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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수술, '신해철 수술'보다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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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령 수술, '신해철 수술'보다 더 위험하다" 미 대법원 "유령 수술은 범죄"…한국 법원은?

'유령 수술(ghost surgery)'이란 수술실에 있는 환자와 집도 의사가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수술이다. 즉, 환자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한 사람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의 수술을 뜻한다.

환자는 수술 전에 자신의 신체를 훼손해도 된다고 허락하는데, 이 '신체 훼손의 위임'을 받은 사람은 수술실 안에서 집도 의사뿐이다. 이는 수술실 안에 여러 의료인이 있을지라도, 수술의 전 과정이 집도 의사의 총괄적인 책임 아래 진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 의사가 바뀌면 '유령 수술'이 되고, 이때 동의 없이 환자의 신체를 훼손하는 사람은 '유령'이 된다.

최근 일부 대형 성형외과에서 유령 수술 문제가 불거졌다. '최고의 성형 전문의'가 집도할 것처럼 고객을 현혹하지만, 막상 환자가 마취로 의식을 잃으면 '유령'이 집도하는 식이다.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이사는 "유령 수술은 여러 종류의 불법 대리 수술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대리 수술"이라고 지적했다. '수술 위임 계약'에서 절대로 바꿔서는 안 되는 사람을 무단으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선 32년 전 이미 대법 판례

미국에서는 이미 1983년에 '유령 수술'에 대한 판례가 나왔다. 당시 미국 뉴저지 대법원은 "의사가 환자 동의 없이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은 불법이며, 동의 없이 수술한 의사는 환자에게 폭행(상해)을 저지른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의 원고인 토마스 페르나(Thomas Perna) 씨는 1977년 5월 성 요셉 병원(St. Joseph's Hospital)에 내원해 A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신장 결석 제거 수술을 권유받았다. 페르나 씨는 A 전문의에게 방광염을 치료받은 적이 있기에 의사를 믿고 수술에 동의했다.

A 전문의는 페르나 씨에게 "의료진 중 두 명이 수술에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전문의와 기타 보조인이 수술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작성했던 페르나 씨는, 그 말을 A 전문의를 포함해 두 명이 수술실에 더 들어간다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그해 6월 페르나 씨는 수술 합병증으로 해당 병원에 재입원했고, A 전문의가 아닌 B, C 의사가 자신을 수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격분한 그는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해당 병원 측은 "의료진들은 개별 환자를 가지지 않고 있었고 하나의 팀을 꾸려 환자를 관습적으로 공유했으며, 의료진 내에는 수술 직전에야 어느 의사가 수술할지 결정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응급 상황 등 환자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환자에게는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을지 뿐만 아니라, 어떤 의사에게 수술 받을지도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비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합의되지 않은 수술은 폭행(상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령 수술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환자 동의 받을 때만 집도의 바꿔도 된다

이 판례는 미국 내 '유령 수술'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첫째, 응급 환자가 의식 없이 병원에 실려 오는 등, 환자의 명백한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는 '동의 없는 수술'이 허용된다. 둘째, 상담한 의사가 '같은 의료기관 내 특정 의사나 모든 의사에게 수술 받아도 괜찮다'는 내용의 환자 동의서를 받으면 다른 의사가 수술해도 괜찮다. 셋째, 대학 병원 내 레지던트가 집도하는 경우다. 이때는 "동의받은 집도 의사의 지휘 하에 레지던트가 수술하는 것에 대해 환자가 동의할 수 있다"고 이 판례는 명시했다.

미국 대법원은 "중요한 것은 동의서 양식에 환자의 결정이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수술하기로 한 의사가 잘못된 부위를 수술하든, 다른 의사가 환자의 적절한 부위를 수술하든지 모두 '의료 과실(malpractice)'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핵심은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 정당한 수술 행위가 되려면, 환자의 동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국내 대법원 "동의 없는 의사 바꿔치기는 맞지만, 의료 과실은 아냐"

한국에서는 '유령 수술'에 대한 판례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유령 수술의 특성상 은폐하기가 쉬운 탓이다.

