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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이 '米國'으로 불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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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이 '米國'으로 불린 사연? [문학예술속의 반미]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V.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1980~1992

3. 1980년대 노동운동 및 생활문화운동과 미국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공장 노동자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에 적극적이고 폭넓게 참여했다는 점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공장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개혁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앞에서 소개한 1984년 창립된 '민중문화 협의회'가 1987년 2월 '민중문화 운동연합'으로 발전했다가 1989년 9월엔 '노동자 문화예술 운동연합'으로 탈바꿈했다.

이 단체는 창립선언을 통해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노동자 계급에 맡겨진 역사적 사명은 "썩은 냄새가 나는 낡은 사회의 온갖 퇴폐적, 반동적 문화를 척결하고 (…) 투쟁하고 노동하는 미래사회의 창조적 인간상을 이상으로 하는 인류 최고의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강령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남한 노동자계급 문예운동은 날로 억압과 착취를 강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신식민적 착취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물질적, 정신적 무기가 되어야 한다(…)
분단과 함께 제국주의의 자본수출 및 종속적 정치군사동맹에 기초하여 수립된 신식민지 군사파쇼정권은 (…) 노동자계급과 전 근로민중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폭력으로 짓누르며 억압과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남한 노동자계급 문예운동의 역사와 경험은 민중을 억압, 착취하는 지배계급 및 제국주의에 대한 줄기찬 투쟁의 역사였다."

따라서 1980년대 전반기엔 주로 대학생들이 민중문화운동을 이끌었다면 1980년대 후반기엔 공장 노동자들 또는 노동운동계가 이에 적극 동참하는 형국이었다.

1980년대 말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현상은 전국의 대학가에 급속도로 퍼졌던 생활문화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반미 투쟁의 효과적 무기"로서 일상생활을 통해 반미주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영어 사용을 될수록 자제하거나 거부하자고 했다. 미국의 팝송을 부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미국 담배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코카콜라를 마시지 말자고 외쳤다. 커피 대신 숭늉을 마시자고 호소했다. 청바지를 입지 말자는 주장도 폈다. 그들은 당연히 한국의 전통문화를 중시했다.

이러한 민중문화운동은 마르크스 문화이론 또는 문학이론에 영향을 받거나 기반을 두었다.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헝가리 출신 루카치 (Lukacs)가 1970년 주장했듯,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문화이론이나 문학예술이론을 체계적으로 다듬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다양한 글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미학적 사상을 몇 몇 학자들이 재구성하여 이를 마르크스 문화이론 또는 문학이론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들의 내용과 비슷한 민중문화운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다.

첫째, 문학예술 작품에서 루카치가 1963년 소개한 '비판적 현실주의'(critical realism)가 팽배하거나 '과학적 사실'이 강조되었다. 둘째, 전통적 문학 장르가 해체되거나 모호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마르크스 문학에서는 장르나 형태가 내용보다 덜 중요하기 마련인데, 소설이나 시에 덧붙여, 보고 기사 (르포르타주), 메모, 일기, 편지, 청원서, 성명서, 선언문 등도 중요해진 것이다.

셋째, 문학과 예술이 의식을 일깨우는 수단 또는 선전선동의 무기로 활용되었다. 1960년대 문학계에서 벌어진 논쟁에서도 드러났듯, '순수 문학예술'은 '반동적 부르주아'의 기치 아래 놓여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이른바 '경향파 문학예술'은 민중적이며 혁명적 지식인들의 기치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넷째, 문화에 대한 그람시 (Gramci)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민중문화가 지배계급의 이념이나 문화에 맞서는 '대항문화' (counter-culture)또는 '대체 패권' (alternative hegemony)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작가와 예술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며, 문학예술을 제국주의 미국에 맞서는 ‘민족해방 투쟁’의 유용한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다. 1980년대 한국의 문학예술계에 미국에 대한 강렬한 부정적 인식을 표출한 작품이 무수하게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이와 아울러 일부 작가와 예술가들은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의 '美國'이라는 전통적 한자 표기 사용법을 거부했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쌀의 나라'라는 뜻의 '米國'이나 '꼴찌 또는 꼬리 나라'라는 뜻의 '尾國'이라는 한자 표기를 즐겨 썼다. 그들의 작품에 '미국'이라는 발음은 유지하면서도 뜻은 긍정적이 되지 않는 한자 표기를 선호한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다양한 출판물에 날짜를 표기하면서 서기(西紀)를 쓰지 않고 새로운 기원(紀元)을 사용했다. 여기엔 반미감정이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기 마련이었다. 흔히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된 1945년을 기준으로 삼는 새로운 기원을 정한 것이다. 예들 들어, 서기 1985년은 '신기원' 41년인 셈인데, 신기원의 명칭은 대개 '분단 조국', '해방 투쟁', '나라 찾기', '반미 항전', '통일 진군' 등이 사용되었다. 이 가운데 '나라 찾기'는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아 한국인들이 나라를 잃어버렸다는 강한 반미의식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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