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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그날, 일본은 왜 그리 허무하게 무너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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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그날, 일본은 왜 그리 허무하게 무너졌나

[프레시안 books] 기무라 히데아키 <관저의 100시간>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버릇이 있다. 비상문을 여는 방법과 도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비상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다. 원래 숙지하고 있다 해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변경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곁눈질로라도 확인하곤 한다.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대형 참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4년, 서울에서는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상상도 못했던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다리 위에는 무학여고 학생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복되며 여고생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봤다. 같은 고등학생이기도 했거니와 나의 단짝 친구가 전학 오기 전 무학여고에 다녔기에, 공포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때 버스만 타면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오만 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비상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려보다 정류장을 놓치기 일쑤였다.

바로 다음 해인 1995년에는 서초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당시는 더 아찔한 기억인데, 강남에 살던 나는 당일 어머니와 바로 그 삼풍백화점에서 만나 지인의 선물도 사고 식사도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야근으로 약속은 미뤄졌고, 근처까지 갔던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TV에서 백화점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온몸이 오싹해지는 충격이었다.

사고는 일어날 리 없다…단,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후마니타스
이런 대참사들은 모두 평상시에는 발생할 거라고 꿈도 꾸지 못할 사고였다. 일어날 리 없는, 일어날 수 없는 사고와 규모였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인재임이 확인되었고, 안전에 대한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며, 관련 기구가 추진되거나 매뉴얼이 강화되었지만, 모두 알다시피 오래가지 못했다. 각종 안전 기구들은 추진한다는 발표로 끝났고, 강화된 매뉴얼은 문서상으로만 존재했다. 모두 '다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또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고는 사회적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그래서 내게 충격이었다. 내게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는 안전한 줄 알았고, 깨끗한 줄 알았다. 아니 핵발전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당시엔 내가 너무 어렸고, 그해는 그저 아시안 게임이 열린 해였을 뿐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다. 국가의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로 핵발전을 선택하고, 핵발전소를 운영하며, 핵발전소를 계속 짓도록 결정한 이들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바로 일본이 그랬다. 사실 체르노빌 이전에는 미국 스리마일 사고도 있었는데,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의 핵산업계, 그러니까 이제 핵마피아(일본에서는 원자력촌으로 명명된다)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체르노빌이나 스리마일과 우리는 다르다'고 말했고 위험은 부정(否定)되었다. 그리고 일본 언론은 핵마피아들의 논리를 그대로 전파했다. (관련 기사 : 일본 뒤통수 강타한 달콤한 광고…다음은 한국?)

이를 그대로 믿었던 일본인들에게 핵발전소는 여전히 안전한 곳이었다. 그래서 사고에 대한 대비는 국가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할 당시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이하 간 총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핵발전소 사고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발생 가능한 국가적 위기로 인지된 적이 없으며, 당연히 그에 대비한 훈련이나 준비도 없었다. 사실상 일어날 리 없는 사고였으니까. 그러나, 사고는 났다.

원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현지에 곧바로 오프사이트센터(원자력재해대처센터)를 설치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다. 이외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 조치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부정(否定)된 것이다. 그러나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지질 않았다. 유례없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오프사이트센터는 제 기능이 불가능했다. 결국 초동 대응을 맡게 된 것은 당시 간 총리가 이끄는 국가 권력의 중추, 총리 관저였다. 이렇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컨트롤 타워는 시작부터 부정(否定)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다.

이 책 <관저의 100시간>(후마니타스, 2015년 3월 펴냄)은 바로 그곳,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시점부터 핵발전소 사고가 진행된 100시간 동안 실질적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대응 컨트롤 타워였던 '총리 관저'를 중심으로, 핵발전 시스템에 관련된 당국과 도쿄전력 그리고 전문가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를 촘촘한 팩트로 보여주는 책이다.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침묵)"

그런데 저자의 말대로 논평과 추측은 배제한 채 오로지 팩트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은 넘치게 세다. 아베 신조 현 총리가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하건 말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이미 4년째 통제 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팩트였다. 그리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위에서 언급한 관련 인사들의 잘못이 있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 힘든 더 세밀한 기록들로 가득 찬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분노와 등골이 오싹해 오는 공포, 헛웃음과 치미는 욕을 자제할 수 없었다.

