ㄴ 성형외과 전문의가 자신이 아닌 '유령 의사'가 수술을 했다고 양심 고백했다는 것이었다. 박 씨가 수술받은 '안면 윤곽 센터점'은 해당 병원이 '치과'로 신고해 개설하고, 간판만 바꿔단 것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성형수술을 받은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박 씨는 입을 여닫을 때 오른쪽 광대뼈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래턱이 뒤틀어지는 후유증도 겪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CT 사진을 찍어보니, 오른쪽 광대에 박힌 핀은 부러진 상태다.
성형외과 봉직의, '유령 수술' 양심 고백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로 구성된 '유령 수술 감시운동본부'는 1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령 수술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은 사례를 밝혔다.
'유령 수술' 양심선언을 한 ㄱ 성형외과 전문의는 "고용된 의사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병원장의 지시로 유령 수술이 벌어졌다"며 "의사를 믿고 자신의 신체를 맡긴 환자의 신뢰를 깨트린 것에 대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내부 고발을 하게 됐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ㄱ 전문의가 검찰에 진술한 자료 등을 보면, 유령 수술에는 패턴이 있다. 먼저 환자가 각종 광고를 보고 병원을 방문하면, 상담실장들이 병원장에게 협조적인 성형외과 전문의를 '최고의 전문가'인 것처럼 소개한다. 상담실장이 여러 군데 성형을 권유하면서 패키지 할인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유령 수술인 것을 속이기 위해서 '스타 의사'들은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서 전신 마취가 되기 전까지는 환자의 옆에 있다가,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병원장이 정해주는 스케줄대로 다른 환자를 진찰하러 수술실을 나온다. 그 사이 병원에 고용된 '유령 의사'들이 수술을 한다.
ㄱ 전문의는 "2013년 8월부터 3개월간 내가 수술하기로 했던 모든 턱 광대뼈 수술 환자는 모두 치과 의사인 ㄴ과 ㄷ이 수술하도록 병원장이 지시했다"며 "수술이 끝나서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진 후 나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또 다시 환자에게 (수술은 잘됐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병원장-상담실장-집도 의사-유령 의사 결탁
유령 수술 감시운동본부는 지난 9일 공식 홈페이지(☞바로 가기 : )와 콜센터(1899-2636)를 운영한 결과, 5개 성형외과 9명의 피해자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자 중 한 명인 박지현 씨는 해당 성형외과를 사기죄, 상해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대형 성형외과 의원들이 유령 의사를 고용하는 이유는 수술 회전율 때문이다. 유명 성형외과로서는 대기 시간이 길면 환자가 빠지니 최대한 많은 수술을 하기 위해 유령 의사를 쓴다. 반면 유령 의사는 성형 기술을 현장에서 배우고자 봉직의로 취직한다. 유명 성형외과와 신규 의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유령 의사는 병원이 대형화되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생기는 신종 사기 범죄"라며 "병원장과 상담실장, 집도 의사, 유령 의사가 결탁돼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환자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2008년부터 유령 의사가 성형한 건수가 10만 건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수술이 이뤄지기에, 내부 고발 없이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안 대표는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 의사를 바꿔치기하는 것은 사기, 상해, 최악의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유령 수술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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