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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거부권은 비리 부유층 위한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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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거부권은 비리 부유층 위한 '빛 좋은 개살구'?

[프레시안 books] 장경욱 변호사가 말하는 '피의자 신문의 비밀' <5>

지난 1월 23일, 프레시안 북스는 허위 자백을 이끌어내는 미국 수사 기관의 기법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허위 자백과 오판>(후마니타스, 2014년 12월 펴냄)에 관한 장경욱 변호사의 서평을 실었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짚는 장 변호사의 글을 5회 게재한다.

이 글은 필자가 변호인으로서 경험한 한국의 '피의자 신문의 비밀'에 대한 연재 마지막 글이다. <허위 자백과 오판>은 미국의 피의자 신문 관행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대안까지 담은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부족하나마 변호인으로서 한국의 피의자 신문 관행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연재를 시작했다. (해당 서평 바로 가기)

'피의자 신문의 비밀'을 연재하면서 느낀 필자의 소회부터 전하고자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의욕만 앞섰고 준비가 부족했음을 절감한다. 변호사로서 피의자 신문 과정을 들여다본 여러 경험에 기초해 글을 써보았으나, 여러 면에서 역부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3주 간격으로 원고를 마감했는데, 필자의 여러 사정상 마감일이 닥쳐서야 글쓰기에 바빴다. 5회 정도로 집필 얼개를 구상할 때만 해도 스스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리라 낙관했었다. 그러나 이후 일정에 쫓겨 연재를 해나가면서, 집필을 위한 충분한 기획과 준비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다. 필자 개인의 경험담을 주로 기억에 의존해서 그때그때 찾을 수 있는 자료를 기초로 정리해 전달하는 수준이 되었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한 경험을 객관화하기 위한 자료가 제대로 준비된 것이 거의 없어 결과적으로 수필과 같은 성격의 글이 되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처럼 법정 내외에서 허위 자백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치열하게 다툰 경우에는 그나마 신문 과정에 대한 피의자 당사자의 진술, 그에 대한 수사관의 반박 진술 등 신문 과정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오로지 필자의 기억에 의존한 단편적 경험담이 되었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한 수많은 사례를 하나하나 생생히 전달할 수 있도록 그 경험담을 평소에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야 후회가 된다.

또 한 가지는 경험의 객관화를 위한 폭넓은 이해관계자들의 토론과 연구의 부족이 연재 기간 내내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연재를 하면서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빈곤한 우리 현실에서 자료 부족만큼이나,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한 토론과 연구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피의자나 변호인들이 경험한 일에 대해서는 의뢰인이나 동료 변호사들과 가끔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정보 교환만으로는 각자의 경험을 객관화해 피의자 신문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 매우 부족하다. 더욱이 수사 기관이 어떤 지침에 의해 피의자 신문 훈련을 받고 있는지, 수사관들은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해 어떤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필자 또한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다만 필자는 경험에 비춰 수사관의 갖가지 수사 기법을 이해하고 체득하며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조언해왔다.

수사관과 피의자라는 대립 당사자의 위치에 있지 아니한 제3의 중립적 위치에서 한국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학문 연구자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런 중립적 위치의 연구자를 매개로 피의자 신문 과정에 참여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허위 자백을 유발하는 신문 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수사 기관에 묻는다

ⓒ후마니타스
이제 연재를 마무리하며, 변호인의 입장에서 한국 현실에서 피의자를 위한 조언과 더불어 신문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피의자 신문 관행을 바꾸기 위해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대중적 인식의 변화다. 한국의 피의자 신문 현실에는 멀쩡한 사람도 허위 자백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 이에 대한 통계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및 그러한 연구 성과의 지속적 홍보, 그에 관한 대중적 인식이 사회 전반에 일반화되어야 한다.

필자는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허위 자백 사건을 겪으며, 국민 일반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무슨 허위 자백을 하겠느냐'는 식의 대중적 편견이 여전히 널리, 깊이 남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공안 수사 기관은 그런 대중적 편견을 악용해 허위 자백에 의한 간첩 사건을 만들어내고도, 잘못된 신문 관행을 혁신하는 대신 허위 자백을 합리화하기 위해 증거 조작까지 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이런 저질 수사가 별다른 견제 없이 이뤄지고 그것이 사법 절차에서 손쉽게 걸러지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위 자백 문제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죄도 없고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허위 자백이라는 파멸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위험한 피의자 신문 관행이 버젓이 비밀의 영역에 존재하고 이를 사법 절차에서 걸러내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는 변호인의 조력권 행사조차 수사 방해라는 이유를 대며 피의자 신문실에서 변호인을 강제 퇴거시키거나,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고하였다는 이유로 '변호사로서 진실 의무에 위반하였다'며 검찰이 징계를 개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저급한 수사가 똬리를 틀고 존재하기 때문에 미란다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수사 기관에 농락당하지 않는데도, 갖가지 수사 기법에 의해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에서 피의자를 위해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명하고 훌륭한 조언은 무엇일까? 필자의 견해는 항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항시 변호인과 함께 피의자 신문 과정에 출석해 진술거부권이라는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고, 오래 머물지 말고 퇴거하거나 구속 피의자의 경우 퇴거를 요구하라는 것이다. 이를 모든 사람이 인식하기를 소망한다.

