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가 지난 2월부터 이라크에서 고대 유물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방언론들이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라크 유물 파괴' 원조는 미국이라는 따가운 지적이 제기됐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는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유물을 망치로 깨부수는 지하디스트의 행위가 문명 파괴라는 견해는 확실히 타당하다"면서 "하지만 2015년 2월이나,IS의 존재가 서방언론에 포착된 2013년 이후부터 이런 일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고 일깨웠다.
<슈피겔>에 따르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3월 20일부터 이라크의 유물파괴가 시작됐다. 당시 고대도시 바빌론에 이곳에 주둔한 미군과 뒤를 이은 폴란드군은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고대 도로들을 파괴했다.
바빌론에 군사기지 건설한 미군
지난 2008년 완전히 텅빈 바빌론 박물관에서 마이탐 함자 소장은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파괴된 잔해들이 2000명의 병력을 위한 기지 건설 자재로 쓰였다"고 개탄했다.
당시 바빌론에 있던 이 군사기지는 '핼리버튼의 공중정원'이라고 불렸다. 핼리버튼은 악명높은 미국의 다국적 군수업체다.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 통치자는 네부카드네자르(성서의 느부갓네살)이다. 2600년 후 미국 병사들은 이곳에 도착해 스프레이로 '보고 싶다, 아저씨'라는 글을 벽에 썼다.
대영박물관에서 중동부 책임자인 존 커티스는 바빌론에서 벌어진 행위에 대해 "무지와 어리석음"이라고 비판했다. 대영박물관은 이 행위에 대해 "이집트의 위대한 피라미드나 영국의 스톤헨지 주변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라고 개탄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미국은 이 기지 일대를 공중 촬영한 영상이 폭로된 이후 "신경이 예민해져, 이곳에서 철수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커티스는 꼬집었다.
영국의 <가디언>은 "미 연합군의 행위는 야만적인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바빌론에서 벌어진 일은 IS가 저지르는 야만적 행위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 이전부터 일단의 고고학자들은 8000년의 인류 역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3년 1월 미국 국방부 관료들에게 이런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유물에 대한 이권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2002년 미국문화재협의회의 애슈턴 호킹스는 "문화재를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는 것이 보물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대영박물관의 도미니크 콜론은 이 주장에 대해 "문화재 약탈을 부추기는 얘기"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그대로 현실로 벌어졌다. 2003년 4월 10일과 12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은 불타고, 바스라의 대학도서관 소장품 70%와 모술의 대학도서관 소장품 3분의 1이 파괴됐다.
동시에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에서 1만5000여 점의 소장품이 도난당했다. 보석, 도자기, 조각, 기원전 3100년에 만들어진 세계적인 대리석 가면도 여기에 포함됐다. 미술상에게 팔아넘기려는 전문 절도범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도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세상 일이 그렇지 뭐"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도둑 맞은 예술품들의 가치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은 제네바협약과 헤이그협악을 위반한 것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연합군은 약탈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원전 9세기에 만들어진 아시리아 시대의 청동 부조 16개가 모술(IS가 현재 파괴하고 있는 곳)에 있는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
당시 미국 백악관 문화재자문위원회 위원 3명이 항의 사표를 냈다. 2007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는 "영국과 미국이 이라크에 초래한 무질서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한, 그들은 그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사실 IS 자체가 미국이 주도한 침공에 의해 만들어진 무정부 상태에서 초래된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의 철학자 존 그레이는 IS에 대해 "철저하게 현대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테러 사업체"라고 규정했다. 영국의 종교학자 캐런 암스트롱은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결코 마구잡이로, 비이성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면서 "IS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반동적인 조직이 아니다"고 썼다.
<슈피겔>은 "IS가 유물 파괴로 전하려는 이미지는 종말론적인 것"이라면서 "서구는 딜레마에 봉착했다"고 우려했다.
이미 이라크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개입'으로 실패한 국가를 만들어냈고, 시리아에 대해서는 개입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이라크에서부터 리비아에 이르기까지 잘못되고 실패한 수많은 전쟁을 겪은 서구의 국민들은 이제는 정작 "해야 할 전쟁"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의지를 갖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슈피겔>은 "쿠르드군에 무기를 보내고, 이라크군의 군비를 강화하는 것으로 충분할까"라면서 "이라크군이 IS를 궤멸시키지 못하면 그때서야 서구는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고치기 위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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