총리 관저를 사고 수습의 컨트롤 타워로 세울 때에는 담당 관료와 전문가들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들을 통해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 정보가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는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무리한 기대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떠올려 대입해 보면 원자력안전·보안원(이하 보안원)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자력안전위원회 → 원자력안전위원회, 도쿄전력 → 한국수력원자력, 문부과학성 → 미래창조과학부인 셈인데, 한국에서도 이들은 하나같이 원자력 전문가를 자임하며 온갖 핵발전 관련 의사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그랬다.

그러나 이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안전 신화를 외치며 위험을 부정(否定)해 온 그들이 후쿠시마 사고 직후 100시간을 가득 채운 대표적인 말은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그건 어디 어디 소관입니다", 그리고 "……(침묵)"이었다.

마다라메(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략) "나로서는 낙관적인 관측을 했던 것인데, '보안원이 잘해 주고 있겠지. 그러면 관저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42쪽)

"평소에 하는 방재 훈련처럼, 전문가들이 나름 논의를 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결정만 내려 주면 된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안원) 히라오카 차장도 아무 말도 없으니, (…) 도쿄전력의 가와마타 원자력품질·안전부장은 말을 거의 안 했어요." (50쪽)

"지금 폭발음이 났습니다. 진동도 있었다고 합니다. 흰 연기 같은 물질이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경찰관이 목격했다고 합니다." (…) 이토(위기관리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5층의 총리 집무실로 향하기 전에 보안원 사람에게 상황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111쪽)

이런 식이다.


있어서는 안 될, 부정(不正)으로 가득한 100시간

또한 필요한 정보는 없거나, 있는 정보도 제대로 된 경우가 드물었다. 이를테면, 초기 회의에서는 핵발전소의 도면도 없이 현장에서 떠난 지 한참 된 원자력안전위원장과 도쿄전력 고문의 '기억'에 의존해 판단이 이루어졌고, 방송에서 엄연히 폭발 영상이 나온 뒤인데도 도쿄전력이나 현장에서는 이것이 폭발이다 아니다와 같은 보고조차 없었다. 텔레비전과 기억만으로 초기 대응책을 모색하는 상황에 원자력안전위원장조차 "나도 섬뜩합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료와 전문가들의 무능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소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호언장담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민 피난을 위해서는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비산 범위를 예측하는 SPEEDI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방사능 방재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지만 데이터는 관저에 전달되지 않았고 피난 구역을 정하는 어떠한 회의에서도 간 총리는 관료와 전문가로부터 SPEEDI의 존재를 듣지 못했다. 그 가운데 중대 결단을 내렸다.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는 이도 없었다.

발전차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발전차에서 원전까지 연결할 케이블이 부족했다. 애써 조달한 발전차가 무용지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총리는 보안원·안전위원회·도쿄전력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총리와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참지 못한 시모무라가 입을 뗐다. "발전기를 보내면 그걸 원전에 연결해야 된다는 얘기 정도는 미리 했어야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의 다음, 그다음을 전문가들이 예상해 줘야 해요. 뭐가 필요한지 아랫사람에게 확인하든지, 제발 무슨 말을 좀 해주세요." 전문가들은 침묵을 지켰다. 시모무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결국 정치인들이 모든 판단을 했죠. 도쿄전력과 보안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문가들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이제 곧 냉각수가 바닥날 겁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일찍 얘기했어야지!" 하면서 허둥대는 식이었던 거죠. (…) 할 수 없이 총리가 "지금 당장 아는 사람한테 물어 보게"라고 했죠.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도 안 움직이나 싶어 기가 막혀서 쳐다봤는데, "네" 하는 대답만 하고 꼼짝도 안 하더라고요. (…) 옆에 가서 슬쩍 말했죠. "손에 든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다이얼 누르고 총리가 지금 하신 말씀을 물어 봐요"라고. 그랬더니 말한 대로 하더라고요. (63∼64쪽)