다만, 마취과 의사가 동의 없이 바뀐 상황에서 마취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패소했던 대법원 판례는 있다. 대학병원에서 선택진료비를 내고 대학 교수에게 마취를 받는다는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알고 보니 1년 차 레지던트가 마취했던 사례다. (☞ 관련 기사 : '의료 사고' 아들은 7년째 입원…담당의 "수술 몰랐다")

지난 2007년 교통 사고를 당하고 다리 수술에 마취과 교수의 선택진료를 신청했던 손영준(당시 19세) 씨는 마취 과정에서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된 까닭에 100일 된 아기 상태로 돌아갔다. 손 씨는 현재 8년 넘게 입원 생활을 하고 있다.

▲ 다리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마취 과정에서 심장 정지가 일어나 100일 된 아기 상태로 돌아간 손영준 씨. ⓒ프레시안

의사가 뒤바뀐 사실을 뒤늦게 안 손 씨의 부모인 손상현 씨와 우미향 씨는 2010년 병원 측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은 '병원이 보험회사에 선택진료비를 돌려줬으므로 사기죄가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손 씨 부부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2013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은 원래 수술실에 들어가기로 한 마취과 교수 대신 1년 차 레지던트가 마취과 전문의와 협의 없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마취를 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손 씨의 다리 수술이 감염 우려 때문에 24시간 이내에 해야 할 '응급 수술'이라는 점을 들어 과실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또 손 씨의 마취 기록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입증할 다른 증거가 없고, 유일한 증거인 해당 마취 기록지에는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다'고 적혀 있으므로 의료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손영준 씨는 의식이 멀쩡한 상황에서 제 발로 병원에 걸어 들어갔고, 손 씨의 부모는 선택진료 교수를 지목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교수가 마취한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그 교수가 안 나와서 사고가 났으면 병원이 100% 책임져야 한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동의 없는 의사 바꿔치기는 범죄"라는 미국 판례 취지와는 다른 점이다.

"유령 수술, 신해철 의료 사고보다 더 위험할 수도"

최근에는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이 양심고백을 하면서, 유령 수술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유령 수술을 하는 일부 성형외과들이 병원 직원들을 조직해 계획적으로 환자를 속였다는 정황도 나왔다.

의사들의 양심선언에 힘 입어 지난 1월 한 '유령 성형수술' 피해자가 모 성형외과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본격적으로 유령 수술 문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집단 소송에 참여할 피해자들을 더 모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령 수술 문제가 최초로 법정에 오를 것이 유력해졌다. (☞ 관련 기사 : 성형외과 턱뼈 수술, 알고 보니 유령의사가?)

여기에 대한성형외과의사회도 "유령 수술은 의사 면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라며 형사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유령 수술 문제가 법정에 올랐을 때, 핵심 쟁점은 '응급하지 않은 수술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의사의 수술 행위'가 위법한지 여부다.

김선웅 이사는 "고(故) 신해철 씨가 '동의 없는 위 축소 수술'을 받아서 논란이 됐다면, 유령 수술은 '동의 없는 의사 바꿔치기'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지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집도의가 환자의 '다른 부위'를 수술하는 일보다 '집도의 자체가 바뀌는' 일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수술실 안에는 수십 명의 의사나 의료인이 있을 수 있지만, 집도 의사를 무단으로 바꾸면 환자의 신체 훼손에 대한 허락을 받은 사람이 수술실 안에 아무도 없게 된다"며 "집도 의사 없는 수술은 환자 몸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정당하지 않은 수술 행위는 의사 면허의 유무와 무관하게 형법상 상해죄, 살인미수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원칙적인 처벌만이 유령 수술을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관련 기사 : '스타 성형의사' 하루 10명 수술,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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