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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단지 '안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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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단지 '안전' 문제가 아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문제는 시스템이다"
3월 말로 접어든 진도 팽목항은 비현실적으로 조용했습니다. 잔잔한 바다위에 떠있는 섬들은 평화롭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노란 리본들이 매달려 있는 팽목항 등대 앞에는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과연 2014년 4월 16일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불과 1년도 전에, 이 부근에서 300명이 넘는 목숨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잔잔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여전히 진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건의 진상은 오리무중입니다.
▲ 팽목항. ⓒ하승수

최근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관저의 100시간(후마니타스)」>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가 쓴 이 책에서는 후쿠시마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100시간 동안 일본권력의 핵심부인 총리 관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책을 보면, 일본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 얼마나 엉터리인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에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장은 간 나오토 총리에게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수소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불신을 받게 됩니다. 원전사고가 일어나면 일본 총리가 사고대책본부장 같은 역할을 맡고, 원자력보안원장이 사무국장을 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 당시의 원자력보안원장은 원전에 관한 비전문가였습니댜. 경제부처의 관료 출신이 순환보직을 하다가, 사고 당시에 원자력보안원장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청난 사고가 났는데도, 사고 수습을 직접 지휘하고 있던 총리에게조차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도쿄전력과 정부 부처 등에 포진하고 있는 원전마피아들은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총리조차도 정보로부터 소외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간 나오토 총리는 TV를 통해서 원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처럼 총리 주변에 믿을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공대 출신인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대학동기에게 전화를 하여 자기 옆에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국가시스템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하자, 사적인 인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 책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 일본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사고 대처가 얼마나 부실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원전마피아들이 밀실에서 일본의 전력정책을 주물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부터 정보를 은폐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그 결과 사고가 났을 때에도 제대로 대처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원전마피아를 중심으로 움직여온 이권구조이고, 부실한 국가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사고가 나고 1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 이런 책이 출판되었는데, 대한민국은 뭐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총리와 총리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발언 하나하나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책으로 출판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 16일의 상황이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사고대응을 맡은 각 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진실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설치된 위원회도 정부의 비협조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된 이유를 단지 '안전불감증'이라고 표현할 문제는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이것은 단지 안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입니다.

최근 어떤 모임에 갔는데, 얘기 주제 중에 하나가 "환경문제는 '환경'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공감되는 얘기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안전문제가 아니라, 규제완화와 기업의 이윤보장에만 매달려온 국가정책의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2의 세월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는 핵발전소 문제도 환경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탈핵운동의 상대방은 핵발전소가 아닙니다. 바로 핵발전을 통해 이익을 보는 이권구조입니다. 1기에 4조원에 육박하는 원전 건설비용은 누군가에게 흘러들어갑니다. 원전건설에 이어지는 송전탑 건설비용도 누군가에게 흘러들어갑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소화하기 위해 싼 가격에 산업용전기를 공급하면, 누군가가 이익을 봅니다. 이들은 전력정책의 결정과정에서 국민들을 소외시키고, 철저하게 자기들끼리 정책을 결정합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핵발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핵발전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안전하자'고 얘기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3월의 팽목항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깊은 슬픔이 밀려 왔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입니다.
▲ 팽목항.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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