그리고 무책임의 최고 절정은 도쿄전력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던 100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무응답·무능력·무대책으로 일관하던 도쿄전력이 가장 절실하게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고 유일하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은, 원전 철수 즉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쿄전력이 원전 사고 현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간 총리가 받아쳤다. "철수하면 어찌 되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철수 따위는 있을 수 없어, 그렇지 않나?" (…) (도쿄전력으로 찾아간) 간은 이렇게 훈시했다. 비서관 메모에서 채록한 내용이다. "(…) 여러분은 당사자입니다. 목숨을 거세요. (…) 일본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이때, 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회장·사장도 각오해야 합니다. 60세 이상이 현지에 가면 됩니다. 나는 그런 각오로 하겠습니다. 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망할 겁니다." (223∼234쪽)

위와 같은 총리의 강력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의 철수 시도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15일에 도쿄전력이 본사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나누어 준 문서의 표제에는 "후쿠시마의 제1원자력발전소의 직원 이동에 관해"라고 되어 있었다. (…) 위기에 처한 플랜트의 제어를 실질적으로 포기했는지 여부가 본질이다. 거기다 본부 기능까지 철수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어디론가 피신시키려고 했다. 플랜트의 제어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라면 '전원'이 아니든, '일시적'이든, 더 나아가 '대피'라는 단어를 쓰든 그것은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일촉즉발의 원전을 앞에 두고 제어를 포기하고 방기하려 했다. (240∼241쪽)

결국 이는 간 총리가 도쿄전력에 사고대책통합본부를 두기로 한 결정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간 총리는 결국 보안원, 안전위원회, 도쿄전력에서 정보도 제언도 책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개인적 인맥을 동원해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을 별도 부대를 가동시키기도 했다. 핵발전에 대해 비판적이면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무시를 일삼던 핵마피아 전문가들은, 결국은 그들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완전히 무능했다.

▲ 핵발전소 폭발과 대지진, 쓰나미 참사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인근 지역(2011년 당시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후쿠시마·세월호, 교훈은 없었다

저자의 말대로 "심각한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지는 지진이 발생한 그날 그 시점에 이미 결정"(11쪽)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력 회사, 정치인, 관료, 학자, 노동조합, 그리고 언론 등 이른바 '철의 육각추'라고 할 만큼 굳건한 '원자력 마을(원전 마피아)'의 주민들은 '사고는 없다'고 적힌 화려한 비단 깃발을 국민들 앞에 흔들며 안전 신화에 권위를 부여해 왔다." (11∼12쪽) 그리고 핵발전소의 위험과 사고 가능성을 부정(否定)해 온 그들에게 위험에 대비한 방책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후쿠시마를 겪고 난 일본은 달라질 수 있을까? 낙관할 수만은 없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관료들은 주민의 안전 대신 정치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도쿄전력은 국민의 안전보다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정전으로 초래될 수 있는 환자들의 피해보다는 산업체의 절전 부담을 걱정했다. 바뀐 정부는 재빠르게 재가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의 뒤늦은 변명은 여전히 여과 없이 언론을 탔다.

후쿠시마는 일본에 그다지 교훈을 남긴 것 같지 않다. 핵마피아들의 질서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도 그 때문이리라. 오로지 팩트로 말하던 기무라 히데아키는 이 책을 이렇게 매듭짓는다.