수사 기관 관계자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까지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한 무고한 피의자가 존재했다고 보는가? 그런 피의자가 존재했다면 그들이 허위 자백을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문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유발하는 수사 기관의 기법이 존재한다고 보는가? 미란다 권리 행사를 진정으로 보장하고자 미란다 권리를 고지하고 있는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 기관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피의자에 대한 장시간의 신문과 계속되는 출석 요구가 적법하다고 보는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피의자에게 출석 요구를 계속하는 것은 미란다 권리에 반해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목적과 무관한가? 헌법상 권리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수사 방해가 되거나 진실 의무를 위반하는 것인가?"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그들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싶다.

수사 기관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더 많다. 예를 들면, 피의자의 미란다 권리 행사를 제대로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무고한 사람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드는 허위 자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 기관은 피의자 신문 관행을 끊임없이 혁신해 국민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진술거부권은 부유층을 위한 빛 좋은 개살구?

그동안 필자는 피의자가 변호인 조력권과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재의 신문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유리한 선택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신문 과정에서 항상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미란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일반 시민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필자의 조언이 자금력이 충분해 변호인을 손쉽게, 언제든 선임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한다는 말이다. 사법 절차의 '빈익빈 부익부',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더욱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기우만은 아닌 기우에 맞닥뜨리게 된다. 방위 산업 비리 의혹으로 체포된 한 인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를 접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수사 기관의 신문 과정에서 피의자 방어를 위한 '무기 대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변호인의 조력권과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서 불평등이 초래되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저소득층은 말할 것도 없고 서민들은 거의 대부분 비용 부담 때문에 변호인의 조력권을 보장받기 어렵고 신문 과정에 변호인 참여를 요청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이야기가 변호인의 조력을 항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부자들을 위한 조언으로 현실에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부자 피의자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미란다 권리를 현실에서 실제 어느 정도 행사하고 있는지와 별개로, 그들이 그런 선택의 기회를 언제든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법률 구조 제도를 만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복지 재정 수요가 넘쳐나고 그 우선순위를 따지다보면 사법 절차에서 변호인의 조력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률 구조 예산은 후순위 중에서도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아주 많다.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도 변호인 조력권과 미란다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난감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국민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권 및 미란다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평등한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어 변호인 조력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들고 그 결과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게끔 해서야 민주 평등 사회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권과 미란다 권리 행사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구조 제도를 국가에서 마련하는 것이 해법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같이 미란다 권리의 내용으로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도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변호사 단체 등 민간에서도, 혼자 힘만으로는 그럴 형편이 안 되는 피의자라 하더라도 변호인 조력권(참여권) 및 미란다 권리 행사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해줄 다각적 법률 구조 제도를 시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법률 구조 제도 개선 주장을 접하면, 상당수 국민들은 '그게 필요하긴 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런 현실이 도래하겠느냐'며 불신부터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복지를 위한 갖가지 제안이 국가 재정을 이유로 빈말이 되기 일쑤이고 현실의 불평등이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체득한 국민들로서는 그런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민들도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권과 미란다 권리 행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런 요구를 적극적으로 관계 당국과 여론에 호소하여야 한다.

아울러 수사 기관도 서민들이 차별당하지 않고 변호인의 조력권과 미란다 권리 행사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피의자 신문 관행을 조속히 개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수사 기관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피의자 신문 횟수와 그 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시쳇말로 불러서 계속 조지는 방식의 피의자 신문은 악습이다. 서민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이해한다면, 불구속 피의자든 구속 피의자든 장기간, 장시간, 그리고 지나치게 자주 조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 기관이 자백을 받고자 피의자를 괴롭혀 결국 허위 자백 문제까지 발생시킨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신문 과정에서 미란다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변호인의 조력 없이 혼자서 조사받겠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서명날인을 하고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에게 변호인 조력권 및 미란다 권리 행사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를 제안한다. 관계 당국 및 변호사 단체와 협력하면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고 본다.

피의자 신문 조사 시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피의자를 위해 최초 1회 피의자 신문의 경우에 한해서라도 변호사 단체와 협력해 변호사 단체에서 선임해주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예컨대 2시간 정도(이는 재정 형편 등 여러 사정에 의해 조정 가능하다)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상 녹화 조사실에서 피의자 신문 조사를 하도록 의무화하기를 바란다.

현재 변호사 단체에 속한 변호사들의 수 및 재정 형편에 비추어 보면, 변호사 단체에서 형편이 안 되는 서민들을 위해 2시간 정도의 피의자 신문 참여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피의자를 대신해 참여 변호인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최초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누구나 변호사 단체를 통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면, 평등한 미란다 권리 행사를 보장하는 평등 선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가운데 1회 피의자 신문 전체 과정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그 조사 시간을 2시간 정도로 제한한다면, 피의자의 헌법상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면서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비밀의 공간에서 장기간, 장시간의 피의자 신문을 통해 자백을 획득하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선진적 수사 기관의 마인드를 갖췄다면 필자의 이런 제안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본다.

피의자 신문 개선하려면 비밀의 장막 걷어내야

이번 연재를 계기로 필자는 피의자 신문 관행을 바꾸고 피의자 신문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에서 진행되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 피의자 신문 과정을 국민 일반의 시야에 드러내야 한다. 피의자가 헌법상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더라도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수사 기관은 그 권리를 보장하면서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선진 수사 기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아직도 피의자 신문은 비밀에 쌓여 있다. 간혹 피의자 신문의 녹화 동영상을 통해 피의자 신문 과정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피의자 신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개 조서를 통해 추정된다. 수사관과 피의자 사이에서 조서의 증거 능력을 둘러싼 다툼이 제기되면 양측은 정반대 이야기를 법정에서 하게 된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두고 사회적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법정까지 이어진 허위 자백은 당사자를 억울한 옥살이로 몰아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탈북자 허위 자백 사건의 경우 이중고가 있다. 자백 내용을 검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우리 안의 몰이해와 의구심이 작동해 허위 자백이 구체적인 근거를 갖춘 자백으로 둔갑하는 일이 생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미란다 원칙의 경고 조항마저 무시되기 일쑤다. 미란다 원칙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사실이 녹화 동영상을 통해 다행히 드러나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가 증거 능력을 잃는 경우에도, 상당수 수사관은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후로 수많은 미란다 경고를 들었기에 당사자가 미란다 경고를 제시받는 것을 귀찮아했고, 그래서 미란다 원칙 고치를 생략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미란다 경고가 요식적 낭독 행위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미란다 경고를 듣고도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면 피의자는 신문 과정에서 갖가지 수사 기법에 농락당하다 허위 자백을 하게 될 위험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만약 허위 자백을 하게 되면, 사법 절차에서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은 정말 어렵다.

탈북자와 같이 취약한 피의자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피의자 신문의 조사 시간에 사실상 어떠한 규제도 없다. 구속 기간 내내 매일 조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매일 장시간의 조사를 받으면, 그걸 견뎌낼 사람은 없다. 조사 시간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도 없이 장시간 조사를 통해 얻어낸 자백이 법정에서 무사통과되는 사법 체계를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법 체계는 공정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필자는 장담한다.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다면, 그런 사회는 마치 군대에서 가혹 행위가 이어져도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식으로 군대의 참혹한 인권 침해를 방치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본다.

▲ 장경욱 변호사. ⓒ프레시안(서어리)


피의자 신문 과정 개선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물론 헌법과 형사소송법 그리고 판례가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에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피의자 신문 관행을 개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수사 기관은 신문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보기가 매우 어렵다.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조작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정당성을 강변하며 6개월의 합동신문센터 조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갖은 변명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하지 않았나. 증거까지 위조해 간첩을 만들려다 들통이 나도, '간첩이라고 의심한 건 국가 안보를 위한 애국적 행위였다'고 변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법원에서 양형 참작이 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나라에서 단기간에 허위 자백이 없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신문 과정에서 연일 추궁에 추궁을 당한 결과 허위 자백을 하게 됐고 수사 기관에서는 그것을 영상으로 녹화했다'는 한 피의자의 주장을 접한 필자가 '대본에 따라 연습시킨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신문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할 것을 해당 수사 기관에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수사 기관은 적반하장 격으로 고소·고발까지 했다. 조사 돌입에서 범행 시인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의자를 회유하고 협박한 갖가지 수사 기법은 생략하고, 피의자가 최종적으로 범행을 시인하며 무력하게 순응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식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어디 그뿐인가. 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피의자를 돕는 변호사를 향해, 진영 논리에 기대어 '간첩이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변호사가 간첩을 옹호한다'고 비난하는 게 현실 아닌가. 전문적 수사 기법과 수사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국민들을 상대로 종북몰이까지 하면서 공정한 사법 질서를 향한 변호인들의 노력을 폄훼하기 일쑤다. 이런 현실에서 변호사가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미란다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피의자가 드물기에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필자는 자백의 임의성, 신빙성을 검증하는 여러 안전장치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왜 멀쩡한 사람도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전문가들이 철저히 해서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변호사, 검사, 판사들도 허위 자백 사례들을 분석하고 연구해 그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허위 자백을 낳은 수사 기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를 규제해 신문 과정에서 누명을 쓰는 피의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검사, 사법 경찰관은 자백을 이끌어내는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피의자 신문 훈련 지침을, 끊임없이 허위 자백이 유발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허위 자백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질 경우 조서에만 의존하는 대신 임의성 및 신빙성 여부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분석을 통해 무고한 희생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 모두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누구나 허위 자백을 할 수 있음을, 이로 인해 오판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잘못된 피의자 신문 관행을 고쳐 선진 사법 절차를 만들어가는 길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하기를 바라며 연재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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