"이 책의 바탕에는 사고를 일으킨 전력 가본과 이를 허락한 정치와 행정, 전문가들, 그리고 내가 몸담은 저널리즘에 대한 강렬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음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283쪽)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전국의 핵발전소를 방문하면 홍보관에 빠지지 않고 세워져 있는 것이 '한국은 후쿠시마와 달라서 안전하다'는 홍보판이다. 정전 사고를 은폐하고, 부실·중고 부품 납품과 비리가 판을 치며, 그 가운데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방사능 누출 사고는 없었으니 '안전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핵마피아들의 결론이다. 이건 뭐, '기승전안전'의 남용이다. 후쿠시마 이전의 일본과 정확히 겹친다.

최근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 결정과 신고리 3호기 운영 허가 심의 과정에서 보인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모습도 기시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1주일을 줘도 검토하기 벅찬 자료를 이틀 전에야 위원들에게 배포하고, 요약된 안건 설명서에는 전문가들이 검토한 결과 다 적합하다는 말 일색이다. 적합하다는 결론만 있을 뿐 근거는 제출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전문가들 믿고 거수기 역할 해달라는 것밖에 안 된다.

또한 핵발전소의 안전을 규제·감독하는 위원회의 수장이라는 자는, 위에서 언급한 각종 비리와 부실의 주인공인 신고리 3호기의 운영 허가를 심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매우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하기도 했다.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세계에 처음 선보이는 원전인 만큼 이렇게 문서로만 따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빨리 돌아가는 걸 보고 싶어요. 원래 신규 원전이라는 건 초기에 이런저런 운영을 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고쳐지는 거거든요."

사실상 운영 허가를 전제한 이런 발언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의는 요식행위가 아니고 무엇일까.

더욱이 우리에겐 후쿠시마만 있는 게 아니다. 2014년 우리는 또 하나의 고통스런 기억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세월호다. 노후 설비를 무리하게 연장 사용했고, 선박업체와 선원들의 무책임과 무능력 그리고 안전 불감증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핵발전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더 섬뜩한 것은 사고를 재앙으로 키운 정치인과 관료다. 대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와 비교할 때 세월호의 사정은 최악이 아니었다. 단 1명도 더 구조해내지 못한 당국의 대응은 불가사의한 수준이다.

사고 수습과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려보다 대통령의 의전과 홍보에 더 열을 올리던 관료들은 또 어떠한가. 현장에 있었다면 뻔한 거짓말이란 걸 알았을 것임에도, '조명탄 몇 발 터트려 놨을 뿐인데 조명탄 수백 발 발사, 잠수사 수백 명 투입, 항공기와 배 몇 대 등 대대적으로 구조 작전에 돌입했다'는 정부의 뻥을 그대로 옮기는 언론은 더 큰 분노를 샀다.

후쿠시마는 물론 이 땅에서 일어난 참사로부터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비상문을 여는 상상 그리고 기록

이 책을 읽고 나면 결론은 확실해진다. 후쿠시마의 재앙은 대지진과 쓰나미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다. 위험을 인정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려보지 못한, 일본의 핵마피아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써내려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후쿠시마보다 더 큰 재앙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무능, 무책임에 부실과 안전 불감증으로만 보아도 우리는 그들을 능가한다. 더구나 "후쿠시마를 기회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실제 등장하는 문구다)" 핵발전을 더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그것도 한 곳에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집중시키고 있다. 핵발전소와 함께 위험도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다면, 우리는 핵발전소 사고 역사에 더 끔찍한 기록을 남기게 될지 모른다. 바꾸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적어도 두 가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는 진짜 사고가 나기 전에 '비상문을 여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핵마피아가 안 하면 우리라도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위해 기록하는 것, 부정(否定)할 수 없는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후쿠시마 이후 4년간 우리가 밝혀낸 것, 알게 된 것, 폭로된 것만 제대로 추적하고 기록해도 어마어마한 사례의 학습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더 많은 경우에서 비상문을 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이 집념으로 써낸 이 책의 기록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아!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이렇게 활용하길 권한다. 설마 사고가 터질까 하는 생각으로 자꾸 회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혹은 그런 순간에 이 책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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